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53
〈 253화 〉 내가 너희의 미래다(3)
* * *
『막으면 휴강. 못 막으면 보강.』
귓가에 교수님의 속삭임이 메아리친다. 속삭임은 부드러우나, 그 내용마저 부드럽진 않다. 라크는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흐름을 느꼈다.
‘막으면 휴강.’
듣기만 해도 달콤한 단어와.
‘못 막으면 보강.’
듣는것만으로 등골에 소름이 끼치는 저주의 언어.
“······.”
라크는 말없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마주친 벨노아의 얼굴은 공포로 물들어 있었는데, 라크가 생각하기에 지금 자신이 짓고 있는 표정도 저것과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았다.
한 번의 시선 교환.
이윽고 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땅 위에서 둘은 조금씩 균형을 잡아야 간다.
‘막아야 한다.’
둘의 생각이 겹쳐진다.
공통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간은 때로는 협력하는 법이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달콤한 휴식을 위해서.
지옥 같은 훈련을 받지 않기 위해서.
결사항전의 각오를 다진 둘은, 덮쳐드는 주문을 향해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아니, 쟤네 갑자기 왜 저래?’
그 모습을 지켜보는 록스의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2.
록스는 지금 몹시도 당황스럽다.
군화로 내려찍은 땅이 출렁이고, 주문이 연달아 폭발하며 땅이 뒤엎어진다. 이는 록스가 개발한 충격 계열 주문의 극한이었으며··· 록스의 상징과도 같은 주문이다.
격동을 잇고 또 이어 만든 록스만의 주문.
그렇게 연쇄된 격동은 상위 주문 대격변마저 능가하는 위력을 지닌다.
그러나, 그 주문을 앞에 두고도 벨노아와 라크는 물러설 기색을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각오를 다진 듯 흔들리는 땅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위력을 줄였다곤 하나, 그래도 대응을 할만한 마법은 아닐 텐데?’
요컨대, 항복하라는 의도로 사용한 주문이다.
주문을 핵심으로 삼는 마법사들조차 대처하기 어려운 주문이다. 땅을 박차고 달려야 하는 저 두 사람이 파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록스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저들이 재능있는 학생이며, 가까운 미래에 자신보다 아득히 높은 곳에 올라설 아이들이란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당장은 지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쯤하고 항복해라.
그 의도가 확실히 전해지도록 주문의 전조 현상을 최대한 과장되게 부풀린 것이거늘···.
콱.
제 무기를 강하게 움켜쥔 채, 이쪽을 노려보는 둘에겐 항복을 외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좀 전보다 더욱 투지가 넘쳐흐르는 모습이다.
결사항전의 각오.
죽어도 막겠다는 강렬한 의지.
이미 각오를 다진 듯한 두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한 가운데, 록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아니, 도대체 왜??’
이해 할 수가 없다.
‘이거, 그냥 훈련 아니었···나?’
모의 전투, 훈련을 위한 대련.
이런 가벼운 전투에서조차 사력을 다하는 둘에게서 록스는 일종의 귀기마저 느낀다.
물론, 훌륭한 자세긴 하다.
훌륭한 자세긴 하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이 들고 만다. 록스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땅과 맞닿은 군화를 옆으로 비틀었다.
‘해보자 이거지.’
그렇다고 이쪽이 포기해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록스가 군화를 비틂과 동시에 주문이 완성된다. 출렁이던 땅이 쩍, 쩌적하고 쪼개지기 시작한다.
콰가가가가가가각!
쪼개진 땅과 땅이 서로를 밀어 올리며, 지면이 융기한다. 융기한 지면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벨노아와 라크를 덮친다.
그리고,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탁.
라크가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덮쳐드는파도를 향해 정면으로 뛰어든다. 그 순간, 록스는 머릿속이 새하얘짐을 느꼈다.
‘아니, 저 미친 도련님이···!’
아무리 위력을 약화했다곤 하나, 정면으로 뛰어들었다간 큰 부상을 입을 게 분명했다. 당장에라도 주문을 중지해야 하나 록스는 고민했지만.
“어···?”
그것이 쓸데없는 고민임을, 록스는 머잖아 깨달아야만 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도약한 라크가 두 팔을 등 뒤로 젖힌다.
은백색의 도끼가 햇빛을 난반사 하며 빛나고, 부릅뜬 라크의 눈동자에 핏발이 선다.
투둑, 투두둑.
교복의 소매가 찢어지며 라크의 팔뚝이 드러났다. 핏줄이 돋은 팔뚝이 한순간 팽창하고, 도끼의 손잡이가 우그러진다.
한계까지 축적된 힘.
아플리아 뒷산의 나무를 닥치는 대로 베어 가며 완성시킨 라크의 기술. 그것은, 라크가 보았던 어느 초인의 기술을 흉내 낸 것이다.
난격(?).
젖혀진 팔이 휘둘러진다. 도끼날이 은백색의 호를 그린다. 두 번의 참격이 라크를 향해 밀려드는 파도를 후려쳤다.
쩌어어어어어억!
파도가 일순간 정지한다. 상위 주문조차 능가하는 위력을 가진 주문을, 단순히 도끼를 휘두르는 것으로 저지시켰다.
‘저게 뭔···?’
록스의 눈동자가 크게 뜨인다.
그러나, 놀라기는 이르다는 듯 멈춰선 파도가 서서히 비틀리기 시작한다.
참격이 꽂힌 곳을 기점으로 파도가 출렁인다. 흐름이 뒤바뀌기 시작한다. 출렁이는 파도 속에서 연달아 충격이 터져 나온다.
‘흐름이, 뒤틀린다.’
주문의 근간을 이루는 마나의 흐름을, 참격으로 뒤흔들어 놨다.
“큭!”
록스가 흐름을 다시 붙잡고자 발을 구르려는 순간이다. 뒤틀리는 파도를 향해 자세를 낮춘 채 벨노아가 달려든다.
···록스로선 알 길이 없지만, 이것은 라크와 벨노아가 라니엘을 상대하며 학습한 전법이다.
라니엘의 주문은 통상 마법사들의 것과는 수준 자체가 다르다. 그녀가 가볍게 쏘아대는 기초주문조차, 어지간한 마법사들이 각 잡고 쓰는 상위 주문만큼의 위력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주력 주문인 분쇄(Smash)의 경우··· 상위 주문을 아득히 넘어선 출력을 보인다.
딱 한 번.
딱 한 번이지만, 두 사람은 라니엘이 사용한 분쇄(Smash)를 막아낸 적이 있었다. 그때 깨달았던 공략법을 라크와 벨노아는 이 자리에서 선보인다.
‘정면에서 막아낼 수 없는 것.’
출력으로 이길 수 없는 주문.
그것을 상대하는 방법을 두 사람은 찾아냈다.
카득, 카드드드득!
라크가 마나의 흐름을 뒤틀어둔다. 그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실력 있는 마법사는 금세 흐름을 휘어잡고 만다. 라니엘의 경우,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것만으로 흐름을 붙잡아 냈다.
그러나, 분명한 틈이 만들어진다.
쪼개지고 비틀린 흐름을 메꿨다 한들··· 메꾼 흔적은 남는 법이다.
벨노아는 그 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록스가 휘어잡으려는 흐름의 중심에 제 손아귀를 찔러넣는다. 망가진 마나의 흐름을 움켜쥔 채, 그대로 뜯어낸다.
투확!
벨노아의 손이 파도 속에서 빠져나옴과 동시에, 흔들리던 땅이 정지한다. 몰아치던 파도는 흙더미가 되어 무너지기 시작한다.
“허, 허허···.”
그 모습을 지켜본 록스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내가 뭘 본거지?’
주문을 해체해냈다.
저 둘로서는 처음 봤을, 난해하기 짝이 없는 주문에 정면으로 달려들어··· 그대로 해체해냈다.
주문의 해체.
최상의 대처법이라곤 하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문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동체 시력과··· 주문을 향해 정면으로 뛰어들 담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방법이었으므로.
최전선의 마법사들조차, 몇 번이고 본 익숙해진 주문을 상대로나 시도하는 방법이다.
‘그걸, 처음 본 주문을 상대로···.’
성공 해냈다. 너무나도 깔끔하게.
어이가 없어 웃음이 새어 나온다.
록스는 제 눈가를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야 원.”
더 싸우려면 싸울 수 있다.
주문의 해체에 온 기력을 쏟아 부었는지, 라크와 벨노아는 반쯤 탈진 상태다. 그에 비해 록스에겐 아직 주문이 남아있다.
이대로 전투를 속행하면 승기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록스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정말로 대단한 것을 보았을 때, 정점에 설 재능의 편린이 느껴지는 아이들을 보았을 때··· 그 사실에 질투를 느끼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순수하게 감탄하는 이 또한 있는 법이다.
록스는 후자에 속한 인물이었다.
“배워야 할 건 저였군요.”
록스가 쓰게 웃으며 제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제가 졌습니다.”
3.
결투는 끝이 났다.
관객들의 찬사 속에서 라크와 벨노아가 퇴장하고, 투기장에 모여들었던 학생들도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질문은 조금 후 광장에서 받도록 하겠습니다. 당장은 뒷정리를 조금 해야 해서.』
록스에게 몰려든 학생들이 제법 있었지만, 록스는 적당히 말을 붙이며 학생들을 광장으로 보냈다. 그리하여 한산해진 투기장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라니아 교수님?”
“응.”
록스는 어느새 투기장으로 내려온 라니아를 흘겨봤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록스에게 라니아가 답했다.
“뒷정리한다면서?”
“학생들이 쓰는 시설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난장판을 쳐놨으니 땅은 다져놓고 가야죠.”
“손님에게 그런 걸 시킬 수는 없잖아.”
라니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투기장의 중심으로 다가섰다.
“내가 할게. 어차피 금방 해.”
그녀가 발을 들어 올렸다가, 가볍게 땅을 찍었다. 반질반질한 단화의 굽이 울퉁불퉁 솟아오른 지면에 닿는 순간이다.
재구축(Rebuild).
땅이 뒤흔들린다. 한순간 피어오른 흙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땅은 결투 전과 같이 평평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우 먼지.”
손을 휘휘 저으며 먼지를 털어내는 라니아를 바라보는 록스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 재구축도 쓸 줄 아시는군요? 어지간해선 사용할 일이 없는 주문인데···.”
“사용할 데가 왜 없어? 많은데?”
라니아가 눈을 깜빡였다.
록스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전장에선 많습니다. 많은데, 교수님 아니십니까. 교수님이 무슨 이런 주문까지···.”
“내가 원래 할 줄 아는 게 좀 많아.”
라니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퍽 매력적인 미소였다.
“그래서, 상대해본 소감은 어때?”
“제가 못 보던 사이에 아플리아는 괴물 양성소가 된 모양입니다. 수준이 남다르던데요.”
록스가 아플리아를 다닐 때도 재능있는 아이들은 많았으나, 저 두 사람에 비하면 범재에 불과한 이들뿐이다. 록스 자신조차도.
“당장 전장에 던져놔도, 어지간한 마왕군은 상대가 안 되겠더군요. 군단장급이라도 오지 않는 한 말입니다.”
“재앙에게는?”
“무리죠. 아직은.”
하지만, 하고 록스가 덧붙였다.
“앞으로 삼 년, 아니 일이 년만 더 있더라도··· 닿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벌써부터 벽을 본 것 같은 아이들이니까요.”
“그래?”
“제 입으로 이걸 말하게 하다니, 제법 잔인한 분이시군요. 라니아 교수님은.”
록스가 쓰게 웃었다.
아직 벽조차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는 록스다. 초인의 경지가 아무에게나 허용되는 게 아니며, 자신과 같은 범재에겐 벽을 보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을 록스는 잘 알고 있다.
‘결국에는 볼 줄 아는 놈이 벽도 보는 거니까.’
록스는 그 애매한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한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기분이 나빴으면 미안해.”
“아뇨, 다 자격지심이죠. 사실 그닥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전장에 있다 보면 재능 있는 아이들,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보게 되니까요.”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으나, 전장에는 자신보다 더한 괴물들이 차고 넘친다.
“일일이 질투하기엔 제 갈 길이 멉니다. 오히려, 기쁜 일이죠. 저렇게 재능있고, 뛰어난 아이들이 나타나는 것은요.”
이렇게 말하긴 하지만, 록스가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할 수 있던 건 아니다. 록스에게도 재능있는 이들을 질투하고, 그들과 저 자신을 비교해가며 좌절했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록스, 당신의 눈에는 제가 어떻게 보입니까?」
하지만.
「저는 카일과 같은 출력을 내지 못합니다. 데스텔처럼 기발한 작전을 세울 수도 없습니다.」
「제가 처음 용사가 됐을 때, 제 1 왕자께선 저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셨습니다.」
록스는 알고 있다.
「불쌍하다고.」
「너는 한평생 카일의 그림자에조차 닿지 못할 것이며, 재앙에게 유린당할 운명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게 사실이니.」
자신보다 더 재능이 없었으나.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누가 저를 앞서 가던 간에, 결국 제가 할 일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간 인물을.
그 끝에 모두의 칭송을 받고 있는 인물을.
「그렇게, 걷다 보면 하나쯤은 있지 않겠습니까.」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말입니다.」
「당신도 그런 일을 찾길 바라겠습니다, 록스.」
록스는 알고 있다.
록스가 성창을 쥔 용사의 뒷모습을 떠올리고 있을 무렵이다. 라니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멋지네.”
“예?”
록스가 라니아를 바라봤다.
라니아는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멋지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몇 없어.”
“그, 그렇습니까?”
“응. 애들이랑 대련해주느라 수고했어. 머무르는 동안 아플리아 관광도 잘 하길 바라. 카페도 꼭 들려보고.”
라니아가 걸음을 돌린다.
잿빛의 머리칼이 불어오는 바람에 찰랑거렸다.
록스가 그녀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라니아가 살짝 고개를 돌려 록스를 바라봤다.
“갈라할 님에겐 전해줘.”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빛났다.
“방문, 기대하고 있겠다고.”
록스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