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75
“엇…오늘은 유명이···”
“잘먹겠습니다 선배님!”
유리가 정직하게 합의된 사실을 고하려는데, 유명이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입을 막았다.
“왜···”
“나는 다음 주쯤 다시 와서 쏠게. 능력있는 선배님이 굳이 쏘는 즐거움을 누리시겠다는데 막을 이유가···”
유명이 장난스럽게 유리에게 속삭였다.
“잘먹었습니다!! (너도 해).”
“선배님, 감사합니다!”
한성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그제서야 유리가 아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는 데로 갈까?”
“네. 제가 잘 몰라서, 부탁드립니다!”
“그래. 마스크 쓰고 있기는 불편하기도 하고, 거기로 가야겠다.”
한성의 차를 타고 그들은 어느 빌딩에 숨어있는 바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 미리 전화를 받고 대기하고 있던 지배인이 싹싹하게 인사를 하고, 직원용 출입구를 통해 내실로 안내했다.
도착한 곳은 서울의 야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통유리가 한 면을 통째로 차지하는 작은 룸.
“우와···이런 데가 있군요. 연예인들의 비밀회동장소같은 건가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얼굴 알려진 사람들이 시선 신경 안쓰고 편하게 한 잔 할 수 있는 룸이 몇 개 있는 술집이야. 신배우도 곧 이런 데 아니면 나다니기 힘들어질걸.”
좋은 곳을 원해서가 아니라, 이런 곳이 정말 필요해서 오는 사람도 있구나.
그렇게 오래 연기를 하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해본 경험이 전무한 유명이 신기한 듯 룸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 소주 한 병이랑, 골뱅이소면에 오뎅탕요.”
한성은 모던한 인테리어와 하등 어울리지 않는 메뉴를 시켰다.
직접 주문을 받으러 온 지배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주문을 받아서 나갔다.
“이런 데서 그런 것도 팔아요?”
“여긴 부탁하면 다 가져와. 공간을 파는 거라서.”
비싸겠다, 무척.
“아, 골뱅이소면 오랜만이네. 맛있겠다.”
소탈한 얼굴로, 한성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궁금한 게 뭐야?”
“아…선배님. 그 저···”
잠시 근황을 얘기하던 그들이 본론으로 들어섰다.
할 말은 하는 성격이면서 유독 망설이는 유명을 한성이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선배님네 기획사에요···”
“어, 신배우 매니지먼트 계약하게? 연결해 줄까? 너라면 어디라도 쌍수들고 환영일텐데, 우리 회사도 나쁘진 않지만 신인에게 조건이 좋은 데가···”
“아, 그게 아니고…찾는 작품이 하나 있는데, 혹시 오디션 공고가 들어왔나 궁금해서요.”
“음? 그게 무슨 소리지? 오디션 공고가 났는지도 모르는 작품을 네가 어떻게 알고 있어?”
물론, 방영되는 드라마를 봤기 때문이지.
전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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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어디서 얼핏 들었는데…재밌을 것 같아서요.”
“제목이 뭔데?”
“이라고 하는데, 오디션 공고가 떴거나, 곧 뜨거나 할 즈음일 것 같아요.”
04년 말에 방영된 KBK 자체제작 16부작 미니시리즈.
연애가 아닌 연예학개론.
연예계에 처음 들어온 매니저이자 연기지망생인 여주인공이, 톱스타 남주인공의 로드매니저를 맡게 되면서 연예계에 적응해가는 해프닝을 그린 로맨스물이다.
2004년 7월 현재 초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는 의 인기를 타고 우후죽순 제작되는 ‘당찬 여주’ 드라마 중 하나로, 대박까지는 아니고 중박 정도의 드라마였는데, 유명은 무척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었다.
등장인물이 배우다 보니 연기에 대한 것도 드라마 내에서 어느 정도 다루어지는데,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이 꽤나 흥미진진했기 때문. 그리고…
‘배역 이름이 보형이었지···’
유명이 딱 이 드라마를 집은 이유.
조연 중 꽤 개성있고 재밌는 캐릭터가 있었는데, 배우가 그 역을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당시 극단 입단 초년생이던 유명은, 저 역할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구상을 하며 연기 연습도 꽤 해보았었다.
보형 역을 오디션으로 뽑았다는 기사를 봤던 것 같은데···
“매니저한테 물어볼게.”
한성이 문자를 보냈다.
드라마라는 것이 그렇다.
주연은 대부분 인지도 있는 배우들로 섭외를 해서 들어간다.
조연 이하는 섭외를 하기도 하고, 캐스팅 디렉터가 기획사 프로필들이며, 대학로 헌팅을 다니며 이미지에 맞는 배우 리스트를 추려오는데, 그 과정에서 오디션을 보는 일도 많다.
간간히 공개 모집하는 오디션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사전 제작 등으로 여유가 있을 때의 얘기다. 일정이 빠듯한 드라마는 편성과 제작일정 때문에, 캐스팅 디렉터 혹은 캐스팅 외주를 넣는 에이전시의 풀 내에서 대부분 결정되게 된다.
즉, 유명이 꼬셔야 할 사람은 캐스팅 디렉터.
“오, 진짜 있다는데?”
“정말요? 혹시 캐스팅디렉터분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개인 연락처?”
“메일이면 돼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역시 이 때쯤이 맞았다.
물론 캐스팅디렉터에게 프로필을 보낸다고 해도 연락이 온다는 보장도 없고, 원하는 역할이 내정되어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시도는 나쁠 것 없다.
유명은 한성에게 받은 이메일 주소를 품 안에 갈무리했다.
*
찰칵-
“오케이, 포즈 좋고-”
“좀더 슬픈 표정 지어봐. 포징 꼭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연기한다는 느낌으로..”
찰칵- 찰칵- 찰칵-
이 곳은 사진작가 강민교의 개인 스튜디오.
패션 브랜드 에 사진작가로 참여했던 민교는, 프로필을 찍고 싶다는 유명의 부탁에 흔쾌히 무료봉사를 나섰다.
의상은 청바지에 맨발, 흰색 무지 셔츠가 전부.
“와우. 방금 죽였고-”
하지만 살아 날뛰는 배우의 눈빛이 카메라를 사로잡고 있다.
“오케이- 수고했다!”
“형이 더 수고하셨죠. 감사합니다.”
촬영은 30분만에 마무리되었다.
보통 제대로 된 샷을 건지기까지 몸이 풀리는 인터벌이 있기 마련인데, 이 녀석은 첫 컷부터 바로 들어가버리니…민교는 촬영완료된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비컷(*B-cut: 촬영한 사진은 실제로 쓸 수 있는 A컷과 뒤로 빠지는 B컷으로 나뉜다.)이 없다.
“어, 형 저 전화 좀 받고 올게요.”
“그래. 난 프린팅 할 거 뽑아보고 있을게.”
기도한 감독이다.
한참 편집실에서 살고 있을 양반이 웬 일이지.
“여보세요. 감독님 안녕하세요.”
[어, 유명씨 잘 있었어요?]“네. 편집은 잘 돼가세요?”
[네 잘 되어 갑니다. 그 걱정은 마세요. 유명씨는 요즘 뭐해요?]“좀 쉬면서 다음 작품 알아보는 중이에요.”
[혹시 다음 작, 영화 생각 없어요? 후배가 독립영화를 찍는데 연기력 있는 주연배우를 구한다고 해서 유명씨 생각이 났습니다.]주연배역이라면 좋은 기회일 수도 있지만, 계속 예술영화만 하고 있을 생각은 아니다.
지금은 꽂혀있는 작품도 있고.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해보고 싶은 배역이 있어서 오디션 준비 중이라서요.”
[아…그렇군요. 프로필 준비?]“네. 연기 영상은 촬영 중간에 짬날 때 최감독님이 찍어주셨고, 프로필 사진은 지금 찍고 있어요.”
[작정하고 준비중이군요. 잘 되실 거라 믿지만, 혹시 불발되면 연락주세요. 이쪽 시나리오 보니 배우 컨택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알겠습니다 감독님.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저기서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좋은 신호다.
이번 오디션에 떨어지면, 자신도 좀 더 풀을 넓힐 것이다. 여기저기 제작사들을 찾아가 프로필을 돌리고, 아예 소속사를 찾는다는 대안도 가지고 있지만,
일단 지금은 하고 싶은 배역을 열심히 따내어 보고자 한다.
‘그나저나, 이 녀석은 언제 돌아오는 거지···’
있던 녀석이 없으니까 기분이 멜랑꼴리하다.
유명의 행보에 크게 참견은 않는 녀석이라, 가만히 지켜보다 툭툭 한두마디씩 훈수를 두는 게 다였지만, 1년 넘게 늘 옆에 있던 존재가 사라지니 기분이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