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elor Degree RAW novel - Chapter 80
80화. 엄월종
이 사조는 곧 다시 얼굴을 풀고는 말을 이었다.
“되었다. 이렇게나마 너희를 일깨워 준 것은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우를 범할까 걱정해서이다. 수선계에서 실력이 안 되면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을 어리석은 생각은 버리거라! 그것은 실력이 비슷한 수사끼리나 할 말이지 아무 때나 그런 개념을 가지고 행동해서야 죽을 일밖에 남지 않은 게야. 허허, 어쨌든 너희 중 몇이나 살아남아 내 이야기를 깨우칠 지 궁금하구나.”
이때 한립을 포함한 제자들은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제자들에겐 너무 뜻밖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젠 내기에 관해 말할 차례겠지? 너희도 이번 내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들었을 것이야! 만일 승리만 한다면 절대 너희를 푸대접하진 않을 것이다. 이번에 내가 승리하도록 돕는 자는 누구든 큰 상을 내릴 것이며 가장 큰 공헌을 한 이는 축기만 성공하면 내가 입문제자로 거두어 줄 것이다.”
황풍곡 제자들은 앞의 ‘충고’ 부분이 준 충격도 수습하지 못 했는데 후면의 엄청난 약속에 더욱 정신을 못 차리고 흥분했다.
결단기 수사의 입문제자로 들어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황풍곡 내에서도 운이 타고난 극소수의 인물만이 누리는 호사였고 1,000년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한 기회였다.
열기가 가득해진 무리를 보니 모두의 눈에 열망이 불타고 있었다. 이 사조는 입꼬리를 올리며 만족스러워했다. 내기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기명제자 세, 네 명쯤을 더 받는 일도 별 것 아니었다.
그저 적당한 장소를 찾아 데려다 놓고 피상적인 몇 가지를 전수해 주면 될 일 아닌가?
이를 들은 한립도 마음이 크게 동했다. 수도자의 길을 걸어가며 제대로 된 사부가 한 두 차례 바른 길로 인도해 주기만 해도 굽이굽이 돌아갈 길을 편히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사조는 속이기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이리 많은데 그와 왕래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언젠가 꼬리를 잡힐지 몰랐다. 이 사조가 추궁을 시작하면 그 끝은 저승길이 될 수도 있다.
그가 앞부분의 충고라 말해 준 바를 볼 때 그는 결코 사제지간의 정 같은 것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사제지간이라 해도 그가 강조하던 약육강식은 적용이 될 테고 보물을 탐해 제자를 해치는 일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자세히 정황을 따져 보니 동요하던 마음이 금세 가라앉았다.
다른 제자들은 한립과 같은 부담이 없기에 모두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진 사매 쪽을 힐끗 보니 그녀도 두 뺨이 붉어져 주먹을 불끈 쥔 모습이 결심을 내린 모양이었다.
한립은 그런 황풍곡 제자의 모습을 보는 것도 지겨워져 시선을 청허문 쪽으로 돌렸다.
도사가 침을 튀겨가며 열정적으로 무리에게 무어라 외치는데 한두 번 선동을 해본 모양새가 아니었다.
젊은 도사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가 쏟아졌고 모두 감정이 고양되어 있었다.
그래도 몇몇 나이가 있는 도사들은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마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재미있는 구경에 잠시 흥미롭게 그 쪽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소리를 높였다.
“저기 보시오! 엄월종 사람들이 옵니다. 저게 바로 그 천월신주(天月神舟)인가 보군요.”
그 말에 한립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얀 빛이 하늘을 밝히며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황산의 허공에 도착했다.
그것은 청옥으로 만든 거대한 선박으로 그 겉면에 금박으로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어 사치스럽기 그지없었다. 곧 거대한 백광이 선박 내부에서 발산해 빛의 장막을 만들었다.
선박에는 백의를 걸친 남녀들이 가득했는데 그들의 앞에선 미부인이 너무 고혹적이라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혼백이 흩어질 것 같았다. 여인은 옥으로 만든 선박이 땅에 닿자 광막을 제거했다.
“사형들과 궁 사숙께 예상이 인사 올립니다.”
연이의 붉은 입술이 열리자 이 사조와 도사도 서둘러 예를 표했다. 다만 궁 선배는 그저 씩 웃고는 다시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말은 모두의 귓가를 울렸다.
“7일후 이곳에서 다시 보세. 이번엔 내 승리가 확실하니 물건들은 미리미리 준비해 놓으라고!”
궁 노인이 어찌 이리 자신만만인지 몰라 도사와 이 사조가 어리둥절해 했다. 방금 엄월종 제자들의 실력을 가늠해 보았는데 그들 제자보다 훨씬 강하긴 해도 그가 이리 허풍을 떨 정도는 아니었다.
미부인이 아름다운 눈을 굴리며 무어라 묻자 내기의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는데 그 모습이 꽃이라도 고개를 떨어 트릴만 했다.
그녀의 표정에 세 문파의 많은 사내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렸다.
그러나 이 사조와 도사는 눈앞의 황홀한 경치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그녀의 웃음에 얼굴이 굳었다. 무언가 크게 속은 느낌에 속이 쓰리기까지 했다.
설마 엄월종이 이번엔 숨겨둔 한 수가 있어 두 문파를 동시에 제압하려는 것인가?
두 사람도 지위가 있는 지라 비록 울적한 마음이 치밀어도 미부인을 상대로 경위를 추궁할 수야 없었다.
그리고 미부인, 예상 선자는 그들의 반응을 즐기며 짐짓 모르는 척 화제를 돌려버렸다.
한립 등 황풍곡 사내들의 시선은 벌써 새로 나타난 여제자 무리로 옮겨갔다.
들리던 소문대로 엄월종 문하는 쌍수술(雙修術)을 강조해 신제자 중 절반은 꼭 여성을 받아들였고 그들의 용모가 뛰어나지 않으면 또 걸러내기까지 했다.
역시 명불허전이라고 엄월종 여인들은 하나같이 미모가 뛰어나 화용월태라는 말이 어울렸다. 그들을 보는 황풍곡 제자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한립도 잠시 눈이 제멋대로 그곳을 배회하긴 했으나 마음을 다잡고 평정심을 유지했다.
이 엄월종 여제자들은 이런 중인들의 시선을 받는 일이 익숙한지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그 시선을 따라 눈을 마주쳐 오니 남자들의 혼을 빼놓기에 적합했다.
그러나 남자 제자들은 정반대로 각각이 노기가 충만해서 눈을 부릅뜨곤 했다. 특히 자신의 곁에 있는 여인에게 시선을 주는 이에게는 사나운 눈빛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립은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남녀로 이루어진 배열은 그 남녀가 서로 짝이라는 뜻이었는데 아마 연공을 하며 정해진 것일 터였다.
남제자들은 자신과 짝을 이룬 여제자를 마치 자신의 여인인양 여겨 화를 내었지만 여제자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한립이 느끼기엔 남제자들이 노려보는 이들이 뜻밖에도 청허문 쪽에도 있었다.
호기심에 고개를 돌려보니 혈기가 왕성한 어린 도사들이 때때로 엄월종 여인들을 훔쳐보다 누가 볼 세라 얼른 고개를 돌리곤 했다.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것이 누가 보아도 이상했다. 한립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자신의 착각인 줄 모르겠지만 엄월종 여인들이 눈짓을 해 상대를 유혹하는데 그 빈도가 황풍곡보다 어린 도사들이 있는 청허문 쪽에 더 치우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자 한립은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이들 제자들이 이곳에 온 것은 무슨 정인을 찾으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금지에 들어가 혈전을 치르고 살아남는 것이 진정한 목표였다.
만일 각 문파의 젊은 제자들이 엄월종 여제자들을 마주한다면 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얼마간은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들을 잔인하게 도살하는 것은 보통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더욱 한립을 의아하게 한 것은 엄월종 제자들은 남녀 상관없이 모두 젊은 사람들뿐이었다. 단 한명도 나이든 이가 없다는 것은 무언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이들이 얼굴의 노화를 막은 늙은 괴물들일 리도 없고 말이다. 한 명 한 명의 거동이 날렵하고 혈기왕성한 것이 기껏해야 스물 몇 살 정도로 밖에 안보였다.
그러나 혈금시련은 제자들의 죽음의 원행으로 이름 높았는데 어찌 이리 많은 젊은 제자들이 자원했단 말인가?
게다가 모두 짝을 이루다니. 아무리 그들의 감정이 견고하다 해도 모두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 정도의 관계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황풍곡과 청허문에는 얼마간 노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금지 원행에 참가하지 않아도 어차피 얼마 못 살 것이었는데 그러니 최후의 선택으로 이곳에 참가한 것이다.
만일 운이 따라 축기단을 얻게 되고 또 요행히 축기기에 들면 바로 팔자를 고치는 것이었다.
이미 적정 연령을 한참 지나 축기기 이상은 아무리 수련해도 이룰 수 없겠지만 백 년 정도 더 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런 터무니없는 도박을 하는 노인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청허문과 황풍곡만 합쳐도 일고여덟 명은 되었다. 그런데 엄월종에선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너무 거슬렸다.
이 사조와 도사도 이런 사실을 발견했는지 안색이 더 가라앉았다. 엄월종의 예상 선자와 대화 중이었음에도 정신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었다.
얼마 후 나머지 네 개 문파가 속속들이 도착하자 그 중 한립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이들은 거검문(巨劍門)과 영수산(靈獸山)의 사람들이었다. 거검문은 모두가 남제자로 각각 흑의를 입고 등에는 거대한 검집을 매고 있었고 표정이 살벌했으며 이미 흉흉한 기세가 충만했다.
그리고 영수산의 제자들은 울긋불긋 화려한 보색을 하고 있었으나 모두 몸에 거대한 주머니나 가방을 지녔는데 무엇인가 살아있는 것이 꿈틀거려 지켜보는 다른 문파 제자들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화도오(化刀塢)와 천궐보(天闕堡) 사람들은 복색이 달랐을 뿐 한립의 눈에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였다.
수근 거리며 떠드는 목소리도 간간이 들려오고 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제자들도 포함 되어 있었다.
* * *
각 문파 제자를 이끌고 온 이들이 금제를 깰 절차를 의논하자 한립은 사방을 살피며 각 문파의 손속이 매서워 보이는 이들을 점검했다.
공법이 이미 십삼 성 최고봉에 이른 이들은 되도록 마주치지 않도록 숨고 또 도망갈 수 있다면 도망갈 예정이었다.
정 안되면 몰래 급습은 하겠지만 절대 육가와의 전투처럼 법력을 남김없이 소진하는 상황은 만들면 안 되었다.
이번은 육가와의 전투와는 전혀 달랐다. 한 명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욕심에 눈이 붉어진 수도자들의 무리와 싸우는 것이다.
항상 여력을 남겨 바로 반격할 수 있는 힘을 비축하지 않는다면 가장 먼저 당할 것이다.
막 이리저리 다른 이들의 기량을 엿보는데 돌연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에 간담이 서늘해진 한립이 재빨리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시선의 주인공은 영수문의 여제자였는데 한립을 보고 있는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했다.
뜻밖에도 자신이 아는 얼굴이 나타나자 기억을 더듬은 결과 호리호리한 체구의 여인이 떠올랐다.
‘그녀잖아? 태남소회에서 내게 금축필을 팔았던 소녀가 영수산 문하에 들어갔다니. 게다가 혈금시련에 참가했어!’
이전보다 용모가 더 나아진 소녀를 결국 떠올린 한립은 약간 당혹스러웠다. 걸핏하면 얼굴을 붉히던 모습이 아직도 잔잔하게 남아있어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가 눈에 들어왔는지 소녀 역시 양 뺨이 또 붉게 물들었다. 정말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었다.
구레나룻이 있는 사내가 그녀 뒤에 서 있다가 그들의 행동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굳혔다.
곧 엄하게 무어라 하니 소녀의 안색이 바로 창백해지며 고개를 숙였는데 그 이후론 다시 함부로 한립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던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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