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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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생각보다 빨리 잡혔다.
유명이 의아하게 여겨 유석에게 물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빨리 준비가 돼요?
-돈이면 다 되긴 하죠. 그런데 시일이 촉박한 걸 보니, 유명씨 섭외 안됐으면 바로 플랜B(*1안이 불가능해질 경우 준비된 2안)로 진행할 생각이었나 보네요. 끝의 끝까지 기다린 걸 보니 유명씨가 정말 욕심났나 보네.
계약이후 박팀장은 유석과 세부조율을 하면서, 크루드의 런칭 일정 때문에 10월 중순에는 촬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유석은 그쪽 스케줄에만 맞출 필요는 없다며 더 늦춰주겠다고 했지만 유명이 오히려 반대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팬클럽 회원인 것 같은 박진희를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는 진짜 괜찮아요. 오히려 빨리 촬영이 들어가는 게 더 좋아요.
-그래도 영화 끝난지 이제 한 달 됐는데···
-진짜 회복 완료입니다! 그리고 광고 컨셉이 ‘Unmask’잖아요. 포장을 벗기는 감각이 한창 익숙할 때 찍어버리는 게 더 잘 나올 것 같아요. 캐릭터는 다르겠지만 ‘연기의 방법론’ 측면에선 비슷하니까요.
-그럼, 이것만 끝내고 다시 쉬세요. 촬영 끝나자마자 싸인회에 광고촬영에, 누가 보면 내가 악덕업주인 줄 알겠네.
-···
그리고, 촬영장에서 만난 박진희는 둘만 남은 순간에 속삭였다.
“배우님. 여기서 제 정체는 비밀이에요-”
“보형양제님···.맞으시죠?”
“…제 닉을 기억해 주시다니!! 네 맞아요, 맞는데 여기선 비밀요.”
“네,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그나저나 팀장님 엄청 멋지시네요. 이런 멋진 분이 제 팬이시라니 영광이에요.”
“으아, 저쪽가선 절대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표정관리 안될 듯···”
박팀장이 얼굴이 붉어져서 손에 부채질을 했다.
“그리고 이 섭외에 사심은 한 가닥도 없어요. 저는 정말 배우님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보고 섭외한 거니까, 꼭 좋은 결과물 뽑아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은 실내 촬영을, 3일 후에는 야외 촬영을 한다.
그녀와 함께 이동한 곳에는 이미 정교한 사무실 세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CF 감독과, 에이전시에서 나온 PD와 CD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그들을 반긴다.
“반갑습니다. 국 철이라고 합니다. 영화 잘 봤습니다. 기도한 감독이 제 대학 동기인 거 아세요?”
“아, 정말요? 감독님께 말씀드려야겠네요.”
“제가 이미 얘기했어요. 유명씨랑 광고 찍는다니까 넌 이번에 공으로 돈 벌겠다고 하더라구요. 카메라 켰다 끄기만 하라고, 하하.”
시원한 성격으로 보이는 감독이 호의적인 인사를 건넸고, 유명은 반갑게 인사를 받았다.
실무를 담당하는 PD와 CD는 이미 미팅을 한 적 있어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잠시의 회의 후에, 유명은 분장을 하러 들어갔다.
오늘 유명의 의상은 정장. 그리고 안경.
그는 평범한 샐러리맨이 될 예정이었다.
끝
ⓒ 글술술
반듯하게 각이 잡힌 정장.
무난하기 그지 없는 은테 안경.
멋낸 부분 없이 깔끔하게 뒤로 빗어넘긴 머리.
박진희는 사무실 가운데에 선 유명의 모습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본인이 생각하던 보형의 모습도, 팬텀의 모습도 씻은듯이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정말로 지나가다 마주치면 스쳐 지나갈 것 같은 평범한 남자였다.
‘진짜 같은 사람 맞아?’
배우 신유명의 장점.
화려하지 않은 반듯한 얼굴은 분장에 따라서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색깔을 입는다.
광고 중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유명에게 입혀져, 어색하지 않은 3~4년차 직장인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신기하다.
물론 박진희는, 그가 지금 존재감이 돌출되지 않도록 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Mask 턴, 1씬 첫 번째 컷부터 갈게요-”
Mask turn / Unmask turn.
촬영은 크게 두 턴으로 나뉜다.
오늘 실내에서 촬영할 씬은 Mask 턴의 씬들과, Mask를 벗어던지는 전환점의 씬.
Mask 턴이 찍어낼 것은 평범한 샐러리맨의 일상.
격무에 시달리는 남자의 바쁜 하루를 담을 예정이었다.
감독은 먼저 주변인들에게 여러 가지 동선을 디렉팅했다.
팀장역, 부사수역, 그리고 사무실을 채우고 있는 여러 사무직 인원들.
5초에서 뒤 쪽 파티션의 한 명은 하품을 하고,
7초에서 전화를 받고,
같은 타이밍에 다른 사람은 머리 높이까지 쌓인 서류를 들고 뒤뚱거리며 이동하는 등,
디렉션의 디테일이 초단위로 이루어졌다. 드라마나 영화보다 훨씬 정교했다.
‘짧은 시간에 축약된 이미지를 전달해야 하니까 디테일이 강화될 수밖에 없구나···’
업계에서 알아주는 CF감독이라는 국 철.
그는 특히 내러티브가 있는 브랜딩 광고를 잘 살리는 젊은 감독이라고 들었다.
기도한과 대학동기라는 것은 의외였지만.
“유명씨-”
첫 컷의 조율을 마친 그가 이제 유명에게 다가왔다.
“콘티 보셨겠지만, 버전이 두 가지예요. 3분 버전과 15초 버전.”
“네.”
“3분 버전을 위해 찍은 테이크 중에서 15초 버전을 따올 거니까 짧은 건 신경 안쓰셔도 됩니다. 어차피 15초 버전은 이미지 위주로 보여줄 거라.”
“알겠습니다.”
15초 짜리는 Mask->Unmask로 끝나는 데 비해,
3분은 상당한 장편으로, Mask->Unmask->Mask로 돌아오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들어가는 이야기도 15초 버전보다는 당연히 훨씬 자세하다.
“그리고 버전은 여러가지로 찍어 보려고 해요. 딱딱하고 사무적인 캐릭터로도 해보고 지치고 예민한 캐릭터로도, 마초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도 좋구요. ‘마스크’라는 컨셉엔 첫 번째가 맞긴 한데, 여러 가지로 찍어놓고 조합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괜찮
아요?”
“네, 괜찮습니다!”
CF촬영 때는 최대한 여러가지 버전을 찍는다고 들었다.
재촬영을 하는 것이 어려우니, 광고주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여러가지 컷을 따놓고 다양하게 붙여 본다는 것이다.
“좋아요. 유의할 점은,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든 기본적으로 ‘유능해’ 보여야 합니다. 할 일은 제대로 하는데 퇴근 후엔 제대로 노는 캐릭터라서요.”
“걱정 마세요.”
감독은 동선 지시까지 모두 마친 후 카메라 앞으로 돌아갔다.
배우들이 각기 자리를 잡고 서서 큐를 기다린다.
부감(*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방향)에서 좁혀들어가는 컷을 찍기 위해 크레인이 지잉- 하는 기계음을 내며 움직인다.
“레디-”
유명도 ‘짧지만 강렬한 연기’를 위해, 자신이 설정한 인물에게 집중했다.
“액션.”
*
RRR-
복잡한 사무실, 전화벨이 시끄럽게 울린다.
지금은 유명 앞의 전화기 한 대만 울렸지만, 완성물에선 여러 대의 전화기가 함께 울리고 다양한 사무실 소음이 배경에 깔릴 예정이었다.
유명은 전화가 울리자마자, 수화기를 낚아챘다.
“네, 삼진물산 물류관리팀 박주원 대리입니다.”
옆에서 촬영을 지켜보고 있던 박진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닳고 닳은 직장인의 말투이다.
부드럽지만 ‘잘라내는 듯이’ 엉겨붙을 여지를 주지 않는 말투.
트집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하지만, 상대가 무리한 요구를 꺼내면 딱- 자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무적인’ 말투를 25세 청년이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있을까.
“네.”
“네–”
전화기를 왼쪽 어깨에 끼고 전화를 받는 중에도, 박주원의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고, 손가락은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치고 있다. 처리할 일이 산적되어 있는 직장인의 모습.
그러다 그의 음성이 높아진다.
“네–?”
살짝 미간이 찌푸려지며,
그의 음성은 순식간에 전투태세로 돌변했다.
“뭐라구요? 아니 그 물량이 왜 거기로…지금 바로 다시 빼오세요. 다른 쪽 물량을 돌려요? 안됩니다. 네. 안돼요. 네. 절대. 안됩니다. 제가 봐드릴 수 있는 한계는 2시간입니다. 그 안에 해결하시고 연락 안 주시면 팀장님께 보고할 겁니다.”
다다다- 빠르게 꽂히는 목소리. 고조되는 어조. 정확한 음성.
목소리만 들어도 주인공의 성격을 알 것 같다.
철두철미한 업무 스타일, 자신에게건 동료에게건 봐주는 일에 관해선 양보가 없는 성격.
고작 업무미스가 난 장면인데, 무슨 스파이 영화의 지령 장면이라도 되는 것처럼, 순식간에 주변이 긴장으로 휩싸인다.
국철 감독은 그 모습에 전율했다.
‘일부러 장면을 길게 잡고, 잘라서 쓰려고 했는데…자를 게 없잖아? 감정선이 이렇게 한 번에 올라갈 줄은 몰랐는데…’
박진희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인의 삶.
하루하루가 똑같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크고 작은 전쟁들이 수없이 벌어진다.
온갖 거래처에서, 타 팀에서, 심지어 팀 내에서도 무리한 요구를 한다. 재빠르게 수용할 것과 거절할 것을 판단하고, 상대와 기싸움을 벌이는
‘흔한 직장인의 전투’의 긴박감.
하아-
전화를 끊은 유명이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긴다.
살짝 짜증이 배어있던 얼굴은 금세 무표정으로 돌아오고, 그는 다시 키보드를 빛의 속도로 두드리기 시작한다. 화면 속의 보기만 해도 질릴 것 같이 숫자로 빼곡한 엑셀이 그의 어깨 너머로 클로즈업된다.
“컷-”
한 번의 전쟁이 끝났다.
후아-
보고 있던 인원은 그제서야 긴장을 놓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진짜 회사로 착각할 뻔 했네.”
“저 배우 직장생활 하다 데뷔했었나?”
“무슨. 이제 스물다섯이야.”
“스물다섯? 그 나이면 양복도 어색할 나인데 왜 저렇게 삶에 찌든 직장인이 자연스럽지. 아, 오늘 오전에 경영지원팀에서 개소리하던 거 생각나서 빡칠 뻔 했네.”
그리고 유명이 목소리를 키워 물었다.
“감독님, 이 정도 톤으로 가면 될까요?”
“네? 어어- 아주 좋아요. 이번엔 지친 느낌으로 한 번 가봅시다-”
“네!”
감독은 본인의 할 일이 별로 없을 거라던 친구 기도한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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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의 하루’
Mask 턴이 그려내고 있는 것은 평범한 회사원 박주원의, 평소보다 조금 버거운 하루였다.
유관업무 팀의 과장이 거대한 똥을 싸서 그것을 치워야 하고,
팀장이 무단퇴사한 동료의 업무를 담당하라는 폭탄을 던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