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69
‘저런 배우를 못 알아보고 고작 단역을 시켰으니···’
그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유명을 밀어줬어야 했다. 철주가 아무리 꼬장을 부려도 자신이 설득했어야 했다. 자신들이 푸대접한 배우는 오디우스에서 훨훨 날아올라 이제는 저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못난 선배에게 했던 작은 약속을 잊지 않았다.
갑자기 뭔가가 왈칵 가슴에서 터져나올 듯 했다.
신일은행 여신관리부.
졸업 후 준한이 취업한 회사와 배정받은 부서는, 이성적이고 건조하기로는 단연 탑을 달리는 파트였다. 그렇지만 이 일은 준한의 정확하고 깔끔한 성미에 잘 맞았고, 그는 나름 만족스럽게 은행원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호의가, 삽시간에 어떤 감각을 일깨운다.
아무 이득 없이도 뭐에 씌인 것처럼 연습을 하고, 자신에게 있을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과잉된 감정을 표출해내며, 울고, 웃고, 부대끼던 시간들.
‘연극’이라는 이름만으로 삽시간에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어떤 전율.
그 전율의 시간을 살고있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자신을 기억해주는 고마움을.
“주임님, 그 티켓 저한테 파시면 안 돼요? 티켓값 드릴게요.”
“박주임, 너무 양심없다~ 저 티켓 지금 중고리아에서 프리미엄이 얼마나 붙었는지 알아? 사주임 혹시 안 갈거면 부르는대로 값 쳐줄테니까 나한테 팔아. 나 진짜 신유명 골수 팬이라서 표를 백방으로 구했는데 못 구했거든.”
지금 자신의 시간은 이 곳에서 흐른다.
그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다만, 잠시 그 전율을 전달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민대리님, 같이 가실래요?”
“으…응?”
팔을 걷어부치고 표 구매를 시도하던 민대리가 준한의 제안에 말을 더듬었다.
“표가 두 장이네요. 팔기는 그렇고, 밥이나 쏘세요.”
“잉…주임님 저는요.”
“미안, 나도 꼭 보고 싶은 공연이고, 한 장 뿐이라면 사수부터 챙겨야지. 대리님 같이 가실래요?”
“어…그…럴까? 꼭 가고 싶은 공연이라서…거절을 못하겠네, 흠흠.”
입사 때부터 준한이 여러 번 꼬셨지만 도도하기 그지없던 민대리는, 티켓의 희소가치 앞에 KO패 당했고, 준한이 특유의 반달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첫 데이트가 될 예정이었다.
*
탕탕탕-
극장 안에 망치 소리가 메아리친다.
줄라이 극장은 400석 규모의 중극장으로, 대학로에서 흔한 소극장들보다는 규모가 있지만, 큰 극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무대는 객석수에 비해 넓은 편이다.
무대의 폭이 상당히 넓고, 앞쪽은 아치형으로 돌출되어 있다. 1열에는 25개의 좌석이 자리하고 뒤로 갈수록 좌석수가 더 많아져 40여개까지 늘어난다. 그럼에도 열의 수는 10열이 전부라 가로 폭이 훨씬 길지만 세로는 짧은 극장.
이런 극장의 장점은, 가장 뒷열의 좌석에서도 무대 위 배우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있을 정도로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깝다는 것이다. 단점이라면 가로가 넓기 때문에 산만해질 수 있다는 것.
그렇지만, 이 공연에서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단상 고정 완료됐습니다-”
무대를 연기로만 채우겠다는 듯, 무대 구성은 단촐했다.
공연 1주일 전의 준비기간 동안은 극장이 비워지고 무대가 설치된다.
그리고 나서야 테이핑 된 마루바닥에서 연습하던 것을 졸업하고, 드디어 무대 위에 서서 연습할 기회가 생긴다.
연습실과 실제 무대는 느낌이 다르다. 바닥의 질감도, 무대의 체감 넓이도, 배에 힘을 주고 대사를 뱉었을 때 얼마나 울리는지도. 그래서 아무리 연습실에서 찰떡같이 맞춰뒀어도, 본무대 연습에서는 미묘하게 조정할 부분들이 생긴다.
다행히, 미리 제작을 마쳐놓고, 무대 위에서 조립하기만 하면 되었던 세팅은 단 시간에 끝났고, 그들은 그 위에서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했다.
“여기가 네버랜드야~”
피터팬이 웬디를 옆에 두고 가리키는 손짓을 큐로, 조명기사가 레버를 올린다.
총 천연색 조명들이 쏟아진다.
“그에게는, 사람들을 홀리는 마력이 있지요~”
사이클로라마에 그림자가 하나, 둘, 열, 스물로 늘어난다. 피터팬에게 홀려 꿈을 꾸는 사람들을 표현하듯.
조명과 음향, 배우들의 연기의 큐를 맞춰가며, 큐시트에 빼곡한 메모를 하던 백이신이, 막간에 크게 소리쳤다.
“지금은 빈 극장이라 울려서 크게 들리지만, 관객 꽉 차면 소리 먹어들어가니까 좀더 대사 크게 쳐 보세요. 특히 웬디 소리가 묻혀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 그의 옆으로 단장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크으, 멋지다···”
“단장님 오셨어요.”
“좀 잔인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게 오히려 시선을 못 떼게 하네. 이거 나이제한 있다 그랬지?”
“15금입니다. 입장시 신분증 확인 고지했구요.”
“흐음…그래. 이거 레파토리 줄라이에서 나중에 쓸 순 없나? 상연권 얘기 한 번 해볼까?”
“글쎄요. 재상연했는데 이 퀄리티가 안 나오면 쪽만 팔릴수도 있죠. 줄라이 젊은 배우들 중에 저런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있나요. 그렇다고 마흔 이상 중견배우를 피터팬이라고 우기기는 좀…”
“야, 너는 왜 이렇게 직설적이냐, 아프게. 내가 단장이거든?”
“아픈 거 좋아하셔서 저 고용하셔놓고 뭘···”
그 말을 못들은 척하며 단장이 리허설을 지켜본다.
백이신이 캐스팅하지 못했다고 땅을 치며 아까워했던 두 배우. 탐이 나는가?
아니, 탐도 나지 않는다. 꿀꺽 삼키기엔 너무 파이가 크다. 먹다 체했겠지.
하지만, 세미가 있다.
“치료 불가. 저희 의료진은 이 세 케이스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한다면,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점에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했습니다. 고로 저희의 결정 사항은-”
극장의 구석까지 파고드는 섹시하면서도 명료한 그녀의 발음.
하이힐을 신은 훤칠한 키로 무대의 끝에서 끝을 천천히 또각또각 거니는, 하얀 가운의 닥터. 추세미의 흡입력은 지난 세 달 동안 놀랍도록 성장했다.
단장은 그런 그녀가, 줄라이의 세대교체의 주역이 될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방금 전 장면 한 번만 다시 갈게요-”
본무대 연습의 합도, 점차 정교하게 맞춰지고 있었다.
*
5월 26일 밤 10시가 되기 10분 전.
치익- 탁-
반순호는 박유선과 함께 맥주 한 캔을 따고 있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수정하여 겨우 시간맞춰 테입을 넘긴 후였다.
그들은 멀리 나가지 않고 방송국 휴게실에서 모니터링을 하기로 했다.
“수고했다.”
“너도.”
텅- 하고 맑지 않은 캔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마지막 한 달은 거의 집에도 들어가지 못해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편집실에서 열심히 편집하고 있는 동안에도, 테입이 계속 넘어왔다. 최대한 공연과 가까운 시점까지를 담고 싶은 욕심에, 계속 장면을 추가했다.
60분의 방송시간이 너무 짧았다. 버리기 아까운 장면들이 너무 많았다.
“대단한 애들이었어, 그치?”
“우리 10년 후에 전설이 될 배우들의 초창기를 기록한 걸지도 몰라, 흐흐.”
“그러게. 이렇게 허덕이면서도 보람찬 건 오랜만이었어.”
“걔들 젊음과 열정이 옮아서 그래.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도 분발해야지 싶은 게 사람심리 아니겠어? 뭐 우리 나이엔 1주일만 지나도 약빨이 떨어지겠지만.”
“크큭.”
광고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방영 가장 직전에 붙은 광고는 광고였다.
그들은 최근 편집실에서 거의 하루종일 보아온 배우의 얼굴을 감상했다
안경이 벗겨지며, 그가 살아있는 표정으로 웃는다. 그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그는 연기할 때 항상 짓고 있었다.
“부족하지 않게 담아냈어야 할 텐데.”
“그러게 말이야. 박유선인데 잘 찍었겠지.”
“반순호인데 잘 만들었겠지.”
그들이 다시 키득키득 웃으며, 맥주잔을 한 번 더 부딪혔다.
방송을 걸어놓은 후 마시는 맥주 한 잔은 무척 짜릿했다.
[KBK 기획 다큐멘터리, 배우]방송이 시작되었다.
123 다큐멘터리 -배우-
다큐는 차분한 여성 성우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했다.
[배우, 영어로는 actor라고 한다. er 혹은 or이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임을 감안한다면 actor는 ‘act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리고 act란 ‘행동하다, 행동을 취하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화면에 글자가 떠오르고, 분리되어 뒤집힌다.
Act, or -> 행동하는, 사람.
[여기 한 배우가 있다. 이름은 신유명, 올해 26세가 된 3년차 신인배우이다. 이 배우는 한 편의 독립영화, 한 편의 드라마, 그리고 최근에 상영된 한 편의 상업영화로 연기인생에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아니, 순조로운 정도가 아니라, 관련자들의 관심이 온통 이 배우에게 쏠려있을 정도로 극적인 데뷔를 해 냈다.]화면 가득 스틸컷들이 뜬다.
[그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이 배우는 배우로서 지극히 당연히 요구되지만, 막상 갖추기는 어려운 ‘연기력’을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해 왔기 때문이다.]팬텀, 보형, 이방원, 그리고 연습을 하는 그의 모습들이 2컷에서 4컷으로, 8컷 16컷으로 화면을 분할하여 채운다.
[그는 최근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세 명의 팀원들과 함께다. 대중들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왜 데뷔한지 얼마되지 않은 잘 나가는 신인배우가 다음 작품으로,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연극’을 선택했는지. 그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삽입되는 유명의 인터뷰.
“같이 연기하고 싶은 배우들과 함께,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는 그런 ‘마음’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니까요. 촬영도 해야하고 편집도 해야하고 연기 외적으로 신경쓸 게 많죠. 그에 비해서 연극은 ‘연기할 장소’만 있으면 가능하니까요.”
조금 수줍은 듯이, 하지만 신나게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배우의 모습은 호감을 자아낸다.
글자가 역순으로 조합된다.
행동하는, 사람 -> Act, or -> Actor -> 배우.
[우리는 한 젊은 배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가 바라는 미래를 조명하며, ‘배우’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시작은 주변인의 인터뷰로 유추하는, 그의 과거이다.]Act 1. 개인의 역사는 주변인의 시선으로 기록된다.
그렇게 다큐의 서막이 열렸다.
*
[그는 상당히 늦게 연기를 시작했다. 23세, 대학의 연극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그 전부터 연기에 지극한 관심을 두고 각종 대본을 섭렵하며 혼자 연습해 왔다고 한다. 그렇게 관심이 많았는데 왜 그렇게 연기를 늦게 시작했을까?]“음…제가 성격이 무척 조용했어요.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타입? 그래서 타인에게 주목받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해봤어요.”
[실제로 취재팀이 추적해 보니, 고등학교 때까지의 그는 친구들이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조용한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도전한 연기에서 대단한 두각을 드러낸다.]“제가 메소드 연기학을 가르칠 때, 신유명 학생을 처음 봤어요. 처음에는 타과 학생이 떡하니 앉아있길래 수강신청을 잘못했나 했죠. 그런데, 연기과제에서 가장 먼저 손을 들고 과감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더니, 그 팀을 이끌고 만든 단막극에서는 제가 경의를 표할 정도로 대단한 연기를 보여줬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동기인 윤한성 배우에게 이녀석 한 번 보라고 자랑을 했을만큼 깜짝 놀랐습니다.”
등장한 자료화면은 단막극의 하이라이트였던, 표정변환 장면.
이재필 교수에게 넘겨받은 후, 반pd가 경악을 금치못했던 연기 장면이 잠시 삽입되었다. 강의실 전체를 넓게 촬영하여 얼굴이 흐릿한 화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어지며 연결되는 마법같은 표정변화는 시청자의 시선을 간단히 사로잡았다.
“졸업한 학교 동아리에 여름 워크샵이 있어요. 후배들 부탁으로 강의를 갔는데, 거기서 유명이를 처음 봤죠. 연기자로서의 기본인 ‘잘 듣기’에 대한 워크샵을 진행했는데, 그 때 과제를 시켜보고 정말 놀랐어요. 초보 연기자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리액션과 순발력, 몰입력이 엄청났거든요.”
워크샵 중 상시 돌아가던 카메라.
그 곳에 유명과 이선하의 즉흥극이 남아 있었다.
‘반박하기’ 워크샵.
서로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순식간에 하나의 극을 만들어가는 마법같은 장면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그렇게 자료화면과 인터뷰를 섞어, 유명의 과거가 주욱 이어져 갔다.
여기에서는 서류신과의 인연과, 독특한 교차식 더블캐스팅이 다루어졌고,
기도한 감독의 인터뷰와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과, 그리고 칸 영화제 프로그래머 발롱 파루지에와의 전화인터뷰가 삽입되었다.
피디 및 동료 배우들이 신유명이라는 배우의 실력과 품성을 자자하게 칭찬했고,
오디션장에 입고왔던 너덜너덜한 의상이 찍힌 카메라테스트 자료는 폭소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틱택톡에서 방영되었던 손감독의 진솔한 고백과 붉은 눈시울,
15회나 촬영했던 엑스트라씬들의 자료화면,
그리고 윤한성의 인터뷰.
“저는 한 명의 배우로서 신유명이라는 배우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저희는 거의 반년 가까이 같이 살다시피하며 촬영했고, 촬영이 없을 때조차 함께 연기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사람의 시야라는 것은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 넓어지기도 한다고.
그는 그 자체로 뛰어난 배우이기도 하지만, 함께하는 배우를 자극해서 끌어올리는 배우입니다. 한참 동생이지만 인간적으로도, 연기적으로도 존경하는 부분이 많아요. 이건 확신하는데, 려말선초에 신유명의 이방원이 없었다면, 윤한성의 정몽주도 없었을 겁니다.”
[칭찬과 감탄으로만 가득한 주변인들의 인터뷰. 그들의 진솔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의심스럽기도 했다. 너무 과한 칭찬이 아닌지. 그래서 취재진은 두 달 동안 동고동락하며 그의 연습실을 탐구했다. 그리고 이 배우는, 아니 이 배우’들’은 진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세상이 그들로 떠들썩할 때, 그들은 연습실에만 틀어박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Act 2. 개인의 현재는 스스로가 ‘행동할’ 때만 움직인다.
다큐가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
빙그르르- 유명이 재주를 넘었다.
옆돌기, 백덤블링, 핸드스프링.
신기할 정도로 가볍고 유연하게 몸이 움직인다.
“지금 뭐하는 거에요?”
“ 연습 중이에요.”
“왜 이런 연습이 필요하죠.”
“피터팬은 하늘을 날잖아요. 와이어를 쓸 환경은 아니라서, 나는 느낌이 날 정도로 가벼운 몸동작으로 만들어 보려구요.”
[그는 창작극 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연습실에서 놀라운 인물을 한 명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와 경쟁구도에 섰던 영화인 에서 연산군 역할을 맡아 극찬을 받았던 배우, 서류신. 그는 앞서 설명했듯이 신유명의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촬영 종료한 날, 신유명씨가 연극을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했어요.”
“기획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요?”
“네. 같이 할 때 무척 재미있었거든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같이 무대에 서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어요. 저희는 더블캐스팅이라 한 무대에 설 일이 없었거든요.”
[신유명은 서류신을 ‘같이 연기해 보고 싶은 배우’라고 표현했다. 서류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두 배우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그들이 서로를 선의의 라이벌로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 두 명의 배우가 더 있었다. 설수연, 아직 연기경력이 길지 않은 그녀는, 오래 빠져나오지 못하던 연기의 벽을 그들과 함께하며 벗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극단 줄라이에서 차출된 배우 추세미는 그들 모두가 연기에 대해서 한없이 진지한 ‘진짜 배우’라고 했다.]
네 명의 배우들.
화면을 세로로 4분할한 화면에 그들이 역동적으로 연기하는 스틸컷이 하나씩 담긴다.
그리고 그들의 연습 모습이 담겼다.
다큐가 보여준 여러가지 연습테마들 중,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것은 즉흥연기.
누군가 한 명이 갑자기 얼굴을 싹 바꾸고 어떤 대사를 던지면, 전투에 임하듯이 대사를 받아쳐 가며 순식간에 하나의 미니극으로 완성시킨다.
마치 연기를 공으로 삼아 드리블하며 노는 것처럼 재치가 반짝이고, 연기력이 돋보인다.
그것은 누가 봐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연기에 완전히 빠진 사람들의 유희였다.
그리고 그들의 특이한 ‘창작극’의 제작과정이 다루어졌다.
[이들은 각자 배역을 맡아서, 그 배역에 이입해 대본을 창작해 가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어떤 방식인 것일까.]“어…굉장히 실험적인 극작 방식이죠. 참여자들이 굉장히 연극적으로 센서티브하고, 서로간에 경험과 감정의 공유가 잘 되어 있어도 어려운 방식이에요. 다 사연이 있는 캐릭터들이고, 그 사연에 진짜로 몰입해서 캐릭터끼리 부딪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감성적으로 몰입해 있으면서도, 이성을 가지고 ‘무대에서 쓸만한 대사’를 만들어낸다는 게 쉬울 리가 없잖아요? 이런 방식의 실험극이라면 저도 꼭 결과물을 보고 싶군요.”
“피터팬 신드롬은 정신의학에서도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죠. 피터팬의 등장인물들을 정신과에 입원시켜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라니, 무척 흥미로운 시도입니다. 특히 각 캐릭터에 부여된 병명을 보면, 이것이 상당한 고민 끝에 만들어진 설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무대구상 해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이 친구들이 얼마나 감각적이고 열정적인지. 덕분에 극단의 젊은 배우들이 다들 불이 붙어 있어요. 자신들도 질 수 없다 이거죠.”
그리고 그들의 연습 장면들이 삽입되었다.
극의 내용을 스포일링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삽입된 장면들이었음에도, 얼마나 밀도높은 연습인지가 티비 화면을 건너서도 느껴져 왔다.
“이 곳은 나의 네버랜드야~”
“너, 상냥할 때의 엄마를 닮았구나.”
“쉿, 선생님한테만 말해봐.”
“웬디는 착한 아이야···착한 아이야!!”
그리고 이어지는 회의, 활발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배우들과 그것이 대본으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
무대 회의, 무대가 만들어지는 장면, 완성된 무대에 떨어지는 조명.
보는 사람들이 궁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저 곳에서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상상해 보게 하는,
장면 장면들이 공들여 배치되었다.
그리고 다큐는 종반을 향해 달린다.
[이처럼 이들은 창조적, 실험적인 연극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 이 중 두 배우는 이미 국내 대부분의 감독들이 탐을 낼만큼 궤도에 올랐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깨기 위해 새로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흑백으로 처리된, 연습실의 모습이 지나간다.
[배우는 연기하는 사람이다. 여기에 지극히 당연한 이 명제를 묵묵히 이행하며 살아가는 배우가 있다.]Act3. 미래
“최종목표가 뭐에요?”
“음…글쎄요. 그냥 연기하는 거? 하나하나의 캐릭터와 최대한 동화하고, 하나하나의 작품에 최선을 다하는 게 재미있어요.
제 목표는 산을 오른다기보다는, 평야를 걸으면서 다양한 풍경을 보는 것 같아요. 아니 풍경을 보여주는 걸까요? 관객들에게 매번 좀 더 멋지고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는 것.”
[산을 오르지 않고 평야를 걷기에, 그에게 이번 연극은 올라온 산을 다시 내려가는 허무한 과정이 아니라, 그저 발걸음을 조금 돌려 새롭게 바라보는 풍경이다.그가 앞으로 어떤 풍경을 보여주는 ‘배우’가 될 지 기대해 본다.]
KBK 기획 다큐멘터리 [배우] END.
다큐의 시청률은 기록적이었다.
그리고 여론의 관심은 다음 날 개연하는 에 초집중되기 시작했다.
124 방송의 힘
다큐의 논조는 담담했다.
과장되지 않은 담백한 어조로 풀어나가는 컷들은, 단순히 ‘신유명’이라는 배우 한 명을 높이 띄우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진정한 배우의 길’을 조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역시 빛이 나는 것은 그 길을 걸어가는 배우였다.
유석의 말대로 방송의 힘이란 굉장했다.
당일 야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것은 유명에 대한 엄청난 찬사와, 그를 매도했던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