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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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이 왕의 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차곡차곡 준비해 온 계획.
부당한 이유로 카타니아를 탄압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포함해 수많은 카타니아의 어머니들을 죽인 레플란의 선왕. 그리고 그 이기적인 사상을 똑같이 물려받은 현재의 국왕 레오도에게 그가 주려던 타격은···
“살로메. 그는 모든 걸 다 가지고 있는데도, 단 하나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결코 행복할 수 없었지. 아직 떼쓰는 어린아이같은 그에게 가장 갖고싶은 걸 줬다가 도로 뺐는다면…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는데···?
“으앙, 하고 우는 정도면 내가 지는 거고, 미치거나 죽어버리면 그가 지는 거고.”
“오빠, 그럼 첩자라는 걸 끝내 숨긴 이유도 카타니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분노의 방향이 다른 데로 빠지면 안 되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유일하게 애정을 줬던 상대가, 그걸 완전히 곡해해왔다는 것이 훨씬 충격적이지 않겠어.”
살로메는 그 말에 충격을 받는다.
제 오빠가 이렇게 냉혹한 인간이라는 것도 몰랐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그를 사랑하게 될 줄 몰랐다는 것.
그리고 오빠도 자신의 감정을 모른다는 것.
이제, 그녀는 둘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살로메. 왕은 대단한 충격을 받았어. 이제 너까지 그를 배반하면 그의 정신은 산산히 부서질 거다. 네가 생각 이상으로 그를 잘 유혹해줘서, 그 가능성이 무척 높아졌지.”
“그럼 나는···”
“도망쳐라.”
“…!”
“나는 내일 아침 처형을 당할 거다. 너 또한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직접 고백하면 왕의 충격이 더 크긴 하겠지만, 평생을 도구로 키워져 온 가엾은 내 동생에게 그렇게까진 할 수 없구나.”
그의 부드러운 눈빛은 애정일까,
그녀의 망설임을 읽고, 자신을 배신할 수 없도록 만드는 계략은 아닐까.
어찌됐든 유일한 피붙이이자,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걱정해주는 오빠의 말이다.
“오늘 밤, 너의 시녀가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가라. 멀리 멀리 가서 카타니아도 레플란도 상관없이 살아라. 그것이 네가 마지막으로 나를 돕는 길이다.”
그녀는 오빠의 마지막 부탁을 따르기로 결심했지만, 그 날 밤, 왕이 살로메를 찾아온다.
“살로메.”
눈빛이 퀭한 남자가, 얼굴에 절망을 처박은 남자가 그녀의 치마폭에 머리를 묻는다.
“너는…내 편이냐.”
“……”
“핏줄이라 해도, 같이 자란 것도 아니지 않으냐. 나를 향한 사랑이 더 깊어야 하지 않으냐. 설마…나를 유혹한 것도, 네 오빠가 시킨 것이냐?”
자신의 참모습을 감히 꺼내어보여 실망시킬 수 없을 정도로 사랑했던 친오빠.
그 괴물같은 모습조차 어여쁘게 바라봐 주어, 사랑하게 돼 버린 연인.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까.
살로메의 영롱할 정도로 아름답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진다.
그 속에 담긴 기괴한 욕망만큼이나 참혹하게.
“너는 사람을 찢어 죽일 때 기뻐했지.”
지독한 배신감에 몸부림치는 남자는, 그녀도 당연히 한 통속일거라는 이성과 그녀만은 잃고 싶지 않은 본능 사이에서 처절하게 갈등한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떨어진 명령.
“아덴이 찢겨 죽는 것을 보고서도 기뻐해라. 네가 그것을 보면서 즐겁게 웃는다면, 너의 진심을 인정해주마.”
“…!”
“너만은, 나를 배신하지 마라, 살로메.”
그녀는 그 날 밤, 오빠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
*
감정의 괴리.
서로 같은 감정이라고 해도, 그 정도와 시점에는 늘 차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 순간 정도는 서로의 감정이 정확하게 교차할 수도 있다.
다만,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때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빠가 평생을 바쳐온 계획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부숴 왕의 마음을 구해내고 싶은 살로메의 사랑.
아덴이 그 오랜시간동안 계획적으로 자신을 속여왔고, 일부러 여동생을 자신에게 보낸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그녀를 믿고 싶은 레오도의 사랑.
드디어 운명적으로 교차했지만,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달랐다.
지이이익–
으읍–
엄청난 고통을 참아내는 소리.
목소리만으로도, 피가 터지고 뼈가 분리되는 광경이 머리 속에 재생된다.
누군가의 25년간의 벗이자, 누군가의 피붙이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소리이다.
그 소리를 음악삼아, 살로메가 춤을 추고 있다.
언제나처럼 사람이 찢겨 죽어가는 모습에 관능을 표출하는 그녀의 춤에, 왕의 얼굴에는 서서히 희망이 물든다.
‘하아···’
연귀는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한 번의 점프에, 한 번의 미소에, 천 년을 모아온 생기는 부질없이 빨려나간다.
‘너와 나의 감정이 정확히 교차하는 것도…지금 이 순간인가.’
유명을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은 아덴이었다.
하지만 서서히 자신의 마음 속에 살로메가 자라났고, 아덴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리고 바로 지금, 한 무대에서 연기를 펼치는 자신과 유명의 마음은 정확히 교차했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향할 방향도, 달라질 것 같아.’
다시 한 번 생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직전의 장면까지 연기했을 때, 꼬리는 단 한 개 남아 있었고, 지금은 그마저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그만둘 생각은 없다. 끝까지 연기할 수 있을지가 걱정될 뿐이다.
‘유명아.’
어디 자신만 그의 결핍을 채워줬을까.
천 년 간, 연기를 극의를 찾아 헤메던 귀鬼는, 유명을 만나고 처음으로 인간의 감정을 알게 되었다. 그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즐거움,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함께 걷는 기쁨, 심지어…자신의 연기를 따라올 수 있는 상대와 함께 연기할 때 얻을 수 있는 극도의 황홀함도 알게 해 주었다.
자신이 그의 15년간의 결핍을 메우는 동안, 그는 제 천 년의 결핍을 메워준 것이다.
‘목표를 바꾼 건…현명했어.’
단 한 번을 위해 천 년의 세월과, 자신의 존재까지 불태우는 한 귀鬼가 있다.
그가 미치도록 황홀하게 웃는다.
그 웃음에 모두들 혼을 빼앗기고, 그런만큼 그의 기운은 더욱 빨리 소모되어 간다.
이제 꼬리는 작은 뭉텅이만이 남았다.
“전하. 저는 오빠의 부탁으로 전하를 유혹한 것이 맞습니다.”
살로메는 왕과 자신이 함께 서 있던 관람석의 끄트머리 쪽으로 춤을 추며 나풀나풀 뒷걸음질친다.
왕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살로메!”
“그럼에도!!”
“……”
“전하를 사랑합니다.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알겠다. 나도 너를 사랑한다. 이제 다그치지 않을테니 제발 거기-”
그녀가 높은 관람석의 끝에 섰다.
“하지만 오빠를 배신할 수는 없어요.”
“…살-”
“저는 무언가를 망가뜨리는 것을 좋아했고, 전하는 그런 저를 귀여워하셨죠. 그러니 제가 저를 망가뜨리는 것도 예뻐해 주세요.”
생긋, 웃었다.
“전하도 함께 망가져주신다면 더 좋구요.”
‘너는 망가져선 안 돼.’
마지막 대사를 읊으며, 연귀는 속으로 반대의 말을 되뇌었다.
다행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자신이 각오한 바를 유명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는 무던히도 애를 써 왔다. 어쩌면 유명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려운 연기였을지도.
‘덕분에 행복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생기 한 줌을 써서, 일부러 가짜 꼬리를 한 번 더 내어 보인다. 유명이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평생 행복하게 좋은 연기를··· 나를 넘어서 그 이상으로.’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알고 그가 다시 한 번 절망하지 않도록.
툭-
“살로메에에에-!”
어떤 인간은 결핍으로 스스로를 파멸에 던지고,
어떤 인간은 결핍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살로메!! 아데에엔!!”
남은 인간은 결핍으로 미쳐간다.
마지막에야 온전히 마음이 통했다면, 그것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살로메가 몸을 날린 자리에, 은빛 안개같은 잔흔이 맴돌았다.
하아-
공연이 끝나고 막이 닫혔다.
유명은 무대 한 가운데 서서 허덕이고 있었다. 수많은 연기를 해오면서도 처음으로 느껴보는 엄청난 고양감.
그런데…
‘왜 이렇게…기분이···’
공연이 끝났는데도 눈물이 미친듯이 흐르고 숨이 꺽꺽 찬다.
레오도의 기분에서 금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인가 보다.
유명은 겨우 진정한 후, 아직도 들썩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포켓으로 걸어갔다.
“너무 좋았어. 수고했어, 미호.”
대답이 없다···?
“미호···?”
*
유명은 포켓 뒤를, 대기실을 미친듯이 찾아 헤멨다.
마지막에 몸을 날린 살로메의 모습이 안개처럼 흩어지는 것을 보았을 땐,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현신을 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대 뒤에서 기다리며, ‘컁컁, 재밌었당’하고 웃어줄 줄 알았던 미호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다.
‘객석에 반응을 보러 간 걸까?’
유명은 놀란 마음에 커튼콜조차 하지 못하고, 관객들이 나가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무슨 일이 있는지 이상할 정도로 객석 퇴장이 늦어져, 한 시간 이상이 지나서야 퇴장이 마무리되었다.
허억- 헉-
‘없어···!’
극장 전체를 뒤져도 미호가 보이지 않자, 불길한 예감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어디에 간 걸까.
설마 이 공연 때문에 선계에 붙잡혀 가거나…까지 생각이 미치자 유명의 가슴이 덜컥-한다.
터덜터덜 다시 무대 위로 돌아왔을 때, 유명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까 못 보던 게···’
미호가, 아니 살로메가 마지막으로 몸을 날렸던 자리, 그 무대 위에 종이 묶음이 떨어져 있었다.
유명은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어들었다.
‘이건···’
그것은 하나의 대본과 한 통의 편지였다.
295 미호의 선물
대본을 보는 순간, 유명의 머리 속에는 미호와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선물은…좀 기다려랑.
-주긴 줄 거야? 어떤 건지만 알려주면 안 돼?
-…대본이당.
미호가 선계를 유람하며 썼다던 대본이 이것임이 분명했다.
유명은 무대 위에 주저앉아 대본을 펼쳤다.
편지가 더 궁금했지만, 차마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편지는…조금 더 진정하고 나서.
사락-
첫 번째 장을 펼치고, 유명은 흠칫 놀랐다.
미호가 써 온 대본의 주인공은…바로 미호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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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鬼生 (한 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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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호는 천제인 아버지와 구미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름다웠고, 아버지는 곁에 없었다.
한낱 귀의 격으로 천제의 마음을 얻은 어머니에게는 적이 많았다. 어머니는 숨어 혜호를 키웠고, 아무 것도 없는 산속에서 살아가던 그는, 처음으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거처 주변에는 한 화전민의 농가가 있었다.
놀이거리가 없는 화전민의 자식 남매는, 서로 배역을 맡아 볼품없는 연극을 하며 놀았다.
아이들은 햇님 달님의 오누이를 연기하다가, ‘한 명이 더 있어야 하는데’라고 하며 아쉬워했고, 어린 구미호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은발의 소년으로 현신했고, 자신이 호랑이 역을 맡겠다고 제안했다.
‘에이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호랑이는 어흥해야지!’
세 어린것들은 신나게 함께 역할극을 했다.
그 날 저녁, 혜호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청 재밌었어. 홀어머니 역이 없는데 엄마도 내일 같이 가서 놀자.’
그의 어머니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다급히 그를 데리고 그 장소를 피했다.
계약되지 않은 인간 앞에서 현신하는 것은, 선계에 노출될 부담이 있는 일이다.
특히 어려서 스스로의 힘을 통제할 수 없는 귀라면 거의 백프로 걸린다고 봐야 했다.
그렇게 혜호는 최초의 친구를 잃었다.
옮긴 거처 주변에는, 인간들이 전혀 살지 않았다.
그는 심심해서 숲 속을 어슬렁대다가 호랑이를 만난다.
-호랑이는 어흥해야지!
진짜 어흥하나? 그는 곰곰이 그 짐승을 관찰했다.
호랑이는 어흥이라고 하지 않았다. 혜호는 호랑이의 성상과 움직임을 세심히 관찰하고 익혔고, 곧 그는 호랑이 흉내의 달인이 되었다.
그 다음은 토끼, 그 다음은 다람쥐.
그들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흉내내는 것만으로도, 그는 꽤 재미있었다.
‘슬슬 귀업을 고르려무나.’
100살이 되어, 겨우 꼬리 한 개가 온전한 모습을 갖추자 귀업을 가질 시기가 왔다.
그는 연귀로 귀업을 정하고, 어머니의 곁을 떠나 인간세상을 향했다.
인간들은 다양한 형태의 연극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평소에도 자주 연기를 했다.
그 점이 그는 무척 흥미로웠다. 이 하찮고도 복잡한 존재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인가.
이제 그가 흉내내는 상대는 인간으로 바뀌었다. 인간은 호랑이나 토끼와는 달리, 흉내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역시 세심히 관찰하고 익혀갔다.
그러면서, 그는 본능적으로 생기가 뛰어난 인간들을 찾았다. 귀업을 정한 이후로는, 연기(*연기의 기운)만을 섭취할 수 있었다.
더, 더, 뛰어나고 압도적인 생기.
그것을 찾아다니다보니 자연히 그는 최고의 배우들 주변에 살게 되었고, 연기의 형태와 이론에 관해서까지 많은 것을 습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연습했다.
연귀라서 연기를 절로 잘하게 된 것은 아니다. 드물게 마주치는 다른 연귀들은 배우들에게서 기운을 흡수하는 것에만 관심을 둘 뿐, 직접 연기하는데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혜호는 달랐다. 인간의 모든 연기를 습득하고 나서도 그는 더, 더 나아갔다.
그리고 어느날, 천제가 지상에 내려왔다.
-아들아.
이마가 반듯하고 검은 머리를 길게 내려뜨린 미남자는, 자신의 아버지라고 했다.
옆에 서 있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상에 시찰을 왔다가, 화호를 만났다고 했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데려갈 수는 없었다. 귀의 신분으로 천계에 오르는 것은 격의 차이가 너무 커서 바스러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천제는 수양을 쌓아 격이 더 올라가게 되면 그녀를 꼭 데려가리라 약조했지만, 어머니는 자신이 생긴 것을 알고 도망쳤다고 했다. 아이를 무사히 낳고, 보호하기 위해서.
그녀는 아이에게 힘이 생기기 전에는, 선계나 천계와 접촉시킬 생각이 없었다.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 혜호는 무사히 자랐다.
-미안하구나.
아버지는 몰랐다고 했다.
그저 그녀의 마음이 변해 떠났다고만 생각했고, 천제도 마음대로 인과율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작정하고 사라진 화호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웠다고.
이제야 찾아서 미안하다는 사죄와 함께, 그는 자신이 천제의 자리를 내려놓고 선계로 내려오더라도, 화호와 그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혜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현재의 귀업에 만족합니다.
세상 온갖 부귀영화를 준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가는 것에 비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그에게, 천제는 한 가지의 선물을 한다.
-사죄의 의미로 너희 모자에게 선물을 주지. 단 한 번, 인과를 거스르더라도 후폭풍을 대신 감당해 줄 것이다.
혜호에게 그것은 금빛 꼬리가 되어 붙었고, 화호에겐 언약같은 금빛 가락지가 되어 손가락에 끼워졌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혜호는 세계를 떠돌며 연기의 기운을 모았다.
인간들은 빠르게도 변화하는 생물이라, 짧은 사이에도 수많은 연기의 형태가 생겨나고 사라졌다. 질리지 않게 재미있었다.
다만 갑갑한 것은···
‘나도…연기하고 싶다. 관객 앞에서.’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혜호는 몇 번의 시도도 해 보았다.
하지만 적당한 몸의 주인을 만나 계약까지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육체는…없겠지?’
비롯, 배우를 지망하는 인간이 존재감이 낮기는 힘들다. 간혹 그런 인간이 보인다고 해도 그 낮은 수준이라는 것의 최하치는 40대 후반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