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44
〈 244화 〉 마법사들의 밤(6)
* * *
청색 마탑주, 브릭은 자신에게 시선이 쏟아짐을 느꼈다. 자신이 선보인 증강 마공학에 환호성을 지르는 마법사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서늘한 침묵.
의심스러운 눈초리.
빈말로도 호의적이라 볼 수는 없는 시선이다.
목덜미가 따갑다는 건 과연, 이런 상황에서 쓰는 표현이었던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브릭은 제 이마를 쓸어내렸다.
‘···이게.’
이게 말이 되는 일이란 말인가.
브릭이 마학연회에서 선보인 마공학에는 청색 마탑의 정수가 담겨있다. 가히 최선이라 부를만한 결과물이었고, 그 성능 또한 파격적이었다.
공들여 쌓아올린 결과물.
쉽게 무너트릴 수 없는 탑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떤가.’
무너졌다. 그것도 처참하게.
브릭은 단상에서 내려오는 소녀를 바라봤다. 여전히 신비롭고, 여전히 속내를 읽을 수 없는 소녀다.
저 소녀가 브릭의 탑을 무너트렸다.
너무나도 쉽게,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자신이 쌓아올린 탑을 뭉개트린다.
그것은 브릭에게 있어 과거를 떠올리게끔 한다. 브릭은 낯선 소녀에게서 익숙한 청년의 얼굴을 떠올린다. 청색 마탑을 짓밟았던 어느 젊은 마탑주의 목소리가 브릭의 귓가에 맴돌았다.
「실적으로 증명하시면 될 문제 아닙니까.」
그리고, 소녀의 목소리 또한.
「과거에 집착하는 건 잿빛 마탑이 아닌 것 같군요.」
으득, 하고 브릭이 이를 갈았다.
누가 보아도 승패의 결과는 분명했으며, 이 패배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또 다시 청색은 잿빛에게 패배했다.’
이 패배가 시장에 불러올 타격, 차후 자신이 감내해야 할 손해··· 수많은 것들이 브릭의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끝끝내 남은 것은 하나다.
굴욕.
승리를 확신했기에 내뱉었던 말들은, 전부 화살이 되어 브릭에게로 돌아온다. 그것이 브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다. 몹시도 굴욕적인 일이었다.
『이번에도.』
『이걸로 두 번째.』
『마탑주나 되시는 분이 어찌.』
광장에 모인 마법사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브릭의 귓가에 맴돈다. 이곳에는 마탑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이들이 있고, 그들은 목소리를 줄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떠들고 있다.
파르르.
브릭의 어깨가 떨린다.
그러나, 차마 자리를 뜰 수 없기에 브릭은 이를 악물고 단상에서 내려오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
그러다 문득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관객의 환호를 받으며 퇴장하다 말고, 브릭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브릭을 향해 다가올수록 관객들의 수군거림은 커졌다.
“···무슨 용건이라도 있나?”
브릭은 태연함을 가장한 채 소녀를 바라봤다.
소녀는 여전히 무표정해 속내를 읽을 수가 없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온 그녀가 브릭의 앞에 멈춰 섰다.
‘조롱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조롱을 당해도 할 말은 없었다.
패자가 된 지금, 승자가 무슨 말을 하던 브릭은 감내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므로.
“할 말이 있다면 하게. 비웃을 테면 비웃···.”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청색 마탑주님.”
그러나 들려온 건 전혀 의외의 말이다.
브릭은 눈매가 가늘어졌다.
“···좋은 말씀이라니?”
“마법사는 과거에 얽매여선 안 되며, 다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 말입니다.”
“그 부분이··· 좋았다?”
정작 자네가 부정하지 않았나.
과거에 얽매인 건 오히려 너라고.
브릭이 의문 어린 시선을 보내자, 라니아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
“잿빛 마탑을 언급하신 부분이 다소 불쾌하여 한마디 덧붙이긴 했지만, 단상에서 언급하신 말 전부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없다.
“마법사는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 과거에 매몰되지 말아라. 흔한 말이지만, 결과물이 함께할 때는 흔치 않은 말이 됩니다.”
그리고, 청색 마탑주께선 증명하셨잖습니까.
라니아는 브릭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과거, 고대 마공학 기술을 복원하여 증강 마도구를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청색 마탑주께선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시작하여 마도구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그럼에도.
“비슷한 결과물이 나왔지 않습니까. 놀라울 정도로.”
두명의 마법사가 내놓은 결과물은 비슷하다.
“제가 개인적으로 청색 마탑주님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결과물 자체를 놓고 봤을 때는 대단하단 생각을 합니다.”
네가 꼬와서 다소 날이 선 반응을 보이긴 했으나, 인정할 건 인정할 생각이다. 그렇게 말하듯이 소녀는 브릭을 바라본 채 엷은 미소를 지었다.
“좋은 결투였습니다. 느낀 바가 많습니다.”
그리곤 대뜸 손을 내민다.
마치 악수를 청하듯이.
“······.”
브릭은 말없이 라니아의 손을 보았다.
새하얗고 가느다란, 아직 앳된 티가 남은 손.
이어서 브릭은 라니아의 얼굴을 본다.
꾸며낸듯한 표정이 아니다.
조롱하려는 의도도 없다. 그저, 순수하게 좋은 결투였다고 느끼어 내민 손이다.
‘···다르다.’
소녀는 잿빛 마법사와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브릭은 눈앞에 선 인물이 잿빛 마법사였다면, 그가 어떤 말을 했을지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말만 번지르르하더니, 별거 없군요.」
그런 식으로 조롱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눈앞의 소녀는 다르다.
조롱하긴커녕 이쪽을 치켜세우고 있다.
『······.』
그 덕에 주변은 고요하다.
정작 승자가 패자를 칭찬하고, 감탄했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관객이 할 말이 있을 리가 없다. 침묵하던 관중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더니 하나둘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달라.’
브릭은 눈앞의 소녀에게서 잿빛 마법사 라니엘의 모습을 겹쳐 보았으나, 닮았을지언정 그와는 다름을 인정해야 했다.
이제 브릭은 부끄러움마저 느낀다.
굴욕적인 패배이긴 하나, 상대가 이렇게 시원하게 나와서야··· 굴욕으로 받아들이기조차 힘들다. 저 악수를 거절해보아야 자신만 우스워질 뿐이다.
잠깐을 고민하다가.
브릭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렇게 느꼈다니, 고맙군.”
브릭은 소녀의 악수를 받아들였다.
관중의 박수소리가 한층 커졌다.
“폭언에 대해선 내 사과하겠네. 말이 심했···.”
“그러게요. 어차피 질 거면서 입을 왜 그렇게 가볍게 놀렸대.”
그렇게 훈훈한 장면이 연출되려는 순간이다.
어느새 다가온 백색 마탑주가 라니아의 어깨에 제 두 손을 얹었다. 둘의 키와 머리색이 비슷하여, 얼핏 보면 자매처럼 보이기까지 하다.
브릭이 눈살을 찌푸렸다.
“백색. 낄 상황과 끼지 말아야 할 상황은 구분함이···.”
“허접.”
“뭣?”
청색이 눈을 부릅떴다.
백색은 쿡쿡 웃음을 흘리며 다시 한번 말했다.
“꼴이 좋아요. 허접.”
이러니 저러니 청색에게 쌓인 게 많은 백색이었다.
2.
「패자를 칭찬하거라, 라니엘.」
「승자는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승자다. 승자가 나서서 패자를 조롱하면, 당장은 기분이 좋더라도 승리의 가치는 가벼워지는 법이지.」
「조롱하는 건 삼류.」
「침묵하는 것은 이류.」
「찬사를 보내는 이는 일류다.」
「찬사를 보냄으로써 패자를 치켜세우고, 치켜세움으로써 네가 얻어낼 승리는 더 높은 가치를 가치게 되는 법이지.」
얼마전에 스승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솔직히, 결투가 끝나기 직전까진 까먹고 행동하고 있었는데··· 관객들에게 은근한 조롱을 받는 청색 마탑주를 보다 보니 스승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서 일단 해보긴 했는데.’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참으로 꼰대스러운 청색 마탑주 개인의 성격과는 별개로, 결과물 자체는 대단하다고 느끼긴 했으니까.
‘효과가 있···나?’
나는 슬쩍 청색 마탑주를 보았다.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아있었지만, 막 패배했을 당시처럼 그는 내게 날 선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주변의 반응도.
청색 마탑주에게 은근한 모욕을 보내던 수군거림은 줄어들었다. 줄어든 만큼 늘어난 것은 나에 관한 이야기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벌써.』
『장래가 기대되는.』
『마학 지식뿐만 아니라, 마공학에 대한 지식 또한··· 몹시 놀라워.』
『역시 트리아스 가문인가? 위대하신 잿빛 마법사님의 다음을 이을 거라더니.』
조금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듣지 않는 척 음습하게 귀 기울이지 말고, 대놓고 듣는 게 어떻느냐. 라니아.”
“제, 제가 언제요.”
“떨리는 입꼬리나 감추고 말하거라.”
내가 슬쩍 입가를 가렸다.
스승님께서 한숨을 내쉬며 찻잔을 내려놓으셨다.
“그래서, 저자는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왜긴요? 당신 제자 축하하러 왔죠.”
스승님의말에 백색 마탑주가 답했다.
조금 전부터 그녀는 내 옆자리에 딱 달라붙어 앉은 채, 마냥 풀어진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정말, 어찌나 통쾌하던지. 그 늙은 영감한테는 꼭 한마디 날려주고 싶었는데, 저를 대신해 날려주다니···.”
여전히 백색 마탑주는 오해 가득한 주관적인 해석을 늘어놓고 있다.
‘정정을 위한 지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지적해 봐야 마치 다 이해한다는 듯한, 뜨뜻미지근한 시선이 돌아올 뿐이었으므로··· 나도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네가 모르면 누가 안다는 것이냐···?”
“그러게요···?”
스승님의 의문 어린 시선에, 나 또한 의문 어린 시선으로 받아치다 말고··· 나는 광장을 쓱 둘러봤다. 여전히 광장은 마법사들로 바글거렸다.
마학연회는 끝이 났다.
그럼에도, 마법사들은 대광장을 뜨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직 저 단상에 한 마법사가 올라오지 않았으므로.
깜빡.
그리고, 드디어 시간이 된 모양이다.
광장을 밝히던 마석 전등들이 불안정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단상 위의 것들은 더욱 심하게.
대기중의 마나 농도가 올라간 것이다.
갈무리되지 않은 마나가 일대의 공기를 무겁게 만든다. 무거워진 공기 사이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탁.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단상 위로 한 명의 마법사가 올라온다. 푸르스름한 머리칼과 금빛 눈동자. 한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고목의 지팡이.
고룡의 마법사, 요르문 반 드라고닉.
“반갑네. 이 시대를 이끄는 마법사들이여.”
단상에 선 그가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마학연회에서 보여준 결과물들은 제법 흥미있게 보았다네. 내 방문 탓에 다소 일정이 앞당겨졌을 텐데도··· 인상적인 결과물이 많더군.”
마법사들의 신이라 불리는 고룡의 마법사다.
그가 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무슨 세기의 명언이라도 되는 양, 마법사들은 눈을 빛내며 그가 내뱉는 말에 집중했다.
“이번 마학연회도···.”
만족스러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마법사들의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보는 것은 언제 보아도 즐겁다.
“그리고.”
언제나와 같은 의례적인 말을 한동안 내뱉은 고룡의 마법사가 짧게 숨을 삼켰다.
그리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정적.
정적 속에서 그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 광장에 모인 이들의 시선도 덩달아 움직인다. 광장의 끝에서 끝으로 이어진 시선의 행렬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라니아 반 트리아스.”
나였다.
“이번 마학연회의 주역이자, 근 1년간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낸 어린 마법사.”
그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별과 마법사가 행하는 거래에 대해 깊게 탐구했으며,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수많고 수많은 마법사들과는 다른 시선으로서 별을 보았지.”
고룡의 금색 눈동자.
세로로 찢어진 동공에 백금색의 고리가 새겨진다.
“이에, 나는 그대에게 현인(?人)의 자격을 하사하네.”
줄곧 침묵을 유지하던 마법사들조차, 이번에는 침묵하지 못한 듯 광장이 술렁였다. 그럴만했다. 현인이란 그만한 칭호였으니까.
고룡의 마법사의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
마법사의 신께서 보증한 마법사.
그 자격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단순한 명예뿐만이 아니라··· 원한다면 그에 따르는 권력 또한 쥘 수 있는 칭호였으니까.
“이만한 나이에 현인의 자격을 받은 건 그대가 최초로군. 사제가 함께 받은 것도 최초이지. 여러모로 대단한 일이야.”
웃음을 머금은 채 고룡의 마법사가 짝짝,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는 전염됐고, 그 소리가 가라앉았을 무렵 고룡이 다시 입을 열었다.
“또한.”
나와 그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금색의 눈동자에 내 푸른 눈동자가 비춘다.
“나는 그대에겐 조금 더 특별한 이름이 필요함을 느낀다네. 그 어떤 현인과도, 역사상 어느 마법사와도 다른 마도(??)를 걷는 그대에겐 특별함에 어울리는 이름이 필요한 법이지.”
내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고룡의 마법사가 일찍이 내게 언급했던, 또 다른 이명. 지금부터 내려질 그것에서··· 왠지 모를 꺼림칙함을 느낀 까닭이다.
“마법사의 태반은 별의 아래 살아간다. 그들은 별에게 속박받지. 별에게 자유로울 수 없어. 하지만, 그대는 다르다.”
고룡이 속삭인다.
“별을 신앙하지 않아. 신뢰하지 않아. 호의적으로 여기지도 않지. 그렇기에 그대는 진리에 근접했다.”
불신(?).
“별 아래 걷지 않는 아이야.”
고룡이 나를 보았다.
“네게는 인도자의 자격이 있구나.”
동족을 바라보는 눈동자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