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194
194
변호인 강태훈 194화
고작 10년. 아홉 살 어린 소녀가 고통받았을 것을 생각하면 무척 작은 형이었다.
인간의 평균 연령이 80세인 시대였다. 100세 시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한 아이를 죽였는데 10년이라니. 무기징역, 사형을 때려도 시원찮은 것이다.
그렇지만 법이라는 것이, 무조건 감정적으로만 형벌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
안타깝긴 했지만 태훈도 법조인이었기에 더 이상 이 부분에 대해서 한숨만 쉬면서 있을 수는 없었다.
오후에는 혜미를 찾아가기로 했다. 현재 경찰은 소년원에 있는 심리치료사를 통해서 적극적인 치료 협조를 요청한 상황이었다.
심증은 확실하지만 아이의 자백이 없기 때문에 부모들에 의한 범죄임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라고 경찰은 보고 있었고, 심리치료사는 혜미가 원활한 진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선 태훈은 혜미에게 향했다.
심리치료사와 만난 태훈은 그녀와 가볍게 악수를 나눴다.
벌써 여러 차례 만나는 것이었다.
중년의 그녀는 조금은 푸근하게 옆으로 살이 쪄 있었고 얼굴은 부드러운 선을 그리고 있었다.
“오늘은 좀 어떤가요?”
“오시길 기다렸어요. 이미 경찰에도 연락했습니다.”
“그 말은……?”
그녀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서 태훈은 드디어 혜미가 진범에 대해 입을 열었음을 알 수 있었는데, 그녀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녀는 태훈을 보며 입만 달싹일 뿐, 쉽사리 그 말을 뱉어내진 못했다. 결국 입술이 파르르 떨리면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녀였다.
“혜미는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예상이 돼요.”
“스톡홀름 증후군이요?”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해서는 태훈도 조금은 생소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서게 되는 걸 말해요. 그러니까 자신을 때리고 욕해도, 그 가해자의 편을 들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자신을 때리고 욕해도 그 편에 서고 싶다?
그건 다소 이해가 안 되는 말이고 마음에도 와 닿지 않는다.
“쉽게 남녀 사이를 예로 들게요. 남자가 여자를 끔찍이도 좋아해요. 여자는 남자에게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여자는 그런 남자를 이용해요. 명품 백을 받고, 맛있는 것을 얻어먹고. 그렇게요. 남자는 서서히 회의감을 느끼고 자신을 돌아보고 ‘아, 이건 아니다.’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 오죠. 그때 여자가 한 번 ‘나도 당신이 좋아’라고 진심 없는 말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 번의 달콤한 속삭임이 남자로 하여금 헤어 나올 수 없는 족쇄를 채우는 거죠. 남자는 그 여자를 다시 쫓아다니게 되는 거죠. 그처럼 매일 폭행을 하고 욕을 해도, 가끔씩 해주는 달콤한 말들 때문에 혜미는 부모의 편에서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부모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는 것도 아이에겐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는 거죠.”
“하…….”
부모의 편. 그 말에서 확답이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사건의 원흉은 부모였구나.
곧 강력계 형사들이 도착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아이가 겁을 먹을 수도 있으니, 변호사님과 반장님만 함께 들어가시는 게 어떨까요?”
“네.”
두 사람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갔다. 혜미는 과자를 먹고 있었다. 심리치료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혜미야, 이 두 분께 네가 겪었던 일들을 말해줄 수 있겠니?”
“정말 그렇게 하면 더 이상 안 맞고, 안 굶어도 되는 거예요?”
“그럼.”
그녀는 자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력계 반장과 태훈의 얼굴에도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가 걸렸다.
혜미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밥을 먹다가 흘리면 엄마한테 맞았어요. 주걱으로 맞기도 했고, 국자로 맞기도 했어요. 숟가락도요. 한 번은 포크로 여기를 찔러서 많이 아팠어요.”
그렇게 말하며 혜미는 입고 있는 티셔츠의 팔소매를 끌어올렸다. 팔의 삼각근 쪽에 포크로 인해 생긴 흉터가 보였다.
“가끔은 며칠씩 굶기도 했어요. 한 번은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거꾸로 머리를 집어넣은 적도 있어요.”
태훈과 강력계 반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욕조에 물을 받고 머리를 집어넣었다?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투사들을 고문하던 일본인들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것도 이제 겨우 열두 살짜리 아이였다.
혜미에게서 계속해서 충격적인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강력계 반장은 혜미보다는 나이가 있긴 하지만 고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는 너무 화가 나 자신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것이 일상이었기에 혜미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그것을 말하고 있었지만, 태훈과 강력계 반장은 아니었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동생이 죽어가던 때는…….”
혜미는 말끝을 흐리며 두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심리치료사가 작은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는 표정을 짓자 다시 진술한다.
“동생의 동영상을 촬영해서, 네가 한 짓이라고 하지 않으면 너도 이렇게 만들겠다고 아빠가 그랬어요.”
“뭐?”
혜미의 아버지는 친아버지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모든 학대의 원흉은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아버지 역시 말도 안 되는 행위를 저질렀다.
혜미의 진술이 끝이 나고, 심리치료사는 잠시 아이를 내보냈다.
“저도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말들을 들어서 혼란스럽네요. 어떻게 혜미를 치료해야 할지도 분간이 안 가요.”
이곳에서 심리치료사로 있는 그녀는 한 유명 대학의 교수이기도 하였다. 그런 그녀도 이 같은 일은 겪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건 강력계 반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말도 안 되고, 잔인한 사건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이런 건 살인미수가 성립이 안 되나요?”
심리치료사도 상당한 분노를 느꼈다. 부드럽게만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서 화가 나타났다. 그녀는 태훈에게 묻고 있었다.
강력계 반장보다도 이런 쪽은 태훈이 더 전문가인 것을 알 테니까.
“애석하게도 살인미수가 성립되진 않습니다.”
태훈은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빌어먹을 상황이다.
살인미수 성립이 불가하다. 애초에 죽이려는 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리치료사는 의아한 표정이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고개를 박게 했다는데, 살인미수죄가 성립되지 않나요?”
일반인들의 상식에선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죽이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것.
판사들도 그것에 주목할 것이었고, 법으로만 따진다면 성립이 되지 않는다.
태훈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강력계 반장은 지체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 빌어먹을 연놈들, 잡으러 다녀와야겠습니다.”
주먹을 힘껏 움켜쥔 그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 * *
두 사람은 자택에서 검거되었다. 흉악한 범죄자들을 다루는 경찰들조차도 이번 사건에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경찰의 심문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니, 내 자식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그게 크게 잘못된 건가요?”
더 웃기고 어이가 없고 화가 나는 건, 여자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뻔뻔하고 억지스럽게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쿵!
참다못한 강력계 반장의 주먹이 테이블을 힘껏 내리쳤다.
“아니 ×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애를 때려서 죽였으면 미안하다고 말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어!?”
강력계 반장은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한 손으로 엎어버렸다. 화가 잔뜩 난 그는 당장이라도 여인의 멱살을 움켜쥘 것 같은 모습이었다.
누구라도.
부모인 사람이라면, 그녀의 말을 듣는다면 격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반장님, 진정하세요.”
“너희 같으면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 저년 말하는 꼬라지 봐!”
“저년? 지금 저년이라고 했지? 야! 어따 대고 욕질이야! 변호사 불러! 변호사!”
“그래, 불러라! 내 ×발 더러워서 옷 벗고 말지.”
잠시 심문실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태훈은 한숨을 삼켰다. 흥분한 강력계 반장이 끌려 나가고서야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태훈은 강력계 반장과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반장님, 평소답지 않으셨어요.”
태훈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것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 태훈이 아는 평소의 그는 침착하고 냉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강 변호사님, 이거 정말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는 주먹을 굳게 말아 쥐었다. 핏줄이 투투툭 팔 위로 올라왔다. 그는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아버지란 사람이 찍은 동영상 못 보셨죠? 이따가 한 번 봐보세요. 아주 가관입니다.”
그는 다 마신 종이컵을 찌그러뜨리고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강력계 반장을 하면서도 이렇게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기는 처음이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남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이번 사건은 너무 잔인했다.
“아이가 숨만 붙어 헐떡이는데, 웃고 있는 저 여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자는 뭐라고 한 줄 알아요? 이 정도면 혜미가 겁먹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을 거야, 라고 했습니다. 친아빠란 사람이!”
동영상을 직접 확인하진 못한 태훈이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나마 그것을 보는 기분이 어떨지, 또한 겨우 숨만 헐떡거리던 혜영이의 그때 당시의 심정을 떠올리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반장님, 이분들이 찾아오셨는데요. 혜미 고모하고 고모부시라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강력계 반장을 찾아온 두 사람은 중년 남성과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꾸벅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혜미의 친척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는 미간이 찌푸려졌다. 부모에 대한 악감정이 다른 이들에게도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두 사람은 그때 이 더러운 기분을 달래줄 말을 해주었다.
“혜미의 변호사님 맞죠?”
“아, 예.”
“저희도 이제야 그 얘기를 들었어요. 평소에 왕래가 서로 없었거든요. 듣자마자 바로 왔습니다. 사실 혜미하고 혜영이 2년 전만 해도 저희가 데리고 있었거든요.”
태훈은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이 손찌검을 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진…….”
“어휴…… 혜미야.”
여인은 눈물을 훔쳤다.
“혜미를 저희 쪽으로 입양하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겠나요?”
“아…….”
태훈의 얼굴에 작은 화색이 생겨났다.
혜미가 고아원에 가면 어떻게 될까, 그런 걱정을 했던 태훈이었다. 아직 심리가 온전치 못한 아이였다. 물론 심리치료사를 통해 치료가 병행되기는 하겠지만, 고아원이라는 시설 자체가 진짜 따뜻한 마음을 가진 보살핌에 비하면 턱없이 열악한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태훈은 두 사람에게 꼬치꼬치 많은 걸 물었다.
이 사람들이 정말 좋은 사람들인지, 혹은 혜미를 입양할만한 능력이 되는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들의 눈빛에서 혜미만이라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태훈은 이제 이 사건에서 손을 떼야 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여성에게 태훈은 정중히 예의를 차려 인사했다.
여성변호사협회장 홍문희 변호사였다.
오늘 태훈은 전화를 받았었고, 홍문희 변호사가 직접 혜미를 위해 움직이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
여성변호사협회장인 만큼 그녀가 법조계에서 가진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여성이나 아동복지법에 관련해서는 누구보다 해박하고 힘이 있었다.
태훈은 혜미의 사건에서 빠져나오는 격이긴 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아닌 홍문희가 이번 사건을 맡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이 섰다.
홍문희 변호사는 자신보다 훨씬 더 혜미를 위해 힘써주고, 아이의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