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170)
이리저리 우그러져있는 쇠갑옷의 암가드(Arm Guard: 팔목 보호대) 부분.
-음.
레이븐이 심각함을 느꼈는지 순식간에 카이린 앞에 다가서더니 기절해있는 그녀의 양팔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무형의 기운이 손에서 뻗어 나가며 암가드 부분만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챙-
떨어져나가는 쇳조각들.
그와 함께 드러난 카이린의 팔은 겉으로는 멀쩡했다.
계속 갑옷을 입고 있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태양을 못 본 듯 하얀 걸 넘어 창백해 보이는 피부색이 고결해보였다.
다만 무언가 거뭇거뭇한 피딱지가 굳은 듯한 땟국물(?) 같은 게 묻어있어서 좀 지저분하긴 했다.
그래도 일그러져있던 갑옷에 비하면 상당히 양호한 상태.
‘휴, 다행이다.’
일단 상우는 멀쩡해 보이는 카이린의 팔을 보며 안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우를 힐끔 쳐다본 레이븐.
이미 카이린의 몸에 서렸던 황금빛 기운을 보고 상우가 조치를 취했다는 걸 알았기에, 제법이라는 눈빛이었다.
-일단, 겉으론 멀쩡하지만 내부는 모르니 확인해봐야겠구나.
그 말과 함께 레이븐이 카이린의 팔을 잡았다.
본인이 전문적인 의사는 아니지만, 수십 년간 부상을 당해보고 대처했던 노하우로 대략적으로 상세를 살피려는 것.
덥썩-
그는 더러운 게 손에 묻어도 상관하지 않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더니 무언가 살피는 듯 눈을 감았다.
아마도 자신의 마나를 밀어 넣어 손과 팔의 내부를 확인 중일 터.
‘깨끗하다.’
레이븐은 카이린의 팔 내부가 마치 새것처럼 너무나 깨끗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단단한 심혈관과 생동감 넘치는 근육과 피부 조직들.
그 내부를 돌아다니는 혈액과 채 갈무리하지 못한 마나의 기운까지 모두 말이다.
그녀의 몸은 마치 환골탈태를 겪은 듯한 상태처럼 보였다.
‘어린 나이에 놀라운 성취군. 아니면, 영약이라도 먹었던가.’
하지만 레이븐의 처음 생각과는 달리 팔을 지나 몸 내부의 다른 곳을 살피자, 어느 정도 성장한 인간이 그러하듯 노폐물들이 보였고 생기 역시 적었다.
‘제자가 펼친 황금빛 기운과 관련이 있나보군.’
레이븐은 그게 단순히 치유 능력이라고 생각했는데 달랐던 것.
그도 그럴 게 상우가 펼친 건 단순한 치료 스킬이 아닌, 블레스의 성력이 포함된 능력이었으니까.
그것도 똥줄 탄 심정에 자신의 내부 마나를 들입다 부었으니 말 다했다.
아무튼 상세를 어느정도 살핀 레이븐.
그는 카이린의 팔에서 손을 놓고 나이젤을 쳐다봤다.
손녀의 상태에 이상이 있을까 싶어서 조마조마한 듯해 보였다.
-멀쩡하구나.
-아… 다행입니다.
형인 레이븐의 말에 안도하는 나이젤.
-일단 단순히 기절한 것 같으니 시간이 지나면 깨어날 게야.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 눕혀놔야겠군요.
카이린을 처소에 데려다놔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이젤이 주변을 돌아봤다.
그와 동시에 상황을 보고 있던 레이븐 기사단원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가주님 제가 하겠습니다!’
‘저를 뽑아주십시오!’
‘제가 잘할 자신 있습니다!’
그들이 자랑스러운 레이븐 기사단원들이긴 했지만, 소공녀와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어느 누가 미모의 소공녀 카이린을 안고 처소로 운반할 수 있을까.
평소에 흠모만 할 뿐 차갑고 딱딱한 카이린의 태도에 말 한 번 제대로 못 붙여봤던 기사들이었는데, 지금 그 기회가 오려하고 있었다.
허나 나이젤의 눈길은 기사들을 향하지 않았다.
대신 안도하며 멀뚱히 서있었던 상우를 쳐다봤다.
-상우 군.
“예.”
-카이린 좀 처소에 데려다주게.
“예?”
상우가 당황하며 자신을 지목했다.
“제가요?”
-그렇네.
“저, 여기 처음인데요? 지리도 모르는데….”
-괜찮네. 저기 멜라니를 붙여줄 테니. 멜라니, 상우 군을 카이린의 처소로 안내하게.
멜라니라는 이름의 여성은 나이젤의 뒤를 조용히 따르던 시녀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레이븐 공작의 지시에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지요.”
그러더니 앞장 서서 움직이는 멜라니.
‘뭐야, 시녀 있으면 저 사람 시키지 왜 날 시켜. 길도 모르는구만.’
상우는 좀 어이가 없었지만, 그저 시키는 대로 카이린을 염동력으로 둥둥 띄운 채로 멜라니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음흉한 계획을 세운 나이젤.
그는 상우의 능력을 보고 단 번에 카이린의 짝으로 상우를 찍어놓은(?) 거였다.
그렇기에 일부러 상우를 지목한 것.
‘되었군. 이걸로 좀 인연이 되길….’
스톰브링어 검법을 배운 형님의 제자.
때문에 가문을 이을 적통성도 확보한 상태.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무력에 꽤나 온순해보이는 성격까지.
‘상우 군, 레이븐 공작가에 온 걸 환영하네.’
환영의 의미가 손님이 아닌 손녀의 데릴사위(?)로 약간 의미가 변질되기는 했지만.
아무튼 상우를 좋아하기 시작한 나이젤이었다.
* * *
침대에 누워 있는 카이린.
그녀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어디 몸이 안 좋은 걸까.
허나 그건 아니었다.
그저,
‘…부끄러워.’
지금의 모든 상황이 부끄러웠다.
사실 그녀는 상우에 의해 처소로 운반되던 중 이미 깨어났던 것.
허나, 먼저 시비를 걸어 결투를 신청했음에도 꼴사납게 져버렸다는 패배감과, 승자인 상우에 의해 치료되었다는 수모감, 거기에 한편으로는 치료해주었다는 고마움, 그리고 마치 정신을 잃은 채 마법 장난감처럼 허공에 둥둥 떠서 끌려가는 부끄러운 상황까지.
‘그때 차마 내려달라고 말하지 못 했어….’
쪽팔렸으니까.
그래서 그냥 계속 정신을 잃은 척 하고 자신의 처소로 옮겨져 침대에 눕혀졌던 거였다.
물론 상우는 침대에 대충 던져놨지만(물론 던지진 않고 대충 올려놓았다), 카이린은 그마저도 신경 쓸 수 없었다.
그냥 지금의 부끄러운 이 상황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에.
이후 상우는 카이린이 깨어나면 알려달라는 얘기를 멜라니라는 시녀에게 전하다가 말이 안통해서 바로 떠났고(답답해서 떠났다), 멜라니는 기절한 듯한 카이린의 갑옷을 손수 벗긴 채 잠옷으로 갈아입혀준 상태였다.
이후 하루가 지난 지금.
카이린은 계속 기절한 척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었고, 다시 깨어났는데 부끄러워서 차마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꼬르륵-
뱃속에서 밥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탓에 방 안에 틀어박혀있는 게 곤욕이었다.
‘배고파….’
안 그래도 육체를 쓰는 기사인 만큼 그녀의 기초대사량은 일반인에 훨씬 높은 상태.
한 끼라도 제대로 안 먹어주면 허기짐에 배고픔을 넘어서 위가 쓰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무려 하루를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오죽하랴.
‘그냥 멜라니한테 말할걸….’
가끔씩 방을 찾아왔던 멜라니한테도 기절한 척 하느라 차마 밥을 달라고 얘기하지 못했다.
‘이따가 다시 오면 말해야겠다.’
그렇게 카이린이 멜라니한테 밥을 달라고 얘기해야지 하고 결심하고 있을 때였다.
와아아아아아아-
저택 바깥에서 어마어마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작았다가 점점 커져가는 함성 소리.
‘무슨 일이지?’
요 근래, 아니 카이린이 태어난 이후로 백작 내에서 웃음소리나 기뻐하는 환호 소리가 울렸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나 가주인 나이젤의 생일 때도 대충 지나가는 마당에 오죽하랴.
그런데 마치 기사단, 아니 도시 전체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는 듯한 엄청난 소리에 카이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녀는 슬그머니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으로 다가갔다.
저택 최상층의 한쪽에 있는 카이린의 방에서는 저택의 정문과 정원이 한눈에 보였기에 동태(?)를 살피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카이린은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작가의 닫힌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그곳까지 밀려든 사람들이 기쁜 얼굴로 한마음 한 뜻으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레이븐 공작님 만세!”
“레이븐 공작님 만세!”
“레이븐 기사단 만세!”
“돌아온 레이븐 공작님 만세!”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레이븐 공작가에 대해 열렬히 지지하고 있는 영지민들이었다.
‘무슨 일일까. 확인해봐야겠어.’
때마침 소란스럽기도 하니, 이 소란을 깨어난 변명거리(?)로 생각한 카이린은 서둘러 갑옷을 챙겨 입으려 옆쪽의 옷방을 향했다.
그곳에 놓인 건 자신이 즐겨 입던 풀플레이트 아머가 팔이 완전히 으스러진 채 놓여있었다.
그걸 보니 왠지 마음이 아픈 카이린.
‘이게 얼마짜린데….’
가난한 영지 상황을 생각하면 저 갑옷을 수리하려면 빠듯할 터였다.
상우에 대한 원망이 피어오르려는 것도 잠시.
그녀는 재빠르게 다른 갑옷을 찾았다.
차선책으로 고른 건 상반신과 팔의 상박, 다리 정강이와 허벅지를 가리는 갑주로, 혼자서도 착용하기에 편하고 움직임도 좋았기에 그녀가 간편하게 움직일 때 애용하는 갑옷이었다.
척- 척-
갑옷을 입고 머리를 감지 않아 약간 기름진 긴 머리를 대충 머리끈으로 뒤로 묶어 위로 말아올린 그녀.
곧장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서 아래층으로 향하자 만난 건 멜라니였다.
“아가씨, 일어나셨어요?”
“응, 멜라니.”
“몸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멀쩡해. 괜찮아. 근데 밖에 무슨 일이야?”
“아, 지금 엄청난 일이 벌어졌어요!”
멜라니가 호들갑을 떨었다.
“엄청난 일? 뭔데?”
“전 가주님이 돌아오셨잖아요?”
“응, 큰할아버지 돌아오셨지.”
“그 분이 글쎄, 샤르드방 몬스터 군단을 모두 쓸어버렸다고 하시네요?”
“에?”
카이린은 믿기 어렵다는 듯 어벙한 소리를 내며 놀라고 말았다.
수만 마리, 아니 수백, 수천만에 달하는 엄청난 몬스터 무리.
그걸 쓸어버린다는 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으니까.
“말도 안 돼. 아무리 전 레이븐 가주님이 강하셔도 그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근데 사실인걸요. 그 전 가주님과 그 분의 제자가 모두 쓸어버렸대요. 그리고 저도 소문 들어보니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확인했대요. 그래서 모두 신나서 몰려오고 있다는데….”
멜라니 그녀 역시 신났는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몬스터들과의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몸이 약한 어머니마저 잃은 카이린의 실질적인 부모나 다름없는 멜라니.
유모였던 그녀와 유대감이 남달랐던 카이린은 그녀의 말을 점차 믿을 수밖에 없었다.
‘큰할아버지는 대체 얼마나 강하신 거지…? 그리고 그 남자….’
자신을 손쉽게 제압한 상우.
자신과 똑같이 생긴(분신들이었다) 남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이상한 남자.
큰할아버지의 제자라는 말에 카이린은 그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자기보다 강하긴 했지만, 대련에서 뭔가 특별한 걸 보여주지는 않았던 그.
그저 순수한 힘과 기술만으로 카이린을 제압해버렸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강함이 쉽게 짐작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그렇게 카이린이 놀랄 무렵.
바깥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전 레이븐 공작님이다!”
“레이븐!”
“레이븐!”
“레이븐!”
“레이븐!”
아마도 정원에 레이븐이 나선 모양.
카이린은 그 모습을 놓칠 수가 없어서 서둘러 정원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보이는 바글바글한 사람들.
물론 기사들이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어서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카이린 님, 몸은 괜찮으세요?”
“아 괜찮아요.”
걱정하는 기사들의 안부를 뒤로하고 카이린은 서둘러 앞으로 나섰다.
나이가 들어 호리호리한 나이젤과 그보다 훨씬 건장한 체격의 레이븐,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상우까지.
같이 거느리고 있던 똑같은 모습의 남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세 사람이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정원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나이젤이 앞으로 나섰다.
-모두 이렇게 몰려온 이유를 알고 있다. 바로 카이젤 레이븐 전 가주가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맞습니다!”
“위대한 검사!”
“제국의 수호검! 만세!”
“와아아아아아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어마어마한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지길 얼마 후.
소리가 잠잠해지자 나이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 위대한 제국의 수호검이 다시 돌아왔다. 다만 샤르드방 평야의 몬스터 무리들이 전멸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 말에 정적이 흐르고, 모두가 나이젤의 입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이어진 나이젤의 말.
-몬스터들을 모두 쓸어버린 건 바로 여기, 카이젤 레이븐의 제자 ‘정상우’ 군의 위업이다.
그 말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상우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서 있는 건 처음이라 좀 쑥스러웠지만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그런 군중들을 바라보는 상우.
그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각인되고 있었다.
전대와 현대 두 레이븐 공작과 함께 서있던 청년, 상우의 이름이 드디어 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