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192)
한마디를 하고 뜸을 들이던 황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저’는… 가고 싶습니다. 지구로요.
말을 마치며 상우를 바라보는 황자.
창백했던 안색과 넋이 나갔던 이전의 표정과는 다르게 그의 눈에는 다시 돌아온 그의 총기가 담겨 있었다.
-저, 전하… 정말이십니까?
바레인의 물음에 황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대로 포기하느니, 끝까지 무언가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단호한 그의 대답.
거기에 담긴 도전의식과 희망을 읽은 모두의 안색이 밝아졌다.
-전하… 도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잘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나이젤의 덕담에 황자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레이븐 공작. 그리고… 이제 나를, 아니, 저를 전하라고 부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스스로 황자임을 포기하는 듯한 발언.
그 발언에 놀란 나이젤이 빠르게 답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황실은 무너졌을지언정, 황자님의 고귀한 핏줄과 지위는 영원할 것입니다. 절대 그것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바레인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 전하는 영원한 전하입니다. 스스로를 낮추지 마십시오.
-음….
이미 황자의 지위가 유명무실해진 상황.
그래서 황자 본인 입장에서는 심사숙고해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말리는 통에 별수 없이 수긍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잊지 않도록 하지요.
그 말에 안색이 밝아지는 사람들.
그렇게 유렌시아 황실의 마지막 황족, 하르딘 황자의 지구행이 확정되었다.
* * *
“비스마르크 기사단이 당했군.”
황좌에 앉은 비스마르크 공작, 아니, 비스마르크 황제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제전에 자리한 신하들의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들은 모두가 비스마르크 황제의 반역에 가담하지 않은, 중립파의 인물들이었다.
하나 일부 신하들은 오히려 황제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반역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레이븐 공작가를 일벌백계하셔야 합니다.”
“황실의 존엄을 높이십시오. 전하.”
마지막 신하의 말에 비스마르크 황제가 물었다.
“황실의 존엄을 높여야 한다라… 그래. 경은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의 물음에 그 신하가 자신있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연히 1황자를 숨겨 반역에 가담한 레이븐 공작가를 쓸어버려야 합니다.”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
누가 들어도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 황제는 그 말을 듣자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인상이 찌푸려졌다.
“쓸어버려야 한다라… 좋소. 그럼 누가 쓸어버릴 테요?”
황제의 물음.
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했다.
레이븐 영지에는 지금 ‘제국의 수호검’, 그가 있었으니까.
때문에 함부로 공격하기엔 그 위험부담이 컸다.
원정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전쟁을 치른 가문은 분명 세력이 약화될 테니까.
그래서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손해니까.
‘…기회주의자들 같으니라고.’
그리고 그런 신하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비스마르크 황제.
그가 답답했는지 다시 물었다.
“아무도 없군. 그럼 발언한 멘테스 백작, 당신이 하는 게 어떻소.”
“그것이… 송구합니다, 폐하. 소신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호기롭게 나섰던 멘테스 백작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수그러들었다.
“쯧쯧… 생각 좀 하고 발언하시오.”
비스마르크 황제의 답답하다는 듯한 책망.
이후 제전에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일벌백계하자는 의견 말고는 없소?”
황제의 재촉.
그러나 제전에는 침묵만 맴돌았다.
그 어떤 이라도 새로운 황제의 불편한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신하들을 바라보는 비스마르크 황제.
‘골치 아프게 됐군….’
반대파를 숙청하는 일과, 혼란에 빠진 정계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걸로 골치가 아픈 상황에서 황자가 미꾸라지처럼 도망치니 더더욱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결국 레이븐 영지로 도망쳤다라….’
게다가 그 미꾸라지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레이븐 공작가.
그가 그토록 신경 쓰고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이제 비스마르크 황제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이었다.
레이븐 영지와 싸워 황자를 없애 반란의 여지를 뿌리 뽑는 것.
그리고 레이븐 영지를 회유하여 협상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하나, 실질적으로 싸운다는 건 말이 안 되었고, 나서는 이도 없었다.
‘싸우기엔 흘릴 피가 너무 크니… 반란을 일으키느라 정국도 혼란스러운 마당에 굳이 위험을 키울 수는 없지.’
이제 황제가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시점이다.
대관식조차 진행하지 못한, 아직 황권이 확실하게 자리 잡지도 못한 상태.
반역을 명목으로 단호하게 반대파를 숙청한 공포 정치 덕에 황권을 꽤나 다질 수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레이븐 영지를 친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긴 하지.’
그랜드 마스터가 열 명은 우글거리는 레이븐 영지.
그런 곳을 함부로 공격했다간, 까딱 잘못하면 역사상 최단기간 역임한 황제가 될지도 몰랐다.
‘…결국 방법은 하나군.’
그렇게 이것저것 따지며 고민하길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모두가 불편한 공기를 감내하며 제전 안에 서 있는 가운데, 비스마르크 황제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모두가 말이 없군.”
“송구하옵니다. 폐하.”
“괜찮소. 내가 정했소.”
“경청하겠나이다. 폐하.”
“경청하겠습니다. 폐하.”
모두가 황제의 대답을 기다리는 가운데.
비스마르크 황제의 입이 열렸다.
“레이븐 공작가에서 도망친 황자를 도와준 정황은 분명하오. 황자의 마지막 행적과 비스마르크 기사단의 마지막 통신이 그곳에서 끊어졌으니. 하나 아직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바, 조사단을 파견하여 레이븐 공작가를 직접 조사하고자 하오. 레이븐 공작가에 대한 처분은 그 이후에 결정하겠소. 만약 조사를 거부한다면….”
이어지는 황제의 말에 모두가 숨죽여 주목했다.
“…그때는 레이븐 공작가, 아니, 레이븐 영지 전체를 반란 혐의로 처리하겠소. ‘드래곤 타워’를 활용해서 말이오.”
그의 말에 제전 안에 있던 모두의 안색이 놀람으로 물들어갔다.
“드래곤 타워를 말씀이십니까?”
드래곤 타워.
제국의 수도에 설치되어 있는, 결계 너머까지 요격할 수 있는 최첨단 마나공학의 산물이다.
드래곤이 만든 이 타워에는 드래곤 하트가 내장되어 있기에, 자체적으로 마나를 충전하여 어마어마한 위력의 디스트로이어 레이저를 지속적으로 발사할 수 있었다.
보통 몬스터 웨이브로 결계가 뚫릴 경우 화력이 부족한 곳에 지원 포격하는 방어용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다반사.
그런데, 황제는 이런 발상을 전환하여 공격용으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그렇소. 물론 확정한 것은 아니오. 세상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는 법. 짐이 알지 못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수백 년을 유렌시아 제국을 위해 일해온 레이븐 공작가의 충정을 생각해서라도 될 수 있으면 기회를 주고 싶소. 원래 황실근위기사단으로 내정하려 했던 비스마르크 기사단이 사실상 궤멸했으니, 레이븐 공작가의 인재로 대신한다든지 말이오.”
여지를 남기는 황제의 말.
레이븐 영지의 전력을 약화하면서 동시에 황실의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훌륭하신 판단이옵니다. 폐하.”
그리고 황제의 말에 담긴 뜻을 파악한 신하들 대부분이 그의 말에 찬성했다.
약간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신하들 마저도 황제의 발언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듯했다.
“신중하신 결정이옵니다. 폐하.”
“폐하의 혜안에 진심으로 감복하였습니다.”
그렇게 신하 모두가 황제의 발언에 앞다투어 찬동하는 가운데.
유독 안색이 좋지 못한 인물들이 있었다.
긴 귀를 가진 아름다운 외모의 미중년.
현 엘프, 그리고 모든 이종족들의 수장을 맞고 있는 하이엘프 샤미르 베르샤엘 후작이었다.
그는 황제의 얘기를 듣는 내내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참으로 뱀 같은 인물이구나.’
크라니드의 대침공 사태로 삶의 터전을 잃고 정신없이 피난한 끝에 도착한 유렌시아 제국.
그곳에서 전 유렌시아 황제의 도움으로 엘프들은 새로운 둥지를 유렌시아 제국 내에 틀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마법 기술의 교류를 통해 입지를 다진 끝에 오른 후작의 자리.
그 과정에서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지만, 어찌 됐든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 중에 하나가 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줄을 잘 못 선 것 같군….’
폭군은 아니었지만, 정사에 관심이 없었던 이전 유렌시아 황제.
그를 버리고, 비스마르크 공작가와 손을 잡아 이종족들의 입지와 힘을 더욱 공고히 했던 샤미르였다.
한데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전이었다.
‘같은 편이라도 매몰차게 공격하는 비정함을 몰랐지….’
어찌 된 영문인지, 그는 비스마르크 황제의 반란 과정에서 같은 엘프들이 살해당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비스마르크 황제의 비정한 진면목을 알아본 것.
때문에 그는 황제에게 깊이 충성할 수가 없었다.
‘…하나, 다른 대안도 없군….’
그저 이렇게 속내를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황제를 바라보는 것.
그것만이 이종족의 수장인 샤미르 베르샤엘 후작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그때, 자신을 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황제가 고개를 돌렸다.
마주치는 황제와 베르샤엘 후작의 눈동자.
베르샤엘 후작이 재빨리 고개를 숙여 눈초리를 피했다.
하나, 이미 비스마르크 황제는 무언가 알아챈 듯한 기미였다.
‘역시, 눈치챈 건가.’
그 역시 보고를 들었기에 반란이 일어났던 날, 궁 내에 있던 많은 엘프들이 자신들의 반란군과 버그슬레이어에 의해 살해당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함께 가기 어렵게 되었군.’
모든 이종족들 가운데 가장 폐쇄적이었던 엘프.
구성원의 피해를 조직 전체로 확대하여 해결하는 습성을 지닌 엘프의 특성상, 이는 엘프 전체의 반감으로 이어질 터였다.
그렇기에, 이제 엘프들과 평생의 동반자로 같이 갈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비스마르크 황제는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묘한 반감이 서린 베르샤엘 후작의 표정을 보게 된 것.
결국, 비스마르크 황제의 입장으로서는 ‘손절’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황제는 잠시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을 꺼냈다.
“…그럼 조사단을 파견하는 것으로 하겠소. 누가 조사단으로 가는 게 좋겠소?”
그 말에 침묵이 감도는 제전.
선뜻 나서는 이가 없는 걸 보며 비스마르크 황제는 예상했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따로 의견이 없나 보군. 좋소, 그럼 내가 정하겠소. 베르샤엘 후작.”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베르샤엘 후작이 가만히 대답했다.
“예, 폐하.”
“조사단의 수장으로 레이븐 영지로 가줘야겠소. 가능하겠소?”
황제의 가능하냐는 물음.
부탁의 성격을 띤 물음이지만, 황제의 말을 거역할 자가 누가 있으랴.
사실상 명령이었다.
베르샤엘 후작은 울며 겨자 먹기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베르샤엘 후작만 믿겠소. 잘 해주리라 믿소.”
말을 마치며 씨익 웃는 비스마르크 황제.
고개를 숙인 베르샤엘 후작은 보지 못했지만, 그 웃음은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쳐 보였다.
마치 그의 불안한 앞날을 예견하는 것처럼.
* * *
하르딘 황자는 상우의 아공간을 통해 바로 지구로 향했다.
그는 도망칠 때 따로 챙긴 것이 없었기에, 거의 몸만 넘어가게 되었다.
-전하, 부디 건강하시길…
-걱정 마십시오. 바레인 경.
담담하게 답한 후 아공간을 훌쩍 넘어 사라지는 황자.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레인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실, 황자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갈 것 같았던 그였기에 따라가지 않는 게 좀 의아한 상황이었다.
-바레인 경… 괜찮으시오?
황자를 배웅하느라 옆에 서 있던 레이븐이 바레인에게 물었다.
그 말에 바레인의 멍한 눈에 초점이 돌아오며 레이븐을 바라보았다.
-…눈치챘는가.
-그토록 마나를 흘리고 있는데 모를 수가 없지 않소….
레이븐의 말에 바레인이 처연하게 웃었다.
-그렇군….
-괜찮으시오?
조용히 묻는 레이븐.
하나, 괜찮을 리가 없었다.
무너져 내려가는 바레인의 마나 코어.
마나코어는 바레인이 노인임에도 바레인의 육체를 정정하게 지탱하던 근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너진다는 건, 그의 생명이 사그라들고 있다는 의미였다.
-괜찮을 리가 있나. 허허. 죽겠네.
-음….
바레인의 자조 섞인 웃음에 레이븐이 한숨을 쉬었다.
딱히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나, 그런 레이븐을 바라보며 바레인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정말 괜찮네. 신경 쓸 거 없어. 이 정도면 오래 살았다고. 이젠 갈 때도 되었지. 허허허.
말을 하면서 육안으로 티가 날 정도로 바레인의 피부와 머리카락은 노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계속 보고 있으면 잘 느껴지지 않지만, 잠시 다른 곳을 보다가 바레인을 바라보면 뭔가 조금 변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랄까.
그 정도로 빠르게 늙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까지 바레인을 지탱하게 했던 ‘황자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게 사라졌기 때문으로 보였다.
-바레인 경….
-괜찮네. 정말 괜찮네. 그보다는….
바레인이 조용히 레이븐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그러자, 놀라는 안색의 레이븐.
-하지만 바레인 경, 그건 수명을 단축시킬 것이오.
-나도 아네. 하나, 이대로 두면 어차피 허공으로 흩어져버릴 터. 그럴 바에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게 낫지 않겠나.
허공으로 흩어져버릴 그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는 바레인의 말.
그것은 바로 본인의 마나코어를 전하겠다는 의미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