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192
1192화. 혈아성(血鴉城)
*
대략 한 시진 후, 파공음이 들리고 기다란 빛줄기들이 날아들어 다양한 복색의 남녀 수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전부 흐릿한 검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마존 대인들을 뵈옵니다!”
마족 거한과 노인이 무리의 수행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화들짝 놀라 대례를 올렸다. 마계에 강자가 많다지만 우연히 이렇게 많은 마존급 수사들을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한 형, 방금 들은 말이 사실입니까? 전방에 또 다른 강력한 마조가 터졌다고요. 기이한 독을 지닌 접미수 떼들이라니…….”
농 가 노조는 연허기 마족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립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두 수사들에게 들은 내용이니 사실일 겁니다.”
“그렇다면 일정에 차질이 생기겠네요. 십만 마리, 아니 수십만 마리만 되어도 죽이고 길을 뚫겠지만 접미수 떼로 이루어진 마조라면 그대로 돌파하기는 무리일 겁니다.”
천추 성녀가 작게 탄식했다.
“조사를 해보긴 해야겠습니다. 휘 장로, 이 일은 수사께서 맡아주셔야겠어요.”
침음하던 농 가 노조가 흑포 사내를 돌아보았다.
“알겠습니다.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을 겁니다.”
휘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고 검은빛으로 둘러싸여 휙 날아갔다.
“이제 노부가 몇 가지 물을 것이 있으니 너희는 사실대로 답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착실히 답을 한다면 상을 내릴 것이고 조금이라도 거짓을 고한다면 어찌 될지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드디어 두 마족에게 시선을 돌린 농 가 노조가 입을 열었다.
“무엇이든 하문하시지요. 절대 거짓을 고하지 않겠습니다!”
마족 거한이 흠칫 놀라 재빨리 답했다. 마족 노인도 겁을 먹고 아주 순종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혈아성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지? 그곳 외에 인근에 다른 성은 없더냐? 또 너희 성주의 이름은 무엇이고 수행은 어떠하더냐?”
농 가 노조가 한 번에 여러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나 전부 기밀도 아니고 속일 이유가 없는 질문들이라 마족 거한이 안심하고 답했다.
“선배님께 아룁니다! 혈아성은 이곳에서 십만 리 정도 떨어져 있고 인근에 다른 성은 야수성(夜修城) 뿐인데 아무리 서둘러 가도 두 달은 걸리는 곳에 있습니다. 저희 성주님은 병천인 대인으로 중계 마존의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지금 혈아성의 상황은 어떠하지? 혈아성에 다른 성으로 통하는 전송진법이나 동쪽의 마조를 피해 갈만한 다른 수단은 없더냐?”
“저희 성은 접미수의 습격을 대비해 경비를 삼엄히 하고 있습니다. 허나 그리 크지 않은 성이라 전송진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마조를 피해 다른 방향으로 가셔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십여 일을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낭비하셔야 합니다.”
“시간은 상관없으니 돌아가는 길에 대해 설명해 보거라. 그리고 인근 지도를 갖고 있겠지? 노부가 복제를 해야겠으니 꺼내 보아라.”
농 가 노조가 무표정하게 요구했다.
“예, 선배님! 동쪽 마족의 영향을 받는 구역이 꽤 넓어 그것을 피해 가려면 남쪽의 고엽삼림으로 가시거나 북쪽의 초원을 통과…….”
마족 거한은 열심히 설명하고 품에서 검은 수정돌을 꺼내 건넸다. 그것을 받은 농가 노조도 하얀 수정돌을 꺼내 내용을 복제했다. 수정돌은 영계의 옥간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록용 법기로 법력에 마기를 섞어야 이용할 수 있었다.
마공을 수행은 한립은 물론 위마주를 이용한 다른 수사들도 무리 없이 수정돌을 사용했다. 마족의 의심을 살까 걱정되어 그들은 여러 가지 마계의 품을 나눠 갖고 있었던 것이다.
농 가 노조는 지도 복제를 마치고 수정돌을 꺼내 다른 이들에게 건넸다. 이에 천추 성녀 등도 수정돌을 꺼내 복제를 마쳤다.
주변 지형에 대한 상세한 지도가 생겼으니 그들 스스로 마조를 피해갈 경로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립을 포함한 수사들은 오래 살펴보지 않아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수사, 동쪽에 정말 접미수 마조가 터졌다면 돌아가는 것보다 인근에서 잠시 체류하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십여 일이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고요. 혈아성은 만일을 대비해 가지 않는 것으로 하지요.”
한립의 귓가에 농 가 노조의 전음이 들려왔다. 합체 후기의 수행을 지닌 그는 농 가 노조가 가장 먼저 상의해야할 대상 중 하나였다.
“제 생각에도 겨우 십여 일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 마조에 뛰어드는 것은 현명한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하지만 혈아성은 한 번 다녀오는 것이 어떨지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농 형께서 성에 들어가지 않으시려는 것은 신분이 들킬까 염려해서가 아닙니까. 하지만 전송진도 없는 작은 성에 강력한 금제가 있을 리도 없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게다가 마계에서 앞으로 수십 년을 머물지도 모르는데 어차피 마족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겠지요!
위마주로 기운은 숨긴다고 해도 겨우 영계에서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 행동이나 말에는 허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한 마계에 세령지와 정령련 외에 분명 영계에서는 구할 수 없는 다른 영약들이 있을 텐데 알아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한립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설명했다.
“한 형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 천추 수사 쪽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물론 그러셔야지요. 허나 제 생각에는 천추 선자를 비롯한 영족 수사들이 저보다 더 혈아성에 가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한립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몇몇 영족들은 진귀한 재료들을 꼭 필요로 하고 그 중 마계에서 대량으로 구할 수 있는 것들도 있을 테니까요.”
순간 움찔한 농 가 노조가 웃으며 답하고 그와의 대화를 마쳤다. 농 가 노조는 곧바로 천추 성녀에게 전음을 보냈고 그녀는 잠시 의아한 얼굴을 했지만 곧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천추 성녀는 다른 성령들과 몇 마디 나누고는 농 가 노조에게 답을 주었다. 영족인들을 미리 결정을 내려놓은 듯했다.
농 가 노조는 한립에게 동쪽 마조를 피해 잠시 혈아성에서 지내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이것을 다른 수사들에게도 공표했다. 엽 수사와 임 가 산발사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마족 거한과 마족 노인은 그들이 논의하는 중임을 눈치채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서있었다. 이렇게 많은 ‘마존 대인’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겁 없이 나섰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었다.
반나절 후, 하늘 저편에서 파공음이 들리고 검은 빛에 휩싸인 흑포 사내가 돌아왔다.
“휘 장로, 잘 다녀오셨습니까. 마조는 확인하셨는지요?”
“농 형, 동쪽 지역에 접미수 떼가 가득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부끄럽게도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고 그저 멀리서 살펴본 후 바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흑포 사내의 말을 듣던 농 가 노조가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푸푹!
금빛 두 개가 바람처럼 날아가 두 마족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상상 못한 마족들은 픽 쓰러지고 한립을 제외한 다른 수사들도 놀란 눈빛을 보냈다.
“왜 그러신 겁니까? 혈아성까지 길안내를 시키려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늙은 유생 장형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혈아성의 위치를 이미 아는데 길안내가 필요하겠습니까. 노부도 일부러 이들을 죽이지는 않고 기절만 시켜 두었습니다.”
“아, 수사의 말씀은…….”
“맞습니다. 저들을 죽이면 혈아성 성주의 주의를 끌 수도 있을 테니까요. 겨우 중계 마존이라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습니까. 봉혼대법(封魂大法)으로 마족들의 기억을 잠시 봉인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평범한 마족으로 위장해 혈아성으로 잠입하면 될 겁니다.”
농 가 노조는 계획한 바를 말했다.
“괜찮은 생각이기는 한데 봉혼대법으로 될까요? 나중에 혈아성 마존에게 무언가 허점을 보이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군요.”
이번에는 임 가 산발사내가 걱정스레 말했다.
“허허, 상고시대의 실력자가 개발한 비술이라 마족 성조가 직접 조사하지 않는 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겁니다.”
농 가 노조가 자신 있게 웃으며 답했다. 그의 대답에 다른 이들도 마음을 놓았고 농 가 노조는 쓰러진 마족들을 끌어와 입에서 보라색 빛을 뿜었다.
* * *
몇 시진 후, 그들은 핏빛의 새빨간 성벽과 마주했다.
“듣던 대로 그리 규모가 크기는 않습니다.”
“허허, 규모는 작지만 혈광정 광맥 주변의 암석을 깎아 성벽을 만들어 술법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술법 공격을 가하면 위력이 크게 떨어지겠지요.”
“그렇다면 접미수 떼를 방어하는데도 도움이 될 테니 잠시 머물러 가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겠습니다.”
옆에 있던 농 가 노조가 담담히 답하고 엽 수사도 빙긋 웃음을 지었다.
“마족들의 기억을 봉인하며 대충 훑어보니 주변에서 자주 마조가 폭발하기는 하지만 혈아성이 공격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겉모습처럼 그리 만만한 성은 아니란 소리겠지요. 하지만 확실히 금제는 없으니까 화신, 연허 급으로 수행을 숨기고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농 가 노조가 모두를 향해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일행은 마기를 불러내 모습을 가리고 핏빛 성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마기를 흩고 한립 등은 반달 형태의 성문 앞에 내려섰다. 30여 명의 녹색 갑옷을 걸친 마족 병사들이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이에 농 가 노조가 코웃음을 치며 연허 급의 방대한 기운을 내뿜자 연허기 이하의 마족 병사들은 겁을 먹고 공손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화신급 병사가 서둘러 예를 취하고는 몇 가지 간단히 묻고는 수하들을 시켜 성문을 열어 주었다.
한립은 성문을 지나는 순간 남색빛이 어른거리는 눈으로 성문에 새겨진 진법을 살폈다. 그러나 성문의 진법은 아주 평범한 것이라 그들이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높고 낮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대부분 검은색 아니면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가끔 다른 색깔로 된 건물은 임시 건물 같았다.
그 건물들 사이로 요수 마차 두세 대가 동시에 지나갈 만한 길이 뚫려 있었다. 영계의 거대성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지만 사방이 성벽으로 막힌 커다란 마을 정도로 보였다.
이곳은 금공 금제가 발동되어 있어 고공에는 순찰을 도는 병사들 외에는 다른 마족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립 일행은 길을 따라가며 혈아성이 인산인해를 이루지는 않아도 꽤 북적인다는 것을 알았다.
다양한 외모를 지닌 마족들이 거리를 활보했고 그 중에는 마수처럼 흉측하게 생긴 마족도, 인족과 똑같이 생긴 마족도 있었다.
거리의 건물들은 열에 아홉은 상점이었고 나머지는 객잔 및 다른 용도의 건물들이었다. 수많은 마족들이 바삐 건물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들의 수행은 그다지 약하지 않아 원영기와 결단기 수사를 위주로 화신기 수사도 약간 보였다. 연허기는 가끔 두세 명을 만날까 말까였는데 대부분 초기 수행을 지니고 있었다.
…….
한동안 걷다보니 성 한 쪽에 작은 돌산이 나타났다. 산 주변을 석탑과 비슷한 양식의 회백색 건축물들이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었고 그 주위를 갑옷을 입은 정예병들이 지키고 서있었다.
바로 그 돌산 중턱의 검붉은 석전(石殿)에 ‘병천인’이라는 마존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때 가장 앞에서 걷던 농 가 노조가 십자로를 앞두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럼 여기서 흩어질까요? 대부분 홀로 움직이시는 걸 좋아하는 걸로 압니다. 접미수 마조가 끝나는 대로 모여서 가던 길을 가지요. 어차피 성이 그다지 크지도 않아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을 취할 수도 있을 테고요.”
“그것도 좋겠습니다. 안 그래도 오다 관심이 가는 물건을 보아둔 것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예상을 깨고 엽 수사가 가장 먼저 찬성을 표했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주저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천추 성녀와 그녀의 성령 일행들도 시선을 마주치고 무리와 떨어져 걸어갔다. 그들은 함께 행동할 모양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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