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68
“시간 넘겼잖아.”
“너도 넘겼잖아!”
“…나 간다.”
“어딜 가, 이 자식아!”
현성이 몸을 날려 유성을 덮쳤다.
유성의 몸이 바닥에 나뒹굴고, 현성은 유성을 몇 대 주먹으로 갈겼다. 하지만 다시 한 대를 날렸을 때, 유성이 왼 손을 뻗어 얼굴 앞까지 다가온 그의 주먹을 잡았고,
으윽-
손쉽게 밀어내더니 그를 올라타고 제압했다.
월등한 힘의 차이.
현성이 발버둥을 치자, 그는 현성의 양 팔을 봉쇄한 채로 그의 방으로 밀어넣는다.
쿠당탕-
나동그라진 현성이 다시 뛰쳐나오려 하지만, 방문의 바닥에서 흰 색 창살이 가닥가닥 솟아나오더니 천장에 박힌다.
쾅-
현성의 방문에 마치 감옥같은 창살이 생겼다.
현성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창살을 흔들었고, 유성이 냉정하게 말한다.
“진정 좀 해.”
“야! 신유서어어엉–!”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머리 좀 식히고 있어. 진정하고 나면 네 시간, 돌려줄 테니까.”
유성은 방 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
‘와아···’
류신과 유명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던 수연의 입이 헤벌어졌다.
인격에도 ‘격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현성이 처음으로 실감하는 장면.
그리고 세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는 빌런처럼 묘사되었던 유성이, 제 나름대로는 봐주고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
현성의 절박함에 이입하면서도, 복잡미묘한 유성의 눈빛이 궁금하다.
민성을 죽이고, 은성을 무의식의 공간으로 추방한 것은 과연 유성인가? 그는 현성마저 감금하고 이 몸을 독차지하게 될 것인가?
그는 왜 태어났고, 무엇을 원해서 이 파국을 만든 것일까.
‘반면 내 배역, ‘다인’은 달라.’
수십 개의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수인’이 적절하게 컨트롤하고 있다.
카리스마 있고 이성적인 지배 인격은, 심지어 가장 많은 시간을 ‘다인’에게 양보한다.
그녀, 고다인이 상징하는 것은 다양한 욕망이 있지만, 참을 때 참고, 드러낼 때 드러낼 줄 알며, 일상을 균형있게 영위하는 일반적인 인간. 보통 사람의 욕망체계.
하지만 무엇이 더 바람직한 삶인 것일까.
적절하게 조화된 인간?
혹은, 자신도 두려울만큼 거대한 갈망을 실현하기 위해 질주하는 인간?
‘…정답이 있을까.’
유명은 카메라 앞에서 수연을 기다렸다.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수연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
“화이팅.”
유명의 작은 속삭임에 살짝 입꼬리를 올리는 그녀의 얼굴은, 이미 다인이 되어있었다.
[스탠바이- 레디- 액션.]유성은 또 현성의 흉내를 내고 있다.
교수실에 앉아 있는 그에게, 조교가 내담자가 찾아왔음을 전달한다.
유성의 표정에 흥미가 동한다.
다인이라면, 현성에게 자신의 존재를 경고하던 여성. 안 그래도 그녀는 한 번 만나볼 생각이었다.
다인은 방에 들어와,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살짝 한숨을 쉬었다.
“결국, 그렇게 돼 버렸네요. 교수 오빠는 가둬버렸나요?”
“…넌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오빠가 어떻게 태어난건지 모르는 것처럼, 나도 어떻게 아는 건지 몰라요.”
다인의 말대로, 유성은 자신의 존재의의를 알지 못했다.
어디서 생겨났는지도, 무엇을 원하는지도.
지금 당장 그에게 흥미로운 일은, 나머지 세 인격들의 흉내를 들키지 않고 해내는 것 정도였다.
“이제 어떻게 할 거에요?”
“글쎄…현성이는 조금 진정되면 풀어줄 거야. 그리고 어떻게 할 거냐니, 무슨 뜻이야?”
다인의 눈빛이 잠시 꺼지더니, 휙- 다른 종류의 이채를 띤다.
유명은 유성의 마음이 되어 이 새로운 상대에게 긴장했다.
다리를 꼬고 등받이에 느긋이 기대, 입술을 말아올리는 표정.
수인은 그를 관찰하듯이 바라보더니, 쯧쯧 혀를 찼다.
“당신, 아직도 모르는구나. 자각도 못 하면서 그 정도의 힘을…자각하면 어떨지 궁금하긴 하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런데, 적당히 해.”
수인이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마치 엄마같은 미소를 지으며 속삭인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253 너 누구야
최승태 편집실에 처음으로 의 파일이 넘어왔다.
“보안 어마어마하네요.”
에서도 급이 있는 직원이 금고에 넣은 외장 하드를 직접 사무실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최승태의 손에 직접 전했다.
편집 작업 중엔 컴퓨터 인터넷 연결을 끊고 작업해야 하고, 매일 작업이 끝난 후엔 파일을 백업한 후 컴퓨터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윤성을 경계하는 건가.’
개봉 전 영화의 보안은 당연히 철저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정도가 과하다. 누군가 파일을 반드시 노릴 거라는 정황이라도 있는 것처럼 .
그렇게까지 하려나, 라는 생각은 엊그제 깨졌다. 최승태 또한 은근한 접촉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승태의 성질머리가 더럽기로 이름나 있지 않았더라면, 훨씬 적극적으로 거래를 제시했을지도 모른다.
“시나리오 보니까 편집 품이 엄청 들 것 같던데, 어떻게 뽑혔으려나…”
“어떤 시나리오길래요?”
“몰라도 돼, 임마.”
최승태는 초반부의 시나리오를 확인하고, 입이 바짝 말랐었다.
계약완료 후 콘티를 본 후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이걸 화면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가히 편집의 승리일 것이다. 마치 만피스 퍼즐을 조각조각 맞추는 것처럼, 각 인물들을 하나하나 이어붙어야 했다.
어떻게 찍어 보냈을까.
편집으로 잘 이어지지 않으면, 수없이 재촬영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것 또한 가편집을 촬영과 동시에 진행하는 이유일 것이다. 편집이 불가능한 부분들이 촬영 종료 후에 발견된다면 문제가 커지니까.
“그냥, 시나리오를 쓴 작가나 그걸 연기하겠다고 덤벼든 배우나, 미친 놈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 정도입니까…”
“보자, 얼마나 엉망으로 찍어 왔는지.”
얼마나 엉망으로 찍어 왔는지 보자.
이것은 최승태의 입버릇이었다.
대충 찍은 장면들이나, 말도 안 되는 발연기를 편집으로 손봐야 하는 경우는 꽤 많았다.
손꼽는 편집감독이 되어 경력있는 감독들과 주로 일하게 되고 나서는 많이 덜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국 화면을 볼 만하게 꿰는 것은 편집의 힘. 그는 자신의 일에 커다란 자부심이 있었다.
가끔 들어오는 신인감독들의 작품에는 편집을 고려하지 않고 찍은 장면이 많아, 업계 선배인 최승태에게 된통 깨지기도 했었다.
‘내용도 극도로 난해한데 첫 감독이라…물론 위고 비아드가 옆에 붙어있다고는 하지만…’
기대치를 낮추려 애쓰며, 그는 외장하드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파일 목록이 주르륵 뜬다.
‘응?’
S1_C1_T1
S1_C2_T1
S1_C3_T1…
‘왜 테이크가 한 개씩밖에 없어?’
현장 오케이 컷이 가장 우선시되긴 하지만, 편집 중에 오케이 컷이 교체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앞뒤를 이어 붙이다 보면 미묘하게 안 어울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촬영한 테이크를 모두 보내는 것이 상식인데, 컷마다 테이크가 하나씩만 들어있었다.
‘뭐하자는 거야? 설마 3번 신도 이렇게 보낸 건 아니겠지?’
‘내면의 집’이 처음 등장하는 3번신. 최승태는 마우스 스크롤을 도르르 내려보고는 기가 찼다.
S3_C1_T1
S3_C1_T2
S3_C1_T3
S3_C2_T1
S3_C2_T2
S3_C2_T3
신 3에서, 등장하는 인물은 3명.
현성, 은성, 민성을 각각 찍었을 것이다. 아마 대사를 치고 잠시 쉬고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촬영했겠지. 그런데 인당 테이크가 1개씩밖에 없다고?
‘장난하나…’
다혈질인 사람답게 금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수석조수가 슬슬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내뺐다. 저럴 때의 최승태는 위험하다.
최승태는 당장 밍기뉴에 전화를 걸려다, 숨을 몇 번 몰아쉬곤 아비드(*Avid media composer, 편집 프로그램)를 켰다.
‘일단 한 번 봐 준다. 보고…작살낸다.’
하지만 그는 잠시 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컷1의 테이크 1,2,3의 재생시간이 동일했던 것이다.
분명 현성과 은성과 민성의 대사 분량은 다를텐데…어째서?
그는 3개의 레일에 3개의 테이크를 함께 얹고, 크로마키 툴을 사용해 초록색의 배경을 대충 날렸다. 그리고 일단 재생을 눌러보았다.
“다녀왔어.”
“현성아! 밥은 먹었어?”
“덕분에. 세미나에서 먹었어. 오늘 시간 교대해줘서 고마워.”
…약 한 시간 후.
탁-
최승태가 편집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그의 걸음이 어기적거린다.
“감독님, 어떠셨어요? 어? 어디 안 좋으세요?”
“아…아니. 신경쓰지 말고 일 봐.”
최승태는 화장실로 달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조금 지려버렸다.
*
딩동-
띠릭-
강남의 노른자위에 위치한 빌딩의 최상층 펜트하우스.
유석이 그곳에 도달해 벨을 누르자, 말도 없이 대문이 벌컥 열린다.
“안녕하세요, 여사님.”
“왔냐?”
여사님, 이라고 불린 노파는 최상층의 절반을 차지하는 야외테라스에서 밭일을 하고 있다.
강남의 빌딩숲이 내려보이는 가운데 밀짚모자를 쓰고 일하는 노파는, 마치 부조리극처럼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무릎도 안 좋으시면서, 왜 자꾸 농사일을 하십니까.”
“늙으니 하루가 길다.”
“차라리 어디 전원주택이라도 가시지, 공기도 안 좋은 곳에서”
“잔소리는.”
그녀가 호미를 탁 내려놓더니 집안으로 들어왔다.
이 비싼 건물의 꼭대기층을 밭으로 만들어놓다니, 누가 보면 기절초풍을 할 것이다.
하지만 노파는 돈이 무척 많았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자신이 살 것을 고려해서 이렇게 절반을 야외테라스로 설계해 지었다. 무슨 유명한 건축가가 지어서 일반적인 건축비의 두 배가 들었다는데, 그 정도 금액엔 눈도 꿈쩍않을 사람이었다.
“느그 엄마 왔다갔다.”
“뭐라던가요?”
“밍기뉴랑 신유명 영화에서 투자금 빼라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똥을 싸라고 했지.”
유석이 순간 풉- 하고 실소를 흘렸다.
노파는 돈이 많았다.
그렇다고 대기업을 작정하고 적으로 돌릴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자는 아니었다. 그저 돈이 많을 뿐이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녀는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착각하지 마라. 네놈이 미국에 가져간 돈 못 돌려받을까봐 그런 거니까.”
그녀는 미국에서 밸론토를 인수할 때, 가장 많은 투자를 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이자가 치가 떨리게 비싸긴 했지만, 문유석의 능력 하나만 믿고 무담보로 큰 돈을 빌려주었다.
-사내놈이 맥아리없는 눈을 해가지고.
옛날, 문유석이 방황하던 시절 그녀를 만났고, 그녀는 땅투기를 할 때 마냥 사람을 뜯어보더니, 문유석에게 능력을 발휘하길 종용했었다.
그 땐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어머니의 손아귀안이라고 생각해서, 아무 의욕이 없었다.
‘결국, 두고 보진 않겠다는 거군요. 돈으로 움직여보겠다는 겁니까.’
제작사 인수를 방해했을 때, 영화 스탭 모집을 방해했을 때,
찔끔찔끔 어머니가 방해해 올 때마다 유석은 칼을 갈았다.
노파는 자신을 높게 평가하기에 아직 제 편을 들어주고 있지만, 다른 투자자들은 실제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파도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결국 투자금을 회수할지도 모른다. 손해 볼 장사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하기 마련이죠.”
“내 얘기냐?”
“아뇨, 하핫. 어머니가 본격적으로 이를 드러내셨으니, 저도 갚아드려야죠.”
유석이 원대한 야심의 끄트러미를 드러내며 어떤 서류를 꺼냈다. 의논할 게 있는 모양이었다.
노파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궁금하던 한 마디를 꺼냈다.
“신유명이는 잘 지내냐?”
그녀도 유명의 팬이었다.
*
지금은 사이가 무척 좋은 가족.
하지만 유명은 늘 가족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은 원하는 것에 미쳐서 가족을 한 번 외면했었다.
지금은 다른가?
가족들이 유명이 얼마나 연기를 좋아하는지를 납득했기에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것일 뿐,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수 년간 미국에 떠나있는 동안, 엄마 아빠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다.
작품에 들어가면 그 배역을 완벽하게 연기하는 데 미쳐서, 가족들과 마주 보고 식사하는 것조차 손에 꼽는다.
“유명아! 바쁠텐데 어떻게 왔어!! 배 안 고파? 뭐해줄까?”
엄마는 아들이 얼굴을 비추는 것만으로도 큰 은혜를 입은듯이 황송해한다. 그리고 뭐라도 먹이지 못해 안달이다.
이게 정상일까.
자신이 뭐라고, 부모님이 이렇게 자신을 그리워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심지어 자신은…연기에 대한 미호의 절실함에 깊이 공감한 나머지, 다시 한 번 가족들을 저버리고 미호에게 몸을 주려고 하고 있다.
“엄마.”
“응? 왜 우리 아들.”
“나한테 냉정한 표정 한 번만 지어볼래요?”
“잉?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작품 중에 엄마가 아들한테 냉정한 표정 짓는 부분이 있거든. 근데 상상이 잘 안 가서. 엄마는 항상 나한테 너무 좋은 엄마니까.”
평소보다 어리광이 섞인 아들의 말에, 박미혜 여사는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음…하기야 나는 최고의 배우의 엄마니까, 나한테도 숨겨진 재능이 있을 수도?”
“맞아. 해봐요, 해봐.”
“잠시만 있어봐.”
엄마는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더니, 눈꼬리를 샐쭉하게 만든다.
하지만 눈을 뜨고 유명을 바라보는 순간,
사르르-
눈매가 녹았다.
“어우, 안 되네. 우리 아들을 보고 어떻게 냉정한 표정을 지어.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울컥-
유명은 순간 치솟는 눈물을 감추려, 엄마의 등을 쓸어 안았다.
이렇게, 이렇게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잠시 차가운 표정을 짓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보고만 있어도 샘솟아오르는 깊은 사랑.
“어머,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유명은 엄마의 등에 손을 두른 채, 겨우 눈물을 내리눌렀다.
유성의 존재는 은성을 사라지게 했다.
하지만 유성이라고, 부모님께 죄책감이 없을까.
욕망이란 다른 것들을 제쳐놓고 무신경하게 탐하는 것만을 일컫지 않는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이 탐하는 것.
“엄마, 사랑해요.”
“나도, 유명아.”
그로 인해 잃을 것들을 슬퍼하면서도,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
현성을 가둔 후, 유성은 24시간을 지배했다.
“신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