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0
어리버리한 부사수가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묻고 묻고 또 묻는,
평범한,
평범하게 오늘도 힘든,
직장인의 하루를 버텨내는 묵묵한 회사원의 모습.
하지만 유명이 연기해내는 박주원은 평범하되, 평범하지 않았다.
{재밌냥? 큭큭}
‘어…이거 새롭네.’
미호가 살짝 상기된 유명의 얼굴을 보고 킥킥 웃을 정도로 유명은 꽤나 흥분해 있었다.
생소하다.
이건 마치 ‘캐릭터 빌드업’ 단계를 촬영하는 느낌이랄까.
유명은 보통 대본을 받으면 참고가 될만한 정보와 감정을 최대한 수집하고, 배역의 캐릭터를 다양하게 구상해 본 후 한 가지를 선택해 디벨롭해 왔다.
그런데 CF 촬영은, 한 장면을 여러 가지의 캐릭터로 모두 따 둔다.
짧은 촬영 일정, 매우 짧은데도 집약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결과물.
그리고 최종 결정권자가 감독이 아닌 광고주라는 특성 때문에, 딸 수 있는 것을 모두 따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유명에게는 마치, ‘준비 단계’를 촬영하는 느낌이 들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카메라가 멈추면, 잽싸게 감정을 바꾸고 같은 장면의 재촬영을 준비한다.
캐릭터를 분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표정근과 미세한 버릇들을 바꾼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면, 그 순간에 만들어진 설정들을 단번에 쏟아낸다.
‘미쳤다…뭐 저런 배우가 다 있지.’
박진희는 같은 복장을 하고 같은 대사를 치는데도, 컷마다 미묘하게 틀어진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유명을 보고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대행사 AE와 CD, 광고 제작사 스탭들도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입가에 엄마미소가 가득 어린다.
무려 내새끼가 서울대에 입학했을 때 급의 엄마미소.
‘아…쟤가 내 배우라고 커밍아웃하고 싶다. SD카드 빼 가서 떡밥으로 풀고 싶다. 정신차려, 박진희! 공사구분 공사구분.’
잠시 쉬는 시간,
그녀의 예리한 눈은 전화기를 들고 서둘러 나가는 대행사 AE를 포착했다. 그녀는 화장실에 가는 척 하며 복도로 나갔고, AE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네, 팀장님. 대박이라니까요. 이번에 엔젤면세점 경쟁피티 딴 거에 모델 신유명으로 꼭 제안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현성에서 이번에 몸값을 띄워놔서 모델료가 좀 세긴 하지만, 어차피 엔젤에서 금액 상관없이 A급이상 배우로만 섭외하라고 했으니까요. 아직
A급이 아니라고요? 팀장님 이거 나중에 촬영결과물 보시면 아실 겁니다. 이 배우 올해나 내년 안에 A급 이상 갑니다.”
‘못 딸 걸.’
박진희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엔젤면세점이라면, 배우 마스크만 걸고 이미지 광고를 하는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야심차게 준비한 자신의 기획을 보고서야 겨우 섭외를 수락한 유명이, 그런 흔하디 흔한 광고에 응할 리가 없다.
박진희는 오늘따라 자신의 안목이 매우 뿌듯했다.
보형도 팬텀도 좋았지만, 지금부터는 정말로 ‘신유명’이라는 변화무쌍한 배우의 팬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쭐한 기분을 달고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온 진희는,
유명이 촬영감독에게 건네는 제안을 듣게 된다.
“감독님, ‘업무적인 미소’를 늘상 띠고 있는 캐릭터는 어떠세요?”
*
“미소요?”
“네. 그, 일할 땐 늘상 웃는 분들 있잖아요. 좀 딱딱한 미소라고 할까···”
“그거 알죠. 음…그런데 마스크가 벗겨지는 장면에서 확실한 반전이 있어야 하는데, 웃는 얼굴에서 웃는 얼굴로 가는 건 갭이 부족할 것 같은데…”
“음…전형적인 미소와 진짜 웃음을 잘 분리하면 되지 않을까요.”
유명의 발언에 감독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짧은 시간에 미소의 종류가 다름을 감각적으로 인지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이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에 기함을 한 국철이기는 했지만, 이것은 CF라는 카테고리 특성에 따른 문제였다.
“쉽지 않을 것 같은데…CF라는 게 슬쩍 보고 지나가는 거다 보니 짧은 시간에 두 표정의 차이를 표현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요.”
“아, 그런가요···”
“해보죠, 감독님.”
옆에서 듣고 있던 박진희가 끼어들었다.
“어차피 지금까지도 대여섯 가지 버전으로 촬영했는데요. 하나 추가한다고 크게 품 들어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여태 보니 신유명씨 연기력이 무척 좋은데, 혹시 잘 빠지면 좋은 컨셉 하나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유명의 앞에서나 녹아내리는 ‘보형양제’이지, 업계에서는 깐깐하고 유능하기로 소문난 박팀장이다. 국철 감독은 ‘광고주님’의 의사 표현에 더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명은 다시 세트에 섰다.
유명이 이 컨셉을 제안한 이유라면 역시, 이방원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포장과 껍질이 꼭 반대색이어야 다르게 보이지는 않는다.
비슷한 색깔도 색온도를, 명도와 채도를, 질감을 달리하여 얼마든지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보여주기에 보색대비가 편리하다는 감독의 의견은 옳은 말이긴 했지만···
유명은 지난 몇 달간 포장의 두께와 농도를 조절하던 감각을 불러 일으키며 집중했다.
곧 그의 얼굴에,
기계적이고 무감각한 미소가 떠올랐다.
끝
ⓒ 글술술
“박대리, 윤대리 무단퇴사한 거 알지?”
“네, 팀장님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골치아파 죽겠네. 일단 윤대리 업무 자네가 좀 커버해.”
“…넵, 당연히 이런 상황에선 분담해야죠. 그런데 제가 관리하는 라인들이 요즘 맥스로 돌아가다보니 혼자 커버하긴 어려울 것 같고, 담당에 따라 적절히 업무 분장해서 가져오면 팀장님께서 조율해주시겠습니까.”
“…알았어.”
웃는 표정의 박주원 대리.
팀장의 무리한 요구에도 욱하지 않고, 잽싸게 자신이 가능한 범위의 대안을 제시한다.
“네? 아니 그 물량이 왜 거기로…다시 가져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다른 쪽 물량을 돌리자구요? 하하…저도 그래 드리고 싶죠. 그런데 요즘 본부장님이 물류 쪽에 바짝 신경쓰시고 계셔서 들키면 과장님이나 저나 시말서에요. 네- 해결하시고 전화 주세요.”
아까 찍었던 장면에서도, 실수한 타팀 과장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완곡한 거절.
웃음으로 감싸고 있지만 ‘만만치 않은’ 느낌.
전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웃는 얼굴로 살짝 한숨을 쉬고,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진짜 미소가 아닌, 디폴트로 걸려있는 인위적인 미소.
그 표정에 박진희는 옆팀 팀장을 떠올렸다.
회사마다 저런 인물은 꼭 있다. 늘 웃고 있고 큰 소리 내지 않으면서도, 일을 매끄럽게 제 뜻대로 처리해 내는, 소위 ‘유능한’ 사원.
웃고 있지만 즐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사람이 유해보이거나, 만만해보이지도 않는다.
저런 ‘사무적인 미소’를 25세의 그는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Mask turn, 마지막 씬.
“대리님, 이거 잘 모르겠어요.”
“매뉴얼 3페이지 15번 문항에 나와있어요.”
“헉, 프로그램이 멈췄는데요!”
“5분이상 손 떼고 있으면 보안인증 다시 하셔야 합니다.”
“대전공장에서 전화왔습니다!”
“다른 곳이랑 통화하고 있을 때는 소속, 성함 묻고 메신저로 전달해주세요. 업무 중 유관부서에서 연락왔을 때의 지침, 어제도 설명했습니다만.”
헙-
그의 정색에 신입 사원이 꼬리를 만다.
늘 웃고만 있던 사람이 무표정으로 변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화를 내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
신입이 조용해지고, 박주원이 수화기를 가리고 있던 손을 떼고 다시 통화를 이어가는 것까지가, mask 턴의 3번째 씬.
탁- 하고 유명이 전화기를 내려놓자, 촬영장의 긴장이 사악 풀렸다.
“어떠세요, 감독님?”
“어…어어. 좋네요. 사무적인 미소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요. 혹시 예전에 회사 생활 해본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하하. 직장인이 일하는 모습이야 흔한 클리셰인데요.”
물론, 원생에도 유명이 직장 생활을 해본 일은 없었다.
하지만 엑스트라 회사원 배역은 셀 수 없이 해 보았던 유명은,
‘회사원’이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일부러 은행에 가서 종일 은행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해 보기도 했고,
생활비가 부족해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할 때면, 사무실의 풍경들을 유심히 눈에 담고 돌아나오곤 했다.
배우에게 있어서 첫 번째의 덕목.
관찰.
다양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행동과 그 행동을 유발하는 감정을 관조하는 능력이다.
“사무적인 미소라는 게 생각보다 와닿기는 하는데, 이게 진짜 미소와 확 달라보일지가 관건이라서, 찍어봐야 알 것 같아요.”
“네, 해보겠습니다.”
그로써 몇 시간에 걸친 마스크 턴의 촬영이 끝났고,
남은 것은 박주원이 직장인에서 ‘퇴근 후의 인간’으로 넘어가는 씬이었다.
“전환 장면 세팅할게요!!”
감독의 지시에, 거대한 소품이 스스로 굴러와서, 사무실 중앙에 멈춰 섰다.
커다란 사무실 세트의 중심을 점령한 것은 바로,
현성의 신차, 였다.
*
tick- tack- tok-
클로즈업 된 시계의 초침이
17’59’’58’’’
17’59’’59’’’
18’00’’00’’’
일자로 탁- 맞물린다.
박주원 대리는 정확히 6시 정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집어든다.
그 순간, 사무실의 인원들은 모두 정지 모션.
화면에선 박주원을 제외한 모든 배경이 회색으로 처리될 예정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퇴근 후의 직장은 그에게 더이상 현실이 아니라는 것.
삑-
그가 손에 든 리모컨을 누르자, 크루드가 눈을 뜨는 것처럼 헤드라이트를 한 번 깜박인다.
완성본에서는 그가 리모컨을 누르는 순간, 크루드가 사무실 내에 소환되는 모습으로 CG처리될 예정이었다.
사무실 한 가운데를 점령한 차 앞에서 그는, 작은 ‘변신’을 한다.
느긋하게 넥타이를 풀어내더니, 단추를 두 개 푼다.
풀어진 깨끗한 흰 셔츠의 안쪽으로 슬쩍 드러나보이는 진녹색의 안감.
그리고 소매의 단추를 풀고 두 번 접어 올린다. 그 안에서도 녹색의 안감이 등장해, 답답할 정도로 단정했던 그의 차림을 바꿔놓는다.
‘넥타이 풀었어! 소매 접었어! 으악!’
박진희의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다행히 동작마다 태가 물씬 나는 그의 움직임에 모두의 시선이 붙박혀 있었던 덕분에, 그녀의 표정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스윽-
단정히 넘겨진 머리를 한 손으로 헝크러뜨린다.
공들여 커팅을 잡아놓은 머리는, 눌러놓은 왁스의 힘이 풀리자 헝클어지듯이 이마에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