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11
그가 고개를 숙이고 나갔고, 감독은 한성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내가 윤배우에게 신세를 졌네.”
“아닙니다. 저 녀석은 감독님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훈훈하게 끝이 났으면 좋았을 것을.
유명은 돌아오는 길에, 펄쩍 뛸만한 얘기를 듣고 만다.
{아까, 내가 잠시 생기 보태줬었당.}
“뭐라고?”
유명은 놀라서 육성으로 소리를 질렀다.
{뭘 그렇게 놀라냥. 진짜 몰랐냥?}
속을 읽을 듯이 깊은 미호의 눈동자가 유명의 시선과 맞물렸다.
유명은 반박하려다 입을 닫고 말았다. 몰랐냐고? 몰랐다. 하지만 감독님이 갑자기 아우라가 커졌다고 했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건 사실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자신에게 정말 없었을까. 백프로 아니라고 할 자신이 없다.
{하고 싶었잖앙. 하고 싶다는 원념이 가득하던뎅.}
그것도 사실.
하지만,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을 편법으로 얻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차피 재현을 못 해낸다면 결국에 실망시킬 것이 아닌가.
“네 맘대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우리 관계는 언제나 거래였잖아.”
{방금 전에는 너 자체가 아니라 너를 둘러싼 주변 대기에 생기를 전달한 거라서 너와의 거래가 아니당.}
억지스런 얘기를 당연하게도 한다.
“내 삶에 네 멋대로 개입한 거잖아. 나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는 하지 말고.”
{화내지 마랑.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당. 그냥 생기를 추가로 주면 되는 것 아니냥.}
씨익 웃는 귀여운 얼굴이 더이상 선의로만은 해석되지 않는다.
그간 유명의 미호에 대한 감정은 점점 더 복잡해져 왔다.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걸 무조건 거부하는 것도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연기’를 줘놓고 그걸 다시 빼앗아가는 것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
{우리 관계에서는 네가 생기를 받는 게 ‘대가’이니까 다른 것도 더 줄 수 있당. 무슨 능력을 원하냥? 연기력을 직접 건드는 건 싫다고 했으니 다른 걸 여러 개 요구하든강. 이방원의 인생을 겪어보는 것은 어떠냥?}
“사양할게.”
유명은 거절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후 생기를 받게 하려는 속셈이 훤히 보이지만, 순순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받게 된 배역을 포기할 것인가.
그러기도 어렵다. 그 때의 감독이 본 것이 자신의 아우라가 아니었다는 설명을 할 수도 없고, 소개해 준 한성의 면에 먹칠을 할 수도 없다.
진퇴양난.
‘해야 해.’
할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너, 이 영화 원생에서 본 기억 있냥?}
‘아니.’
유명이 대답하고 생각해보니, 정말 기억이 없다.
웬만한 영화는 다 기억하고 있는 자신인데.
{그럴 거당. 그 땐 이방원이 네가 아니었고, 정몽주도 윤한성이 아니었징. 어떻게 됐는지 아냥?}
‘어떻게 됐어?’
{찍다 엎어졌당. 감독이 원하는 그림이 안나와성. 시나리오는 좋았는데 감독이 기대치가 과도하게 높아서 배우가 못 버텼징. 그래서 이 작품은 세상에 못나왔고 손감독은 재기 못하고 은퇴했당.}
유명이 흠칫 놀랐다.
{역시 생기가 더 필요하지 않겠냥?}
도대체 왜 자꾸 생기를 주려고 하는 걸까.
미호는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유명은 그 탐나는 제의를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번엔 혼자 해보고 싶어.”
{흠…나중에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랑.}
미호는 마지막까지 여운을 남겼고,
유명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
“일을…잡아왔다구요?”
유석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물었다.
“네, 선배님이 추천하셔서···”
“그렇게 한 달만 쉬라고 했더니 그 새를 못참고···”
“죄송합니다.”
“잘했어요.”
“네?”
유석에게서 어이없지만 대견해하는 웃음이 터져나온다.
“손치욱 감독님 작품이면 더 바랄 게 없죠. 지금까지 들어온 작품들 고려해도 가장 좋네요. 최근 가장 핫한 신인배우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렇게 큰 작품의 준주역 배역이 들어올 인지도는 아니라.”
“네.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걱정입니다.”
“잘 할거에요. 계약한지 반년 된 배우가 인맥으로 일을 물어오는 건 또 처음이네. 나는 뭘 하라고.”
유명이 쑥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크랭크인까지 6주밖에 안 남았다니 빠듯하네요. 그 동안이라도 좀 쉬어요.”
“아, 저…윤한성 선배님과 함께 스터디하기로 했습니다.”
“스터디?”
“저도 부족한 부분이 많고, 선배님도 아직 안 잡히는 부분이 많다고 하셔서요. 같이 만나서 연습하자고 하시더라구요.”
“…하이고.”
못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래요. 누가 말리겠어요. 영화 들어가면 또 밤낮없을테니, 잘 먹고 충분히 자고 꾸준히 운동하는 건 잊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참, 차하린씨네 일 처리됐어요.”
“어떻게 됐는지요?”
“사장 내외 분들은 성실하고 인간적인 사람들이라 저희 회사에서 같이 일하기로 했습니다. 처세술이 좀 부족한 부분은 내가 커버하면 되겠지. 걸그룹 친구들은 지금 수준으론 내 눈에 안 차서, 6개월 더 연습시킨 후 테스트 통과하면 재데뷔, 못하면 아웃인걸로
협의했어요.”
“…감사합니다.”
“부채가 좀 있었는데, 사업적으로 돌려서 처리 가능한 것들은 그렇게 해결했고, 개인적인 부채는 일하면서 갚을 수 있게 했어요.”
너무 크게 신세를 진 것 같아 유명은 조금 미안해졌다.
“무리한 부탁 드려서 죄송합니다.”
“무리라니, 날 뭘로 보고. 별로 무리한 거 없어요. 오랜만에 보람찬 취미활동이었습니다.”
그가 유명의 미안함을 달래듯 웃었다.
“내가 얘기하진 않았지만 차하린씨는 대충 눈치챈 거 같던데, 나중에 밥이나 한 번 같이 먹어요. 차하린씨까지 계산에 넣으면 손해 본 건 없으니까 고마워할 것 없다고 전하고.”
“네, 정말 감사합니다 실장님.”
“방금 못들었어요? 고마워할 것 없다니까.”
약간 찡그리며 웃는 그의 얼굴이 이제는 익숙하다.
유명은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후원자를 위해서도, 다음 작품에도 반드시 좋은 연기를 선보이리라 다짐했다.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
한성과 만난 곳은 그가 속한 선학엔터의 연습실이었다.
손 꼽히는 대형 엔터테인먼트답게 입구부터 화려했다. 로비에는 선학에 속한 연예인들의 프로필이 가득 붙어있었다. 그것을 유명은 신기하게 구경했다.
‘지성빈, 방지환도 여기 출신이구나. 이 회사에는 가수도 많나 보네···’
로비에 서 있자 유명에게도 시선이 모인다. 매일 연예인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타 소속사의 인물은 신기한 모양.
엘레베이터가 땡- 하고 울리자 낯익은 형체가 겅중겅중 걸어온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여어- 신배우. 이쪽으로 와. 게스트카드 받아야해.”
인포에서 한성이 몇 마디를 하고 방문목적을 쓰니 목에 거는 게스트 카드가 나온다.
인포의 여직원은 카드를 건네주며 뺨이 발그레해져서 물었다.
“유…윤보형씨 맞으시죠?”
“하하. 이 친구 이름은 신유명이에요.”
“아참, 보형이는 배역 이름이겠네요. 드라마 너무 잘 봤어요, 팬이에요.”
호감이 가득한 음성으로 팬이라고 인사하면서도, 싸인이나 사진 요청은 하지 않는 걸 보니 과연 엔터테인먼트 직원인가 싶다.
유명은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땡-
연습실은 4층이었다.
문 앞의 인식표에 이라는 카드가 꽂혀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모양.
그 곳에서 유명과 한성은 마주앉았다.
“시나리오는 읽어봤어?”
“받은 날 다 읽었죠.”
“감상이 어때?”
“재미있었어요. 제가 아는 역사와는 다른 느낌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도, 정말 그랬을까 싶더라구요.”
정몽주와 이방원.
손감독이 이 둘을 바라보는 시각을 알 수 있었다.
동류.
서로가 서로를 잘 알 수 밖에 없는 인간들.
“응. 이번 건 특히 대본이 재미있더라고.”
“네. 배우의 역량이 완성도에 영향을 많이 미칠 것 같습니다.”
“나랑 네가 열심히 해야지. 그래서 스터디도 하자고 한 건데,”
“그쵸.”
“그런데, 지금은 배역 분석보다 시급한 문제가 있어.”
한성이 한숨을 푹 내쉰다.
“한참 선배로서 이런 말 하긴 좀 쪽팔리긴 한데, 배움을 구하는데는 노소가 없다고 했으니 신배우가 좀 도와줬으면 해서.”
“네, 선배님.”
“오디우스 워크샵 때 신배우와 얘기하고 좀 느낀 게 있어서, 캐릭터와 감정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관성이 생긴 건지 잘 고쳐지지가 않네.”
솔직한 한성의 토로에 유명의 눈빛이 깊어졌다.
‘정말, 배우로서 본받아야 할 사람.’
그는 선배이자 성공한 배우로서 오디우스 워크샵에 왔을 때도, 데뷔도 안한 햇병아리인 자신의 연기를 편견없이 보고 인정해 주었다.
15살이나 어린 자신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 주었고, 그것 때문에 여태 성공적이었던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바꾸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은, 잘 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하며 조언을 구하고 있다.
15년 후의 자신은 그처럼 할 수 있을까.
까마득한 후배에게라도 조언을 구하고, 몸에 익은 방법이라도 아니라고 생각되면 버릴 수 있을까.
유명은 무엇보다도 그의 태도와 인간성이,
따르고 배울 ‘선배’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려말선초는 좀 두고, 다른 대본으로 연습을 좀 했으면 하는데. 경험을 끌어내는 식으로 캐릭터를 만드는 방식을 버렸는데도, 자꾸 연기에 슬픈 감정이 깔리는 느낌이야.”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