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85
285. 생일 주간 (6)
직녀의 실루엣의 시선이 지율이의 검지 끝에 머물렀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를 살펴보다가 물었다.
“나를?”
지율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네!”
그 다음은 견우직녀 이야기로 이어졌다.
지율이는 내게 들은 견우직녀 이야기를 열심히 늘어놨고, 견우직녀의 실루엣에는 은근하게 미소가 드리운 듯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직녀의 실루엣이 웃음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랬구나. 나를…….”
견우의 실루엣이 웃었다.
“허허허, 우리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는데 말이오.”
내가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전부 진짜 이야기인 건가요?”
“그렇소이다.”
“그럼 지금까지도 두 분은 칠석에만 만나는 건가요?”
“허허, 그렇소이다.”
의외였다.
칠석에만 만나서 재회의 기쁨 그리고 헤어질 때의 아쉬움으로 비가 내리도록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었나?
그렇다기에는 너무 밝아 보였다.
“그런 반응도 이해는 하오.”
견우의 실루엣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는 확실히 그런 때도 있었소. 만나기만 하면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소이다.”
직녀의 실루엣도 호호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죠. 가끔 이번에는 꼭 안 울어야지―하고 눈물을 참아보곤 했는데, 결국 돌아가서는 펑펑 울었었죠.”
“나도 마찬가지였소.”
“다 옛날 얘기지만요.”
지율이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이제 안 슬퍼요?”
직녀의 실루엣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단다. 그저 기쁘기만 해. 전에는 기다림의 나날들이 너무 괴롭기만 했는데, 이제는 기뻐.”
“기다리는데 기뻐요?”
“응.”
직녀의 실루엣은 견우의 실루엣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지율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렇게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쁘니. 만날 수 있다는 확신, 그것으로 충분하단다.”
견우의 실루엣이 허허 웃으며 말을 보탰다.
“사실 익숙해질 때가 되기도 하지 않았겠느냐? 벌써 수백 번째인데…….”
그때 직녀의 실루엣이 눈을 흘기듯 고개를 틀었다.
견우의 실루엣은 헛기침을 수차례 하고는 다시 말했다.
“수백 번도 모자란 것 같기는 하오. 수천, 수만 번을 만나도 매번 애절할 것이오.”
갑자기 내게 이야기를 늘어놔서 당황스러웠지만, 그냥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데 이 실루엣… 그림자처럼 보이는 건 어떻게 하신…?”
내가 조심스레 의문을 표하자 견우와 직녀의 실루엣이 한참 웃었다. 그리고 견우의 실루엣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림자가 아니라오.”
“예?”
“하하하하,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는 이해하오. 그대들 눈에 우리가 실루엣으로 보일 테니.”
견우의 실루엣, 아니, 견우가 실루엣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옛날 사람이니까.
소를 치고 1년에 한 번 직녀를 만나는, 나한테는 그냥 동화 속의 인물이다.
그런데 실루엣이라니.
“그것 아시오?”
견우의 물음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뭔지 말해야 알지.
“은하수가 무엇인지 아시오?”
나는 그제야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완벽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말 그대로 은하가 보이는 모습을 두고 말하는 거 아닌가요? 마치 은빛 강처럼…….”
“맞소이다.”
견우는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밤하늘의 천구에 투영된 은하의 단면이 마치 은빛 강처럼 보이는 데서 유래한 것이오. 지구에서 바라보는 은하의 단면을 은하수라 하는 것이오. 그리고 이쪽 말고 바깥의 은하는 보기 어렵소이다.”
“그렇군요.”
“우리는 이쪽 은하와 바깥쪽의 은하, 그 가운데서 살고 있소이다. 즉, 그대들은 우리의 단면만을 보고 있소. 마치 은하수처럼 말이오.”
많은 것을 알려주는 말이었다.
말 그대로 자신들의 정체에 대한 얘기도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옛날 사람이라 하여 모를 것이라 생각했던 선입견을 단번에 깼다.
별거 아닌 일로 넘길 수도 있었지만, 아직도 선견과 편견이란 벽으로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것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와아아아아, 신기하다아아.”
지율이는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직녀는 그런 지율이가 귀여웠는지 자세를 낮추고는 생긋 웃었다.
“아무튼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소.”
견우가 하하 웃었고, 나는 지율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직녀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은 다음 말했다.
“저희의 이야기가 이렇게 후대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게 놀랍네요.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지율이는 서슴없이 직녀의 손을 덥썩 잡았다.
“우리 아빠가 직녀 언니 얘기해 줬어요. 엄청 재밌는데 감동적이고 슬픈 이야기였어요.”
“그랬어?”
“네! 만나서 너무 좋아요!”
“나도 만나서 좋네.”
“직녀 언니 손 따뜻하다.”
“그래?”
직녀는 조금 놀란 듯했다. 아마 자신들의 단면만 드러났고, 은하수가 흐르는 곳에서 따뜻할 리가 없는 걸지도.
하지만 직녀는 미소를 지으며 양손으로 지율이의 손을 감쌌다.
“지율이 손도 따뜻하구나.”
발밑으로 은하수가 흐르는 곳에서, 우리는 견우직녀와 함께 오작교 위에서 담소를 나눴다.
* * *
“1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인데 저희가 너무 실례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나의 말에 견우와 직녀는 거의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아니에요.”
전과는 다르게 오작교를 펼쳐서 만나는 게 하루일 뿐, 서로의 근황을 알아볼 방법은 많아졌다고.
“마지막으로 축하해 주세요!”
갑작스러운 지율이의 발언에 견우와 직녀가 호기심을 보였다.
“우리 아빠 생일이거든요!”
지율이는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방식의 생일에 대해 설명을 늘어놨다.
얘기를 들은 견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
견우는 직녀 쪽을 살짝 쳐다봤고, 직녀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견우와 직녀가 나와 지율이에게 각각 손을 뻗었다.
마력도, 오라도 아닌 기운이 검은색 그림자처럼 쭉 늘어나 우리에게로 향했다.
보통 검은 무언가가 스멀스멀 다가오면 불길하게 표현하게 마련인데, 부드럽고 포근한 좋은 기분이었다.
“나는 제일로 소를 잘 친다오.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소 치는 재능이 그대에게 갈 것이오.”
견우가 말했다.
“지율아, 나는 베를 잘 짠단다. 앞으로는 지율이도 베를 잘 짜게 될 거야.”
직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언니라고 해줘서 고맙기는 하지만, 나는 지율이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보다도 나이가 많단다.”
지율이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직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할머니 없어요.”
“어? 아…….”
갑작스러운 적막.
“하, 하하. 재능이 거의 다 들어간 것 같구려.”
견우는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우리가 가진 새로운 재능을 줘도 괜찮지 않겠소?”
직녀는 간절하다는 듯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런데 이건 한 명한테만 줄 수 있는 것인데.”
“그럼 바로 지율이에게…….”
그때 지율이가 나를 가리켰다.
“아빠 생일이니까 아빠한테 주세요!”
“그게 좋겠느냐?”
“네!”
“그래, 이미 너는 우리의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그렇게 하자꾸나.”
뭔가 얘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체 뭘 주신다는 건지…….”
“받으면 알 것이오.”
그렇게 견우와 직녀는 내게 또 다른 검은 기운을 쏟아냈다.
그때 문득 머릿속에는 지율이의 검은색 알껍데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하기 전까지 모든 시작인 검은 차원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의 전신이 검게 물들었다. 피부 안쪽에서부터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당황하는데 점점 검은 기운이 잦아들었다.
“쓰기에 따라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힘일 것이오.”
견우가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 또 봐요.”
직녀는 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또 보자.”
그렇게 우리는 오작교에서 내려왔다.
지율이는 준비했던 모든 간식을 내놓았다.
견우와 직녀는 행복하게 웃으며 미소를 지었고, 까치들과 까마귀들은 정확하게 쪼개서 나눠 먹었다.
* * *
“꺼우우우우!”
하늘나라를 지날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날개를 펄럭이며 우리를 배웅했다.
“또 보자아아아아.”
지율이는 거위에게도 인사를 했다.
하늘나라의 바닥을 지나서는 싹나무의 덩굴에 올라 천천히 내려왔다.
“빠아! 어땠어?”
“너무 좋았지.”
“되게 신기했어, 그치?”
“그러게.”
“견우 아저씨랑 직녀 언니 되게 좋았어.”
견우직녀는 부부인데, 견우는 아저씨고 직녀는 언니라니.
“빠아! 좋은 생일 보내고 있어?”
“그럼.”
나는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최고의 생일이야.”
“정말?”
“그럼.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나도 행복해.”
“그래?”
“응! 아빠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내가 해야 될 말 같은데.
인생 최고의 생일을 보내며 휴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진짜 생일은 이미 지났지만, 그런 건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덕분에 생일을 한 주 내내 보내기로 했으니 이보다 호사스러울 수가 없었고.
휴도의 네모집 앞마당.
“빙수라도 한 그릇 만들어봐라. 네가 빙수를 그렇게 잘 만든다지?”
레오는 선베드에 몸을 기대로 누워 있었는데, 팔짱은 풀지 않고 있었다.
“……내가 네 빙수 기계냐?”
고성우가 인상을 찡그리고 말했지만, 레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뭐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 빙수라도 먹으면서 기다리면 좋지 않겠느냐? 이 정도면 굉장히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일리가 있는 주장.
하지만 고성우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장을 왜 봤어? 오늘 다 같이 먹으려고 잔뜩 이것저것 사 온 거야. 먼저 먹으면 무슨 의미가 있어? 다 같이 먹어야지. 심지어 지율이에 생일 주인공인 토일이도 아직 안 왔는데.”
“생일은 이미 지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늦게라도 한다잖아.”
“생일이라.”
레오는 피식 웃었다.
“인간들은 무언가를 기념하길 좋아하지. 1년에 한 번. 우리가 살아가는 영겁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데, 그걸 기념하겠다고 하는 꼴이 우습다.”
“뭘 우스워, 넌 생일파티가 싫냐?”
“그런 것 따위…….”
“해본 적 없지?”
진실이었다.
과거 다른 차원에서 온갖 공물들을 받아본 레오였지만, 생일파티라는 개념은 없었다.
“욕을 해도 해본 놈이 해야지, 해보지도 않고 뭘 그래?”
고성우의 면박에 레오가 미간을 찡그렸다.
“시끄럽다. 그런 한심한 기념일 따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지. 너 지금도 빙수 먹고 싶어 하지? 생일에는 빙수도 실컷 먹는 날이라고.”
“그런 것인가…?”
“그래, 먹고 싶은 거 잔뜩 먹는 날이라고.”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던가…….”
그 와중에 핫도그는 하늘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오작교가 끊어지고, 견우와 직녀가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견우와 직녀는 서로를 향해 손가락과 양손으로 하트를 만들어서 날렸다. 지율이가 떠나기 전에 알려준 것이었다.
“아우우우우우우우!”
핫도그가 하늘을 향해 하울링을 했다.
“저 개는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냐?”
레오가 짜증을 내자 고성우는 핫도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반박했다.
“왜 핫도그한테 뭐라고 그래?”
핫도그는 쓰다듬어지면서 계속해서 하울링을 이어나갔다.
결국 하늘에서 오작교와 견우직녀는 모습을 감췄다.
핫도그는 하울링을 멈추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 오늘 이상하다? 자꾸 울다가 한숨 쉬다가? 뭐 고민 있어?”
고성우는 핫도그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따 맛있는 거 많이 줄게. 빙수도 잔뜩 줘서 속 뜨끈한 것도 좀 식히고. 응?”
핫도그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모두가 답답해서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응? 기분 풀어 인마.”
고성우가 씩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고, 이내 핫도그는 꼬리를 흔들며 생각했다.
어쩌겠어―내가 이해해야지―하고.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8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