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11
〈 111화 〉 재앙, 악몽, 귀신(4)
* * *
벨노아는 별을 신성시 여기지 않는다.
별과 거래를 해본 마법사들이 으레 그러하듯, 벨노아 또한 별을 단순한 거래의 수단으로 여겼다.
‘대가를 바치면 합당한 권리를 내린다.’
그곳에 신성함이 껴들 자리는 없다.
지극히 계산적인 관계에 불과했으니까.
‘······분명 그럴 텐데.’
벨노아는 눈앞을 본다.
안개 속에서 마수들이 빠져나온다. 골목길을 가득 메운 마수는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다. 그러나, 저들의 앞에 서는 순간··· 자신의 몸이 갈가리 찢기리란 확신이 든다.
상대할 수 없는 것.
상대할 수 없기에, 두려워해야 하는 것.
그것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이가 있다.
그녀의 잿빛 머리칼이 찰랑인다.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벨노아와 그녀의 시선이 얽혔다.
“잘 봐둬라.”
그녀가 말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테니까.”
그녀가짝, 하고 박수를 친다.
“바친다.”
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진동하는 마수의 악취 속에서, 마수들의 울음소리 사이에서도 그 목소리는 선명하다.
마치, 기도를 올리는 것만 같다.
기도에 별이 답한다. 별은 거래를 원하는 이를 외면치 않는다. 대가는 지불되고, 거래는 성사된다. 그 모든 과정을 벨노아는 지켜보았다.
무언가 바쳐진다.
무언가 저울에 올라간다.
저울에 올라간 것은 찬란한 별빛이 된다.
거래가 끝난 순간, 그녀의 잿빛 머리칼이 빛났다. 그녀의 몸 자체가 별이 된 것처럼 빛났다. 별이 한낱 인간의 몸에 깃든다.
‘···아름답다.’
기적을 목도한 이들은 사제가 된다.
그들은 별의 찬란함에 대해 노래한다. 신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별을 신성시 여긴다.
그러나, 벨노아는 마법사다.
기적을 목도한 마법사는 기적에 담긴 진리를 엿본다. 그곳에 담긴 법칙을 탐구한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지만 벨노아는 보았다.
‘종착점.’
모든 마학의 끝에 놓인 것을.
마법사가 추구해야 할 극한을.
콰직.
별을 품은 마법사가 발을 내디딘다. 벽돌이 튀어 오른다. 바닥에 금이 간다. 쩌적, 하고 내달린 금이 골목길을 뒤덮는다.
분쇄(Smash).
섬광이 번쩍였다.
빛이 어둠을 가른다. 찬란한 별빛이 그늘을 불태운다. 빛 앞에 마수들은 재로 사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뒤늦게 소리가 밀려왔다.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풍압 속에서, 벨노아는 눈을 똑바로 떴다. 눈에 힘을 주고 보았다.
별을 품은 인간이 어디까지고 찬란해질 수 있는지. 자신이 추구해야 할 극한은 어디인지.
그저 보았다.
지금은 그것밖에 할 수 없기에.
2.
『네가 가진 모든 건 재화가 될 수 있다.』
별과의 거래에 대해 처음 배운 날, 스승님께선 내게 그리 말씀하셨다. 어렸을 때의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가지 의문을 가졌다.
‘그럼, 제가가진 가장 비싼 재화가 뭐예요?’
그 물음에 스승님은 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침묵하셨다. 스승님께선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을 뿐이다.
···그 답을 얻게 된 것은 꽤 나중의 일이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다.
나면서부터 부여받은 권리.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 그렇기에 가장 소중한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값비싼 재화다.
삶.
수명(??).
한 사람이 하늘에게 부여받은 세상을 살아갈 권리. 기간으로 수치화된 재화(??). 그 권리의 일부를 포기할 때,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별에 가까워질 수 있다.
수명은 가장 귀중한 재화다.
되돌릴 수 없다.
사용하는 것만으로 몸에 무리가 온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을 휘두르는 대가는 비싸다.
‘수명이란, 수량이 한정된 재화다.’
아껴야 한다. 귀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재화임은 변함이 없다.
‘사용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반드시 써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수명을 바침으로써, 수년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히 감당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기꺼이 바쳐야지.’
나는 기꺼이 수명을 바쳐왔다.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삶의 방식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분쇄(Smash).
팔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마수들이 쓸려나간다.
흩날리는 마수들의 피와 살점 사이로 나는 배교자를 바라본다. 그녀의 상태를 가늠한다.
약화된 상태다.
그녀는 제 발로 왕국에 발을 디뎠다.
알 수 없는 제약이 그녀를 묶고 있다.
그녀가 소환한 사역마들이 약화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신이 강림하기를 꺼렸다.
증거와 증거가 모인다.
모인 증거들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낸다. 도출해낸 결론은 가능성이다. 나는, 가능성을 보았다.
‘오늘, 이자리에서.’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
실낱같은 가능성. 그것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나는 내 수명을 기꺼이 지불했다.
‘배교자를 죽인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재앙으로 군림해 온 미치광이를 죽인다. 그 일념하에 나는 몸을 움직인다.
치이이익.
몸 위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생명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타들어 간 삶은 별빛이 되어 몸에 깃든다.
느껴지는 건 전능감이다.
콰앙!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골목이 박살 난다. 분쇄에 휩쓸린 마수들의 육편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쿠웅.
한걸음에 거리를 좁힌다.
크게 발을 내디디며 주먹을 당긴다. 바닥을 찍은 순간 건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 정말······.”
코앞에서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사랑스러워 미치겠는 걸.”
배교자의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웃고 있다. 황홀한 듯한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 구역질이 치민다.
분쇄(Smash).
지근거리에서 주먹을 휘둘렀다. 당연하게도, 주먹은 닿지 않는다. 이계를 뚫고 나온 갑각룡이 그녀를 보호한다.
키에에에에엑!
분쇄를 받아낸 갑각룡의 표피에 금이 간다.
괴성을 내지르며 갑각룡이 날뛰려 한다. 나는 주먹을 조금 더 깊게 밀어 넣었다.
장전된 주문이 빛을 토한다.
삼중 주문(TripleSpell).
쩌적.
갑각룡의 표피에 금이 간다. 주먹에 힘을 준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갑각룡이 박살 난다.
중첩된 충격이 배교자의 몸을 공중에 띄웠다. 그녀가 팔을 휘둘렀다. 마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
공중에서 쏟아지는 마수를 보며, 나는 무릎을 굽혔다. 배교자를 상대하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간단하지만, 간단하기에 어렵다.
‘시간을 줘선 안 된다.’
땅을 박찬다.
떨어지는 마수들을 터뜨린다. 밟고 도약한다. 그들을 발판 삼아, 공중에 뜬 배교자를 쫓는다.
‘끊임없이 몰아쳐야 한다.’
가속(Accel).
근력 향상(Muscular).
근력 강화(EnhanceStrength).
주문이 차례로 빛을 발한다. 한계까지 강화된 육체가, 한계를 넘는다. 그 대가가 마나로 대체된다. 한계를 넘은 육체에 별빛이 깃든다.
내 예상보다 모든 것이 몇 걸음 앞선다.
몸에 깃든 별빛이 그를 가능케 한다.
원래대로라면 닿지 않았을 거리. 잡지 못했을 적. 그러나, 지금은 닿는다. 쭉 뻗은 손이 배교자의 몸을 감싼 마수를 붙잡는다.
빙글.
공중에서 한 바퀴 돈다. 몸을 빙글 돌며 배교자를 붙잡은 팔을 휘둘렀다.
분쇄(Smash).
삼중 주문(TripleSpell).
쩌억!
중첩된 충격이 배교자의 몸을 날린다. 그녀가 향하는 곳을 눈으로 좇으며 손가락을 튕긴다.
사슬(Chain).
날아가는 배교자의 몸에 사슬을 묶는다.
사슬을 잡은 팔을 휘둘렀다. 한순간 팽팽해진 사슬이 출렁이며 배교자의 몸이 내게로 날아온다.
키에에에엑!
날아오는 건 배교자뿐이 아니다.
공중에 날아가는 중에도 그녀의 손은 이계에 담가져 있다. 벌어진 틈새에서 계속해서 마수가 튀어나온다.
“쯧.”
짧게 혀를 차며 팔을 휘두른다.
마수들이 터져나간다. 당장은, 위치를 옮기는 게 우선이다. 나는 미리 점찍어둔 곳을 본다.
‘성벽.’
마수들의 잔해가 바닥으로 우수수 쏟아진다.
쏟아지는 잔해들 사이로 나는 사슬을 잡아당겼다. 챙, 하고 힘을 못 이긴 사슬이 끊어졌다.
“그걸로 닿겠어?”
코앞까지다가온 그녀가 미소 짓는다.
두 팔을 벌려 나를 껴안으려고 한다. 여전히, 그녀는 여유가 넘친다. 그녀의 몸을 감싼 마수들은 아직 벗겨지지 않았다.
성검(??)이 아니라면.
그녀의 몸을 감싼 마수를 일격에 베어낼 순 없다.
‘그런건 이미 알고 있다.’
내게는 성검이 없다. 없는 것을 구태여 찾을 필요는 없다. 내게는 내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다.
“입 닥쳐.”
나는 주먹을 꽉 쥔다.
흩날린 잿더미가 주먹으로 모여든다.
분쇄(Smash).
재는 재로(Ashes to Ashes).
섬광, 그리고 몰아치는 열기의 폭풍.
그녀를 감싼 마수가 불타 사라진다. 한 겹의 마수만이 남은 그녀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폭발과 함께 그녀의 몸이 날아간다. 한참을 날아간 그녀가 성벽에 쾅,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빙글.
사슬(Chain).
공중에서 몸을 틀며 사슬을 내던진다.
시계탑에, 성당에, 혹은 바닥에. 마구잡이로 처박힌 사슬을 잡아당긴다. 몸을 가속한다.
쐐엑!
성벽에 처박힌 배교자를 본다.
그녀가 돌 부스러기 사이로 손을 뻗고 있다. 이계가 찢어지며 무언가 튀어나오려 한다.
그러나, 내가 조금 더 빠르다.
콰직!
배교자의 머리를 발로 짓밟는다. 쩌적, 소리를 내며 성벽에 금이 간다. 그녀의 머리가 성벽 깊숙한 곳에 파묻힌다.
삼중 주문(TripleSpell).
주문 가속(SpellBoost).
주문 강화(SpellReinforce).
말아쥔 주먹을 휘두른다.
그것이 향하는 곳은 그녀의 팔이다. 드디어 마수를 벗겨냈다. 그 팔을 끊어내기만 한다면, 승기를 붙잡을 수 있다.
분쇄(Smash······.
그순간이다.
서걱.
고요한 절삭음이 귓가를 스친다.
완성을 앞둔 주문이 베였다. 겹겹이 쌓인 주문을 뚫고 들어온 칼날이 손등을 훑고 지나갔다.
완벽한 검술이다.
더없이 깔끔한 참격이었다.
핏.
핏물이 튀었다. 상처는 얕다. 얕지만, 나는 곧장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을 여니, 목소리가 떨렸다.
“너···.”
나는 벽에 처박힌 배교자를 보았다.
그녀를 지키고 있는 ‘그것’을 보았다.
“이게 뭔······.”
“마음에 들어?”
내 발에 짓밟힌 채, 배교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너희에게 팔을 잘리고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 그렇게까지 몰아 붙여진건 처음이었으니까. 나도 꽤 당황했지.”
그녀의 기괴한 웃음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생각해보니 답은 간단했어. 결국에 나는 마법사고, 마법사는 검사에게 약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가니칼트를 상대로 단 1초도 버틸 수 없는 것처럼 말야.”
그녀가.
“그래서 생각했지.”
그녀가, 웃었다.
“나를 지키는 검사가 가니칼트 말고도 또 있었으면 좋겠다고. 가니칼트를 아무 때나 불러올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 재료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어.”
그녀가 소환한 사역마가 검을 든다.
날카로운 칼날이 달빛 아래 요사스레 빛난다.
“순수한 검으로 가니칼트를 버텨낸 건, 역사상 한 명 밖에 없어. 그 어떤 초인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인간이 있었지.”
그 칼이 내 목덜미 앞에 멈춰섰다.
“나는 그 인간을 알아. 너도 알겠지. 오롯이 가니칼트에게 닿기 위해, 일생을 버린 인간. 끝내 그 집념은 가니칼트에게 닿았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니?”
그 칼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칼을 쥔 손을 알고 있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생명체지만, 그 안에 섞인 사람을······.
“소드 마스터, 쿤텔.”
나는,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배교자의 입을 통해 발음된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다. 동공이 흔들렸다.
“가니칼트는 검사의 긍지, 적에 대한 예의라며 시체를 수거해오진 않았지만··· 그게 말이 돼? 이렇게나 아름다운 재료인데?”
“······.”
“이 재료에겐 가니칼트에게 닿을 만큼의 검술이 있었어. 의지도 있었지. 부족한 건 육체뿐이었어.”
“야.”
“그래서,한번 고쳐봤어. 내가 직접 육체를 만들어 주었지. 아름답지 않니? 내가 육체를 줌으로써 그는 완벽해졌어. 불량품에서 제대로 된 완성품이 된 거야.”
“너, 그 입 다물···.”
“다물게 하겠다며?”
배교자가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을 본 순간, 머리에 열이 올랐다. 꽉 쥔 주먹에서 핏물이 흘러나온다. 내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사역마에 온 신경이 쏠렸다.
“잿빛.”
그런 내게 배교자가 속삭였다.
“걸작을 본 기분이 어때?”
그녀가 비웃음과 함께 말했다.
“아니지, 조금 질문을 바꿔야겠구나.”
그녀가 자신을 지키는 사역마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있었다.
“옛 스승을 마주한 기분은 어때?”
뚝.
하고.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