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orney Kang Tae-hoon RAW novel - Chapter 75
75
변호인 강태훈 075화
23장 몰려오는 먹구름
흠칫!
그의 성난 목소리에 그녀의 가녀린 몸이 파르르 떨렸다.
“벼, 변호사를 부르겠어요.”
“그러든지.”
유원호는 콧방귀를 끼며 몸을 일으켰다.
심문실 밖으로 나온 그는 전화를 받았다.
태일기업 비서실장이었다.
– 회장님께서 슬픔이 크십니다. 그에 알맞은 대처 부탁드립니다.
비서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유원호는 싱긋 웃었다.
“물론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인 여자입니다. 또 돈을 달라는 협박까지 했더군요. 가중처벌해서 엄하게 다스리도록 하겠습니다.”
– 집에 조촐한 선물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어허이. 이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소소한 선물이라고 하니 뭐 가벼운 것쯤이야. 하하!”
유원호는 유쾌하게 웃었다.
태일기업에서 보내는 선물이 결코 소소하지 않음은 웃음소리에서 드러났다.
전화를 끊은 그는 심문실을 돌아보았다.
‘젊은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태일기업 회장님이 슬픔에 잠기셨다는데.’
잔뜩 웃음을 머금은 그는 곧 자리를 벗어났다.
* * *
살해혐의로 구속되어 있는 하예지는 없는 형편에 힘들게 고용한 변호사와 마주할 수 있었다.
검사로서 근무한 이례가 있다는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였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탕!
“이봐요. 하예지 씨. 그러니까 유혜지 씨의 말은 강간을 당할 뻔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두 사람은 애초에 연인 사이였지 않습니까!”
자신이 검사에게 심문을 당하는 건지 변호사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었다. 그녀의 억울함이 터졌다.
“연인 사이였다고요? 그 사람은 절 그냥 가지고 놀았다고요! 제가 싫다는데 강제로 관계를 맺으려고 한 게 강간 아닌가요?”
“증거가 없잖아요. 증거가! 후우, 제 말 잘 들으세요. 예지 씨.”
답답하다는 듯이 말한 변호사는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어차피 살해혐의는 빼도 박도 못합니다. 선처하세요. 자신이 죽였다. 잘못을 인정하고. 어려운 생활사를 들먹이는 겁니다. 그게 바로 형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하예지는 턱하고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고용한 사선 변호사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무조건 인정만 하라는 말만 하고 있었다.
자신의 실수로 인한 살인에 대해서 억울함을 들어주고 그것을 토대로 정상참작을 주장해야 하는 게 아닌가?
“……당신 같은 변호사도 변호사라고 할 수 있나요?”
그녀의 눈이 독기를 머금었다.
변호사는 헛기침을 크게 했다.
‘이 여자야. 상대가 태일 기업이야. 태일 기업……!’
변호사는 목 끝까지 말이 치밀어 올랐지만 뱉지 않았다.
“당신 같은 변호사는 필요 없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목소리였다.
“하예지 씨. 그래도 살해사건은 법적으로 무조건 변호사가 있어야…….”
“필요 없어. 당신 같은 사람한테 내 피 같은 돈이 아깝게 느껴져.”
그녀의 말에 변호사는 기가 차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차피 선수금은 받았고 스스로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잘된 일이었다.
자신도 태일기업과의 마찰은 죽어도 싫었으니까.
그가 나서고 유원호 검사가 들어왔다.
“변호사랑 이야기는 잘하셨나?”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던 중, 찰나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국선 변호사…… 강태훈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은데요.”
“강태훈?”
그 이름 석 자에 유원호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 * *
오피스텔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태일기업의 배다른 아들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그에 갖가지 유언비어도 나돌고 있었다.
재산을 노렸던 여인이 죽이려고 협박하며 수억 원을 요구하다 결국 살해했다는 말도.
반대로 피해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 때문에 홧김이라는 말도. 다양한 시선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어서 언론에 보도되고 있었다.
태훈은 몸을 일으켰다.
“다녀오게.”
“네.”
태훈은 쓰게 웃었다. 피의자 여성이 태훈을 국선 변호인으로 선정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승인되었다.
막 국선 변호사 사무실을 나섰던 태훈은 모르는 번호에 고개를 갸웃했다.
“국선 변호사 강태훈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휴대폰 너머에서는 스산하게 가라앉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쾌활하게 말하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소름이 돋게 하는 음침한 목소리였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 저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유원호 검사라고 합니다.
유원호 검사라는 말에 태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잘 안다. 아주 잘 아는 양반이었다.
쉽게 말한다면 쓰레기.
이 석 자만으로도 그를 말할 수 있었다.
깡패보다 더 깡패 같은 검사였고, 살인마보다 더 무서운 검사였다.
돈독이 제대로 오른 이였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기소를 넣은 검사이기도 했다.
“원칙에 의하면 피고인 측과 검사 측은 사적으로 통화하지 않는 걸로 압니다.”
태훈은 그와 통화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없었다.
그의 말에 유원호의 얕은 웃음소리가 퍼졌다.
– 하하, 뭐 그런 소소한 법 요즘 누가 지키기나 하나요.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전부 하잖습니까. 오늘 접견 오시지요? 그 전에 저하고 커피나 한잔하시겠습니까? 그래도 법조인 선배가 이리 말하는데 냉정하게 거절하시지는 않겠지요?
“흐음…….”
그 목소리 끝에는 오지 않으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압박감이 숨어있었다.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조도 껴있다.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약속장소를 들은 태훈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다행히도 접견지와 가까운 장소였다.
차를 타고 움직였다.
* * *
카페로 온 태훈은 치켜 올라간 눈꼬리에 그 사이로 번뜩이는 눈을 가진 안경을 낀 날카로운 인상의 유원호 검사를 볼 수 있었다.
커피를 시키고 그와 마주 앉았다.
“소문의 강태훈 변호사가 아주 잘 생긴 변호사님이셨군요.”
태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하, 요즘 법조인 중에는 무례가 없는 사람들이 참 많지요? 까마득한 연수원 선배에게 먼저 살갑게 다가오지는 못할망정.”
그는 자신 들으라는 것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포 라이터를 꺼냈다.
탱!
명쾌한 소리와 함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용건이 무엇입니까.”
“뭐, 얼굴이나 보자고 불렀습니다.”
다리를 꼰 채 거만하게 웃는 그를 보며 태훈은 역겨웠다. 손에 차고 있는 시계는 수천만 원의 가격대인 롤렉스 시계였다. 또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았다.
어림잡아 5천 이상이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차 키에 박힌 아우디 차량의 로고는 기가 차게 만들었다.
검사들은 그렇게 부유한 삶을 살진 못한다.
물론 정직한 검사들에 한해서였다.
그러나 유원호 같은 돈을 벌겠다는 검사들은 뒷돈을 어마어마하게 받아먹으니 배에 기름칠만 하고 산다.
지금의 태훈이 보았을 때는 역겹기 그지없었다. 과거 자신도 그와 비슷했지만 적어도 ‘정의’라는 꼬리표인 검사라는 이름을 달고 그러지는 않았다.
“뭐 대충 가서 시간만 때우시다 오면 됩니다.”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태훈은 담배 연기를 허공에 뿜으며 하는 말에 의아한 표정이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잘 아시잖아요?”
그는 히죽 웃었다.
변호사 태훈의 상대는 검사인 유원호가 아니라. 태일 기업이었다.
태일기업의 회장의 숨겨졌던 아들이 죽었다.
태일기업은 인성기업과 호각을 겨루는 국내의 경제 산업을 이끌어가는 기업 중 하나이다.
버려뒀던 자식이라고는 하나 자식 잃은 심정.
태일기업이 미친 듯이 물어뜯기 위해 덤벼들 것은 당연했다.
그만큼의 힘과 권력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으니까.
“저는 무기징역을 구형할 겁니다.”
무기징역이라는 말에 태훈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살인혐의는 그 형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무기징역?
그녀의 전과는 깨끗했다.
또한, 한 사람의 죽음.
무기징역으로 치닫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 싶었다.
“그리고 판사는 법봉을 두들기며 ‘무기징역을 선고한다’라고 하겠지요.”
그의 얼굴에서 진득한 웃음이 흘렀다.
“정확한 의미를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제 이야기만 늘어놨군요. 그러니 강태훈 변호사님은 다른 국선 변호인들처럼 하시면 됩니다. 법정에 가셔서 ‘젊은 친구가 불쌍하니 선처 좀 해주십쇼.’ 하면 알아서 일은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될 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겁니다.”
“하!”
태훈의 얼굴에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때마침 진동벨이 울렸다. 커피를 가지고 돌아온 그는 다시 앉았다.
“그러니까 그 말은 지금. 관여하지 말고 지켜보라는 그 말씀이시지요?”
“뭐, 강태훈 변호사님 이야기야 들었습니다. 때론 너무 강하면 부러지기 마련입니다. 휠 줄 알아야지. 혹시 압니까? 그쪽한테도 떡고물이 떨어질…….”
태훈은 담배 한 개비를 물고 그의 말을 딱 끊어먹으며 그의 눈앞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퉁-
“라이터 좀 주시죠.”
잔뜩 굳어진 유원호가 어이없이 웃으며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줬다.
“후우.”
허공으로 내뿜었다.
‘이거 이범현하고 똑같은 새끼구만. 완전히.’
그의 예의라고는 쥐뿔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에 그는 그와 자신이 만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위협을 해놔야 손쉽게 진행될 것이니까.
다름 아닌 태일기업의 회장이 이 일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검사인 유원호 자신도 눈에 나서는 좋을 건 없었다.
“쉽게 요약하면 이 말이군요. 대충 시답잖은 변호나 던지고 관여하지 마라. 그럼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또 잘하면 저한테도 한 몫 챙겨주시고요? 두둑하게?”
태훈은 손가락을 말아 쥐며 올려 웃었다.
“뭐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음침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강타했다.
“제 식대로 생각해 보면 무기징역을 구형한다는 건 이리저리 끌어모아 가중처벌 시킨다는 말이네요. 하기사. 자식 잃은 심정, 부모로서는 찢어질 겁니다.”
태훈은 고개를 저으며 가슴을 부여잡으며 아프다는 시늉을 했다.
“사형을 내리고 싶지만 그건 상당히 무리수이고. 적당하게 가중처벌 시켜 무기징역을 내려서 자식의 한을 달래겠다.”
“가슴 아픈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주시지요.”
유원호는 싱긋 웃었다.
커피 한 모금으로 입을 축인 태훈은 탁- 하니 내려놨다.
“헛소리 좀 작작하십시오.”
“건방지네.”
그의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곧바로 유원호는 하대했다. 태훈의 눈빛은 자신이 아는 검사, 변호사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괜한 오기 부리지 말게. 자네 전에 인성기업 건에서 이겼다지? 난 그 말을 듣고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다네.”
그는 싱긋 웃었다.
“일개의 인권변호사 따위가 대한 법무법인을 눌렀다는 건 정말 감탄하기 그지없으니까. 그렇지만 말이야. 그 당시 인성기업은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지.”
그랬다. 인성기업은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았다. 수년간 산재승인이 한 번도 난 적이 없었고 대한 법무법인의 한성호가 나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태훈의 예상외의 한 방에 인성기업은 방심하다가 타격을 받은 것이었다.
만약 인성기업이 제대로 공격해 들어왔다면 태훈은 변호사로서 활동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내를 이끄는 대기업의 힘이라는 게 그랬다.
“태일기업은 직접적으로 힘을 행사할 거야. 무슨 소리인지 아나?”
“압니다.”
태훈은 피식하고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가치가 없었다.
몸을 돌려 나서려는데 유원호의 목소리가 그를 때렸다.
“하나 확실한 건 그녀는 분명 살인자라는 사실이야. 분명 어떤 것으로도 씻어낼 수 없는 죗값이지. 자네가 살아가면서 상대해야 할 수백 명의 의뢰인 중 한 사람일 뿐이야. 어쩌면 그 한 사람 때문에 자네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지도 몰라.”
태훈은 빙긋 웃으며 그를 돌아봤다.
“맞습니다. 살인자. 그렇지만 그 전에 제 의뢰인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태훈은 나섰다.
“친구끼리 정말 쌍 또라이 새끼들이군.”
원호의 얼굴로 이범현과 강태훈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한심한 정의추구 종자들.
밖으로 나선 태훈은 카페를 돌아보았다.
답답한 상황이었다.
어떤 식으로 파고들진 모른다.
일단 의뢰인을 만나봐야 했다.
자신에게는 참으로 난감하게 된 일이었다. 복잡한 일에 얽히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그렇지만 태훈의 성격상. 못 먹어도 고다.
그의 눈이 섬광을 머금고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