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169)
카이린의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상우는 눈치껏 연무장에 올라섰다.
탓-
정말 가볍게 뛴 것 같은데 훌쩍 날아서 순식간에 연무장 한가운데에 선 상우.
그 모습에 주변에서 대기 중이던 레이븐 기사단원들의 눈빛이 변했다.
‘강자다.’
‘누구지.’
‘못 보던 인물인데. 복장도 독특하고.’
이미 겉모습도 위풍당당한 상우였기에 범상치 않음을 느꼈던 기사들이었지만, 상우의 가벼운 움직임은 그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건 카이린 역시 마찬가지.
‘방심하면 안 되겠어.’
레이븐 공작의 손녀로서, 출중한 실력을 지닌 카이린.
물론 그녀 역시 방금 전 상우 정도의 움직임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크게 긴장할 이유가 없긴 했다.
그러나 상우에게는 뭔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묻어났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자신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는, 상우의 저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는 표정 때문일까.
카이린은 문득 기분이 나빠졌다.
‘무시하지 말라고.’
그 생각과 함께 그녀는 오른쪽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챙-
맑은 소리와 함께 뽑혀 나온 검.
크기와 모양새는 일반적인 롱소드였다.
다만 그 위에 초록빛 오러가 덧씌워지며 예리함을 더하자 그 기세가 남달라보였다.
척-
몸을 평평하게 세운 채 왼손을 살짝 내밀어 검끝을 상우에게 겨눈 카이린.
“준비하시지요.”
그녀가 상우에게 준비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상우는 준비 없이 멀뚱멀뚱 카이린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작하면 되나요?”
서로 대화가 안 통하기에 그저 자기들의 할말만 하는 두 사람.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레이븐과 나이젤.
나이젤이 그녀의 말을 상우에게 전달했다.
-상우 군, 형님의 제자이니 말을 편하게 하겠네.
“아, 예. 나이젤 님.”
-고맙네. 아무튼 카이린이 지금 시작하자고 준비하자고 하는구먼.
“준비요? 아.”
그냥 평소처럼 맨몸으로 서 있던 상우가 그제야 알았다는 듯 아공간을 열었다.
[아공간]
허공에 검은 구멍이 생기며 그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빼자,
샤아악-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은빛의 검, 풍혼이 나타났다.
현재 레이븐이 가지고 있는 검, 에아와 쌍둥이 검인 풍혼.
듀베른이 빚어낸 희대의 명검이었다.
게다가 풍혼에는 에아보다 더 많은 기능이 추가되어 있어서 이미 검만으로도 카이린의 열세가 확실시 되는 상황.
‘이걸 써도 되나.’
사실 분신들에게 보급용으로 지급하는 일반적인 검을 꺼내는 게 좋았을 터였다.
허나 습관적으로 풍혼을 꺼냈는데, 지금 기세를 보아하니 다시 검을 넣는 것도 무례일 거 같기에 상우는 그냥 풍혼을 들었다.
“좋은 검이군요.”
카이린이 그 말을 하였으나, 상우는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검끝을 바닥을 향한 채로 축 늘어트려놓고 서 있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너무 무방비하고 긴장을 안 한 듯한 모습.
‘나를 무시하는 건가.’
카이린은 자신을 상대로 너무 긴장을 안 하는 그의 모습에 문득 오기가 치밀었다.
그리고 그게 맞았다.
상우는 그녀를 상대로 전혀 긴장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있는 건 무례였지만, 사부인 레이븐을 제외하면 따로 대련을 경험해보지 못한 터라 이게 큰 무례인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초극강의 강자인 레이븐을 상대로는 검을 들어 올려 만전의 태세를 갖추나, 지금처럼 늘어트려 놓나 별반 차이가 없었으니까.
분신들이야 FM(Field Manual: 야전 매뉴얼. ‘정석’, ‘표본’, ‘설명서’와 비슷한 의미)대로 움직이기에 레이븐과 훈련할 때면 항상 긴장하여 만전의 태세로 훈련에 임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그의 태도는 카이린의 신경을 자극시켰다.
그렇기에 곧장 움직이기 시작한 그녀.
“갑니다.”
대련이기에 예의상 시작의 신호를 준 카이린.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이 전방을 향해 쏘아졌다.
탓-
그녀는 상우와의 거의 4~5미터 남짓한 거리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거리를 좁히더니,
쐐액-
간결하게 검을 상우에게로 찔렀다.
손목과 팔꿈치의 스냅을 이용한 깔끔한 찌르기.
그 움직임이 매우 좋아서 언제 찌른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빨랐다.
허나.
챙-
그녀의 검은 언제 들린 것일지도 모를 상우의 검에 의해 살짝 옆으로 밀려난 상태.
베어막기 형태로 막은 것도 아닌 그저 검을 들어올려 검의 경로에서 살짝 빗겨나게 한 모습이었다.
‘빠르다.’
카이린은 상우의 팔 동작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당황과 동시에 긴장을 했고,
‘느리네.’
상우는 ‘역시나 별 거 아니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카이린의 움직임이 어찌나 느린지 하품이 나올 지경.
물론 진짜 하품을 하면 큰 결례이기에 생각만 했을 뿐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나를 무시하는 건가.’
허나 여자의 촉은 무서웠다.
그녀는 상우의 긴장을 안한 그 표정 속에서 자신을 얕보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기고 싶어진 그녀.
‘…네가 뭔데….’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그러자 스톰브링어 검법의 후계자를 확인하고 싶다는 본래의 마음보다는, 제대로 한방 먹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그래서 그녀는 곧장 상우의 검을 밀쳐내려 시도했다.
막아낸 검을 옆으로 밀어낸다면 바로 상우의 목을 베어버릴 수 있으니까.
까드득-
허나 사람이 검을 들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미동도 안하는 검.
상우의 오른손에 들린 검은 마치 기계 공업용 프레스기에 꽉 맞물려있는 것 같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검이 긁히는 소리만 요란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검을 곧장 떼어내고는 그 힘을 이용하여 몸을 회전시키며 상우의 반대편, 왼쪽 허리를 노렸다.
깡-
허나 세워서 들고 있던 검을 아래로 빙글 돌리며 왼쪽을 막아내는 상우.
검에 오러가 덧씌워지지 않았음에도 검이 뛰어난 탓인지 카이린의 오러가 덧씌워진 검을 수월하게 막아냈다.
아니, 쉽게 막아냈다.
‘빠르고 강해.’
자신의 큰 움직임에 비해 상대는 적은 움직임만으로도 쉽게 막아내는 걸 보자, 카이린은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스슥-
강력한 일격을 퍼붓기 위해 땅에 박은 듯 했던 다리를 드디어 지면에서 떼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
카이린은 공격할 듯 말 듯 상우의 주변을 빙빙 돌며 빈틈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장단에 맞춰 가만히 선 채로 몸을 슬쩍 슬쩍 돌려주며 카이린을 바라보는 상우.
맨 처음에 서있던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무방비한 자세.
허나 상우의 근력과 단단한 검, 빠른 움직임을 보게 된 카이린은 그런 무방비한 모습에도 아까처럼 쉽사리 뛰어들 수 없었다.
그의 허술한 모습조차도 이제는 큰 벽처럼 다가왔으니까.
‘…빈틈이 없어.’
도저히 어디로 공격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는 카이린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한 레이븐과 나이젤.
-결과는 이미 나온 것 같군.
-그렇군요. 아마 지금 빈틈이 보이지 않겠지요…. 상우 군 대단합니다.
나이젤이 카이린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사실 그도 자신의 형과 대련할 때 많이 느끼던 감정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말에 맞장구 치는 레이븐.
-그럼. 누구 제잔데 어련하겠는가. 허허.
어느새 팔불출(?)이 되어버린 그였다.
그리고 나이젤은 그런 형의 모습이 낯설었다.
‘자기가 최고라고 여기던 양반이….’
그가 알던 레이븐은 오만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겸손한 편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잘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런 고집불통이었던 레이븐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 것.
‘여러모로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군요.’
그렇기에 나이젤은 상우를 더더욱 높게 평가하게 되었다.
어쨌든 두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카이린은 고전 중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레이븐 기사단도 이미 패색이 짙다는 걸 느낄 정도로 검 한 번 내지르지 못한 채 상우의 주위만 빙빙 돌기를 수십 바퀴.
그리고 고작 주변을 돌아다닌 것뿐인데도 그녀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안 돼.’
그리고 자신도 이대로 가선 승산이 없다는 걸 느꼈는지 드디어 다른 전략을 택한 카이린.
그녀는 곧장 검을 등 뒤로 가져가 크게 휘두를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에 좀 지루해하던 상우가 드디어 반색했다.
‘오, 드디어 공격하나. 근데 움직임이 뭔가 익숙한데?’
상우가 그렇게 생각할 무렵.
그의 예상대로 카이린의 검이 크게 휘둘러졌다.
샤악-
허나, 아직 검의 사정거리가 상우에게 미치지 못했기에 검은 그저 허공을 베며 지나갔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나간 검과 함께 그녀의 몸도 다시 회전했던 것.
그리고 멈추지 않고 계속 회전하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회전이 더해질수록 그녀의 몸은 팽이처럼 핑그르르 돌았고, 검은 주변의 모든 것을 베어버릴 것처럼 휘돌았다.
마치 믹서기처럼.
그리고 상우는 저 기술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선풍참이네?’
그렇다.
그녀가 사용한 기술은 스톰브링어 검법의 4단계 선풍참이었다.
‘스톰브링어 검법 못 배웠다더니 뭐지.’
물론 상우가 시전하는 선풍참에 비하면 시전 속도도 그렇고 좀 애매하긴 했다.
그렇게 상우가 의문을 느낄 무렵.
카이린의 선풍참은 드디어 충분한 회전력을 얻었는지 매서운 기세를 뽐내며 순식간에 상우에게 밀려들어갔다.
쐐애애애애애액-
마치 모든 것을 갈아버릴 듯한 엄청난 기세.
허나 상우가 검을 슬쩍 밀어 넣자,
까가가가강-!
검들이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쨍-!
쇳조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선풍참의 위력과 풍혼의 단단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카이린의 검이 부서지고 말았던 거였다.
그와 함께 사방으로 비산하는 검편.
부서진 검 조각들이 마치 비수처럼 연무장 곳곳과, 심지어 카이린을 향해도 튀었다.
‘이런….’
상우는 검이 부서질 줄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렇게 날카롭게 비수처럼 사방으로 쏟아질 줄 몰랐다.
허나 당황도 잠시.
순식간에 스킬을 사용하여 대응하였다.
[염동력]
그와 동시에 압도적인 기운이 사방을 잠식하며 사방으로 튀려던 검편들이 모두 허공에 정지하였다.
그와 함께 회전이 강제로 정지한 탓에 그 충격 때문인지 거의 기절한 듯한 카이린 역시 바닥에 쓰러지지 않고 허공에 비스듬히 정지했다.
그 모든 상황이 거의 1초도 안 되는, 눈 깜짝할 시간에 벌어졌다.
허나 이 모든 걸 보고 있던 이들은 모두 초인들.
검편이 튀는 걸 보고 놀랐던 레이븐 기사단원들은 뒤늦게 피하려다가 검편들이 허공에 떠있는 걸 보고는 당황했다.
‘뭐지.’
‘위험했던 상황이었던 거 같은데.’
그들은 당황했지만 속내를 입 밖으로 내뱉는 실수를 하지 않고 통제가 내려올 때까지 대기했다.
그저 묵묵히 레이븐 공작인 나이젤을 바라볼 뿐.
허나 그도 갑작스런 사태에 놀랐던 모양인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가만히 있었다.
-괜찮으냐.
대신 옆에 있던 레이븐이 상우를 향해 물었다.
“괜찮아요.”
상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허나 레이븐이 물은 건 상우가 아니었다.
-너 말고. 넌 튼튼하잖느냐. 카이린 말이다.
“카이린이요? 괜찮을….”
상우가 대답하며 카이린을 쳐다보았다.
사실 카이린은 회전의 중심에 서있었기에 검편들이 크게 많이 튀지도 않았고, 분명 검편들이 덮치기 직전에 멈췄기에 피해가 없었을 터였다.
그리고 아까 슬쩍 얼굴을 보니 다행히 다치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다쳤네.’
허나 지금 보니 기절한 듯한 카이린의 검을 꽉 쥔 양팔은 이리저리 뒤틀려 있었다.
아마도 검이 충돌하는 충격에 의해 부상을 당한 모양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몸을 둘러싼 철갑주마저 우그러졌을 정도이니 내부에 있는 카이린의 팔이 멀쩡할 리가 없는 상황.
‘아놔, 이거 또 사고 쳤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사부의 가문에 오자마자 지인, 아니 가족을 다치게 하다니.
상우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좀 다쳤네요.”
-역시 다쳤군. 어쩐지 팔이 모양이 좀 이상하더구나. 상세를 살펴봐야겠다.
레이븐이 그 말을 하며 일어나자 나이젤 역시 걱정 되었는지 일어났다.
연무장으로 올라오려는 그들.
상우는 재빨리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스으윽-
염동력으로 띄워두었던 검편을 옆으로 치워버리곤,
[성력]
[그레이트 힐]
카이린에게 치유를 시도했다.
그러자 그녀의 온몸에 맺히는 환한 황금빛.
‘제발제발제발제발….’
쇠갑주에 가려져 팔이 얼마나 다쳤는지 잘 안보였기에 상세를 잘 모르는지라 똥줄 탄 상우는 사부가 점점 다가오자 성력을 더더욱 중첩시켜 회복력에 가속을 더했다.
[성력]
[성력]
[성력]
[성력]
…꽤나 마나를 소모한 탓일까.
그러자 레벨이 낮음에도 마치 블레스가 사용했을 때처럼 엄청난 황금빛이 카이린의 몸, 특히 팔쪽에 집중되었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도착한 사부와 나이젤.
그녀는 허공에 떠 있는 카이린의 뒤틀린 두 팔 쪽 갑옷을 보며 안색을 굳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