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10
〈 110화 〉 재앙, 악몽, 귀신(3)
* * *
서큐버스 퀸, 레페는 죽음을 체감한 적이 얼마 없다. 서큐버스란 종족이 으레 그러하듯, 레페 또한 영생에 가까운 삶을 약속받았다.
어지간한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고통을 느낄지언정, 죽지는 않는다.
애당초 그런 종족의 여왕으로 태어났다. 고위 사제가, 혹은 성녀나 용사라 불리는 초인쯤 되는 이들이 와야 레페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
무력이 강하진 않지만, 죽이기는 더럽게 힘들다.
애초에 하는 짓거리가 좀스럽다.
죽일 가치가 없다. 찾기도 힘드니, 작정하고 잡으려 드는 것이 낭비일 수준이다.
초인들에게서 그런 평가까지 받을 정도니··· 더 말이 필요할까. 그런 이유로 하여금, 레페는 죽음을 체감한 적이 손에 꼽았다.
“아, 아아···.”
그리고, 지금.
레페는 죽음이 다가옴을 체감한다.
턱.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뒷걸음질을 쳐보나··· 거리가 벌어지진 않는다. 뒤를 돌아본다. 도망칠 공간은 많았다.
휙,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본다.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본다. 걸어오는 것은 소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소녀의 잿빛 머리칼이다. 그녀가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잿빛의 머리칼이 찰랑였다.
또각.
소녀가 신은 단화의 굽이 바닥을 울린다.
또각.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소녀의 발걸음은 가볍다. 재촉하지 않는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온다. 마치 죽음처럼.
“할 말은 엄청 많은데 말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무척이나 차분한 목소리였다.
“딱히 너한테 말해봐야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더라. 너도 모르잖아, 그치?”
무엇을 모른다고 하는 것인가.
알 수 없었다. 레페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고 다가오기를 반복한다.
턱.
그리고, 그 끝이 다가온다.
레페의 등이 골목길의 끝에 맞닿았다. 레페의 발걸음이 멈췄다. 소녀 또한 멈추어 선다.
“서큐버스 퀸, 레페.”
그녀가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네.”
몇 개월 전과 같은 대사.
“이번에는 또 뭘 훔쳐 가려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말.
“어, 어어!”
레페의 눈동자가 크게 뜨인다. 레페가 숨을 헛삼키며 입을 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 진짜 동정 마법······!”
“이 미친년이 진짜.”
탁, 하고 소녀가 땅을 박찬다.
내디딘 발걸음이 땅에 닿는 순간, 보도블록이 박살 나며 튀어 오른다.
콰앙!
눈 한번 깜빡할 찰나다.
찰나의 시간에 소녀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그녀가 손을 뻗는다. 그녀의 손아귀가 레페의 머리를 움켜쥔다.
“커흡!”
레페의 몸을 둘러싼 방벽이 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다.
주문 해제(AntiSpell).
방벽 해제(AntiShield).
방벽이 종잇장처럼 찢긴다. 그녀의 몸을 감싼 폴리모프가 강제로 해체된다. 그리고, 뇌리에 각인된 충격이 레페를 덮친다.
강타(Smite).
무형의 충격파가 레페의 두개골을 뒤흔들었다.
“컥!”
시야가 흔들린다. 코가 시큰거렸다.
코와 입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흣, 흐읏···!”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충격이다.
그러나, 충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레페의 머리를 움켜쥔 채 소녀가 팔을 휘두른다.
콰아아아아앙!
골목길의 벽에 레페의 몸이 처박힌다.
시야가 점멸했다. 눈앞이 깜깜해진다. 한순간 정신을 잃었다.
“야.”
레페는 간신히 정신을 붙잡은 채 눈을 떴다.
벽돌이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몸이 벽돌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길게 말 안 한다.”
머리를 붙잡은 손아귀가 보인다.
벌어진 손가락과 손가락의 틈새로 레페는 소녀의 눈동자를 마주한다.
‘푸른빛의 눈동자.’
푸른색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다.
알고 있던 것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외모로는 잿빛 마법사와 눈앞의 소녀를 연결 지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눈빛만큼은 똑같다.
소녀의 서늘한 눈동자는, 뇌리에 박힌 잿빛 마법사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동자.’
그곳에서 레페는 혐오를 읽는다.
혐오가 향한 곳은 자신이 아니다. 잿빛 마법사는 자신의 눈동자에서 다른 존재를 읽고 있다.
“시간 끌지 말고 나와.”
무엇을 보고 나오라는 걸까.
그 물음에 답하는 것은 레페가 아니다.
“아.”
레페의 입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또, 너구나.”
신체의 주도권이 빼앗겼다.
레페의 입꼬리가 쭉, 찢어졌다. 찢어진 입가에서 새어 나온 것은 웃음소리다. 낯선 웃음소리가 레페의 귓가에 맴돌았다.
“잿빛의 아이.”
이윽고 레페의 시야가 뒤집혔다.
2.
고대의 왕국을 멸망시켰다는 넷의 재앙.
그들에 대해선 알려진 게 얼마 없다.
출신도, 능력도, 심지어는 생김새마저도.
‘제대로 알려진 게 하나도 없다.’
넷의 재앙을 기록한 서적들은 전부 어딘가 손상되어 있다. 찢겨져 있거나, 불에 그슬려 있거나, 의도적으로 지워져 있었다.
‘누군가 은폐하려는 것처럼 말야.’
결국 직접 부딪치며 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5년간 전장에 머무르며 나는 넷의 재앙을 전부 마주했다. 그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다.
고대의 리치, 스케발.
그 해골 바가지는 겁쟁이다. 언제나 라이프 베슬을 쌓아두고 산다. 겁쟁이답게, 제 몸을 직접 드러내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언제나 뒤에서 계획을 짠다. 확신을 가진 순간만 제 몸을 드러낸다.
흑룡, 벨리알.
그 검은 짐승은 본능을 따라 움직였다. 짐승과도 같다.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 본능대로 움직이니, 예측하기도 쉬웠다.
죽음의 칼, 가니칼트.
그 괴물은 검사다. 도망치는 적을 죽이지 않는다. 무기를 놓은 이는 내버려 둔다. 그러나, 자신과 마주하려는 이들에겐 예외 없이 죽음을 선고한다.
···이처럼.
나는 그들의 행동 패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을 마쳤다. 5년간의 경험이 그를 가능케 했다. 은퇴 직전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출몰지를 예상하는 것까지 가능했다.
‘딱, 한 명을 빼고 말야.’
배교자 글레투스.
그 미치광이만큼은 파악하지 못했다. 내가 괜히 그년을 미치광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다.’
다른 재앙들과는 다르다.
그녀에겐 가치관이 부재하다. 신념이 없다. 행동에 양식이란 게 존재하질 않는다.
그녀와 마주한 건 다섯 번이다.
다섯 번의 경험으로 내가 그녀에 대해 알아낸 거라곤··· 고작 하나뿐이었다.
“잿빛, 아아, 잿빛.”
그녀가 나에게 호의적이라는 것.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그녀가 내게서 다른 누군가를 찾으려 든다는 것 만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하.”
나는 짧게 숨을 뱉으며 말했다.
“수법이 참 악질이야.”
“새삼스레.”
“새삼스레 좆 같더라고.”
박쥐 년의 몸을 강탈한 배교자가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는 언제 보아도 기괴하다.
꾸욱.
나는 손아귀에 힘을 줬다.
손가락 틈새로 박쥐 년의 눈알이 튀어나오려 한다. 그러나,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이 아이를 죽여봐야 소용없을 걸.”
“알아.”
“쓸데없이 힘 뺄 필요가 있니?”
히죽,그녀가 미소 지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벽의 틈새에서 빼냈다가, 다시 한번 벽에 처박았다.
콰앙!
굉음과 함께 그녀의 코에서 피가 흐른다.
“꽤 귀여운 모습이 되었는걸. 스케발이 쓸모가 있을 때도 있구나?”
피가 흐름에도 그 목소리는 여전하다.
그녀는 손을 뻗어 내 볼을 매만진다. 마치 연인의 얼굴을 만지듯이 애처로운 손길이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우득.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그 손가락을 잡아 꺾었다.
“잿빛.”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네게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아. 나는 잿빛에게는 언제나 친절하단다.”
“전장에서 좀 친절하지 그랬냐?”
“첫 만남에는 네 가치를 알지 못했고, 두 번째 만남에선 너를 죽여야만 했고,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네가 날 방해했으니까.”
그녀가 미소 지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녀가 부러진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너, 이 아이를 원하니? 원한다면 네 손짓 한번에 바닥을 기는 노예로 만들어 줄게. 너를 위해 영원히 봉사하는 아이로 개조해줄 수도 있어.”
아니면, 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너를 그렇게 만든 스케발의 라이프 베슬을 전부 박살 내줄까? 번거롭지만, 가니칼트에게 부탁하면 들어줄 거 같은데.”
계속해서 그녀가 말했다.
제안을 늘어놓으며 미소 지었다.
“그 대신.”
웃음이 뚝, 그쳤다.
웃음기 어린 미소 대신 서늘한 목소리가 자리 잡았다.
“그 아이를 내게 줘.”
“······.”
“나와 닮은 아이. 그 아이를 내게 준다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나는 도심 방향을 가리켰다.
내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가득했다. 시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미 저렇게 깽판을 쳐놓고?”
“아하하!”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그녀가 내게 되물었다. 마치, 진심이냐고 묻는 것처럼.
“고작 저거?”
그녀가 팔을 쫙 펼쳤다.
“내가 여기에 직접 나타났다면, 어떻게 됐을지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좀 솔직해져, 잿빛. 너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
“선택해.”
어느새 그녀와 내 앞에는 천칭이 나타나 있었다. 내가 만든 천칭은 아니다. 검은 구정물이 뚝뚝 떨어지는 천칭은 배교자의 것이다.
“그 아이를 내게 넘겨.”
저울이 배교자의 쪽으로 기운다.
“그렇게 해준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가줄게. 다름 아닌 너를 봐서 말이야.”
기울어진 저울.
그것에 수평을 맞추라는 듯 배교자가 미소 지었다.
“······.”
나는 말없이 손을 뻗었다.
내가 그녀에게 들려줄 대답이라곤, 언제나 하나 뿐이었다. 고민 할 가치도 없다. 나는 손을 뻗어 저울을 움켜쥐었다.
콰직.
저울을 박살 냄으로써 나는 대답을 대신했다.
흩어지는 저울 너머로 나는 중지를 세웠다.
“좆까.”
“···흐응.”
레페의 고개가 뚝, 뚜둑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내가 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녀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잿빛.”
그녀가 나를 부른다.
“너는 혼자일 텐데.”
“혼자가 됐지.”
“지금 이곳엔별의 축복을 받은 이가 없어. 사제가 없어. 척후가 없어. 그런데도······.”
그녀가 내게 묻는다.
“너 혼자서, 나를 감당하겠다고?”
나는 답했다.
“감당해야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턱.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레페의 온몸에서 검은 구정물이 흘러 내렸다. 흘러내린 구정물이 바닥에 고인다.
쩌억.
이계(??)의 문이 열렸다.
3.
재앙이 강림한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녀가 왕도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강림에 대한 수단은 마련해 두었을 테니까.
치이이이익!
타들어 가는소리와 함께 문에서 누군가 걸어 나온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핏물로 물든 새하얀 로브다.
찰박.
구정물 위로 그녀가 발을 내디딘다.
새하얀 백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녹 빛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병적일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검게 물든 팔이 눈에 들어왔다.
‘배교자, 글레투스.’
이계의 바깥으로 걸어 나온 그녀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와 대치한다. 그녀의 팔은 여전히 이계에 담가져 있었다.
키긱, 키기기긱.
구정물 속에서 마수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마수의 누린내가 골목을 가득 채운다. 고작 한두 마리의 마수로 저런 악취가 퍼지진 않는다. 코 끝을 찌르는 악취는 지독하다.
우습게도.
나는 이 악취에서 익숙함을 느낀다.
마치 고향에 온 듯한 익숙함이다. 호흡이 가라앉았다. 눈동자는 가늘어졌다.
“안타깝네.”
그녀가 말했다. 이번에는 남의 몸을 빌리지 않고, 자신의 입으로 소리 내 말했다.
“나도 이건 별로 마음에 안 드는걸. 중심이 아니라 외곽이라 아슬아슬하려나?”
틱, 티딕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몸이 갈라지고 있었다.
“아쉽게 됐어, 잿빛.”
그녀가 이계의 바깥으로 팔을 뽑았다.
그녀의 팔과 함께 안개가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너는 꽤 마음에 들었는데.”
나는 그녀를 본다.
배교자란 이름을 가진 재앙을 보았다. 그녀와 내 시선이 공중에서 얽힌다. 나는 그녀의 상태를 가늠했다.
‘약화되어 있긴 하네.’
그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약화되어 있는것 만큼은 확실하다.
‘짐작 가는 게 있긴 하지.’
예전의 일이지만, 그들이 왕도로 들어오지 않는 것에는 어떠한 이유가 작용하고 있으리라 추측한 적이 있었다.
추측은 확신이 된다.
나타난 배교자의 몸에는 균열이 가득하다. 당장이라도 바스러져선 이계로 튕겨 나갈 것 같은 모양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재앙이다.
‘이길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질문에 대한 답은 고민할 가치조차 없다.
‘당연히 못 이기지.’
카일이, 사라가, 레미아가 있어도 이기지 못했다. 나 홀로서 그녀를 이기겠다는 건 오만한 생각이다. 애초에, 상성부터가 최악이다.
그런데, 왜 이곳에 서 있는가.
‘그래야만 하니까.’
몸의 마나가 별로 이루어진 용사.
그런 최상의 소재가, 최악의 연금술사에게 주어져선 안 되다.
‘그리고 말야······.’
마법사가 용사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결정했다.
“주기는 뭘 줘, 씨팔.”
나는 미소 지었다.
“내가 먼저 점 찍어놨어.”
안개가 골목길을 가득 메운다. 마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키기기긱, 소리를 내며 갑각룡이 이계를 빠져나오려 한다.
카각, 카가가각!
이계의 틈이 벌어진다.
안개의 너머에서 재앙이 미소 짓는다. 그 모든 것을 앞에 두고, 나는 뒤를 돌아봤다.
“······.”
벨노아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직 깨어있는 벨노아의 시선과 내 시선이 맞닿았다.
“벨노아.”
나는 미소 지었다.
“잘 봐둬라.”
그리곤 짝, 하고 박수를 쳤다.
“보는 것 만으로도 도움이 될 테니까.”
잘 보고 기억해라.
언젠가 네가 닿아야 할 영역이니까.
천칭(Balance).
눈앞에 별빛이 모여든다.
나타난 천칭과 함께 모든 게 멈춰 선다. 정지된 세상 속에서 별이 내게 질문한다. 그 목소리는 달콤하다.
이기지 못하는 것을 이기기 위해.
하지 못하는 것을 하기 위해.
감당하지 못할 것을, 감히 감당하기 위해서.
나는 언제나 별에게 소원을 빌어왔다. 한낱 인간이, 인간인 채로 재앙을 상대하기 위해선 상응하는 무언가를 바쳐야만 했으니까.
『거래를 원하나, 마법사.』
별이 내게 묻는다.
『대가를 바쳐라.』
바칠 것은 정해져 있었다.
속으로 계산을 마쳤다. 나는 대가를 걸었다.
“바친다.”
대가가 징수되었다.
저울이 직각에 가깝게 기울어진다. 나는 대가를 지불했다. 수평을 맞추는 것은 별의 역할이다. 곧이어 찬란한 별빛이 천칭의 맞은 편에 담겼다. 그로써 저울은 수평을 이룬다.
『거래는 성립됐다.』
멈춰있던 시간이 흐른다.
왈칵, 나는 피를 토했다. 눈에 핏발이 섰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온몸의 마나가 들끓었다.
“하여간, 시팔.”
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넌 뒤졌어 씨발련아.”
팔뚝에 새겨진 회로가 불타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