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147
〈 147화 〉 초인, 한낱 인간(2)
* * *
「초인이란 게 도대체 뭐냐고?」
탁.
설산을 뛰어 내려가며, 라니엘은 문득 과거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초인이란 게 도대체 뭐냐고 물었던 자신에게, 검의 초인 쿤텔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다.
「글쎄, 그건 검의 협곡을 세운 갈라트릭 님부터 꾸준히 내려온 의문이긴 하지. 사실, 검의 협곡에서도 초인이 되는 체계화 된 조건은 찾지 못했어. 짐작할 뿐이지.」
소드마스터, 그러니까 검의 초인이란 무엇인가?
아니, 그 전에 초인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무척이나 오래된 의문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완벽한 동작을 선보일 수 있는 이들. 인간을 초월한 초감각을 가진 이들.’
라니엘이 알고 있는 건 그런 것들이다.
물론 라니엘은 그들과 같은 경지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모르겠으나··· 초인들은 흔히들 그 경지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곤 했다.
「성장의 한계치가 사라지는 느낌이지.」
쿤텔은 검을 휘두르며 말했었다.
「앞길을 막아서던 벽을 부수고, 그 너머를 바라보면 드넓은 평야가 보여. 한평생을 걸어도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드넓은 평야.」
그렇게 중얼거리던 쿤텔은, 주름진 제 이마를 툭툭 건드리며 쓰게 웃었다.
「물론, 나처럼 수명의 한계에 부딪힌다면 소용이 없지만 말야. 결국, 초인이라 해도 ‘초감각’을 빼면 별거 없다. 늙어 죽는 같은 인간이야. 용사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닌, 한낱 인간.」
그렇기에 의미가 있는 거지.
쿤텔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때, 라니엘은 쿤텔에게 질문했었다.
‘그 벽이란 게 도대체 뭐냐고.’
초인이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한다는 벽.
라니엘은 경험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주어진 성장의 한계점.」
물음에 쿤텔은 답했다.
「너나, 성녀, 신궁, 용사 같은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재능과 무관히 벽이란 건 존재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평범하겐 넘지 못하는 지점.
성장할 수 있는 한계점.
그 한계를 가리켜, 협곡에선 ‘벽’이라고 말했다.
「형태도, 세워진 지점도 달라. 그 어느 것 하나 형태가 같지 않지. 검의 초인만 해도 그런데, 마법사는 얼마나 다양하겠냐?」
그렇다면, 그 벽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쿤텔은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늘 말했잖아.」
그때 들었던 대답.
그 답을 라니엘은 무심코 곱씹었다.
「실전만큼 효율적인 게 없다고.」
그 문장을 라니엘은 대충 이런 식으로 해석하곤 했다.
“죽기 직전까지 구르는 거.”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였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허공에 맴돌았다.
2.
쿵, 쿠웅.
거세게 뛰는 심장 소리.
주륵.
이마에 맺히는 식은땀.
꼴깍.
마른침을 삼킬 때 느껴지는 비릿한 혈향(血?).
“후욱···.”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
라크는 짧게 숨을 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죽음.’
온갖 것들에서 라크는 죽음을 느낀다.
어느 죽음은 멀다. 어느 죽음은 가깝다. 얼핏 보면 아득히 먼 곳에 있는 듯 하나··· 아주 작은 실수에도 그들은 성큼성큼 다가온다.
‘실수가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지금, 라크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탁.
라크는 눈밭을 달리며 눈을 부릅뜬다. 시야에 담는 것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적이다. 짧지만은 않은 교전 속에서 라크는 상대의 강함을 가늠한다.
‘강하다.’
무척이나 강했다.
기본기에 충실하며, 제 위치를 벗어나는 법도 없다. 모나지 않은 균형 잡힌 강함을 지닌 기사다. 그는 제 할 일에 충실했다.
쿵!
그가 발을 구를 때면 땅이 뒤흔들렸다.
그가 펼친 빛의 장벽은 쉽사리 뚫리질 않는다.
“신께서 바라시니···.”
빛의 장벽 뒤에 숨은 노인은 또 어떠한가.
추기경이라 했던가? 노인에 대한 소문은 라크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단을 심판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앞장섰다던 신실한 교인.
“···빛이 있으리라.”
과연, 그 소문대로다.
노인의 기도는 빨랐다. 기도가 빠르니 주문 또한 빨랐다. 순식간에 완성되는 주문은 위협적이다. 특히나, 그 속도가.
쉭!
라크는 고개를 젖혀 주문을 피한다. 피하지 못한 주문은 도끼를 휘둘러 쳐냈다. 도끼를 쥔 손이 찌르르 떨렸다.
‘가열을 쓰지 않았다면, 이길 수 없다.’
몇 달 전의 자신이었다면 분명 패배했으리라.
“후우···.”
라크는 숨을 뱉는다.
잇새로 김이 새어 나온다. 증기가 끓듯이 새어 나오는 숨을 뱉으며, 라크가 도끼를 고쳐 잡았다.
그렇다, 몇 달 전이라면 패배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승산 없는 싸움이 아니다.’
라크는 그리 생각한다.
벽은 견고하다. 높다. 그러나, 무너트릴 수 없을 만큼 튼튼하지도··· 오르지 못할 만큼 높지도 않다.
‘이보다 더 강한 적, 빈틈이 아예 없을 것 같은 상대에게도 한 방을 먹였다.’
떠올리는 것은 숲속에서의 전투다.
라니아 교수님에게 한 방 먹였던 그 순간을, 라크는 결코 잊지 않는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빈틈은 존재한다.’
라크는 언제나 배움에 충실했다.
지난 반년간의 경험을 되새기며, 라크는 땅을 박찬다. 한걸음, 다시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라크의 몸이 가속한다.
촤아아아아악!
눈밭을 미끄러지며 라크가 접근한다.
한순간에 거리를 좁힌 라크가 도끼를 찍듯이 휘두른다. 하나의 도끼가 방패를 울린다.
카아아앙!
조금이지만 벽이 밀려난다.
도끼는 하나뿐이 아니다. 하나의 도끼가 그린 궤적을 다른 도끼가 정확히 따라간다.
캉, 카강!
쇠와 쇠가 맞부딪친다. 불똥이 튄다.
성기사, 베를랑은 방어에 전념한다. 좀 전처럼 반격할 틈은 나오지 않았다. 추기경이 반격의 기회를 잡고자 주문을 읊는다.
“빛이···.”
빛이 번뜩이는 순간이다.
라크의 동공이 수축했다.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양 라크의 움직임이 한 단계 더 빨라진다.
촤아아악!
눈발이 흩날린다.
라크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다섯.’
자신을 향해 쏘아진 빛의 화살의 궤도를 읽으며 라크가 어깨를 뒤로 젖힌다. 한껏 긴장된 근육이 당겨진 찰나, 라크가 팔을 휘둘렀다.
후웅!
그 순간이다.
추기경도, 베를랑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카가가가강!
쏘아진 다섯 개의 화살을, 라크는 한 번의 휘두름으로 전부 쳐냈다. 화살의 궤도가 바뀐다. 바뀐 방향은 어디인가? 베를랑이 그를 확인하는 것보다 먼저, 이어진 충격이 그에게 답을 주었다.
“윽!”
다섯 번의 충격이 연달아 방패를 울린다.
베를랑이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눈동자에 잠깐이나마 당혹이 깃든다.
‘된다.’
라크는 틈을 보았다.
틈을 본 맹수는 제 송곳니를 드러낸다. 라크는 물러선 베를랑을 곧장 추격했다.
캉, 카앙!
방패에 금이 간다.
금은 커져만 간다.
촤악!
라크는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다. 계속해서 움직인다. 설원은 북부의 전사들에게 있어 앞마당과 같다. 라크는 눈밭 위에서 움직이는 법을 안다.
‘미끄러지듯이.’
눈밭 위로 라크의 발자국이 찍힌다.
찍힌 발자국은 끊어져 있지 않다. 이어진 선과 같은 발자국이 난잡하게 설산을 수놓는다.
‘때로는 강하게.’
쿠웅!
눈발이 허공으로 흩날린다.
라크의 도끼가 눈발을 가르며 방패를 후려친다. 베를랑은 계속해서 밀려난다. 추기경은 화살을 쏘기를 멈추고 빛의 파장을 뿜는다.
“빛 앞에 물러서리라!”
빛의 파장이 라크를 날린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다. 미끄러지듯 눈밭 위로 착지한 라크는 곧장 따라붙는다. 마치, 피를 흘리는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와 같이.
후웅!
도끼를 휘두르며 라크는 생각한다.
‘빈틈이 보인다.’
머리는 차갑다.
몸은 뜨겁다.
움직임이 가볍다.
라크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라진다.
휘두른다, 그리고 찍는다.
두 가지 동작을 반복한다. 반복의 효과는 여실히 드러난다. 움푹 파인 방패가 찢어지려 한다.
핏!
라크의 몸에도 상처가 늘어난다. 차마 쳐내지 못한 화살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느 것은 박힌다. 그러나, 라크의 움직임은 느려지지 않는다.
후두둑.
피를 흘리며 라크는 도끼를 휘두른다.
튕겨 나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한 손가락이 우득, 하고 부러졌지만 괜찮다.
‘보인다.’
쩌적.
‘지금.’
라크가 도끼를 휘두른다.
벌어진 틈새에 도끼를 밀어 넣는다. 견고했던 성벽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틈에 찔러넣은 도끼를 라크는 발로 걷어찼다.
파삭!
방패가 박살 난다. 베를랑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라크는 한 걸음 더 파고든다. 한 손에 남은 도끼를 휘두른다. 그리고, 그 순간이다.
쿵.
베를랑이 발을 찍는다. 흔들리는 눈동자조차 연기였다는 양, 그가 주먹을 뻗는다. 베를랑의 전신을 두르고 있을 빛의 장막이, 지금은 주먹만을 두르고 있었다.
‘훌륭하군. 하지만, 경험이 부족하다.’
베를랑은 기회를 보고 있었다.
벽은 언젠가 무너진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베를랑은 방패가 박살 나는 순간을 노렸다. 눈앞의 승리에 눈이 먼 상대가 달려오는 순간을.
후웅.
공기를 찢으며 베를랑의 주먹이 품으로 파고드는 라크의 머리를 향한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개를 젖힌다 해도 이미 늦은 상황이다.
‘그런데, 어째서인가.’
“······.”
라크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다.
마치, 이미 예상했다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숨겨둔 수는 있는 법이다.
어느 순간까지 그것을 숨기고 있는가, 때로는 그것이 승패를 가르기도 한다.
번쩍.
라크의 도낏자루가 빛났다.
전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충격(Shock).
쩌억! 도끼날에서 뿜어져 나온 충격파가 베를랑의 주먹을 후려친다. 충격파는 주먹을 멈추지도, 꺾지도 못했지만··· 잠깐이나마 베를랑의 주먹이 주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잠깐의 틈이면 충분했다.
품으로 파고든 라크가 도끼날을 쳐올린다.
스겅.
절삭음은 매끄럽다.
베를랑의 주먹은 더 나아가지 않는다.
투둑, 후두두두둑.
핏물이 쏟아진다. 베를랑은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다. 잘린 팔의 단면에서 피가 떨어진다.
“끕, 끄으으윽···!”
라크가 마지막까지 숨긴 수.
라크의 클래스는 배틀 메이지(Battlemage)다.
간단한 주문 한두 개 정도는,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실전을 위한 마법사.
「일단은 너, 마법사다?」
라크는 단순한 길밖에 모른다.
그는 언제나 우직하게 배움을 받아왔다.
그 우직함은 때로는 멍청해 보인다. 비웃음을 사기도 쉽다. 그러나, 끈질기게 버티며 학습해왔기에. 어느 것도 우습게 보지 않았기에. 어떤 가르침도 흘려듣지 않았기에.
「네가 마법사라는 걸 잊지 말라고.」
라크는 자신이 배운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끕, 끄읍···.”
그것이 승패를 갈랐다.
“끄, 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을참지 못한 베를랑이 비명을 지른다.
그가 단면을 한 손으로 붙잡은 채 두 눈을 부릅뜬다. 라크는 그 시선을 구태여 받아줄 이유를 못 느꼈다.
우득!
라크가 발끝으로 베를랑의 무릎을 걷어찼다.
발끝에서 뼈를 부수는 감각이 선명히 느껴졌다.
“끄윽!”
베를랑이 무릎을 꿇는다.
성기사들이 으레 그렇듯, 그들은 기도를 올릴 두 팔 중 하나라도 베어버리면··· 더 이상 신성 마법을 쓰지 못한다.
‘쓸모가 없어진다, 고··· 전사들이 말했지.’
쩌억!
라크는 제 무릎으로 베를랑의 안면을 찍었다.
“크흡···.”
코피를 터뜨리며 바닥에 쓰러진 베를랑을 뒤로한 채 라크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야만스럽군.”
추기경이 눈살을 찌푸린 채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라크는 추기경의 말에 곧장 답하지 않았다. 라크는 추기경의 주변을 보았다.
“······.”
시체가 가득하다.
흐르는 핏물이 라크의 발끝에 닿는다. 라크의 눈동자가 서늘해졌다. 끔찍한 광경에서 라크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멈칫.
추기경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등 뒤에 제단이 있는 까닭이었다. 완성을 앞둔 제단에선 빛이 흘러넘친다.
‘제단을 부수게 둘 수는···.’
제 목숨보다도 이 제단이 중요하다.
추기경은 도망치는 것을 멈추고 라크를 노려봤다.
“바라시니, 빛···.”
그가외운 기도는 끝맺지 못했다.
서걱.
무언가 추기경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추기경은 한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눈앞의 야만인은 도끼를 휘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을 뿐이다.
쿵.
뒤늦게 추기경의 머리가 눈밭에 떨어졌다.
핏물 가득한 눈밭에 얼굴의 반을 처박은 채, 추기경은 죽음의 순간 제 목을 벤 인물을 보았다.
터벅.
검귀(??).
귀신이 자신의 시체 너머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아.”
귀신과 라크의 눈이 마주친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와, 붉은 눈동자가 서로를 본다. 드라카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너도, 나를 막아 세우는 건가.”
그 순간, 라크는 직감한다.
죽음이 제 귓가에 속삭이고 있음을.
멀찍이 느껴지던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