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 Hunting With My Clones RAW - Chapter (58)
포탈을 통과한 상우 일행.
포탈 안쪽은 완연한 정글이었다.
우거진 나무들과 수풀림들, 쨍쨍한 햇볕까지.
거기에 습한 공기가 정글을 감돌고 있었다.
그 모습에 상우가 감탄했다.
“여기 완전 아마존 같은데요?”
“상우 씨는 아마존 가보신 적 있어요?”
“아, 그건 아니구요. 그냥 TV에서 본 아마존이랑 비슷한 거 같아서···.”
“상우 씨 말이 맞아요. 여기는 아마존과 매우 흡사하다고 해요. 때문에 각종 동물들과 벌레들이 들끓고 있어요. 아무리 쎈 헌터라도 독충한테 잘못 물리면 위험하죠.”
그녀는 자신의 배낭을 두드렸다.
“그래서 해독제는 종류별로 넉넉히 챙겨왔어요.”
“든든하네요. 그럼 바로 버그베어 잡으러 가죠. 버그베어는 어디쯤에 있나요?”
“잠시만요.”
손미는 지도를 열었다.
“여기가 저희 위치인데요. 길은 따로 안보이지만 이쪽 방향으로 쭉 가다가, 맹그로브가 나타나는 지역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됩니다.”
그때 지도를 보던 상우는 이상한 곳을 발견했다.
“어, 근데 여기는 왜 엑스 표시가 되어 있나요? 못 가는 곳인가요?”
“아, 여기 결계 같은 게 펼쳐져 있거든요.”
“결계요?”
“네. 여기 접근하면 왠지 모든 행동이 느려집니다.”
왠지 카타콤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때도 오염지역이 있지 않았는가.
‘설마··· 여기에도 칠죄종이?’
상우는 뭔가 느낌이 왔다.
왠지 칠죄종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칠죄종의 상징이 있다면 얻어야 해.’
글러트니를 얻고 얼마나 강해졌던가.
상징을 얻자마자 능력치도 뻥튀기 되었고, 탐식의 힘을 활용할 수도 있었으니까.
다른 칠죄종의 힘이 있다면 얻고 싶은 마음이었다.
“가이드님, 궁금해서 그런데 이쪽 결계지역으로 가보면 안될까요?”
“결계지역으로요? 음, 위험한데···.”
손미는 망설였다.
그녀의 목적지는 그쪽이 아니었으니까.
“좀 위험하면 물러나서 돌아가죠. 그리고 분신들도 있고 레이븐 씨도 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음··· 좋아요. 그럼 일단 버그베어 서식지에 들렀다가, 거기로 안내해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일단 가이드의 신분인 터라 무작정 우길 수가 없어서 손미는 한 보 물러났다.
그녀의 스마트 고글에 띄워진 홀로그램에는 바쁘게 메시지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S]: 미끼가 목적지를 이탈하려 한다. 계획이 틀어졌으니 확인 바란다.
-[K]: 어디로 말인가?
-[S]: 결계지역이다.
-[K]: 음··· 적당히 쓴맛을 보여주고, 결계지역에서 벗어나는 척 하면서 목적지로 방향을 유도하라.
-[S]: 알았다. ‘아니, 저 사람들 기세 봐서는 그냥 무대뽀로 뚫고 갈 거 같은데.’
손미는 한숨이 나오려 했지만, 윗선의 지시이니 어쩔 수 없이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손미의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크아아아아-
마치 석유처럼 끈적거리는 검은색 유체형 뱀, 포이즌 아나콘다가 일행을 덮쳐들었다.
하지만,
파아아악-
상우가 휘두른 진공참에 아나콘다의 동체가 무참히 터져나갔다.
산산히 튀는 아나콘다의 몸체.
액체로 이루어진 그것은 독액이었지만, 또다시 휘둘러진 검의 풍압에 밀려 저만치 비껴나갔다.
이후 상황도 비슷했다.
독가루를 뿌려대는 나방떼와, 스치기만 해도 사망에 이르는 극독을 지닌 벌떼, 강철 같은 몸을 지닌 거대한 사마귀, 칼날 같은 뿔을 지닌 사슴, 움직이는 나무들까지 모두 단칼에 썰어버렸다.
좀 강하다 싶어도 분신들이 다구리를 놓으면(?) 바로 처리되었다.
특히 벌레들을 잡는 게 생각 외로 짭짤했다.
돌풍참이나 선풍참으로 벌레들을 휩쓸고 나면,
[순발력이 0.001 올랐습니다.]
[순발력이 0.001 올랐습니다.]
[마력이 0.001 올랐습니다.]
[마력이 0.001 올랐습니다.]
[독내성이 0.001 올랐습니다.]
[독내성이 0.001 올랐습니다.]
···
괴마흡정의 효과로 인해 순식간에 능력치가 촤르륵 올랐던 거다.
“와, 여기 완전 노다진데요?”
짧은 시간에 1 가까운 능력치를 올린 상우가 감탄했다.
‘여기서 능력치 한 1000찍고 가볼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넘쳐나는 마나로 돌풍참을 난사하면서 돌아다니니, 독충들이 상우 일행을 천적으로 인식했는지 잘 접근하지 않기 시작했다.
때문에 금세 능력치 상승 속도는 급감했다.
‘음, 이거 몰이사냥을 해야 되나.’
하지만, 지형도 그렇고 어떻게 몰이사냥을 해야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불을 일으키면 될 거 같은데.’
파이어 스킬로 정글에 불을 일으켜서 다 태워버릴 생각을 했다.
하지만, 수풀에 붙은 불로 죽은 몬스터들이 과연 자신의 경험치로 인식이 될지 의문이었다.
불을 지르고 다시 끌 자신도 없었고 말이다.
결국 원래 하던 대로 잡몹들만 상대하면서 이동했는데, 계속 잡몹들만 쏟아져 나오자 상우는 금세 지겨워졌다.
“이거 너무 시시한데. 가이드님, A급은 언제 나오나요?”
상우는 검에 묻은 몬스터의 체액을 털어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손미는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 강하시네요···. 음, 이제 좀 있으면 맹그로브가 있는 물가가 나오는데 거기서 꺾어서 조금만 넘어가면 서식지가 나와요.”
“얼마 안 남았다는 얘기네요. 그럼 속력 좀 내볼까요? 사부님, 더 빨리 이동해도 괜찮으시죠?”
-난 괜찮다.
상우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며 유유자적 뒤따라오던 레이븐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빨리 움직이죠. 가이드님, 속도 얼마나 내실 수 있으세요?”
“음, 뛰면 좀 빨리 갈 수 있어요.”
“그럼 먼저 가세요. 뒤따를 테니까.”
“예. 그럼 갑니다.” 말을 마친 손미는 몸을 날렸다.
휙-
그녀는 내심 자신이 있었다.
그의 주특기가 바로 잠입 돌파였으니까.
때문에 움직임이 민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놀라고 말았다.
‘뭐, 뭐야.’
빠르게 뛰어가는 손미의 머리 위로, 상우와 분신들, 레이븐이 그녀의 속도에 맞춰 따라오고 있었던 거다.
상우와 분신들은 나무 사이를 뛰어다녔는데, 그 활공시간이 마치 날아가는 듯 했고, 레이븐은 말 그대로 날아가고 있었다.
윈드워크의 힘이었다.
-가이드님, 얼마나 남았어요?
상우는 여유가 있는지 메신저 스킬로 한 마디를 건넸다.
손미는 달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기에 말할 겨를이 없었다.
-아, 힘드시구나. 도착하면 말씀해주세요.
상우는 뛰어가는 것도 모자라 주변 곳곳에 보이는 몬스터들도 처리하면서 따라오기 시작했다.
손미는 혀를 내둘렀다.
‘이 사람들은 정상이 아니야.’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맹그로브 지역을 지나 그들은 결국 버그베어가 출몰한다는 서식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다음은 수월했다.
버그베어의 위치를 바로 찾을 수 있었으니까.
-이쪽이다.
레이븐이 뭔가를 감지했는지 일행을 이끌었다.
잠시 후.
쿠어어어어엉-!
말 그대로 아파트만 한 크기의 곰이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녀석은 어디서 잡은 듯한 몬스터의 사체를 머리부터 씹어먹고 있었는데, 상우 일행의 기척을 느꼈는지 맹렬한 적의를 토해냈다.
버그베어의 하울링(Howling: 울부짖음)에 정글이 쩌렁쩌렁 울렸다.
“1호야, 넌 뒤에서 사냥하는 거 잘 찍어라.”
1호에게 주의를 준 상우는 곧바로 움직였다.
“자, 가자!”
상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열한 분신들이 버그베어를 향해 뛰어들었다.
녀석은 상우 일행을 향해 뛰어들며 이미 주변의 나무들과 바위들을 인정사정 없이 부수고 있었다.
그러다 분신들이 다가오자, 분신을 향해 날카롭게 앞발을 휘둘렀다.
거대한 덩치에 비해 매우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쾅!
앞발을 가격당한 땅이 터지듯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 자리에 분신들은 없었다.
윈드워크의 움직임으로 빠르게 회피했던 것.
분신들은 회피하자마자 버그베어의 사방을 점하며 연풍참을 시전했다.
샤아아아악-
샤아아아악-
샤아아아악-
···
오러가 덧씌워진 수십, 수백 개의 바람의 칼날이 버그베어의 몸에 작렬했다.
크아아아아아아- 난도질당하여 피투성이가 된 버그베어.
살점과 근육 곳곳이 움푹 패인 게 한눈에 봐도 벌써 치명상을 입은 듯 했다.
하지만, 녀석의 흉성을 자극했는지 버그베어는 부상당한 몸을 움직이며 마구 발광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주변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한 버그베어.
하지만, 재빠른 분신들과 상우를 피할 수는 없었고, 이윽고 제 2격이 날라왔다.
[돌풍참]
십수 개의 오러가 실린 바람의 회오리가 버그베어의 사방을 점하며 날아들었다.
이미 피할 곳은 없는 상황.
결과는 자명했다.
촤아아아아악-
바람의 회오리에 갈리다시피 한 버그베어는 하체를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쿠웅-
그리고 그 쓰러진 동체를 향해 뛰어드는 상우.
상우의 검이 높게 치솟았다.
검에는 오러 블레이드의 기운이 서려있었다.
서걱-
터엉-
버그베어의 목이 잘려나갔다.
A급 몬스터라 치기에도 너무 허무한 결말이었다.
“끝인가?”
상우도 너무 빨리 죽여서 현실감이 없는지, 죽은 버그베어의 사체를 발로 툭툭 찼다.
-그래. 제자야. 깔끔하게 끝냈구나.
레이븐이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끄, 끝난 거 같네요.”
손미도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녀는 상우의 힘에 너무 놀란 상태였다.
‘··· 그는 A급, 아니, 이미 S급인가.’
그녀가 속한 단체가 예측한 그의 능력을 대폭 수정해야 할 거 같았다.
그런 그녀의 속내와 상관없이 상우는 희희낙락 웃고 있었다.
“뭐야, A급도 족밥이네요.”
-그만큼 너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A급, S급 그렇게 몬스터들의 등급을 구분하는 것도 애매하다. 이 세상엔 이런 몬스터들은 차고 넘쳤으니. 그러니 너무 자만하지는 말아라.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단다.
“네, 사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바로 결계지역 가볼까요? 거기만 확인하고 바로 돌아가면 될 거 같은데.”
-그러자꾸나.
“빨리 끝내고 베이징이나 상하이로 이동해서 관광이나 하시죠. 사부님.”
-오냐.
상우는 전리품으로 버그베어의 머리를 챙겼다.
버그베어의 몸이 너무 컸기 때문인지, 그 크기만 해도 굉장히 거대했다.
“이건 글러트니가 시킬까.”
상우가 머리를 운반할 적임 분신으로 글러트니를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글러트니는 이미 한창 식사(?) 중이었다.
으적으적. 냠냠.
버그베어의 사체를 뜯어먹고 있었던 거였다.
“야! 그거 먹지 마!”
“··· 아드득. 꿀꺽.”
상우의 만류에도 글러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가에 피를 묻혀가며 맛있게 버그베어를 먹었다.
그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마터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길 뻔했잖아. 근데 탐식의 힘 때문에 글러트니가 통제가 안되네. 아오. 그냥 다 먹게 해줘야 되나.’
어차피 탐식의 힘으로 인해 소화가 되면 자신의 힘으로 바뀔 것이기에, 글러트니가 버그베어를 먹는다고 해서 문제는 없었다.
다만 보기가 안 좋을 뿐.
[버그베어의 고기 1kg이 소화되었습니다.]
[근력이 0.001 증가합니다.]
거기에 능력치 상승 메시지가 뜨자 상우는 결심했다.
그냥 다 먹이기로.
다만 속도를 높이기 위해 모종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다 썰어버려.’
상우의 통제 하에 나머지 분신들이 버그베어의 사체를 검으로 썰어버리기 시작했다.
분신들이 시전한 돌풍참의 기운이 버그베어의 사체를 갈갈이 찢어발겼다.
고깃조각으로 분해된 사체.
그걸 상우는 검풍을 일으켜 글러트니의 입속으로 보냈다.
‘먹어라.’
그러자 글러트니는 입을 벌리고는 고깃조각을 꾸역꾸역 삼키기 시작했다.
글러트니의 입이 점차 확장되고, 식도도 기이할 정도로 열렸다.
꿀꺽꿀꺽-
그 모습을 보면서 손미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으··· 징그러.”
자기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그 소리를 옆에서 들은 상우가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에고, 보기 안좋으시죠? 잠시 다른 곳 보고 계세요. 금방 끝나요.”
“아, 네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버그베어의 머리만 남기고 모든 사체가 글러트니의 뱃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꺼억-.”
포식을 마친 글러트니는 짧고 굵은 트림을 했다.
상우는 한숨을 내쉬며 손미에게 말했다.
“못 볼 꼴 보여드려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덕분에 독특한 경험하네요.”
“하하,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결계지역으로 가시죠. 안내 부탁드립니다.”
“예. 따라오세요.”
버그베어의 머리를 막내 분신(?)인 14호에게 맡긴 상우 일행은 그렇게 길을 재촉했다.
다행히 결계지역은 버그베어의 서식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 여기부터입니다···.”
그리고 도착했음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던 거였다.
동시에 온몸에 무기력감이 찾아들었다.
“여기··· 움직임이··· 너무··· 느려진··· 거··· 같지··· 않아요···?”
“그러게요···. 사부님은··· 괜찮으세요···?”
-나도··· 마찬가지···구나···.
“일단··· 뒤로··· 물러나죠···.”
화악-
결계지역에 들어섰던 몸을 뒤로 빼자, 몸을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후아- 이게 대체 뭐죠?”
“결계의 힘이에요. 이 지역에 들어서면 저절로 무력해지죠. 그래서 아무도 이쪽으로 가지 않아요.”
손미가 얘기했다.
물론 그녀는 속으로 ‘나이스’를 연발하고 있었다.
‘됐어. 이제 결계지역을 맛보았으니 물러서겠지? 돌아가는 척 하면서 목적지로 방향을 튼다.’
그녀는 이제 계획대로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흠, 그럼 여기부터는 분신들만 보내죠. 잠깐 대기합시다.”
“예? 안 돌아가구요?”
“아, 분신으로 탐사하면 되거든요. 사부님 저 좀 지켜주세요.”
-알았다.
말을 마친 상우가 자리를 잡았다.
그는 주변을 다른 분신들로 경계를 시키고는 패밀리어 스킬을 통해 분신 2호에게 접속했다.
분신은 한 기만 보낼 생각이었다.
‘결계지역으로 가자.’
2호는 이동을 시작했다.
결계지역에 들어서자, 방금 전과 같았던 탈력감이 분신을 사로잡았다.
‘와··· 진짜 모든 게 하기 싫어진다.’
다행히 아프지는 않아서, 탐식의 상징을 얻었을 때 오염지역을 통과할 때에 비하면 좀 수월한 느낌이었다.
그저 전진하라는 명령을 해두고 쳐다만 보고 있으면 되었으니까.
‘2호야, 윈드워크로 빠르게 이동하자.’
역시 명령을 반드시 수행하는 분신은, 결계지역이 선사하는 디버프를 무시하고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길에 결계지역 곳곳에는 몬스터들이 보였는데, 대부분 바닥에 엎드려 자고 있거나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말라비틀어진 몬스터들의 시체와 뼈다귀가 보였다.
‘무력감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굶어죽은 건가···.’
무력감, 탈력감, 의욕상실, 귀찮음.
결계지역은 이 키워드들로 정리할 수 있었다.
즉, ‘나태’와 관련이 있었다.
‘만약 여기가 칠죄종이 있는 곳이 확실하다면··· 분명히 나태의 상징이 있을 거 같다.’
상우는 아마도 나태의 상징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주변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이 결계의 기운이 강해지는 방향으로 가자, 2호야.’
그는 탐식의 상징을 발견했던 방법 그대로, 무력감이 강해지는 곳으로 2호를 유도했다.
2호는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결계지역의 무력감도 분신을 어쩌지는 못했다.
탁, 탁, 타앗-
윈드워크로 인해 분신의 움직임이 지난번보다 훨씬 빨라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곳의 결계가 탐식의 상징 때에 비해 약하기 때문일까.
2호는 금세, 결계의 근원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몬스터였다.
‘이게 뭐지? 나무늘보?’
TV에서 몇 번 보았던 나무늘보의 생김새가 확실했다.
다만, 크기가 상당해서 5~6m 정도는 되어보였다.
가죽도 털이 아닌 매끈매끈하고 딱딱해 보이는 재질이었다.
녀석은 미동도 안하고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얘가 나태의 상징인가? 아니면 나태의 상징을 품은 동물일 수도.’
상우의 판단은 정확했다.
나무늘보처럼 생긴 몬스터는 이 근방에서 자주 출몰하는 갑옷나무늘보였는데, 나태의 상징을 품고 있었다.
잠시 갑옷나무늘보의 주변을 2호로 하여금 돌아보게 한 상우.
‘음, 역시 기운은 나무늘보한테서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 생각을 마친 상우가 2호에게 자신의 최대 기술인 돌풍참의 사용을 주문했다.
그러자 2호의 검에서 녹푸른 기운과 함께 돌풍이 쏘아졌다.
쏴아아아-
콰과과광-!
동시에, 나무늘보의 몸체에 부딪친 돌풍이 튕겨져 나왔다.
튕겨진 돌풍은 이전보다 더욱 거대해진 상태였는데, 그대로 2호의 몸에 직격했다.
‘컥!’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2호는 아무것도 못하고 돌풍에 맞아 튕겨나갔다.
몸이 찢겨져나가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상우는 깨어났다.
“크헉!”
“괜찮으세요?”
-제자야, 무슨 일이냐.
잠시 정신을 못 차리던 상우는 이내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게 뭐였지?’
상우는 어안이 벙벙했다.
고작 나무늘보를 베어버리는데 분신이 역소환될 줄은 몰랐으니까.
그는 자초지종을 사부와 가이드에게 설명했다.
몬스터의 외양을 들은 손미가 뭔가 알았다는 듯 말했다.
“아, 그건 갑옷나무늘보 같은데요?”
“갑옷나무늘보요?”
“예. 그게 공격력은 약한 편인데 엄청 외피가 엄청 단단해서 상대하기 까다롭거든요.”
그리고 나무늘보에게 당했다는 말을 듣자, 레이븐이 턱을 쓰다듬었다.
-음, 나무늘보를 공격했는데 오히려 당했다라. 데미지 반사 계열이 의심되는구나.
“데미지 반사요? 그게 이론상으로 가능한가요?”
물리법칙을 생각했을 때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우리가 모를 뿐, 마나로 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다. 데미지 반사가 없는 건 아니지. 나도 예전에 비슷한 몬스터를 만난 적이 있었다.
“어떻게 상대하셨어요?”
-그냥 더 강한 힘으로 베어버렸지.
“······.”
상우는 한숨을 쉬었다.
‘도움이 안되네.’
그래도 나태의 상징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태의 상징은 광역 디버프 같은 거 걸 수 있는 거 같은데···. 좋은 능력이 분명할 건데 포기할 수 없지.’
상우는 다시 결계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번엔 분신 3기였다.
‘11, 12, 13호야. 아까 2호가 갔던 그대로 가자.’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분신들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갔던 길을 다시 답습하는 거라 도착은 순식간이었다.
상우는 무력감이 싫어서 패밀리어 스킬을 꺼두고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그러다가 분신의 도착했다는 메신저 스킬의 보고를 받은 상우는 바로 12호에게 패밀리어 스킬을 사용했다.
다시 찾아온 탈력감.
이내, 그 갑옷나무늘보가 보였다.
‘13호야, 좀 멀리 떨어져서 돌풍참 사용해봐. 그리고 돌풍참 튕겨 나오면 알아서 피하고.’
그의 명령에 13호는 멀찌감치 떨어져 돌풍참을 사용했다.
쏴아아아-
오러를 품은 회오리가 갑옷나무늘보를 강타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튕겨져 나왔다.
그 방향은 13호가 있는 쪽이었다.
13호는 상우의 명령대로 그 걸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엔 쉽게 피해냈다.
‘진짜 데미지 반사 계열이구나.’
레이븐의 말대로 데미지 반사 쪽으로 보였다.
‘오러 블레이드로 서서히 찌르면 되려나.’
상우는 13호로 하여금 오러 블레이드로 갑옷나무늘보를 찌르게 했다.
까가가가강-
갑옷나무늘보의 몸에는 흠집도 없었다.
오히려 오러 블레이드의 파편이 13호의 몸으로 튕겨지려해서 위험했다.
‘아니, 이걸 어떻게 베냐고.’
상우는 레이븐에게 SOS를 쳤다.
“사부님, 오러 블레이드가 안 통하는데 어떻게 죽이죠?”
-오러 블레이드가 안통한다라···.
레이븐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자야, 그 몬스터가 있는 곳이 어디느냐.
“직접 가시게요···?”
-왠지 베어버릴 수 있을만한 기술이 있는데, 이건 사정거리가 짧구나. 직접 갈 수밖에.
“음, 그럼 제가 4호로 안내시킬게요.”
레이븐은 4호를 따라 결계지역 안으로 들어섰다.
‘기분 나쁜 감각이군.’
어마어마한 탈력감이 레이븐을 사로잡았다.
레이븐은 몸 주변으로 오러 쉴드를 일으켰다.
일종의 호신강기였다.
오러로 주변의 기운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물샐틈없이 막자, 이내 좀 나아졌다.
-기운의 소모가 극심하군. 제자야, 서둘러라.
“예.”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내를 맡은 4호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이븐도 그 뒤를 바로 뒤따랐다.
그러자, 곧 갑옷나무늘보가 나타났다.
‘저거구나.’
레이븐은 눈을 빛냈다.
바닥에 착지한 그는 지체하지 않고, 공격을 준비했다.
오러 쉴드를 유지하느라 마나 소모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바로 베어버리겠다.
“네, 사부님.”
그는 왼손에는 검집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검 손잡이를 잡은 채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 사용하려는 기술은 그조차도 집중을 다 해야만 했다.
위이이이이잉-
검집에 들린 검이 공명을 하며 소리를 냈다.
그리고,
[공간참]
레이븐의 검이 공간 째로 갑옷나무늘보의 몸을 갈랐다.
사아아악-
그와 동시에, 레이븐은 뭔가 잘못 되었음을 느꼈다.
갑옷나무늘보의 몸이 쪼개짐과 동시에, 그 부분에서 무지막지한 기운이 튕겨나왔던 것이다.
‘이런···.’
공간참을 발동한 딜레이로 잠시 몸을 재빨리 반응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충돌할 상황.
그때였다.
촤아악-
핏줄기가 확 퍼졌다.
옆에 있던 분신들이 튕겨져 나온 공격을 대신 맞은 거였다.
다만 그 위력이 대단한지, 분신들이 몸을 겹쳐 막았음에도 3기의 분신들이 순식간에 역소환당했다.
다행히 그 찰나의 틈을 이용해 레이븐은 뒤로 몸을 뺄 수 있었다.
분신이 역소환된 탓인지 레이븐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도, 이내 마나로 흩어져 사라졌다.
“사부님 괜찮으세요?”
남은 분신, 4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레이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괜찮다. 막아줘서 고맙구나.
“아니에요. 혹시나 하고 대기시켰는데, 진짜 데미지 반사가 나타나서 놀랐네요.”
4호를 통해 지켜보고 있던 상우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위험했다. 그래도, 갑옷나무늘보를 처리하는 건 달성했네. 자, 그럼 나태의 상징을 찾아볼까.’
상우는 4호를 움직여 반으로 가라진 사체를 뒤지게 했다.
그러자, 사체 몸통 쪽에서 검은 구슬이 박혀있는 게 발견되었다.
‘찾았다.’
상우는 4호로 하여금 그 구슬을 집게 하였다.
그러자,
[시스템 미등록 물체 발견.]
[시스템 오류 발생.]
[에러 코드 XYAS212FL···TIOF.]
[미확인 물체를 식별합니다.]
[식별 중···.] [식별 중···.]
[식별···.]
시스템 메시지가 촤르륵 떠올랐다.
‘그때와 똑같다.’
탐식의 상징을 얻었을 때와 똑같은 메시지들이었다.
검은 구슬은 연기처럼 흩어지더니 4호의 몸을 휘감았다.
스스스스스스-
그리곤 그 기운은 4호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탐식의 상징을 얻었을 때처럼,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져나가는 듯한 고통이 4호의 몸에서 일어났다.
“끄으으으윽···.”
그 고통에 상우는 몸을 뒤틀며 발작을 일으켰다.
옆에 있던 손미는 당황했다.
“상우 씨, 괜찮으세요?”
“커흐윽··· 괘, 괜찮아요.”
상우는 가까스로 패밀리어 스킬을 종료하고는 대답했다.
고통에서 해방되었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상우를 보면서 손미는 얼떨떨해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 사이에도 4호는 계속 변화하고 있었다.
모든 능력치가 4.44씩 증가했고,
우드득- 뚜둑-
근골이 더 강하게 변모해갔다.
그리고 마침내.
[······.]
[식별 중···.]
[식별 중···.]
[식별 완료.]
[‘나태의 상징’을 획득하였습니다.]
[나태가 사용자를 식별합니다.]
[오류 발생. 사용자를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오류 발생. 사용자를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오류 발생. 사용자를 확인할······.]
[강제 인스톨 진행 중···.]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나태의 상징을 얻을 수 있었다.
4호의 몸은 극적으로 변해 있었다.
명치 오른쪽에는 얼음 결정이 박힌 안개형상의 문신이 자리 잡았고, 등에는 노려보는 곰의 얼굴 문신이 새겨졌다.
그리고 나태의 기운은 내장기관 중에 간이 위치한 쪽에 완전히 자리 잡았다.
[패밀리어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분신 강화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분신술 스킬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나태의 분신이 생성되었습니다.]
[분신술 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탐식의 상징을 얻었을 때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한 뒤에야, 상우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고통에서 해방된 상우는 스킬창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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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술(Lv.15)/시전형]: 기운을 소모하여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분신을 소환합니다. 레벨에 따라 소환 가능한 개체수가 늘어납니다.
-현재 소환 가능한 개체수: 15
-재사용 대기 시간: 19시간 15분
-본체의 장비 1개를 복사합니다. -특수 분신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탐식의 분신, 글러트니Gluttony》
《나태의 분신, 슬로스Slo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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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겼다.’
특수분신으로 나태의 분신 항목이 생성되어 있었다.
상우는 바로 상세항목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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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의 분신, 슬로스Sloth》
나태에 잠식되어버린 분신입니다.
모든 걸 무력화시키는 ‘나태’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을수록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가만히 있을수록 기운이 축적됩니다.
축적된 기운으로 카운터 어택을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그저스트 필드를 발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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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도 능력치가 증가한다고?’
게다가 상우가 곤란을 겪었던 데미지 반사 능력도 ‘카운터 어택’이라는 이름으로 갖고 있는 거 같았다.
거기에 주변을 무력화시켰던 걸로 보이는 이그저스트 필드까지.
‘진짜 좋잖아. 개사기다.’
강해지는 걸 누가 싫어할까.
또 한 번 성장한 상우는 흐뭇해졌다.
‘근데 얘도 글러트니처럼 이상하려나.’
글러트니와 감각을 공유하면 어마어마한 허기짐이 그를 괴롭혔으니까.
왠지 나태의 분신, 슬로스도 비슷할 거 같았다.
‘그래, 어떤 느낌인지 한 번 경험이나 해보자.’
그래서 상우는 4호, 아니 슬로스에게 패밀리어 스킬을 사용했다.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러자 무력감과 탈력감, 피곤함이 순식간에 그를 사로잡았다.
동시에 슬로스의 시야로 보이는 건 정글의 수풀림과 하늘이었다.
어느새 슬로스는 바닥에 누워있는 상태였던 거였다.
‘··· 졸리다. 아, 이러면 안돼. 해제.’
가까스로 패밀리어 스킬을 종료한 상우.
‘얘랑 동기화했다가는, 까딱 잘못하다가 나도 영원히 잠들겠네. 조심해야겠다.’
상우는 주의할 점을 깨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가이드님, 끝났네요. 가실까요?”
“네? 근데 결계는요?”
“이제 괜찮아요.”
잠깐 점검을 마친 상우는 손미와 나머지 분신들을 데리고 곧장 레이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태의 상징이 회수되면서 결계지역이 사라졌기에 움직이는 데 무리가 없었다.
“결계지역이 없어졌네요. 상우 씨,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하하, 사부님이 결계의 핵을 파괴했거든요.”
“핵이요?”
“그냥 그렇게 알아두시면 됩니다.”
대충 얼버무린 상우.
이제 걸리는 것도 없겠다, 빠르게 이동했더니 금세 레이븐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갑옷나무늘보의 사체에 걸터앉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사부님, 고생하셨습니다.”
-별 거 아니었다. 그나저나, 저 분신은 왜 저러는 것이냐.
레이븐이 바닥에 누워있는 슬로스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상우가 손미를 의식해서 메신저 스킬을 사용하여 답했다.
-저게 이제 나태의 상징을 얻어서 그래요.
-흠, 칠죄종이라는 건 매우 이상하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사부의 궁금증을 해결해준 상우는 곧장 일행을 이끌었다.
“일단 이동하실까요? 던전 빨리 나가서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죠. 배고픕니다.”
-좋구나. 가자, 제자야.
“네. 가이드님, 안내 좀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출구 안내해드릴게요. 따라오세요.”
손미는 등을 돌려 앞서 걸어나갔다.
그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목적지로 향하는구나.’
그녀는 출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상우 일행을 인도할 예정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