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314
유명은 매우 조심스럽게 자신이 느낀 괴리감을 설명했다.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데카르도라면 ‘다른 수작’을 당한게 아니고서야 릴을 신뢰할 것 같지 않다고.
그 말에 육작가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 장면에서 따로 양부의 개입은 설정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역시 좀… 예외가 반복되면 예외로서의 힘이 없지 않을까요, 작가님?] [릴이 좀 특별하게 보일 필요가 있어서 넣은 장면이긴 한데…]유명은 그 말을 듣고, 작가들이 릴 딜런을 미싱차일드 시즌2의 주인공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자신이 바라던대로.
그렇다면…이런 방법은 어떨까.
[작가님, 릴의 특별함을 꼭 데카르도가 그를 신뢰하는 형태로 보여줘야 할까요?] [그럼요?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요?] [음…천재성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요?]미싱차일드는 모두 천재적인 두뇌로 인해 시련에 빠진 아이들.
데카르도와 릴의 천재성을 둘 다 부각할 수 있는 방법.
[이런 형태로요.]유명이 던진 어떤 이야기에, 육작가가 눈을 번뜩였다.
*
제니브 스콧은 한 방송국을 찾아갔다.
칸 영화제 진출 소식이 터진 후, CRD가 를 놓고 방송국들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방송가에 파다하던 무렵이었다.
[꼭 귀 방송국에서 협조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흐음…이런 요청은 또 처음인지라.] [귀사 입장에서도 좋은 홍보가 될 겁니다.]상대는 확답을 주지 않으며 싱글싱글 웃다가, 다른 이야기를 물었다.
[그런데 요즘 CRD에서 대형 방송사들을 아주 물먹이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어머, 저희 회사가요? 저는 금시초문인데요.] [제니브가 찍고 있는 미싱차일드 말입니다. 방송국들이 애타하는 걸 즐기듯이 확답을 피하고 있다던데?] [즐기다뇨. 최선을 다해 좋은 조건을 구하는 거죠. 조건 정도는 따져볼만한 퀄리티가 나오고 있거든요.]씩 웃으며 대답하는 제니브의 자신만만함에, 방송국장이 슬그머니 운을 띄운다.
[그 파일럿, 저도 한 번 보고 싶은데.] [어머, AWC도 미싱차일드 유치전쟁에 뛰어드시게요?] [하하, 그럼 좋겠지만. 날씨 채널인 게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군요.]이 곳은 날씨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방송국인 AWC(American Whether Channel)이었다.
국장의 요청에 제니브가 가방에서 usb를 꺼낸다.
[안 그래도 궁금하실 것 같아서 가지고 왔죠.]어차피 메인 방송국들 대부분에게 보여준 파일럿, 여기라고 못 보여줄 이유는 없다. 협조도 받아야 하는 입장이고.
국장은 탁자위에 비치되어 있던 노트북에 제니브가 건넨 usb를 꽂는다. 그리고 1화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1시간 후.
[…건너 뛰면서 보려고 했는데, 홀랑 다 봐버렸네…] [어떠세요?] [와…이거 물건이긴 하네요. 왜 다들 목 매는지 알겠네. ABC도 안달난 겁니까? 그 콧대높은 NBC도?]그 또한 방송인.
거대 방송국들이 작품 하나를 차지하려고 아웅다웅하는 상황이 재미있는 모양인지, 실실 웃음을 흘리며 묻는다.
제니브가 일부러 표정을 지우고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하지만 저희는 서두를 생각 없습니다. 좋은 상품을 갖춰 놓으면 사갈 사람은 언제든지 있는 법 아니겠어요?] [그러니 좋은 상품을 더 업그레이드하는 걸 도와달라?] [AWC는 행운을 잡으신 겁니다. 날씨CG로는 최고라고 불리는 기술자가 있으시잖아요?]마리오 브레이.
오랫동안 자연다큐 채널에서 일하다가, AWC로 적을 옮긴 CG전문가. 그가 프리랜서이기만 해도, 굳이 AWC와 협상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제니브는 촬영파일들을 편집하며 한 가지 부분에 아쉬움을 느꼈다.
자신과 CRD의 CG전문가들도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기상 배경을 표현할 수는 있었지만, 날씨 CG로 최고라고 불리는 마리오 브레이를 데려올 수 있다면, 화면의 퀄리티가 한 단계 격상하리라는 기대였다.
‘데카르도의 기분이나 대본상의 메시지를 날씨에 담아서 배경이나 인서트 컷으로 사용하면…’
제니브 스콧은 분명 우수한 PD였다.
하지만 속도감과 저항없이 넘어가는 화면의 흐름을 중시하던 그녀가, 작품의 예술성을 위해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처음.
제니브는 국장의 승낙을 받고 나오며 생각했다.
‘저 정도의 연기를 트렌디 드라마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
결국 5화의 대본은 수정되었다.
기후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하기 직전, 마지막까지 풀리지 않던 공식.
데카르도는 릴을 믿지 않았기에, 공식을 조작하여 릴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릴은 그것을 받자마자 맑은 눈으로 빤히 몇 초 바라보더니, 손 한 번 대지 않고 말한다.
-이건 풀 수 없는 식이에요. 수학식을 구성하는 균형이 깨져 있군요. 혹시 당신이 건드렸나요?
데카르도의 연구와 맞닿아 있다고 하더라고, 이 정도의 복잡한 증명은 수학자의 영역이었다.
다른 분야의 심도깊은 영역을 조작해낸 데카르도와, 그것을 보는 순간 간파하는 릴의 대치가 눈부신 장면.
[컷- 다시요.]하지만, 지금 몇 번째나 NG가 반복되고 있다.
[죄…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카이. 침착하게 다시 해 보자.] [갑자기…아무런 생각이 안 나요. 어떡하지 진짜…]카이가 패닉에 빠졌다.
1, 2화에서 첫 등장 때는 예상 이상으로 훌륭하게 해내더니, 3, 4화 촬영분동안 쉬었던 것이 독이 되었을까.
혹은 그 사이에도 촬영장을 나와 견학하면서, 유명과 마일리가 저렇게 좋은 연기를 펼치는데 자신이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을지도.
‘그럴 때도 됐지.’
식은땀까지 흘리는 카이를 유명은 조용히 기다렸다. 신인배우가 매일 매일의 연기에 편차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을 누군가가 매번 손잡아 끌어낼 수는 없다.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만큼은, 자신의 몫인 것이다.
[다시.] [한 번 더요.] [진정하고 다시 한 번.]평소 촬영을 빠르게 진행하던 제니브도, 카이가 멘탈을 잡을 때까지 차분히 다음 테이크만을 지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차츰, 자신의 의지로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야 겨우 오케이 사인이 떴다.
[오케이. 수고하셨어요! 시간 없으니 빨리 다음 스튜디오로 이동할게요!]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 정리를 하는데, 카이만 못내 똥마려운 강아지같은 표정이다.
유명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직 마음에 안 차는구나.’
이 장면은 릴이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중요한 장면.
분명 카이의 연기는, 그들이 함께 연습했을 때 만들었던 최상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찍고 싶지만, 여태 많은 NG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해 와서,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이리라.
유명이 카이에게 속삭였다.
(한 번 더 하면, 제대로 해낼 자신있어?)
(…네, 형.)
카이가 거의 울먹일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러자 유명이 피디쪽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청했다.
[피디님, 죄송한데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직전 테이크에선 제 연기가 흔들려서요.]*
카이가 깜짝 놀라 유명의 옷을 잡아당겼다.
유명의 연기는 첫 테이크에서 마지막 테이크까지 한 번도 부족한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낮춰가며 피디에게 부탁을 하다니.
(형…)
(가만있어.)
[방금 두 분 다 충분히 괜찮았는데요.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돼서, 더 늦으면 로케 장소가…] [딱 한 번만요. 부탁드립니다.]제니브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살짝 한숨을 내쉬며 수락했다.
유명이 카이를 위해서 나섰다는 것을 그녀도 모르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기다려줬고, 더 찍는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여태까지 촬영을 하며 유명에게 쌓인 신뢰가 있기에, 제니브는 한 번만 더 기다리기로 했다.
[한 번이에요.] [네. 3분만 대기 부탁드립니다!]유명은 카이의 양 어깨를 잡았다.
원하던대로 기회를 얻었지만, 큰 부담감을 짊어진 그가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혼자 힘으로 수렁에서 빠져 나왔으니, 손 정도는 잡아줄 수 있지.’
[카이, 눈 한 번 감아볼래.] [네?…네에.]그가 불안한 표정 그대로인채, 눈을 감는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그리고 유명은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카이. 릴은 색깔로 치면 무슨 색깔이지?] […투명한 색요.] [그래. 지금 네 마음 속은 어때? 집중해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어떤 색깔이 보일까.] […색깔이 혼란스럽게 뒤엉켜 있어요. 검은 색이 가장 많고, 자주색, 파란색, 붉은색…] [하나씩 걷어내보자. 먼저 붉은색을 모두 걷어내봐.]푸른 계열, 노란 계열, 마지막으로 가장 많다는 검은색까지.
유명의 목소리를 따라 카이의 의식이 흐른다.
마지막에야 그가 탄식을 터뜨린다. 그 탄식의 음색은 이미 카이의 것이 아니었다.
[색깔이 모두 사라졌어요. 완전히 투명해요.] [그래. 어서와, 릴.]몰입이 강한 배우들이 있다. 이미지를 연상시키면 암시에 쉽게 걸리는 사람들.
카이 누넨이 원래 몰입력이 강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릴 딜런이라는 배역에 있어서만큼은…
[여기, 이게 네 도움을 요청했던 공식이야.] [이건 풀 수 없는 식이에요. 수학식을 구성하는 균형이 깨져 있군요. 혹시 당신이 건드렸나요?]청아한 목소리.
상대방의 탁한 마음을 그대로 들추어 낼 것 같은 깨끗한 시선.
그는 누구보다 릴을 릴답게 연기할 수 있는 배우였다.
‘아아…그래. 내가 바라던 화면이 저거였어.’
그 날 제니브는, 한 테이크를 더 소모한 보람을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
그 장면이 끝난 후, 데렉이 유명에게 물었다.
[어떤 마법을 부리는 겁니까?] [그게 무슨…] [왜 유명씨 손을 거치면, 배우들이 저렇게 바뀌는 거냐구요.] [하하, 차암, 데렉도.]유명이 피식 웃었지만, 데렉은 진심이었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을 어르고 쪼면서 업그레이드시켜 온 세월이 10여 년이다.
아무리 시간과 노력을 쏟아도 안 바뀌는 놈들도 부지기수였는데, 신유명과 엮이는 인간들은 매번 훌쩍 성장하는 것 같으니…
[다음 신 준비해주세요!]멀리서 제니브의 소리가 들려오자, 두 배우가 동시에 일어났다.
데카르도가 자신의 마음 속에 트기 시작한 의심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내비치는 장면.
그들이 제대로 맞붙는 첫 신이, 곧 시작된다.
311 외전11.두 눈을 똑바로 떠요
미싱차일드를 찍고 있는 CRD의 제작팀.
그 중 촬영감독, 조명감독, 오디오감독은 입사 동기 출신이었다.
그들은 지금 모여서, 내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데렉.] [나는 신유명.] [음…그래도 데렉 맥커디 이름값이 있는데…나도 데렉.]지는 사람이 술 한잔 사기로 한 소소한 내기.
데렉과 유명이 본격적으로 붙는 신이 다가오자, 그들은 과연 누구의 연기가 더 압도적인지의 내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판단하지?] [음…제니브가 집는 쪽을 승자로 할까?] [제니브가 잘도 얘기해 주겠다.] [그럼…역시 신이 끝나고 난 후, 두 배우의 표정을 보는 수밖에 없나.] [두 배우보다는, 데렉의 표정을 봐야지. 얼굴에 다 드러나잖아. 본인이 더 잘했다고 생각하면 표정이 거만할 거고, 눌렸다고 생각하면 씁쓸할 테니까.]데렉 맥커디는, 연기에 들어가면 완전히 그 자신의 표정을 지을 수 있으면서도, 평소에는 희한할 정도로 표정 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표정으로 판단하자는 제안에, 세 명의 감독들은 모두 동의했다.
[감독님들! 준비요!!] [아이고, 넵.]제니브는 그들의 후배이지만, 그들 모두는 제니브에게 맥을 추지 못한다. 고양이 앞의 쥐들은 호다닥 흩어져 자신의 영역에 섰다.
[저택 신 갑니다, 스탠바이.] [액션.]장소는 양부의 저택.
데카르도가 릴과 만나, 일부러 오류를 만든 수학식을 건네주고 간파당한 직후이다.
릴과 헤어진 후 데카르도는 아버지와 오랜만에 마주 앉아, 식사를 같이 한다.
[잘 있었니? 데카르도.]양부는 이마가 반듯한 금발의 남자.
다정한 푸른 눈으로 아들을 쳐다 본다. 이가 썩을 것 같이 달고 폭신한 눈빛.
[네, 아버지.] [말랐구나. 집에 식사를 준비해 줄 사람을 보내는 게 어떨까.] [괜찮아요. 잘 챙겨먹고 있어요.]쿠르릉- 쾅-
밖에서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린다.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에, 양부가 일어나 우아하게 걸어 창문을 직접 닫는다.
탁-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
하지만 실내에는 훈훈한 공기. 테이블 가득 차려진 음식의 맛있는 냄새. 따뜻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가 스테이크를 적당한 두께로 썰어 자신의 접시에 덜어준다.
조난과도 같았던 어린시절의 자신에게 동아줄을 내려준 사람.
지금의 모든 안온함은 모두 아버지가 자신에게 내려준 것이다. 데카르도는 그런 생각에 속이 뜨끔거렸다.
‘역시 이건 아니야. 직접 물어봐야겠어.’
[아버지.] [왜, 아들?] [방에 감시카메라는 왜 다셨나요?]달그락-
고기를 썰던 나이프가 멎었다.
양부는 고개를 살짝 들어 데카르도와 눈을 마주하더니, 작게 한숨을 내쉰다.
[어떻게 알았니?] [카메라를 발견했어요.]데카르도는 사진을 본 후, 집에 와 티나지 않게 곁눈질로 선물받은 액자를 살폈다.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카메라가 그제서야 보였다.
알게 된 것은 셀리의 정보 제공, 그리고 해킹 때문이었지만, 아버지의 직원의 컴퓨터를 해킹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이렇게만 얘기한다.
양부는 그의 떨리는 눈동자를 피하지 않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너…발작 횟수가 예전보다 잦아졌더라.] […!]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어. 너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 아이가 아니니까. 분명 힘들어도 참고 또 참을 거고, 뭔가 일이 터진 후에야 내가 알게 됐겠지. 걱정됐어.]진실.
데카르도의 영민한 머리는, 양부의 말을 한치의 거짓없는 진실로 판단한다.
하지만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자신이 지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는지는.
[그럼…의사는요. 제가 진료받는 정신과 의사, 아버지가 접촉하신 것 같던데.]한 가지 더.
셀리가 알려준 남자의 컴퓨터에서 찾아낸, 의사가 주기적으로 처방 기록을 아버지에게 보냈던 흔적.
[마찬가지야. 네 담당의가 내 학교 후배더라고. 아들 상태가 걱정되어서, 좀 알려달라고 했단다.] [그건 불법…] [그래, 불법이지.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건 미안하다. 하지만 네가 갈수록 위태로워 보여서…너무 걱정이 됐어. 부모가 어떻게 아픈 자식을 두고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겠니.]데카르도가 잠시 두 눈을 감았다.
설득이 되려고 한다…아니 설득되고 싶다.
솔직히, 아버지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 나쁘기만 했던가.
지독한 두통에 시달려, 차라리 머리를 칼로 쑤시고 싶었던 어느 밤에 아버지는 전화를 걸어 주었다. 그의 연락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날이 몇 날 며칠이나 있었다.
아버지가 마지막 치명타를 날렸다.
[데카르도. 내가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다면, 너라면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