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제련
한립의 법기 제련 기술이 좋아지며 중계 및 상계 법기도 상품으로 등장하자 청죽소헌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졌다.
다만 이런 명성은 어찌 되었든 저계 수사들 사이에서 도는 이야기라 한립이 귀찮아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9년 째 되는 해에는 드디어 간단한 진법을 깨우쳐 관련 법기를 만들 수도 있었다.
제운소와 신여음이 남겨준 서책이 그를 지름길로 가도록 도와준 성과였다. 아직까지는 진법 법기 한 벌을 만들기에는 지극히 어려웠지만 한립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단에 성공해 남는 것이 시간이었고 천천히 경험과 지식을 쌓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청죽봉운검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들이니 그것 위주로 천천히 익혀나가면 되었다.
그가 법기와 진법에 흠뻑 빠져있는 동안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 * *
여름이 가고 어느덧 가을이 왔다.
어느새 청죽소헌을 개점한 지도 20년이 흘렀고 한립도 50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진짜 얼굴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세월에 맞게 고친 가짜 얼굴이었다.
지금 그는 점포 후원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며 모든 것들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 어제 점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으니 속세의 삶을 마칠 때가 왔다.
며칠 전 그가 오래 공을 들인 여섯 번째 천뢰죽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이제 거처로 돌아가 법보 제련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이 시장에서 20년을 보냈으니 떠나기가 기쁘기 보다는 그리울 것 같았다. 이곳에서의 삶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편안하고 한가한 시간이었다.
“이것이 엄청난 물건입니다요!”
벽 너머에서 들리는 우렁찬 목소리에 한립이 미소를 지었다.
의식을 퍼트리지 않아도 옆 점포에서 나는 소리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옆 점포의 주인이었던 노인은 벌써 몇 년 전부터 집에서 요양을 하며 지냈고 그 아들이 맡아 장사를 했는데 비록 성격은 불 같아도 성실한 편이었다.
다만 수시로 목청껏 소리를 질러 이런 저런 물건을 소개하곤 해 처음 오는 외지인들을 놀라게 하곤 했다.
한립은 이런 저런 기억을 더듬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곡혼을 불러 함께 청죽소헌을 나섰다. 그렇게 외진 상가 거리 한편으로 두 사람의 뒷모습이 사라져갔다.
* * *
거처로 돌아온 한립은 바로 그가 만든 진법 법기들을 설치해놓고 밀실로 들어갔다.
이 진법들은 별다른 작용은 없었고 영기의 파동을 감춰주는 용도라 법보를 제련할 때 아주 적당했다.
그는 밀실에서 삼일 밤낮을 운기조식한 후 최상의 상태로 법보 제련이 들어갔다.
한립은 일단 고옥으로 만든 함을 꺼내 평평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가 천천히 뚜껑을 열자 비취색의 천뢰죽 6개가 보였다.
깊게 심호흡을 한 그는 손가락으로 그 중 하나를 가리켰다. 그러자 천뢰죽 하나가 날아올라 그의 가슴 앞에 떠올랐다.
한립이 신중한 얼굴로 수결을 맺으며 법결을 외자 얼굴에 기이한 광채가 흐르며 점점 초록빛을 나타냈다.
이어 그 빛이 점점 강해지더니 한립의 입에서 가느다란 불길이 천뢰죽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파팟’
옅은 금색의 뇌전이 대나무에서 튀기며 한립의 단전에서 뿜어 나온 불길을 밀어냈다.
그 모습에 한립이 초록색 불길을 키우자 순식간에 불꽃 속으로 대나무와 대나무가 분출하는 뇌전이 갇혀버렸다.
이렇게 길고 긴 제련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단전에서 불길을 뿜어내는 것은 영력의 소모가 컸는데 한립은 미리 철저히 준비를 해서 이미 두 손에 동일한 초록색의 영석을 쥐고 있었다. 영석으로 영력을 보충하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품에서 단약을 꺼내 삼키며 버텼다.
단약이 바로 법력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나 충분한 영력을 함유하고 있었으니 장기전을 예상하는 한립으로서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3일이 지나고 드디어 천뢰죽이 보유하던 영기가 바닥나며 표면을 감싸던 금빛 전류가 사라졌다. 방해물이 사라지자 초록 불길은 대나무 본신을 제련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며칠 후, 대나무 표면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며 일부에서 촘촘한 액체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이렇게 수십 일이 지나고 천뢰죽 하나가 완전히 녹아 주먹만 한 비취색 물방울로 변했다. 걸쭉하고 진득진득한 액체였다. 그것을 확인한 한립이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입에서 불길이 사라지며 두 손에 들고 있던 영석도 저물대로 넣어버렸다.
이후 한립의 손이 꿈틀거리며 미세한 영기를 실처럼 뽑아냈고 액체를 감싸며 돌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 덩이의 녹색 액체가 공중에서 분리되었다. 한 덩이가 두 덩이로, 다시 세 덩이로…….
마지막 액체가 떨어져 나가자 허공엔 동일한 크기의 열두 개 물방울이 떠올라 있었다.
한립이 손가락을 가볍게 구부리자 연결되었던 영기의 실이 흩어졌다. 이어 그의 손이 저물대를 스치자 12개의 빛이 나와 12방울 액체 아래에 원형을 이루었다. 뜻밖에도 크기가 같은 옥함들이었다.
옥함들은 모두 고가의 백옥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물건들이었다.
한립의 소맷자락이 흔들리자 옥함들의 뚜껑이 일사분란하게 열렸다.
“떨어져라!”
이어 공중을 부유하던 진득한 초록 액체가 그의 명에 따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옥함마다 딱 한 방울씩만 들어갔다. 액체가 다 들어가고 옥함을 잘 봉한 다음에야 그의 얼굴이 편안해지며 진정으로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영석과 영단의 도움을 받았지만 법력이 거의 소진되었던 것이다.
다시 조용히 앉아 수일간 요양한 한립은 몸과 마음이 최상의 상태가 되었을 때 다음 천뢰죽 제련에 들어갔다.
한립은 정말 온 힘을 끌어 모아 천뢰죽 6개를 모두 정순한 액화상태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는 동안 순식간에 3개월이 지났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밀실 안에 복잡한 진법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 진법의 이름은 몰랐으나 다만 청죽봉운검을 제련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며 두루마리에서 계속해서 언급되었다는 것만 알았다.
그랬기 때문에 이 진법을 설치하는 일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되었다. 만약 선 하나만 잘못 그어도 법보 제련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진법은 한립이 전전긍긍하며 심혈을 기울인 끝에 장장 반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우선 열댓 개의 중계 영석을 이용해 시범 운용해보고 정상적으로 빛이 들어오자 겨우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이때 그는 바로 법보 제련에 들어가지 않고 잠시 밀실을 나왔다.
거의 반년을 쉼 없이 단전에서 내뿜는 단화(丹火)를 부리고 동시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을 병행하자 몸과 마음에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이후의 작업이야 말로 진정한 법보 제련이라 할 수 있으니 일단은 휴식을 취해 피로를 풀어야 했다.
그런데 밀실에서 막 나온 한립 앞에 희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금충이 드디어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경사였다.
딱정벌레들의 수가 수만 마리가 된 이후로 그들은 다시 알고 낳고 진화하는 과정을 잠시 멈췄었다. 거기다 신비한 병의 녹색 액체를 대부분 천뢰죽을 기르는데 사용했으니 서금충의 성장은 더욱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천뢰죽의 성장이 끝난 후 바로 곡혼을 시켜 서금충의 배양에 집중시켰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곡혼에게서 소식이 온 것이다. 그는 곧바로 서금충이 있는 밀실로 갔다.
지금 서로 물어뜯고 있는 딱정벌레들도 겉 표면에 금색 반점이 거의 절반이었으니 다음 대는 금색의 면적이 더 넓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런 속도라면 서금충이 완전한 금빛 딱정벌레로 변하는 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들은 매번 진화할 때마다 몇 배씩 늘어나니 녹색액체가 예상초를 길러내는 시간을 따져보았을 때 다음 변화가 언제 올지 알 수가 없었다.
한립은 서금충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일단은 그들 중 일부를 따로 배양해야 할 듯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완전히 금색으로 변한 서금충을 볼 날이 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한립은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계획은 서금충이 알을 낳은 이후에야 실행 가능하니 일단은 신경 쓰지 않고 법보 제련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이렇게 내리 한 달을 휴식한 그는 드디어 법보 제련을 위한 길일을 잡았다.
이후 거실에서 향을 피우고 이틀간 제를 올린 후에야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밀실로 돌아가 진법의 중앙인 결계의 눈에 섰다.
숙연한 얼굴로 두 팔을 펼치니 수십 개의 천뢰죽 액체가 든 옥함이 각종 배열을 이루며 진법의 각처로 날아갔다.
이어 각종 상자와 목함 등이 저물대에서 연이어 튀어나와 한립의 앞에서 뚜껑을 열었다. 미리 처리를 해둔 각종 보조 재료들이었다.
눈으로 재료들을 살핀 그는 깊게 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며 온 몸에서 푸른색의 광채가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광채가 나오자 바닥에 박혀 있던 영석들도 눈부신 빛을 뿜어냈고 진법 전체가 활성화되었다.
몸은 그대로였고 오직 열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여 열기의 실을 천뢰죽 액체가 든 함으로 쏘아 보냈다.
진법에서 연달아 사발 굵기의 빛기둥이 분출되더니 하나하나가 천뢰죽 액체가 든 함을 껴안았다. 이 모습을 확인한 한립의 눈이 다시 감고 차분히 의식을 퍼뜨려 빛기둥을 장악했다.
동시에 빛기둥들이 살아있기라도 한 듯 반짝거리며 다채롭게 색이 변해갔다. 신비하게도 빛기둥이 쉼 없이 색을 바꾸다가 결국에 점점 하나의 색으로 통일 됐다.
모든 빛기둥이 불타오르는 듯한 붉은 색이 되어 녹색 액체들을 비추고 있는 모양새였다.
한립이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벌리니 단전의 불이 뿜어져 나와 빛기둥 중 하나를 향해 날아갔다.
‘푸학’
빛기둥에 불이 붙으니 순식간에 모든 빛기둥이 불기둥이 되어버렸다. 72개의 거대한 불기둥이 밀실을 환하게 밝혔다.
한립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염의 위력으로만 치면 단전에서 직접 뿜어낸 불이 불기둥 보다야 훨씬 강했다. 그러나 비검을 만드는 것은 화염의 위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원기가 상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엄청나게 많은 힘을 쏟은 것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불기둥 안의 녹색 액체가 그의 의식과 진법의 조종 아래 서서히 변화되어 갔다.
점점 형태가 길어지고 얇아지며 사, 오촌 길이가 되었다. 꼬박 하루가 걸려 72개의 녹색 액체가 겨우 검 모양이 된 것이다. 크게 숨을 내쉰 그는 은은한 두통을 느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72개의 비검을 조종한다는 것은 아무리 의식이 강한 한립이라도 무리였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형태 잡기가 끝났으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두 손으로 수결을 맺자 불기둥이 번뜩이며 돌연 사라져 버렸고 오직 비취색 검들만이 남아 떠있었다.
한립이 손을 뻗자 모든 검들이 서서히 날아들어 그를 둘러쌌다. 그가 눈앞의 검들을 바라보며 질끈 혀를 깨물자 입에서 피가 튀어나와 핏방울을 형성했다.
이 핏방울은 한립의 조종대로 각 비검들을 적셨다. 작은 핏방울들이 비검에 닿자마자 흡수되어 마지막엔 모두 종적을 감추었다.
이어 다시 은가루가 들어있는 함을 가리키니 은가루가 비검으로 날아들었고 모든 비검들에서 빛이 발산 되었다.
다음으로 한립은 제련법에 따라 각각의 보조 재료들을 72개의 비검에 흡수시키고 다시 한 번 불기둥을 만들어 모두를 융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번에는 모든 검들을 동시에 제련하기 보다는 하나씩 정성을 들였다. 의식을 이용해 그도 이해 할 수 없는 진법을 각 검에 새기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었다.
# 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