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고 선생의 사업
한립은 곡혼에게 문을 지키라 하고 자신은 거처의 의자에 앉았다. 왕장청은 경건한 자세로 그의 옆에 서 있을 뿐 함부로 앉지 않았다. 그 불편한 모습에 한립이 미소를 띠며 온화하게 말했다.
“왕 선생 그리 예의 차릴 것 없으니 앉으시게. 아니면 내가 가르침이라도 청하며 예를 올려야 할까?”
왕장청은 한립의 말에 고개를 내저으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곳에 온지 얼마 안 돼 물정을 모르니 이곳의 지형과 풍속 그리고 가능하다면 수도자들에 대해 설명해 주게. 잘만 이야기해 준다면 꼭 고마움을 표하지.”
왕장청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선사께서 외지에서 오셨다니 이곳이 난성해(亂星海)의 해역이란 것은 아실 것입니다. 이곳은 난성해의 서남쪽으로 인근에 미성도(尾星島), 괴성도(魁星島), 상성도(桑星島) 등 세 개의 큰 섬과 중소 규모의 섬들이 수십 개가 있어 선사님들과 범인이 어울려 살고 있지요.
저희 해역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각 섬에서 법력이 가장 강한 서사가 도주(島主)가 되어 섬을 수호할 책임을 집니다. 다른 선사들은 섬에 머물며 일정한 임무를 맡아 하고 도주가 내리는 영석을 받습니다.
만일 섬에 머물며 어떤 임무도 수행하고 싶지 않다면 반대로 도주에게 매년 영석을 상납하면 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며 왕장청의 얼굴에 선망하는 기색이 어렸다.
왕장청이 말을 이었다.
“각 섬에 사는 이 늙은이 같은 범인들은 노역을 하거나 영석을 상납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섬들은 선사님들이 선술을 베풀어 요수나 천풍(天風)의 기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범인들이 먼 곳으로 항해를 할 때는 대부분 선사 한두 분을 청해 함께 하지요. 이렇게 해야 바다에서 요수를 마주쳐도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물론 이렇게 청할 수 있는 선사님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신분을 가진 분들입니다.”
“천풍?”
요수는 알겠으나 천풍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선사님께서 이전에 계시던 곳에선 천풍의 습격이 없으셨습니까?”
“내가 수련하던 지방에선 천풍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떤 것이기에 요수와 나란히 평하는 것이지?”
한립의 말에 왕정청은 의혹을 지우지 못했으나 그래도 착실히 설명을 했다.
“천풍(天風), 요수(妖獸), 귀무(鬼霧) 이 세 가지를 난성해의 삼대 재앙이라 부릅니다. 요수는 선사님께서 더욱 잘 아시겠지요. 바다 속 요수의 대부분은 몸체가 거대하고 물 속성 요술을 부려 범인들은 어찌할 방법이 없고 선사님들만이 그것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천풍은 매년 두 번씩 난성해의 한쪽 끝에서 불어와 다른 쪽 끝으로 사라지는 싹쓸바람입니다.
천풍이 지나는 곳의 파도는 하늘을 뒤덮을 듯 하고 집은 무너지고 사람은 죽지요.
섬 사람들은 선술의 보호 없이는 큰 화를 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듣기론 선사님들도 천풍에 휩쓸리면 빠져 나오기 어려워 목숨을 잃고는 한다더군요.”
왕장청의 얼굴에 두려움이 어렸지만 한립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럼 귀무는 어떤 재앙이더냐?”
한립의 질문에 노인은 상대가 바다 사정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을 확신했다. 삼대 재앙 중 가장 신비한 귀무도 모르다니 어디서 살다 온 선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육지에서 온 것인가? 허나 난성해 부근엔 해역만이 펼쳐져 있을 뿐 어디 대륙이 있단 말인가?
이상한 것은 이상한 것이고 당장 한립의 물음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노인은 설명을 해주었다.
“귀무는 난성해 삼대 재앙 중 가장 이상하고 또 두려운 재난입니다. 듣기로는 해수면에 떠있는 검은 안개라던데 범인은 물론이고 선사 대인들도 귀무를 마주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더군요. 검은 안개가 살아있는 것을 덮치면 절대 살려 보내지 않는다 합니다.
그래도 한 곳에서 나타날 뿐이고 규모가 있는 섬 근처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삼대 재앙 중 살상자의 수는 가장 적습니다.”
한립은 왕 노인의 말을 정리하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여긴 무슨 괴이한 지역인거지? 노인의 말에 따르면 작은 섬에서는 홀로 수행 할 수 없잖아. 그랬다가 천풍이나 귀무 등과 마주하면 죽은 목숨일 테니.
노인은 한립의 유쾌하지 못한 표정에 좌불안석이었다.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인지 걱정이 된 것이다. 왕 노인의 심장이 콩닥거리는 와중에 한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고 선생은 어째서 날 괴성도로 데리고 가려 한 것이지? 또 이 선박은 어디로 가는 중이고?”
그의 얼굴에선 어떤 기색도 읽어 낼 수 없었다. 한립의 무표정한 얼굴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노인은 어쩔 수 없이 조금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 모습에 한립이 다시 온화하게 말했다.
“걱정 말고 말해 보게. 나도 아무런 사정도 파악하지 않고 고 선생의 요구를 수락할 수는 없지 않겠나? 사실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줄 수도 있네.”
왕장청은 한립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솔직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사 대인 절대 이 노인네를 탓하지 말아 주십시오. 속이려던 것이 아니라 그저 묻지 않으셔서 이제껏 말씀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 말에 한립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고 노인도 눈치는 있는지 바로 어찌된 영문인지 해명했다.
알고 보니 이 선박은 물건을 운반해 거래를 마치고 괴성도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배의 주인인 고 선생은 괴성도 토박이는 아니었고 그 인근 섬에서 태어나 장사로 집안을 일으킨 인물로 괴성도로 근거지를 옮겼다 한다.
정말 돈이 되는 장사는 괴성도 정도 되는 대도(大島)가 다른 큰 섬과 벌이는 교역이었는데 이런 거래는 본 섬 사람만이 할 수 있었다.
괴성도 같은 주도(主島)의 범인들은 그 섬에 부속된 작은 섬의 사람들과는 신분이 달랐던 것이다.
원래 주변 섬들을 넘나들며 작은 장사를 하던 고 선생은 근거지를 괴성도로 옮기며 사업을 확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가를 데리고 기반을 옮긴 후에야 대도끼리의 장거리 무역에 아무나 끼어들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섬에 사는 선사들이 몫을 나눠 오직 10개의 집안만이 거래를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10개 집안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3년 마다 거행되는 법술 대회를 통해 선발되었다.
거래에 끼고 싶은 범인은 선사 한 명을 청해 원래 교역권을 지닌 집안의 선사에게 도전을 하고 그를 이겨야만 10대 집안에 들 수 있었다.
고 선생은 이 소식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단거리 교역만 하느라 요수를 마주칠 일이 없어 안면이 있는 선사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고 선생은 큰돈을 풀어 천천히 수사를 찾아보려 했다. 그러나 이미 그 소식을 접했을 대는 3년에 한번뿐인 대결이 코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괴성도에 선사가 많다 하더라도 오만하기 그지없는 그들이 범인의 초청에 쉽게 응할 리가 없었다. 대부분이 범인과 친인척 관계에 있거나 인연이 있는 경우에만 도움을 주곤 했다.
게다가 범인들의 요청에 나서는 이들도 이런 대회는 다른 10명의 선사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나서길꺼려 더욱 적당한 선사를 찾기가 어렵다.
어쩔 수 없이 교역을 할 겸 자신이 태어난 섬에 들려 먼 친척관계에 있는 수사님이라도 찾아가 부탁을 하려 했는데 가보니 이미 출타해 원행을 떠났다는 것이다.
고 선생은 정말 눈앞이 캄캄해진 찰나였다.
그런 그 앞에 한립이 떨어져 내렸으니 사방팔방으로 선사만을 찾던 고 선생이 어찌 기뻐 날뛰지 않겠는가!
비록 한립의 수행이 얼마나 높은지는 알 수 없으나 공으로 이번 기회를 놓치고 다시 3년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던 것이다.
고 선생은 분명 한립의 힘을 빌려 이번 대회를 치르고 싶어 했다. 모든 사정을 들은 한립은 잠시 말이 없었다.
처음에 수도자들이 범인의 요청에 먼 거리 항해에 따라나서 준다는 것부터도 그의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었는데 범인들의 교역권을 위해 결투까지 불사한다니 더욱 이상했던 것이다.
이곳 수도자들도 범인에 비해 지위가 높은 것 같았지만 천남 지방처럼 범접할 수 없는 존재까지는 아닌 듯 했다. 도리어 범인들과 모여 살며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립은 고 선생의 장사를 위해 다른 수도자와 결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왕 선생, 하나만 더 묻겠네.”
“어떤 질문이든 이 늙은이가 최선을 다해 답하겠습니다.”
“각 섬에 운송을 하는 것을 어찌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 수도자가 저물대 등의 법기로 담아 비행을 한다면 훨씬 빠르고 안전할 텐데 말이야?”
왕장청은 쓴웃음을 지었다.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비록 일부 선사님들이 저물대를 지니시긴 했으나 그런 보물에 어찌 범인들의 물건을 담게 허락하겠습니까.
게다가 교역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물자가 이동하니 아무리 저물대가 대단해도 그렇게 많은 물건을 담을 수는 없지요. 또한 선사님들처럼 높으신 분들이 어찌 운송과 같은 일을 하시겠습니까?”
왕 노인이 조심스레 늘어놓는 말에 한립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한립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했다.
“결투에 나가달라는 고 선생의 부탁은 들어줄 수 없네. 내 수행이 너무 낮아 대회에 나간다 하더라도 나뿐만 아니라 고 선생까지 욕보일 것이네. 그러니 그리 알라 전해주게. 또한 선박에 머물게 허락한 것과 괴성도까지 데려주는 대가는 영석으로 치르겠다고 이르게.”
그의 목소리는 아주 느리고 분명했으며 단호했다. 한립의 말에 노인은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그는 한립을 향해 간절히 애원하기 시작했다.
“선사 대인 우리 주인님을 좀 도와주십시오. 이번 거래를 따내기 위해 이미 많은 돈을 쓴데다 대회 출전 자격을 획득하려고 엄청난 영석을 상납해 큰 섬 교역권을 차지하지 못하면 파산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 같은 일꾼들도 일할 곳을 잃으니 살길이 막막해집니다.”
“됐다. 내 수행이 낮아 이길 가능성이 없는데다 방금 괴성도에 와서 일을 벌이고 싶지도 않다.”
노인이 구구절절 하게 말을 늘어놓으며 사정했으나 한립은 단호히 거절했다.
이미 결심이 선 한립을 보고는 더 이상 권할 수 없었던 노인은 한립의 뜻에 따라 이곳의 풍습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참 후 노인이 피곤해 보이자 한립은 그를 먼저 돌려보내고 내일 다시 배우기로 했다. 아까부터 피로에 시달리던 노인은 한립의 세심한 배려를 거절하지 않고 물러갔다.
한립은 노인이 공손히 예를 올리고 방을 나서는 것을 보며 몰래 탄식했다. 그에게 상대의 기력을 보해줄 영약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내 줄 수가 없었다.
이런 낯선 공간에서 가진 바를 모두 내보였다간 성가신 일에 휩싸일 수도 있었고 심지어 화를 자초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정리한 한립은 침상에 가부좌를 하고 앉아 황룡단을 복용했다. 이렇게 다시 연공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하루 빨리 원래의 수행을 되찾아야 했다. 어느 지방 수도계든 모든 것은 실력에 의해 결정됐다.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밖에서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립은 멀리서도 왕 노인이 고 선생을 데리고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 선생이 포기를 모르고 그를 귀찮게 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만일 천남 지역이었으면 방으로 들지도 못하게 했을 터였다.
그러나 이곳은 낯선 곳이었고 너무 각박하게 나갈 입장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담담히 전음을 보냈다.
“열려 있으니 들어 오거라.”
고 선생과 왕장청은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기겁을 하더니 의복을 단정히 하고 문을 열었다. 한립은 이미 침상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선사 대인, 고 선생이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니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왕장청은 한립이 만만치 않은 이라는 것을 알고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당연히 가능하지. 그러나 큰 기대는 말거라.”
노인은 조금 난감한 듯 했으나 그대로 중년인에게 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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