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24
하지만 그에겐 directing(*지시)보다는 compromising(*절충)해야겠다고.
유명의 이런 연기 방법론은, 오랜 세월 제대로 된 멘토없이 혼자 연기를 해오면서 형성된, 독학한 내용과 스스로의 상상력이 결합된 결과물이었다.
그것이 이제야 빛을 발한다.
{확실히…독특한 녀석이란 말이양.}
미호는 촬영장의 잔존 생기를 훑으며, 이 ‘재밌는 계약자’의 활약을 즐겁게 감상했다.
*
“밥차다, 밥차!”
“우오오- 메뉴 뭐야?”
“누가 보냈어?”
촬영장에 밥차가 등장했다.
트럭 위에 커다란 애드벌룬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배우 신유명 사랑해주세요♥]
저러고 고속도로를 달려왔단 말이지···
유명은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이틀 전 호철이 전해준 소식.
문경에 박혀서 나오지 않는 유명 덕에 호철은 때아닌 휴가였다.
한가롭게 유명의 집과 촬영장을 이삼일에 한번씩 왔다갔다하며 빨래나 전해주던 호철이, 신난 목소리로 전했다.
“형, 팬클럽에서 밥차 보낸대요!”
“으응···?”
인터넷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유명의 팬커뮤니티 가, 소속사의 승인을 받고 정식 팬클럽이 되었다는 얘기는 전해들었다.
이미 서울에서 유석과 호철이 참석한 가운데 팬클럽 운영진 미팅을 마쳤고, 유명이 촬영중이라 함께 참석하지 못한 것을 무척 서운해했다고 했다.
아직 얼굴 한 번 보지 못해 팬이라는 존재가 실감이 나지도 않는데, 밥차라니···!
“어어 고맙네…그런데 다른 배우분들 팬클럽에선 아직 온 적이 없는 거 같은데 내가 스타트를 끊어서 괜히 부담드리거나 하는 거 아닐지.”
“형, 무슨 소리에요. 이런 건 원래 막내 좀 귀엽게 봐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 다들 촬영중 김밥 지겨워하시는데 제대로 된 식사 하시면 좋긴 하겠네.”
“그럼 오케이 콜 넣을게요-!”
이렇게 오게 된 밥차이긴 했는데…샛노란 색의 애드벌룬에 눈에 확 들어오는 화려한 보라색으로 ‘배우 신유명 사랑해주세요♥’는 예상치 못했다.
준비 중인 밥차를 두고, 지나가던 배우며 스텝들이 한 마디씩 했다.
“사랑해!”
“배우 신유명 사랑합니다-”
“잘먹을게. 사랑사랑~”
하아···
유명의 고개가 바닥을 뚫고 들어갈 기세였다.
“형, 팬클럽 회장이 직접 왔대요.”
“어? 진짜?”
“네, 직장인인데 연차내고 따라오셨다고…인사 나누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래야지. 어디 계셔?”
준비 중인 밥차에서, 개수가 제대로 맞는지 체크해보고 있던 포니테일의 여성이 마침 고개를 들었다. 유명은 호철에게 그녀가 회장임을 확인받고, 등 뒤로 가서 어깨를 톡톡 쳤다.
“저···”
“어…엄마야!!!”
누군가 하고 뒤를 돌았던 회장은 코 앞에 위치한 유명의 얼굴에, 비명을 지르며 한 발 물러섰다.
유명은 그녀의 어깨를 건드린 손을 머쓱하게 내리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맞으시죠? 배우 신유명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직은 자신에게 팬이 있다는 것이 어색해보이는, 정중한 인사.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회장은 순간 눈물이 그렁해지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머, 어떡해…실물이야. 어떡해··· 잠시만요. 후하후하-”
그녀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더니 허리를 90도로 접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갓네임드 시삽이고, 얼마 전에 신유명 팬클럽 회장직을 맡게 된 정소진이라고 합니다! 저는 16세 때 듀수 팬클럽으로 팬생활을 시작해서, 이후 갓화 팬클럽 운영진, WARM 팬클럽 부회장, 배우 지성빈 팬클럽 회장을 거쳐, 26세인 현재 이후로는
신유명님께 완전히 정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믿을 수 있는 경력, 다른 연예인 팬덤에 결코 밀리지 않는 화력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녀는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력을 줄줄 읊는다.
…이정도면, 팬클럽 활동의 전문가인데?
“어어, 네. 감사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초보가 아니라 불편함없이 팬관리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 지조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제 신유명님께 정착할 예정이므로 그 점 안심하셔도 됩니다!”
예전에 다른 분들께도 정착 예정이었을 것 같은데···
조금 사차원인 것 같지만, 착한 누나로 보인다.
“네. 여러 명 같이 좋아하셔도 되죠 뭐, 하하. 감사합니다 누나.”
“윽···”
그녀가 가슴을 세게 누른다.
“잠시만요. 누나라니…아, 가슴 떨려. 녹음해 둘걸.”
“다시 말할까요?”
“엇…잠시만요. 심장에 해롭습니다.”
그녀는 삽시간에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손을 내저었다.
“그나저나 부탁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요?”
“드라마 끝나고 예능도 안하시고! 하다못해 씨에프도 안찍으시고! 다들 떡밥에 목이 말라 있어요···!”
“아…죄송….”
“그래서 말인데, 소속사에서 감독님 허락은 받아주셨는데 배우님께도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촬영하시는 거 조금만 찍어가도 되겠습니까?!”
소진이 가방에서 꺼낸 것은, 거대한 대포 카메라였다.
끝
ⓒ 글술술
밥차에 대한 반응은 열렬했다.
“유명씨, 잘먹을게!”
“와…식사 퀄리티 좋은데?”
푸드트럭에는 커다란 철판이 붙어있었다. 소불고기, 잡채 등 몇 가지 음식은 반조리 상태로 준비되어 와서 즉석에서 따끈하게 볶아서 서빙되었다.
제법 날씨가 더워져가는 6월 초. 사람들은 촬영장 나무 그늘에 흩어져, 오랜만의 피크닉같은 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소진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근 10년간 팬클럽 활동을 하며 간부로도 여러번 활동했었지만, 내 배우와 ‘독대’하고 밥을 먹는 것은 처음이다. 밥이 콧구멍으로 들어가도 모를 노릇이다.
‘미친…고려 시대 관복 핏 보소… 코피 터지겠다.’
이상하게도 유명이 더 멋있어진 것 같다.
중 보형은 소진의 인생캐라고 할 정도로 귀엽고 멋있었지만, 몇 달 상간에 그때보다 이목구비가 더 뚜렷해지고 눈에 확 꽂히게 변한 듯한 것은, 그저 화면과 실물의 차이인 것일까.
찰칵-
그녀는 밥을 먹는 유명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가까이서 봐도 모공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볼에 음식이 가득 들어 볼이 빵빵하다.
그는 우물우물 그것을 씹어 넘기더니 물었다.
“하하, 뭘 이런 걸 찍어요.”
“이런 방심한 모습이 팬으로 들어서는 계기가 됩니다!”
유명이 피식 웃었다.
2010년도에 그녀의 저 표현은 ‘입덕포인트’라는 용어로 체계화된다.
“카페 닉네임은 뭐에요?”
“보형이만보형! 입니다!”
읍···
유명이 마시던 물을 뱉을 뻔 한 걸 겨우 참고 꿀꺽 삼켰다.
자신은 낯이 뜨거워지는 반면, 상대는 전혀 아무렇지않은 표정이다. 역시 프로는 다른 것인가···
“잘먹었습니다. 정말 맛있네요.”
식판을 깨끗이 비우고 인사하자, 소진은 그 것을 다시 사진으로 찍는다. 유명이 식판을 싹싹 비운 것을 ‘인증’해야 한다며.
당황스러움과 웃음이 섞인 표정으로 소진의 작업을 지켜본 유명이 말했다.
“들으셨겠지만 스포일러 때문에 동영상은 안 되고, 사진만 가능하구요. 감독님께서 사진에 워터마크로 표기해주면 홍보에 도움되겠다고 부탁하셨어요.”
“문제 없습니다!”
소진이 씩씩하게 대답한다.
자신보다 한 살 많은데도 볼이 발그레하고 말투는 한껏 얼어있는 이 시삽님은 동생같이 귀엽게 느껴진다.
“감사해요. 서울가서 다른 분들이랑 한 번 같이 봬요.”
“헉···! 넵. 성은이 망극…아 이게 아니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유명이 촬영에 들어갔다.
그녀는 연기하는 유명의 모습을 보고, 한번 더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
게시물 4052 [[공지]밥차 배달 완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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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배우 신유명의 ‘단독’ ‘공식’ 팬클럽 의 회장입니다.
저희 의 첫 공식 활동인, [려말선초] 촬영장 밥차 지원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총 OOO분이 참여해주신 이번 밥차지원은 OOO만원이 소모되었으며, 총 OO분의 려말선초 스탭과 OO분의 배우에게 따뜻한 점심식사와 후식, 커피를 지원하는 의미있는 활동이었습니다.
는 투명한 정산을 지향합니다.
첨부한 엑셀파일을 확인하시면 소모된 비용이 항목별로 자세히 결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밥차 지원에는 회장인 제가 직접 동행하였으며, 배우 신유명님을 직접 만나 밥차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해듣고, 촬영장 떡밥 채집을 공식허가받았습니다.
떡밥은 잠시 후부터 하루 간격으로, 총 5일간 서서히 풀겠습니다.
빨리 보고 싶으시겠지만, 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 화력을 모으는 목적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밥차지원에 참여해주신 팬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려말선초 밥차_정산_20050619.x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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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떡밥을 어서 주세요. 헉헉.
└칼같은 투명정산 멋집니다. 회장님 일 깔끔하신 건 예전에 딴 곳(속닥속닥) 계실때도 유명하셨죠.
└회계 쪽 일하시는 거 아닌가요? 서식의 전문성이 남다른데···
└으아, 밤 12시 ㅠㅠ 못기다리겠어요. 밥먹는 거 직접 보셨나요? 으악 엄청 귀여울 것 같다!!! 하지만 갓드의 부흥을 위해서 허벅지 찌르며 꾹 참겠습니다.
└영화 언제 개봉한대요? 근데 보형이가 너무 눈에 아른거려서 다른 배역 하는 거 보면 좀 깰 것 같기도···
└시삽/그런 걱정은 하지마세요. 촬영장 가보고 이방원한테 꽂혔습니다ㅠㅠ 하다하다 태종 팬질을 할 줄이야(물론 우리 유명이 팬질의 연장선이지만)
회장은 두 가지의 닉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시삽의 닉과, 서브아이디로 만든 ‘보형이만보형’ 닉.
시삽이란 꼬리표를 달고는 마음껏 날뛸 수 없기 때문에, 공지사항은 시삽닉으로 정확하고 예의바르게, 팬질에 관한 글은 ‘보형이만보형’닉으로 본능을 흩뿌리듯이 쓰고 있었다.
그걸 아는 다른 팬들 또한 그녀의 그런 이중성을 즐거워하며 함께 놀아주곤 했다.
그리고, 12시가 되어 떡밥글을 올린 것은 시삽이 아닌, ‘보형이만보형’이었다.
게시물 4055 [코피 터지는 한복 떡밥 나가신다] / 보형이만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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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닥치고 떡밥부터 풉니다.
1.jpg 2.jpg 3.jpg···
고려시대 한복은 조선시대 한복이랑 다른 거 다들 아셨나요? 흐아…스포 될까봐 내용은 말 못하지만 상복 차림도 있습니다.(내일 업로드 예정) 근데 이 남자 상복 차림이 섹시한 거 뭐임아ㅣ화넘ㅇ라
그리고, 연기력…하아 연기력.
보형이 연기할 때도 알아봤고, 보러 극장에 다섯번 갔을 때도 매번 느꼈지만, 이 배우 연기력이 진짜 심하게 좋은 것 같습니다.
눈에 필터 씌운 거 아니고 진짜 유명이 연기 할때마다 감독님이고, 스탭들이고, 주변 배우들이고 바라보는 눈빛이 다 멍하니 풀려있는데···보는 제가 자랑스러워서 가슴이 먹먹…
그리고 저는…유명이 연기할 때 숨도 못쉬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