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67
‘으으, 동상이라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다.
철컹철컹-
일요일이라 교문은 잠겨 있었다. 학교에 들어가보려 했던 유명이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으니, 수위 아저씨가 손사래를 치며 달려나온다.
“여기 학생 아니면 못 들어와.”
“졸업생인데, 혹시 잠시 둘러볼 수 없을까요?”
“아, 졸업생이여? 평일에 와. 내 마음대로 열어줄 수 있는 권한이 없어.”
그 얼굴이 희미하게 낯이 익다.
유명은 머리속 어딘가에서 기억의 편린을 찾아낸다. 야자를 튀는 소년들과 고함을 지르며 쫓아오던 경비 아저씨. 모두 잡혀도 유명만은 잡히지 않았다. 너무 존재감이 없어서 도망가는 걸 인식하지도 못했나보지.
유명은 살짝 장난기가 동했다.
“평일에 오면, 학교 업무가 마비될텐데요···”
“그게 무슨 소리여?”
모자를 살짝 올리고 마스크를 내리자, 수위 아저씨의 동공이 흔들린다.
그가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유명을 가리킨다.
“어? 호…혹시?”
“우화고 15기 졸업생 신유명입니다.”
“마…맙소사.”
경비 아저씨가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집어들어 쇠창살로 이루어진 문을 열었다.
“어…어쩐 일이래요?”
“아저씨, 저 기억하세요? 오랜만에 학교 한 번 보고 싶어서 왔는데, 살짝 들여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평일에 오면 일이 좀 커질 거 같은데.”
유명이 생글생글 웃으며 살갑게 부탁하자, 수위 아저씨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그러엄. 들어와요.”
“감사합니다!”
“어…나 싸인 한 장 부탁해도 되나?”
“그럼요~”
수위 아저씨를 포섭한 후, 유명은 건물 안으로 향했다.
운동장, 소각장, 1층의 불꺼진 교무실, 매점, 강당.
그리고 계단을 오르며 1학년 1반, 2학년 4반, 3학년 6반. 자신이 공부했던 교실들의 문을 하나하나 열어본다.
유명이 뒷문에 기대어, 빈 교실에 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오랜만이야.’
언제나 튀지 않고 무리 속에 잠겨있던 한 남고생이 뒤를 돌아보더니, 유명에게 환영같은 미소로 답한다.
그것은 ‘연기’라는 욕망을 알기 전의 자신의 모습.
‘넌 어떻게 지내니? 어떤 아이였어?’
주위에선 자신에게 늘 ‘조용하고 소극적이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사실 스스로의 성격은 꽤 대범한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눈치가 빤하던 아이는, 자신이 입을 열어도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눈치챘고, 제 나름대로 그 상황에 적응하여 주로 듣는 입장에 섰다.
하지만 혼자 놀 때 그는, 꽤 재미있는 아이였다.
전과목 선생님들의 성대모사를 할 줄 알았다. 역사 선생님의 장엄한 말투와 체육 선생님의 군기가 바짝 든 말투를 연습했다. 누가 시켜주면 잘할 자신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티비에 나오는 코미디나 드라마를 보며 흉내를 내 보기도 했다. 남들이 보면 형편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울로 볼 땐 꽤나 그럴싸해 보였다. 가끔은 동생 앞에서 흉내를 내보기도 했는데, 동생은 그저 개그로 보았는지 깔깔 웃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도 이미 자신은 연기에 몸이 달아 있었던 것이다.
그게 어떤 욕망인지 알 지도 못했던 때에도.
-…글쎄. 내가 왜 그럴까.
유성은 민성을, 은성을, 곧 현성도 흉내낸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건지 아직 알지 못하면서도, 그는 ‘연기’를 하고 있다.
무언가를 지독히 원하는 원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유성처럼, 인간의 마음에는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를 욕망이 존재한다. 인간의 삶은 그 욕망을 쫓거나, 혹은 제어하기 위한 평생의 전쟁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의 욕망의 실체를 알게 되는 순간.’
유성은 어떤 얼굴을 할까.
유명은 처음으로 무대에 서서 관객의 시선을 받았던, 그 감전과도 같은 순간을 떠올렸다.
*
#Scene 41
RRR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 사서함으로-
“젠장!”
현성은 다인을 만나려 한다.
그녀의 눈에는 뭔가 보이는 모양이니 힌트를 얻으려는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연락되지 않는다. 현성의 얼굴에 불안, 초조, 공포가 뒤덮인다.
#Scene 42
그리고 돌아온 내면의 집에는, 은성이 사라져 있었다.
/찾지 마/
짧은 메모와 함께, 또 하나의 인격이 사라졌다.
현성이 다시 한 번 유성의 멱살을 잡는다.
“너지? 또 네놈이지?!”
“무슨 소리야. 나도 방에 있다가 지금 나온 거야. 애꿎은 사람 잡지 마.”
“네가 온 후 민성이가 죽고! 은성이가 사라졌잖아! 아니 사라진 것처럼 위장했을 뿐 이미 죽였을 지도 모르지. 살인자! 넌 살인자야!!!”
현성이 악다구니를 쓴다.
“내가 아니라고.”
은성의 실종에는 조금 마음이 동요한 모양인지, 유성이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자신의 연관성을 부정했다.
하지만 곧, 그는 ‘은성의 시간’에 욕심을 낸다.
“그럼 앞으로 12시간씩 쓰면 되겠네? 수면은 3시간?”
“개새끼.”
#Scene 44
현성은 자신의 시간이 돌아오자마자, 미친듯이 수소문하여 다인을 찾아간다.
“그 새끼가 범인 맞지? 어떻게 해야 해?”
“자극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상냥하게 생긴 오빠가 그러지 않았어요? 자극하지 말라고?”
유성을 자극하지 말라고 빌듯이 얘기하던 은성.
현성은, 내면의집에서 벌어진 일들을 눈으로 본 듯한 다인의 말에 흠칫한다.
다인이 예언하듯이 선언한다.
“혼자 힘으론 승산이 없어요. 사라진 오빠를 빨리 찾아요.”
#Scene 47
유성이 몸을 차지한 시간, 현성은 집 안을 샅샅이 뒤진다.
은성의 방을 열어 구석구석 뒤진 후, 별다른 게 없자 온 집안을 샅샅이 훑었다.
하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그는 다시 유성의 방으로 돌아온다.
그의 침대에 털썩 주저앉자, 반대편 벽에 아까는 분명 보지 못했던 가는 이음새가 보인다.
‘응? 이게 뭐지?’
그는 이음새 부분에 조심스럽게 손톱을 넣어 뜯어냈다. 그러자 통로가 하나 보였다.
조심스럽게 통로를 기어나가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허억!!’
드넓은 공간에, 온통 삐죽삐죽하고 예리한 것들이 채워져 있었다.
세모, 네모, 별, 모양과 크기가 각각인 형체들이 바닥에 묻혀있거나, 혹은 공중에 떠 있다.
크기를 알 수 없이 거대한 진자가 슈웅 공간을 가르자, 주변의 것들이 퍽퍽 터져나가고 새로 생성된다.
어떤 곳에서는 펑- 하고 폭발음이 들리며, 수천가지 색의 리본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가 공간 속으로 흡수된다.
‘은성아…’
은성이 도망간 이 위험한 곳은 바로,
무의식의 세계였다.
252 무언가에 미친 사람들의 숙명
현성은 그 공간 속으로 한 발짝 발을 딛었다.
블랙홀같은 흡인력이 자신의 발을 잡아당긴다.
‘이 기류에 빨려들어가면 길을 잃고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은성아, 정말 이 속으로 들어간 거냐…’
현성은 안타까운 눈으로 발을 빼고 그 공간을 빠져나온다.
은성의 방에 다시 돌아오자, 틈새가 아물어 사라진다.
‘스스로 도망친거냐, 아니면 신유성이 강제로 너를 밀어넣은 거냐··· 네가 꼭 필요한데···’
“너 은성이 방에서 뭐해?”
사라진 틈새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유성이 문을 벌컥 연다.
자신을 추궁하듯이 바라보는 눈빛에, 순간 등골이 서늘한 기분을 억누르며, 현성은 겨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은성이가 사라진 단서를 찾아봤을 뿐이야.”
“흐음···뭐 발견한 거라도 있어?”
“별로. 넌 언제 왔어.”
현성이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란다.
무의식의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이 왜곡되었는지 벌써 8시반…8시반??
“너 지금 들어온 거냐?”
“그런데?”
“이제…룰도 안 지키겠다는 거야?”
민성이 죽고 은성이 사라진 후, 현성과 유성은 각각 12시간씩을 사용하기로 했었다.
현성이 오전 8시~오후 8시, 유성이 오후 8시~오전 8시.
수면시간은 최소 3시간씩.
“30분 늦었어. 너무 빡빡하게 굴 것 없잖아.”
“잠은, 잤어?”
“……”
“왜 안 지켜! 네가 뭔데 우리가 기껏 이룩해놓은 질서를 모두 망가뜨리고 뒤집냐고!!”
“그래도, 들어왔잖아?”
섬찟한 그의 표현.
들어와 준 게 어디냐는 적반하장 식의 말투에, 현성이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떤다.
“…그 따위 식이면 나도 마음대로 할 거다.”
“어디 한 번 해 봐.”
“미친 새끼.”
유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방을 빠져나간다.
현성은 그 뒤를 따라나와 휙-하고 현관을 빠져나갔다.
[컷- 오케이!] [붙입니다!]이제 스탭들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위고도 이제 감을 잡았는지, 유명과 류신의 연기 타이밍을 계산해 가며 오케이 컷인지 아닌지를 짐작했다.
위고도 류신도 점점 칼날같은 타이밍의 싸움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위고가 오케이를 내고, 유명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신호로, 데이터매니저는 잽싸게 해당 장면의 오케이 컷들을 러프합성했다.
타이밍이 맞게 돌아가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해당 신의 최종 과정이었다.
[확인 완료! 다음 씬으로 넘어갑니다!]“스튜디오 이동하겠습니다!”
스탭들이 왁자지껄하게 장비를 옮긴다.
다음 씬은 현성의 교수실.
유명은 ‘현성’의 연기를 Take2에 진행했기에 분장은 그대로 놓아둔 채, 의상만을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세팅이 끝난 후,
[촬영 시작합니다.]현성이 출근해서 재킷을 교수실 한 쪽의 옷걸이에 건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현성의 허락이 떨어지자 들어온 것은 조교 역할의 배우였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그래요, 퍼스낼리티 심리학 과제는 모두 제출했나요?”
“그럼요. 다들 교수님 스타일 아는데, 감히 어길리가요.”
천재적인 연구 능력과 논문 실적을 바탕으로 20대 후반에 교수에 임용되고, 이제 30 초반에 접어든 신현성.
강의는 유려하지만 출석과 과제에는 칼같아서, 학생들 사이에 가장 실력있는 교수이자 자비없는 교수로 이름높았다.
다들 그를 어려워하지만, 원래 성격이 둥글둥글한 조교 정희진은 그를 스무스하게 대하는 편이다.
그녀가 손에 안아든 레포트 뭉치를 탁자에 내려놓더니, 생긋 웃으며 말했다.
“교수님께 그런 부분이 있는지 몰랐네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라이더 자켓 잘 어울리시던데요?”
현성의 얼굴이 사색으로 질렸다.
‘신유성, 이 미친 새끼가···!’
*
“한 잔 할래요?”
“어…그럴까요?”
류신은 그 날 촬영 후, 유명에게 술자리를 권했다.
요즘 그의 눈빛이 점점 깊고 복잡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촬영 자체도 매일 한계를 시험하는 것처럼 날이 선 상태. 누구라도 매일 저런 텐션으로 연기한다면 정신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잠시라도 릴랙스할 필요가 있어.’
류신이 일부러 표정을 가라앉히고 술자리를 청하자, 유명이 쉽게 응했다.
그를 생각해서 만든 자리라고 한다면, 오지 않으려 하겠지. 촬영이 끝난 후에도 잠잘 시간을 아껴가며 연습하는 모양이니까.
맥주가 몇 잔 들어가고 나서야 류신이 물었다.
“괜찮아요?”
“…뭐가요?”
“내가 나를 연기한다면, 숨이 막힐 거 같은데.”
“…조금은요.”
유명이 자신의 마음을 읽는 듯한 동료를 안심시키듯, 싱긋 웃더니 맥주잔을 쭈욱 비웠다.
원래 연기 자체가, 타인의 시선 앞에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자신의 내면을 연기한다니. 이건 마치 배를 가르고 내장마저 보여주는 작업이 아닌가.
신유명이라는 인간을 들여다본다. 보기 싫은 부분마저도 눈을 부릅뜨고 샅샅이 스캔한다. 그것을 조각조각 분리하고 합체하여 네 명의 인간으로 형상화한다.
때로 자괴감에 구역질을 하고, 때로 거대한 카타르시스에 온몸을 떨었다.
잘 먹고 운동을 쉬지 않는데도 체중이 조금씩 줄었다.
아마 정신이 다이어트되는 중일 것이다.
“여러모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오늘 연기한 부분은, 연기에 대한 갈망이 일상을 침범한다는 의미죠?”
류신은 좀 더 대화하기 편한 화제로 돌린다.
극의 해석에 관하여.
유성이 등장한 후, 8시간 룰은 12시간 룰로 바뀌었다.
심지어 유성은 그 룰조차 어기기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들어오고, 수면 시간도 지키지 않는다.
거기에다, 현성의 삶에도 끼어들기 시작했다.
심한 갈망은 일상생활을 모조리 침범한다.
균형을 이루었던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이성(현성)은 이러면 안 된다고 갈망(유명)을 제어하려 하지만, 이전에 믿었던 것보다 자신의 이성은 훨씬 무력하다.
주체할 수 없는 갈망이, 점점 모든 것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를 자극하지 마.
그래서 은성도, 다인도 현성에게 경고했던 것이다. 유성을 자극하지 말라고.
어차피 언젠가는 제어할 수 없을 것을 알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는 것처럼.
“형은 그런 기분 들 때 없어요?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 이 출처도 모르고 채워도 채워도 만족을 모르는 짐승이 내 삶을 전부 집어삼킬 것 같다는 불안감 말이에요.”
“…있죠. 그건 무언가에 미친 사람들의 숙명 아닐까요.”
그들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건배했다.
*
저녁 8시.
교대시간이지만 현성은 내면의 집으로 귀가하지 않았다.
‘나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어.’
이미 저 쪽에서 룰을 무시하기 시작했는데, 자신이라고 가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신사 협정은 이제 끝이다.
잠을 자면 자동으로 내면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니,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생각이었다. 룰을 무시하면 유성도 손해를 본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줘야 한다.
그러나,
째깍-
시계가 8시 30분을 넘어갔을 때,
눈이 감기면서, 신체는 우당탕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현성은 내면의집으로 강제송환되었다.
“뭐…뭐야!”
현관 앞에선 신유성이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서 있었다.
현성은 그의 싸늘한 눈빛에 솜털이 올올이 일어났다. 그가 강제로 자신을 끌어낸 것이 틀림없었다.
‘어떻게···!’
은성과 민성과 함께 균형을 잡아나가는 시간동안, 그들은 수많은 테스트를 했었다.
일단 현관으로 나간 의식은 본인의 의지가 없이는 소환되지 않았다. 그래서 초반에 잠을 자지 않고 몸을 차지한 채 버텨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잠이 들면 내면의 집으로 소환되었고, 각 인격의 힘이 동등했기에 한 명이 군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수많은 싸움을 거쳐 그들은 서로의 힘이 동등한 것을 인정하고, 시간을 동등하게 사용하는 데 합의했던 것이다.
하지만 방금 유성은 현성을 강제로 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