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94
“하하, 누나도 참.”
유명은 기획사에 비밀로 혜전당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석이 공연에 대해 알게 되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공연 직전까지 미호의 존재에 대한 보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대장치는 따로 준비하지 않을 것이다.
음향은 직접 고르고 녹음할 것이다.
극중 조명과 음향조절을 맡아줄 사람은 이미 구했다.
남은 한 가지는 의상.
“제가 개인적으로 조용히 준비하는 무대가 하나 있는데…의상이 필요해서요.”
미호는 생기로 의상과 소품까지 표현할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자신이 맡은 왕 레오도의 의상은 필요하다.
회사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조용히 부탁할 수 있으면서도, 무대의상 제작경험이 있고, 감각과 센스가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무대 의상?”
“네. 누나 예전에 아이돌 의상담당 하셨잖아요. 그 때 자체제작도 하셨죠?”
“그야…시중에 나오는 것 중에 컨셉에 맞는 게 없으니까. 만들기도 하고 뜯어 고치기도 했지. 그런데 아이돌 의상은 꽤 화려한데?”
“네, 그래서 더 좋아요. 맡은 배역이 왕이라서요.”
왕···!
그녀는 유명을 보며, 붉은 망토와 반짝이는 금박 장식이 붙은 화려한 제복을 상상한다.
잠시 코 끝으로 피가 쏠리려고 했다.
“멋…있겠네.”
“누나가 멋있게 만들어 줘야죠.”
“어어, 진짜 내가 해도 돼?”
“부탁이라니까요. 그런데 외부엔 비밀로.”
“후훗, 걱정마.”
그녀의 눈에서 광기가 치솟았다. 뮤즈를 얻은 디자이너의 광기였다.
나중에 도착한 그녀의 의상을 보고 유명은 깜짝 놀라게 된다. 비즈 하나하나를 손자수로 넣은, 광기의 결정체같은 의상은, 자신이 설명한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
오늘 그들은 위고의 방식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아데에에엔!! 도대체 어떻게 네가!!”
“너는 내 유일한 벗이었다. 그렇기에 놀이 시종에 불과했던 네게 내가 먹는 음식도 나누어주었고, 평민인 네게 재상의 길도 열어주었지. 그리고 네 동생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 그런 내 마음을 배신하고…어떻게 네가!”
“20년을…그런 마음이었다는 것인가. 너는 단 한 번도 내게 진심이 아니었다는…것이냐.”
미호의 목소리가 팔다리를 턱턱 짓누른다. 목소리에서 서걱- 피눈물이 배어나올 것 같다.
좌절, 배신감, 차라리 오해라는 거짓말을 듣는 게 나을 것 같은 괴로운 마음이 덩어리진 목소리이다.
자신은 저 목소리의 깊이에 닿을만큼 깊고 절망어린 연기를 펼쳐야 한다.
위고가 류신에게 요구했다는 연습 방식처럼.
다만 이번 연습이 진화한 부분은, 반대 방향의 연습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아데에에엔!! 도대체 어떻게 네가!!”
이번에는 미호가 연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연기에 맞추어 목소리를 낸다.
미호의 목소리는 자신의 연기를 끌어올리고, 미호의 연기는 자신의 대사를 끌어올린다. 그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식의 레슨을 할 수 있을까.
유명이 미호에게 감탄하고 있는동안, 미호도 유명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어떻게 매번 따라오는 거냐···’
자신이 길잡이를 맡았다고 한들, 따로 이능을 써서 돕지는 않는다.
이런 난이도의 과제를 매번 따라오는 것은, 결국 유명 자신의 의지이고 능력이다.
높이 뛰는 것에서 벗어나, 낮게 날기 시작한 배우.
그러나 어깨에 달린 것은 여전히 날개가 아니라 두 팔일 뿐이다.
자신이 이렇게 날아봐-라고 한다고 그걸 따라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
그런데도…그는 언제나 해낸다.
“그런데 미호, 이 부분 말야. 재상이 왕에게 ‘너는 나를 벗으로 대우해준 적이 없었다’고 하는 부분. 사실 왕은 자기 나름대로는 재상을 친구로 대했던 거잖아? 재상은 왕을 미워하니 사사건건 갑질로 보인거고.”
“그렇지. 그게 우리가 표현하려는 감정의 괴리니까.”
“그게 표정에서도 드러나지 않을까?”
“응?”
“상대가 똑같이 웃는 표정을 짓고 있어도, 내가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순수하게 웃는 표정으로도, 비웃는 표정으로도 보이잖아. 그 차이를 이 장면에서 직접 보여주면 어떨까?”
그리고 때로, 자신을 한 발짝 앞지른 발상마저도 해내는 것이다.
“1막과 2막에서, 왕이 재상을 대할 때의 표정들을 왕의 관점에서 연기한다면, 3막에선 똑같은 장면을 재상이 바라본 관점에서 재해석해서 보여주면 어떨까?”
대본이 마지막으로 수정되는 순간이었다.
287 밀레와 고흐
Panorama Shot 7.
-류신 형, 효준이는 이번 공연 끝나면 브라이즈로 돌려보내실 거에요?
-음…어떻게 할까 싶네요. 이제 딱히 더 가르칠 건 없어요. 워낙 재능은 넘치는 녀석이라, 경험만 좀 더 쌓으면.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효준은 요즘 서울의 한 예고에 나가고 있었다.
유명의 제안, 류신의 동의, 유석의 섭외로 그가 한동안 맡게 된 일은, 예고 연극부의 보조교사 자리였다.
-저보고…애들을 가르치라구요?
-너도 너같은 애들 만나봐야 힘든 걸 알지.
-아, 류신 형!
-지금 너한테 제일 도움되는 일일 거야. 가서 같이 사고치지 말고, 열심히 해봐.
-아, 유명 형!
효준의 등장으로 한성예고는 발칵 뒤집혔다.
원래도 예고라 잘생기고 예쁜 애들이 많기는 하지만, 20대라는 나이 버프에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생긴 효준의 등장은 교내의 빅이슈였다.
원래도 연극부는 예고에서 가장 큰 동아리 중의 하나지만, 효준을 보려는 사심으로 가입하는 아이들도 늘었다.
“우리 담치기해서 떡볶이 먹으러 갈래?”
“우와, 형 최고!!”
심지어 정신연령이 고등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효준이기에 인기는 더욱 높았다.
하지만 5월의 축제에 올릴 연극을 준비하면서, 연극부 아이들은 효준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더 몰아치듯이!”
“아니, 그게 아니고…무던한 캐릭터라도 그 무덤함 안에서 감정 변화가 있어야지!”
“아니, 잠깐만-”
평소와 다른 사람처럼 진지해진 그는, 설명하기가 어려운지 머리를 벅벅 헝클어트린다.
배역을 맡은 학생들마다 다른 색깔의 볼펜으로 디렉팅을 기록한 대본은 곧 무지개색으로 지저분해졌다.
심지어 그는 학생들이 오기 전부터 연습실을 청소하고 있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연습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며.
연극부 학생들은 혀를 내둘렀다.
“효준 형…엄청 놀고 먹을 타입인 줄 알았는데.”
“연기할 때는 눈빛이 다르네.”
“뭐야, 저 오빠 무서워…사람을 쉴새없이 굴려···그런데 본인도 같이 굴러…”
간혹 학생들이 어려운 연기에 대해 질문하면, 효준이 시범을 보여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배우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의 연기력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수를 짝짝 쳤지만, 으스댈 것 같던 효준은 오히려 부끄러워했다.
“너네가 사는 세계가 아직 좁아서 그렇지, 나는 아무것도 아냐.”
“네? 형이 아무것도 아니라구요? 말도 안 돼. 티비에 나오는 배우들보다 훨씬 잘 하는데…”
“진짜 잘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 멀었어···”
그는 열심히 학생들과 뒹굴었다.
세계적인 배우들과 함께 하다가, 한 순간에 아마추어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시시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재능이 있는데 게으른 녀석들을 보면 예전의 자신을 보는 듯 뜨끔하게 되었고, 하루하루 늘어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뿌듯함이 솟아오른다.
그것이 유명의 안배였다.
사람은 타인을 가르치는 데서 더 많이 배우기도 하니까.
특히나 서류신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밑에서 몇 년을 구른 효준이었기에,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서보면, 류신이 알려주었던 것의 의미를 더욱 깊게 깨우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당시 그들이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유명씨는 지도자로도 재능이 있는 것 같네요.
-형이 잘 가르쳐둬서 이 방법에 의미가 있는 거죠. 효준이 정도의 재능이라면, 분명 거기서 많은 걸 얻어올 거에요.
앞에선 갈구던 두 형들이, 뒤에선 자신에게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효준은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
니스 공항.
우와아아아아–
엄청난 함성이 메아리친다.
수많은 플랜카드가 유명의 프랑스 방문을 반기고 있다.
칸 영화제로 유수의 셀럽들이 남프랑스를 방문하는 와중에도, 신유명은 특히 집중조명되는 스타였다.
가 칸영화제를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고, 에 프랑스 감독 위고 비아드가 ‘드라마트루그’라는 색다른 역할로 참여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기에, 프랑스 사람들은 유명에게 높은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다.
[신!!] [여기 좀 봐 줘요!] [인격살인을 수없이 봤어요. 당신은 정말 최고야!]이제는 이런 환호에도 익숙해진 유명은, 여유롭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니스에서 1시간 거리의 칸으로 이동한 유명은, 바로 뤼미에르 극장으로 향했다.
발롱이 직접 나와서 그를 맞았다.
[오늘은 뤼미에르 극장에서 상영이 없나요?] [오후에 이 상영했고, 이따 밤에 의 상영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몇 시간 정도는 공백이 있어요.] [잘 됐네요. 무대를 좀 체크해 봐도 될까요?]이번 공연은, 한국에서의 공연과는 또 다르다.
영화를 상영하고, 이어서 같은 장소에서 연극을 공연하게 된다. 칸 영화제에서도 전례가 없는 새로운 시도였다.
유명이 준비한 것은 몇 가지 조명을 설계한 라이트 맵, 그리고 외장하드 하나.
‘하나, 둘, 셋, 넷···’
유명은 무대 위를 가늠하듯이 거닐었다.
무대의 크기는 보내준 조감도로 알고 있기는 하지만, 직접 무대에 서서 천정의 높이와 객석의 거리감, 포켓의 동선을 체크해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지켜보고 있는 발롱은, 불이 꺼진 객석에 앉아, 유명이 한 발짝씩 무대 위를 걷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짜릿한 기분이 되었다.
탑 배우라는 것은 무대위에 서는 것만으로, 드라마틱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모양이다.
[아, 아.]유명은 목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며 발성을 내 본다.
어느 정도의 소리가 객석의 어디까지 가서 닿는지 체크하는 모양.
이번에는 조명을 켜 봐주길 부탁한다. 기본적으로 세팅되어 있는 무대 전체 조명과 몇몇 스팟 조멍들을 체크하더니, 조감도에 몇 개의 동그라미와 광량을 표시하며, 전날까지 셋업을 부탁한다.
그의 전문적이고 디테일한 요청에, 조명 담당자는 명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하는구나. 티켓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는데…’
위고는, 이번 상영+상연의 티켓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청탁이 난무했었는지를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이번 무대는 그만큼 특별했고, 객석 수는 한정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중요도를 감안해서 티켓을 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날의 객석은 영화제 폐막식만큼이나 화려할 예정이었다. 세계적인 배우, 감독, 평론가, 유명지의 기자들은 물론이고, 놀랄만한 인물의 방문 또한 예정되어 있었다.
[네, 이 정도면 충분해요. 감사합니다.]유명이 시원시원하게 대화를 끝내고 내려왔고, 발롱은 그를 눈부시게 쳐다보았다.
칸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동안, 그가 섭외한 가장 의미있고 멋진 무대가 될 것 같았다.
*
유명은 차를 빌렸다.
유럽에서 렌트를 하고, 미호를 조수석에 태우고 운전을 하자, 수 년 전 배낭여행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인격살인의 공연일까지는 며칠 남았다.
니스나 칸에 있으면 온갖 파티에서 초청장이 쏟아지겠지.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다. 남는 시간엔 를 준비해야 하니까.
유명은 니스에 있으면서 매번 거절하느라 난처한 입장에 처하느니, 차라리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던 아를에 들르기로 했다.
{아를에? 왱?}
‘류신 형이 시간 나면 한 번 가 보라더라고. 예술을 하는 입장에서 느끼는 게 많다고.’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 아를은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곳이다.
그 중에서도 고흐.
이미 한여름같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아를을 미호와 함께 걸으며, 유명은 고흐가 입원했다는 생레미 정신병원을, 의 배경이라는 아름다운 론 강을, 의 배경이 되었고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는 ‘Cafe de la Gare’를 찾아본다.
그리고 고흐 재단 박물관에 들어가, 그림들을 천천히 관람한다.
대부분이 복사품이지만, 운이 좋게도 ‘해질녘의 씨뿌리는 사람’ 작품 한 점이 이동 전시를 하고 있었다.
유명은 그 작품 앞에 멈추어 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미호, 고흐가 밀레를 스승으로 생각했다는 거 알아?’
{그랭? 두 사람은 시대가 다르지 않냥?}
연기에 관련해선 누구보다도 빠삭하지만, 다른 인간의 문물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는 미호는, 의외라는 듯이 묻는다.
‘응. 고흐가 그림을 시작한 건 밀레가 죽고 나서지. 두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래도 고흐는 평생에 걸쳐 밀레를 존경하고, 따랐어.’
-밀레의 만종은 너무나 훌륭하다. 그것은 시다.
자연스럽고 소박한 밀레의 화풍과 역동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고흐의 화풍은 매우 다르게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름다운 것만을 그리지 않는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소박함. 그들의 예술은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미적 황홀감 뿐만 아니라 영적 숭고함까지 그림에 담는다.
고흐는 평생에 걸쳐 밀레의 작품을 모사했다.
그 중에서도 초창기부터 마지막까지 반복적으로 수십 점의 모사를 남긴 것이 바로 이 이다.
하지만 똑같이 모방한 것이 아니고,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관을 담아 ‘번역’해 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영원을 다가서는 것이다.
연기라고 다를까.
유명은 고흐의 그림을 보며, 밀레를 떠올린다.
자신의 연기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스승인 미호의 흔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미호의 흔적이라는 것을 모르면서도.
고흐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 밀레였던 것처럼,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언제나 미호였다.
*
그 날 밤, 유명은 차를 몰고 나섰다.
{어딜 가냥?}
‘따라와 봐.’
어느 밤, 미호가 유명을 데리고 숲 속으로 향했던 것처럼, 유명은 낯선 시골의 한 들판으로 미호를 데리고 갔다.
그 날보다 좀 더 그믐에 가까워진 달이 어둑하게 빛나고 있었다.
{히야···}
한국과는 다른 풍경.
넓은 대지는 저 멀리까지 구릉이 없이 평평하게 펼쳐진다. 키가 큰 나무들이 자신을 감추지 않고 쑥쑥 뻗어 여기저기 자라나 있다.
인적 없는 길가에 차를 세운 유명은, 넓은 초원으로 슥슥 걸어나갔다.
이윽고, 불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초원의 한가운데, 유명이 멈추어 선다.
그리고 연귀를 향해 휙- 돌아섰을 때, 그는 레오도가 되어 있었다.
“살로메.”
별이 눈을 감고, 연귀는 숨을 죽였다.
“너는…내 편이냐.”
아덴은 모든 것이 자신의 질투와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라 고백했다.
어릴 때부터 자신과 신분이 다른 왕을 시기했으며, 그의 비위를 맞추었을 뿐 단 한 번도 그를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싸늘한 표정으로 털어놓았다.
언제나…언제나 네가 좌절하기만을 바라왔다며.
“핏줄이라 해도, 같이 자란 것도 아니지 않으냐. 나를 향한 사랑이 더 깊어야 하지 않으냐. 설마…나를 유혹한 것도, 네 오빠가 시킨 것이냐?”
시뻘겋게 핏줄이 선 왕의 시선 뒤쪽으로, 커다란 홀의 모습이 일렁인다.
크고 웅장하지만 텅 비어있는 홀에는 단 하나의 옥좌만이 놓여 있다. 아무도 곁을 지키지 않는 마음 속의 독방에서, 왕은 살로메에게 명령한다.
“너는 사람을 찢어 죽일 때 기뻐했지. 아덴이 찢겨 죽는 것을 보고서도 기뻐해라. 네가 그것을 보면서 즐겁게 웃는다면, 너의 진심을 인정해주마.”
아니, 애원한다.
“너만은, 나를 배신하지 마라.”
솨아아아-
바람이 일어 풀이 몸을 누인다.
그러나 그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연귀의 눈에는, 타일이 화려한 문양을 수 놓는 홀의 바닥이 보인다. 붉은 비로드가 입혀져 있는 옥좌와, 그 끝에 몸을 걸쳤지만 편히 몸을 기대지는 못하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왕의 모습이 보인다.
그가 눈을 들어, 빌듯이 속삭였다.
“살로메.”
연기가 끝났다.
유명이 표정을 바꾸자, 순식간에 왕궁의 배경이 흐려지고 침침한 달빛이 눈에 스친다.
바람마저 눈치빠르게 잦아들고, 고요해진 달밤.
한 위대한 배우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싱긋 웃는다.
“좀 비슷했어?”
그는…또 한 단계를 뛰어넘었다.
288 놀래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