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좌사와 우사
한립의 냉담한 반응에 범 부인도 일부러 처량해 보이려는 시도를 거두고는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천뢰죽은 원래 작은 종파의 보물이었는데 세가 기울어 후인도 한 명밖에 남지 않게 되어 저희 문파로 흘러 들어오게 된 물건입니다. 본래 문주님께서 지니고 계시다가 이번 거래를 마치고 바로 경매에 올릴 예정이었는데 일이 틀어진 것이지요.
그러나 저희 쪽에서도 대량의 상품을 운송하며 모종의 장치를 해두었기에 얼마 안 가 본문 제자들이 잃어버린 상품들을 추적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상대 세력에 결단기 수사가 너무 많아 저희 문파의 힘만으로는 어찌 할 수가 없었지요.
이번에 소첩이 직접 나선 것도 요수의 부속을 대량으로 매입하기 위함이기 도 하지만 수행이 높은 선사님의 도움을 빌리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두 분께서 높은 수행을 지니셨으니 이번 일에 도움을 주신다면 성의로 천뢰죽을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돌고 돌아서 결국엔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한립은 여전히 침착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이해득실을 따져본다는 생각에 범 부인이 얼른 말을 이었다.
“만일 보수가 부족하시다면 본문의 여제자들을 선배님의 여종으로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흥미 없소.”
전혀 생각할 것도 없다는 태도에 부인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한립이 생각지도 못한 것을 물어왔다.
“그 천뢰죽은 제련되지 않아 아직 더 키울 수 있는 것이오?”
“천뢰죽은 작은 문파에서 천여 년 가까이 키워오다가 뿌리 채 채집한 것이라 당연히 가능합니다. 설마 당장 법보를 제련하시지 않고 후인들에게 남기시려 하십니까? 천뢰죽은 성장이 너무 더뎌서 천년은 지나야 겨우 일촌 정도 자라니 기르기 쉽지 않을 텐데요.”
한립은 상대의 의혹을 풀어주기는커녕 다시 고개를 숙이고 이것저것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참다못해 조 장로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때쯤에서야 한립이 결심을 내렸다.
“일에 성공하면 천뢰죽 외에 운송 중이던 다른 물건을 하나 고르겠소. 어쨌든 곡혼과 내가 둘이 돕는 것이니 보상도 하나일 수는 없으니 말이오.”
“문제없습니다. 제가 본 문을 대신해 약조 드리지요.”
“그럼 출발 전에 사람을 보내 내 거처로 연락을 주시오. 귀 문이 내 거처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니.”
한립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범 부인이 무어라 하기도 전에 곡혼과 함께 예를 취하고는 나가버렸다. 그녀가 미혼술을 써 자신을 농락하려 한 것은 전혀 따지지 않은 채였다.
* * *
거처로 돌아온 한립은 바로 다른 결단기 수사들을 찾아가 묘음문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들은 묘음문에 대해 알고 있었고 거래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묘음문은 문파라 할 수도 있고 장사를 하는 상가(商家)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묘음문은 여 제자들이 주를 이뤘고 문주도 오직 여제자 중에서 나왔다. 난성해에서는 세력이 강한 무리라 볼 수는 없어서 보통 외부에서 두, 세 명의 외부 장로를 데려와 세력을 보충했다.
이렇게 중급 세력 중에선 그다지 튀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력이 보통이라고 해서 쉽게 건들 곳도 아니었다.
묘음문 여제자들은 모두 용모가 빼어나고 재능이 많아 다른 세력의 제자들과 함께 수련을 하며 반려가 되는 경우가 많아 모종의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한립이 가장 알고 싶었던 소식 중 하나가 이 문파의 평판이었는데 그런 점에서는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선사들을 모해한다든가 하는 소문은 다른 세력에 비해 거의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묘음문의 미혼술은 난성해에서도 유명해서 여색에 빠져 신세를 마친 남선사들의 이야기는 꽤나 있었다.
대략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니 묘음문에 대한 인상이 정해졌다. 여러 정황을 따져 봐도 아무래도 천뢰죽이 눈에 밟혔다.
아무래도 이번엔 그들을 도우러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다시 거처로 돌아온 한립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삼급 꼭두각시의 제련에 매진했다.
반년이 지난 후 전음부 한 장이 날아왔다.
내용을 확인한 한립은 곡혼과 혈옥지주 두 마리를 데리고 거처를 나섰다.
천성성 근처의 성문 앞에 이르니 연아라 불리던 소녀가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는 한립과 곡혼을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달려왔다.
“선배님들! 부인께서 두 분을 모시고 섬으로 오라십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녹황검을 꺼내 소녀와 함께 날아올랐다. 곡혼도 노란 빛을 내며 그 뒤를 쫓았다.
소녀는 처음으로 법보를 타보았는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곳곳을 살피더니 종종 방향을 알려주며 길 안내를 해주었다.
다만 가끔 한립과 눈이 마주치면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하곤 했다. 검 위에 선 두 사람은 상당히 가까워서 서로 닿을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고개만 숙여도 소녀의 하얀 목덜미가 보였고 숨을 들이쉬면 은은한 체취가 느껴지니 잠시 동안 미인을 향유하는 셈이었다.
소녀도 그런 점을 눈치 챘는지 두 뺨이 붉어지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추측대로라면 범 부인이 자신의 여종을 보내 길안내를 시킨 것은 미혼술이 통하지 않자 정말 미인을 보내 미인계를 쓰려는 심산일 터였다.
그래서 그는 제멋대로 소녀의 향을 음미했고 소녀는 몸을 떨며 귓가가 붉어져서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다. 한립은 어떤 다른 행동도 취하지 않았고 소녀도 조금 안심했는지 계속해서 길안내를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고 한립은 이름 없는 작은 섬 황산에 도착했다.
수십 장 높이의 산 위에는 범 부인과 조 장로 외에도 열댓 명이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거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중 다섯이 결단기 수사였고 나머지도 축기 후기 수사였으니 묘음문이 이번 일에 큰돈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범 부인은 연아가 한립과 곡혼을 데려오는 것을 보더니 다가섰다.
“두 분 선배님께서 와주시니 저희 문파의 복입니다. 그럼 다른 선배님들을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녀는 한립과 곡혼을 데리고 가 맹 씨 성을 가진 결단기 선사를 비롯한 네 명의 축기 후기 선사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이것을 끝으로 나머지 사람들은 소개를 건너뛰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금 으스대는 표정으로 다른 한쪽의 여인을 바라보기도 했다.
한립이 범 부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녀가 소개해 준 이들 외의 선사들은 모두 저 여인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인은 곱게 머리를 묶고 아름다운 눈동자와 수려한 콧대를 드러냈는데 눈빛이 살아있는 것이 척 보기에도 신분이 높아 보였고 그런 도도함 분위기가 오히려 남성들의 본능을 자극했다.
그녀는 범 부인의 시선을 비웃음으로 받더니 한립과 곡혼을 보고는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바로 곁에 있는 중년 선사에게 낮게 속삭이는 것이 범 부인을 상대하기 싫다는 뜻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저 여인은 누구요.”
“본 문의 우사인 탁여정입니다.”
범 부인은 한립의 물음에 답하긴 했으나 이야기를 꺼내기 싫은 듯 했다.
“음.”
조용히 답한 한립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범정매가 좋지 못한 표정을 짓는 것은 당연했다.
한립은 탁여정이란 여인에게 무슨 의도가 있어 쳐다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분위기나 자태가 너무 익숙해 그를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 것이다.
‘남궁완!’
한립은 드디어 기시감의 원인을 알아냈다.
탁여정이란 여수사는 용모는 남궁완과 전혀 달랐으나 우아한 자태가 비슷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 그녀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원인을 파악한 한립은 복잡한 눈빛을 거두고 다시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한립과 곡혼이 도착했음에도 범 부인과 탁여정은 출발할 기미가 없었다. 자주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기다리는 이가 있는 것 같았다.
조금 의문이 생기긴 했으나 적당한 구석을 찾아 곡혼과 가부좌를 틀고 몸과 마음을 정돈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만일 인내심이 뛰어난 선사들이 아니었다면 벌써 여러 명이 난동이라도 부렸을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자 선사들도 조금씩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광경에 범 부인과 탁여정도 조급한 기색을 보이며 억지로 모여 무언가를 상의했다.
한립이 상황을 지켜보는데 돌연 하늘에서 검은 먹구름 같은 것이 나타났다.
먹구름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앉아서 휴식을 취하던 이들도 몸을 일으켜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순식간에 여러 선사들의 머리 위에 도착한 먹구름은 놀랍게도 직경이 대여 섯 장은 되었고 천둥번개 같은 기이한 소리가 들려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모두 어리둥절해 하자 그 안에서 맑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 선배님, 전 여기서 내려주시겠어요? 아무래도 사제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듯 합니다.”
“큭큭. 그러시오.”
듣기에 거북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두 사람의 목소리에 범 부인과 탁여정이 안색이 변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다른 수사들도 먹구름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지 얼굴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묘음문이 대단하구만. 원구도(元龜島) 적 노괴까지 청하다니.”
누군가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한립의 강력한 의식에 감지되었다.
원구도와 적 노괴라는 글자가 귓가를 울리자 한립은 바로 다른 결단기 수사들과 한담을 나누며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그는 일찍이 결단기 후기에 이르러 규수마공(葵水魔功)을 자유자재로 부렸으며 잔인하고 무자비하기로 유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 원영기에 이를 선사로 그를 꼽았으니 극음 사조와 같은 거물이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함부로 원구도를 독점하는 데도 감히 나서는 이가 없었다.
‘저런 악명이 자자한 마도 선사가 어찌 이곳에 있는 것인가? 설마 묘음문에서 도움을 청해서? ’
한립은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경계심을 높이며 먹구름 안을 자세히 관찰했다. 동시에 검은 구름이 휘저어지며 안에서 여인이 나왔다.
여인은 길고 가는 몸매에 유연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고 있었는데 보라색 기운으로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나타나자 범 부인과 탁여정이 바로 다가갔다.
탁여정이 미간을 좁히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왕 사매, 어찌 적화 노괴와 온 것이야. 설마 네가 청한 것이니? 그럴 필요가 있겠어?”
“저 노괴는 쉽게 볼 상대가 아니야. 언제라도 안면몰수 할 수 있다고. 우리가 모은 인원으로도 충분할 텐데.”
“사저들은 정말 저번에 나타난 이들이 적 세력의 전부일 거라 여기시나요?”
보라색 여인의 말에 범 부인이 놀라 바로 되물었다.
“설마 적 세력에 더 대단한 고수가 있다는 말이야?”
“제가 급히 알아낸 정보로는 적의 소굴엔 결단기 후기인 선사가 우두머리로 있다 합니다. 그래서 사저들이 모은 인원이 열세일 것 같아 원구도에 들러 적화 노괴에게 도움을 청했지요.”
담담한 보라색 궁장 차림의 여인의 말에 다른 두 여인이 반신반의 하면서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들도 적화 노괴를 데려오며 제시한 조건이 적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지만 일단은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궁장 차림의 여인은 모여 있는 선사들을 둘러보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싸늘하게 말했다.
“두 분께서 요청한 결단기 선사 분들이 제 예상보다 많네요. 거기다 적화 노괴까지 도와준다면 그 사악한 무리를 전부 죽여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 줄 수 있을 듯 합니다.”
탁여정이 검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말했다.
“걱정 말거라. 우리 두 사람도 문주님을 대신해 반드시 복수를 성공할 것이니!”
“그래. 문주님이 우리에게 베푼 은혜가 있는데 목숨을 걸고서라도 적들을 멸할 것이다.”
범 부인도 숙연한 표정이었다. 그 말에 보라색 궁장 여인이 감동을 받은 듯 깊게 허리를 숙였다.
“두 분 사저들만 믿겠습니다! 미리 말씀 드린 대로 어머니의 원수만 죽일 수 있다면 묘음문 문주 자리는 두 분 중 한분이 맡아주셔요. 저 왕응은 결코 문주 자리에 욕심이 없습니다.”
여인의 말에 탁여정의 얼굴에 복잡한 심경이 떠오르더니 할 말이 있는 듯 했으나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이에 반해 범 부인의 표정과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욕심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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