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94
294. 유명세 (6)
“안녕하십니까.”
고고한 흑조 같은 모습에 걸맞은 목소리였다.
단 한마디를 내뱉었을 뿐인데, 교양이 뚝뚝 떨어졌다.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셨을 겁니다. 먼저 사죄드립니다.”
여자가 고개를 살짝 숙였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여 보였다.
안드리엘도 조금 놀란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조용히 모시고 싶어 이렇게 불쑥 찾아뵙게 됐습니다.”
여자는 나와 안드리엘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전노희라고 합니다.”
“김토일입니다.”
“안드리엘.”
전노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상황을 전부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 상태에서는 저희와 대화를 시작하실 의향이 있으신 거죠?”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 지금 바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어디로 말이냐?”
전노희가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저야 허울뿐인 헌터 협회장일 뿐이고, 안드리엘 님과의 만남을 고대하는 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만나러 가셔도 되겠습니까?”
안드리엘이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곧바로 응하지 않고 전노희에게로 시선을 옮기고 물었다.
“기다리는 분이 누군지 알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신한국 대통령님입니다.”
신한국.
이름부터 대통령감이다.
신한국을 모르면 간첩, 아니, 간첩도 신한국은 안다.
전 세계를 놓고 봐도 몇 안 되는 헌터 자격을 갖춘 대통령인 신한국을 모른다면 무지한 것이다.
신한국이 엄청난 전투력으로 대통령이 된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되기에 뛰어난 자질을 갖추기는 했지만.
“대통령?”
안드리엘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이쪽 세계에서는 왕 같은 거야. 왕이랑은 다르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그래.”
나의 말을 들은 안드리엘이 고개를 끄덕거리다 말했다.
“당장 만나러 가도록 하지. 나도 할 말이 있으니까.”
전노희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자세를 살짝 낮췄다.
“그럼 지금 바로 모시도록 할 테니 긴장을 풀어주시기를.”
그 순간 우리가 있는 공간 전체를 마력으로 감싸는 게 느껴졌다.
츠츠츠츠츠츠츳.
마력의 빛이 우리 모두를 감쌌다.
* * *
팟.
마력이 전부 감싸는 듯하더니 눈을 깜빡이고 나자 다른 장소에 도착한 상태였다.
커다란 회의실 같은 공간이었다.
한국의 미를 살리면서도 커다란 타원형 테이블이 자리했고, 거대한 샹들리에가 눈길을 끌었다.
“여, 여기 설마…….”
조동욱이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목소리를 냈다.
“청와대네요.”
채소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긴, 대통령을 만나러 왔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나저나 강척에서 순식간에 청와대라니.
전노희의 능력은 순간이동인 게 분명했다.
그것도 다수의 사람을 이동시킬 수 있는 엄청난 헌터였다.
전노희는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평온하게 서 있었다.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까.
벌컥.
회의실 문이 열렸고, 수행원 하나 대동하지 않은 신한국이 들어섰다.
닫히는 문 사이로 안경을 쓰고 볼살이 통통한 남자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상쾌한 웃음을 짓는 신한국은 일흔이 넘었지만, 5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얼굴 자체도 젊어 보였지만 빽빽한 머리숱과 건장한 몸이 크게 한몫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신한국입니다.”
신한국은 의자를 향해 손을 뻗어 보였다.
“앉으시죠.”
분명히 대통령을 만날 것을 알고 왔음에도 얼떨떨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자리에 있는 건지 참.
분명히 스스로의 선택이었음에도 떠밀린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었다.
나는 안드리엘을 한 번 쳐다봤고, 그다음은 머릿속으로 지율이를 떠올렸다.
왠지 모르게 떠오르는 웃음을 지그시 눌렀다.
고민할 게 없었다.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지율이가 모든 걸 알고 있다면 당연히 도와주라고 했을 테니까.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군요?”
신한국이 나를 보고 말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조금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찰나, 신한국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경사스러운 날이긴 하죠. 여러분과 이렇게 마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신한국에게서는 권위적인 면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너무 낮추지도 않았다. 우직하고 당당하며 툭 터놓은 느낌이었다.
모두 의례적인 소개와 인사를 하게 됐다.
자연스레 신한국이 한 명씩 차례차레 대화를 나눴다.
당연히 메인은 신한국과 안드리엘의 대화.
“오늘의 교류는 꼭 이쪽 분을 통해서만 하시겠다고…?”
신한국의 눈길이 나를 스쳤다.
“그렇다.”
안드리엘이 말하자 신한국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두 분이 어떤 관계입니까?”
안드리엘은 되물음으로 답했다.
“사적인 것까지 대답할 의무는 없지 않나?”
신한국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맞습니다. 어떤 질문이든 지금처럼 편히 말씀해주십시오.”
“그럴 생각이었다.”
문득 안드리엘이 내게 얼마나 부드럽게 대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안드리엘의 말투만 보면 교류의 시작보다는 싸움의 시작 같았으니까.
이야기는 후쿠시마에 열려 있는 노란색 차원문까지 이어졌다.
일반적인 붉은색, 파란색 차원문.
종종 흉포한 이종족의 등장과 빠르게 열리는 생성되는 것으로 골치인 흰색 차원문.
다른 차원과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노란색 차원문.
“이거… 노란색 차원문에 대한 것은 누가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신한국이 나를 보며 물었다.
“일본 정부 측은 완전하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해당 차원문 관련해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습니다.”
“음모론처럼 이야기가 꽤 퍼져 있을 수 있겠군요.”
“원래 다른 차원문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지 않았습니다.”
처음보다는 여유를 잃은 신한국이 중얼거렸다.
“차원문이 그쪽에 있으면 이거 국제정치 문제가 되는 건데…….”
잠시 고민하던 내가 말했다.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신한국이 조금 놀라며 고개를 들었고,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일본에 차원문이 생겼다고 해서, 차원문이 일본 소유인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과거에도 차원문 주변으로 상권이 발달하거나, 원래 땅주인이 득을 보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원문의 소유권이 넘어간 것은 아니잖습니까?”
“계속 말씀하십시오.”
“더군다나 노란색 차원문은 공격적인 이종족이나 마수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다른 세상과 이어지는 통로 역할이죠. 실제로 안드리엘은 그 통로에서 나와 한국까지 왔습니다. 이미 자유롭게 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안드리엘을 보며 말했다.
“그렇잖아? 내가 궁금한 거라면 일본에서 여기로 올 때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인데…….”
“별다른 과정은 없었다.”
“아무도 너를 못 본 거야?”
“그렇지는 않다. 몇몇 인간들은 나를 보고는 뒤로 나자빠졌지.”
일본에서 안드리엘의 목격자들은 그저 보면서 어떠한 대처도 하지 않았다.
사로잡기는커녕, 말을 걸지도 않았다고.
이 부분은 잠시 무사시와 연락을 했다.
무사시는 꽤 확신에 찬 답을 줬다.
―어떤 일로 번질지 모르기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 그냥 보고만 있었던 것 같소만.
신한국은 깍지 낀 손등을 턱 아래로 가져가며 나지막이 말했다.
“교류는 필요하지만… 이대로라면 안드리엘 님을 비롯한 엘프들이 저희 쪽 세상을 자유롭게 오가는 쪽으로 할 수도 있는 거겠군요.”
나는 안드리엘을 힐끔 쳐다봤다.
안드리엘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내가 입을 뗐다.
“그렇습니다.”
“엘프가 이쪽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오히려 득이 된다는 것만 있다면, 제가 최선을 다해 추진하고 싶습니다.”
안드리엘이 입을 열었다.
“너무 앞서가는 것 같다.”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대신 설명했다.
안드리엘 차원에서 인간과 엘프의 관계는 두껍고 높은 벽이 세워져 있었고, 엘프들은 이쪽 세계의 인간들 또한 경계할 것이라고.
“그렇군요.”
일순 대답을 하는 신한국에게서 마력이 느껴졌다.
신한국은 각성자이지만, 마력의 크기는 작았다.
실제로 전투력도 일반인과 비교하면 초인이라 할 수 있었지만, 헌터 중에서는 뒤에서 1~2등을 다툴 수준이었다.
신한국의 능력은 불운한 미래를 보는 것.
그가 가진 능력의 장점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불운한 미래로 이어지는 선택만 피하면 됐다.
더 나쁜 미래가 없으란 법은 없지만, 대체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신한국이었다.
“그렇다면 저희가 먼저 노력을 해야 될 때로군요.”
신한국은 눈을 빛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드리엘 님만 이곳을 오가실 예정이시지 않습니까? 자유롭게 오가는 부분에서 일본과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건 안드리엘 님의 의지에 달린 것이고 나중까지 고려했을 때 일본에서는 막을 이유가 없을 테지요. 어쨌든 자신들의 땅을 거치는 것이니 무조건 득이라 판단할 것입니다.”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엘프와의 교류라는 부분에서 함께하는 방식을 택한다면 일본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죠. 무엇보다 안드리엘 님과 가장 가까운 김토일 씨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함께하고 있으니 말이죠.”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렇죠’하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더 깊은 교류를 이끌어내는 것이겠군요. 다른 엘프분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요. 제가 잘못 생각했었습니다.”
모두가 신한국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엘프들이 저희 쪽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을 증명하라고 할 게 아니었습니다. 저희들이 엘프에게 득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한국은 안드리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먼저 앞에 계신 안드리엘 님의 마음을 사는 것이 우선이겠죠.”
안드리엘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제법이구나.”
천천히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듯했다.
신한국은 트인 사람이었고, 당장 억지로 무언가를 하며 압박을 가할 생각은 없음을 확실하게 나타냈다.
그보다 안드리엘에게 우리들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대통령으로서, 헌터로서를 떠나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다.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군요.”
전노희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나저나 요즘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시던데, 흥미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계시네요. 예전에 제가 그렇게 부탁을 드릴 때는 나서는 법이 없으셨는데.”
그녀의 시선은 고성우를 향해 있었다.
“이름을 날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살다 보니 자연스레 유명해졌고요.”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전노희와 고성우 사이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던 모양이다.
똑똑똑.
회의실 문에 작은 노크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볼살이 통통하고 안경을 쓴 남자가 들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신한국의 물음에 남자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갑자기 들어서서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흰색 차원문 관련입니다.”
“무슨 일이죠?”
“흰색 차원문에서 ‘철’의 성질을 가진 이종족이 나타나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철인’이라 불렸습니다.”
“수습이 안 되는 상황입니까?”
“헌터들 중 부상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철인은 제압 완료했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그 과정에서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들이 다수 있었고, 현재 구조작업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민간인 사상자가 얼마나 나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최대 수백 명 이상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위급상황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차원문으로 인해 민간인 사상자는 천둥번개에 의한 것만큼 적은 수에 불과했다.
나는 안드리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눈빛만으로 나의 의중을 인지한 안드리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도움은 이쪽이 먼저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9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