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위기
오매가 죽는 동안 한립은 방에 앉아 자신의 몸과 법기 그리고 부적 등을 점검하고 있었다. 준비를 마친 그는 창밖의 달빛을 고요히 바라보았다.
“지금쯤이면 발작이 시작됐겠어.”
중얼거리며 그녀의 말로를 짐작한 한립은 방을 나와 청음원으로 향했다.
사실 몽산오우를 해독시켜 줄 때부터 막내가 거슬렸었다. 그녀의 몸엔 다른 이들과 동일한 종류의 독이 심어져 있었으나 극소량에 불과해 발작이 일어나도 죽지는 않을 정도였다.
반대로 주술을 풀 때는 그녀 때문에 가장 고생을 해야 했다. 다른 사람과 달리 오래 전에 심어진 주술이라 의식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심이 생겼으면 방어를 해야 했다. 한립은 주술을 풀어주며 동시에 간단한 조치를 취해 두었다.
그것은 간단한 금제로 그녀가 복용한 해약의 남은 약성을 잠시 동안 체내에 숨기는 것이었다. 한립이 원할 때 언제든 약성이 폭발할 수 있게 말이다. 몽산오우가 복용한 단약은 무상단(無常丹)이라 불리는 해독용 명약이었으나 특수한 처리를 거치면 독약으로도 쓰일 수 있었다. 그가 마도인들에게 얻은 전리품 중 하나였다.
오늘 밤 몰래 몽산오우의 나머지 네 사람을 불러내 어린 여인의 수작을 직접 보게 했을 때 그녀의 법력을 봉인하려 점혈을 했었다.
이 점혈은 그녀의 법력을 묶어 놓는 작용 외에도 체내에 숨겨둔 독성을 발작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한립이 금제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은 뒤 핏덩이로 변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한립이 직접 처리를 하든 몽산사우에게 맡기든 그녀가 달아나 정보를 흘리는 것만은 절대 막아야 했다.
이런 금제를 걸어 둘 때만 해도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것이었는데 정말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그녀가 얌전히 잡혀만 있었다면 발작을 풀어 줄 예정이었으니 운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대비가 있었기에 노인이 달려와 고했을 때도 차분한 모습을 유지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이 실수든 고의든 중요한 인질을 풀어줬으니 정보가 샐 염려는 없으면서 몽산사우(夢山四友)에게 마음을 빚을 지게 할 수 있었다. 이후 그들을 부리기에 유리한 고점을 차지한 것이다.
청음원에 도착하니 네 사람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하지!”
방에 들어선 한립은 간결하게 일의 시작을 알렸다.
형 왕부는 밤에도 거대한 괴수처럼 위압감을 뿜어냈다. 그러나 은신술을 펼친 한립 등은 형 왕부의 담을 넘어 들어갔다.
오늘 이곳은 오 선사가 실종 된 일로 하루 종일 발칵 뒤집어져 있었으나 밤이 깊은 만큼 왕부를 지키는 호위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꿈나라에 빠져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한립은 처음으로 마주친 호위를 잡아다 의식을 통제하는 공신술을(控神術)을 걸어 왕 총관과 소 왕야의 거처를 알아냈다.
“둘 중 소왕야의 수행이 낮으니 그를 먼저 치고 왕 총관을 처리한다.”
이미 흑살교의 인물들이 형 왕부에 잠입해 있다는 사실을 듣고 왔기에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수도자들에겐 소왕야가 황실 종친이라는 사실 보다는 흑살교의 핵심 제자라는 게 더 두렵게 다가왔다. 이어서 소 왕야가 머무는 3층의 작은 누각 앞에 당도했다.
그러자 이곳을 지키는 호위들은 몽산사우들이 바로 기절시켜버렸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하는 모습에 한립은 속으로 상당히 흡족했다.
‘수하를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
호위의 말에 따르면 소왕야는 3층에 머물고 있으니 한립만이 그곳을 살피고 나머지는 도처에 매복해 있도록 했다.
교활한 소왕야가 한립의 손에서 벗어나 달아나려 한다면 숨어있던 이들이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당연히 왕 총관이 미리 눈치를 챌까 봐 법력을 아낌없이 쏟아 초대형 격음결계를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준비를 마친 한립은 홀연히 3층으로 날아올라 사라졌다.
몽산사우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가 사라진 지점을 지켜보는데 사람 하나가 재빨리 뛰쳐나왔다. 놀라 몸을 움직이려던 그들은 그 사람이 한립이란 사실을 알고는 긴장을 풀었다.
그러나 한 선배가 이리 빨리 일을 끝낸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어두운 얼굴로 땅에 내려선 한립은 모두를 다시 불러 모았다.
“환술로 만든 인형뿐 소왕야는 없었다. 아마 출타를 한 듯하구나.”
“오매가 정보를 흘린 걸까요? 아니면 함정?”
“그건 아닐 거다. 상대가 함정을 팠다면 우리가 막 도착했을 때 덮쳤겠지. 그때가 더 무방비 상태일 테니까.”
중년 여인이 걱정을 드러내자 한립이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다른 이들도 그의 말에 조금 안심하는 기색이었으나 도처를 살피며 이상한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그럼 이제 어찌 할까요? 일단 철수했다 다시 날을 잡으실 생각이십니까?”
둘째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일단 왕 총관 거처로 간다. 그마저 없다면 철수할 수밖에 없겠지.”
한립의 말에 네 사람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은 법결을 외워 결계를 거둔 뒤 왕부의 다른 쪽으로 스며들었고 네 사람도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왕 총관은 소왕야처럼 3층 누각 같은 곳에 머물진 않았으나 혼자서 방이 세 개나 딸린 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방들 중 하나가 아직 밝은 것이 그가 아직 잠들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한립의 눈썹이 치솟았다.
일단 몽산사우는 은밀히 주변을 경계하게 하고 자신은 새로 얻은 무명의 공법을 운용해 영력을 숨겼다. 이젠 누가 보더라도 범인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이어 불이 켜진 방 담벼락으로 이동해 귀를 가져다 대었다. 왕 총관이 준 기이한 불안감 때문에 감히 의식을 터뜨려 안을 살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안색이 변한 그가 다른 이들이 몸을 숨긴 거대한 꽃나무 뒤에서 나타났다.
네 사람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는데 귓가에서 한립의 전음이 울려 퍼졌다.
“소왕야가 함께 있으니 조심하거라. 상황을 지켜보다 움직인다.”
긴장한 이들이 더욱 숨을 죽이고 방문만을 쳐다보았다.
‘끼익’
문이 열리고 옅은 녹색 비단옷을 입은 청년이 걸어 나왔다. 바로 형 왕부의 소왕야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방에 있는 이와 몇 마디를 나누더니 뜰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방문이 자동으로 닫힌 후에 등불도 꺼졌다. 왕 총관도 휴식을 취하려는 모양이었다.
소왕야를 주시하는 한립은 끊임없이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영력이라곤 없는 몸이었는데 그만 나타나면 잔잔히 퍼지는 위기감을 어찌 설명하겠는가?
왕부 안이라 그런지 소왕야는 정말 범인처럼 하늘에 뜬 달도 보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숨을 내쉰 그가 거처로 직행하지 않고 왕 총관의 뜰을 거닐기 시작했다. 만면에 근심이 가득한 것이 무슨 생각할 거리라도 있는 것 같았다.
하는 꼴로 보아 한동안은 이곳에 머물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몽산사우 역시 숨죽이고 이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지금 그를 공격했다 왕 총관이 깨어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소왕야가 거처로 돌아가길 기다려 한 명씩 처리하는 것이다.
모두가 수도자였기에 기본적으로 인기심이 강했고 은신술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밥 한끼는 배불리 먹었을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소왕야가 뜰을 빠져나갈 듯했다.
매복해 있던 이들에겐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광경은 모두의 예상을 벗어났다.
소왕야가 왕 총관의 뜰을 벗어나자마자 환술 비슷한 것을 부려 의복을 불러내더니 금세 온몸을 핏빛의 의복과 복면으로 감쌌다. 바로 몽산오우를 감금하고 이상한 명을 내리던 그 모습과 일치했다. 몽산사우는 복수심에 피가 끌어 오르는 듯 했으나 함부로 나서지는 않았다.
환복을 한 소왕야는 전신에서 살기가 흘렀으며 법력의 파동도 드러났다. 연기기 십일성은 된 자였다. 그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지 바로 핏빛의 기다란 법기를 꺼내 타고는 하늘을 날아올랐다.
한립의 눈이 차갑게 빛났고 동시에 다른 네 사람의 귀에 그의 명이 떨어졌다.
“쫓거라. 어딜 가려는 것이든 도착하기 전에 잡아야 한다.”
그의 명에 따라 몽산사우가 지체 없이 법기를 타고 그를 쫓았다. 왕 총관의 거처를 바라본 한립은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엔 신풍주를 타고 따라갔다.
신풍주의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그들이 남긴 영기의 흔적을 쫓아 금세 버려진 사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몽산사우는 공중에 떠서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미간을 좁힌 한립이 조용히 물었다.
“귀신같은 놈이 우릴 발견했는지 다 무너져 가는 절간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절간 주위에 결계가 쳐져 있어 침입하려다가 곤욕을 치르고는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또 안에 매복이 있을 수도 있고요.”
한립의 언짢은 기색을 읽은 노인이 서둘러 상황을 설명했다.
‘결계!’
금제를 걸어 결계가 형성돼있다는 말엔 한립도 골치가 아파졌다.
진법에 대해서는 그도 아는 바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몽산사우를 앞에 두고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내가 살펴보마!”
천안술을 개방한 한립은 자세히 사찰을 관찰했다. 도처에 옅은 영기의 파동이 느껴졌으나 도리어 한립은 한숨을 돌렸다.
결계는 아주 기본적인 흙의 소성을 띠는 작은 규모의 진법인 낙석진(落石陣)에 불과했던 것이다. 산수나 연기기 수사라면 몰라도 한립 같은 축기기 수사는 강제로 부수면 그만이었다.
연구를 마친 그가 저물대를 뒤적이더니 두 팔을 뻗었다. 그러자 네 개의 꼭두각시 요수들이 나타났다. 이미 꼭두각시들에게 당한 일이 있던 몽산사우들은 무의식중에 뒷걸음질 쳤다.
그들의 두려운 표정에 아랑곳 않고 괴수들은 입을 벌려 사발 굵기의 광선을 분출했다. 빛기둥이 들이닥치자 절간을 감싼 노란 보호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호막 표면과 빛기둥이 충돌하자 노란 빛이 넘실거리며 공격을 막아냈다. 이에 교룡의 발톱으로 만든 오룡탈(烏龍奪) 한 쌍이 보호막으로 날아갔다.
빛기둥에다 오룡탈까지 더 해지자 연속되는 공격엔 보호막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펑!’
맑은 파열음이 울리며 보호막이 완전히 붕괴해 버렸고 노란 빛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광경에 몽산사우 마저 마른 침을 삼켰다.
진법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무력을 이용해 보호막을 단숨에 붕괴 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립의 공격력이 보호막의 방어력을 몇 배나 상회할 때만 가능한 결과였다. 일반적인 공격은 금제의 미묘한 작용으로 보호막에 큰 손상을 입히기 어려웠다.
“가거라. 절대 도망치게 해선 안 된다.”
한립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냉랭했다.
도리로나 실력으로나 이미 그에게 완전히 복종하게 된 네 사람이 움직이려는데 그들 뒤에서 누군가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큭크크. 날 찾는 게냐? 저 사찰은 임시 거점으로 비어있는데 헛고생만 했구나.”
놀란 네 사람이 간신히 법기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고개를 돌렸다.
한립 일행의 등 뒤에 그들이 쫓고 있던 소왕야가 그와 동일한 차림을 한 마른 사내와 함께 있었다. 게다가 열댓 명은 될 듯한 흑의의 복면인들도 보였는데 이전의 몽산사우처럼 흑살교의 통제를 받는 외부제자들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소왕야 뒤에 서 있는 대머리 거한이었다.
소왕야처럼 핏빛의 의복을 입은 그는 살기가 희번덕거리는 탐욕스런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뜻밖에도 한립과 같은 축기기 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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