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54
〈 254화 〉 내가 너희의 미래다(4)
* * *
록스는 아플리아에 사흘 정도 더 머물렀다.
아플리아에 머무르는 사흘 동안 록스는 기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가벼운 대련과 상담을 해주었는데, 멀리서 보기에 썩 흐뭇한 광경이었다.
졸업한 선배가 후배들의 진로를 상담해주고, 경험에 기반을 둔 조언을 해준다. 그건 학생들에게 있어 무척이나 귀중한 경험이리라.
“수고했어. 관광하러 왔다면서, 어째 일하다 가는 것 같네.”
“일이랄 것도 아닙니다. 견습 기사들을 교육하는 것보다 훨씬 즐거운 일이더군요. 오랜만에 모교로 돌아오니 즐겁기도 하고요.”
나흘째 되는 날.
아플리아를 떠나며 록스는 내게 갈라할의 방문 일정을 보다 상세히 설명해줬다.
“갈라할 님의 방문은 열흘 정도 뒤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열흘 뒤에 갈라할이 방문한다.
그에 관한 소식은 최대한 당일까지 숨길 예정이라고 록스는 말했다.
“숨겨?”
“예. 갈라할 님이 이번에는 조용히 방문하시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어차피 오면 난리 날 텐데 뭘.”
용사가 왕도에 찾아오는 일은 몹시 드물다. 그중에서도 갈라할은 수도에 들린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적어도, 내가 전장에 있는 동안은 그랬다.
‘그런 갈라할이 수도로 찾아온다?’
난리가 안 나는 게 이상했다.
“그래도, 이곳은 아플리아잖습니까.”
록스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명문가라 한들, 이름만 내세워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죠. 그 이름 높은 마탑주들 조차 절차를 밟아야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니까요.”
“그런가?”
“···아플리아의 교수님 아니십니까? 어째 제가 더 잘 아는듯한 느낌입니다.”
중얼거리다 말고 록스가 아, 하고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라니아 교수님도 명문가 아가씨였군요. 이런 걸 신경 쓸만한 위치에 계신 분은 아니시니 모르실 만도 합니다.”
“응?”
내가 눈을 깜빡였다.
···명문가 아가씨?
‘그게 그렇게 되나?’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전장으로 향하기 전부터 트리아스 가문은 마학계에서 이름 좀 날리던 명문가였다.
게다가, 내가 전장에서 쌓은 업적이 죄다 반영되면서··· 가문의 위세가 말도 안 되게 올랐다고 스승님께 들었던 것 같다.
「이젠 어지간한 가문은 명함도 못 내밀 거다. 나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긴 하지만, 요 몇 년 사이에 그만한 위치에 오르게 됐더구나.」
전장에서 쌓아올린 업적.
그리고, 최근 고룡의 마법사에게 이명까지 받으면서··· 트리아스 가문은 범접할 수 없는 위치까지 올랐다던가.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듣진 않았지만···.’
상황을 얼추 이해는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턱을 매만지다가 록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명문가 아가씨처럼 보여?”
“예? 이거 말 잘 못하면 모욕죄로 잡혀가는 겁니까?”
“농담은.”
전장 출신의, 그것도 하인켈 아저씨의 직속 보좌관이 그런 걸로 잡혀갈 리가. 록스도 그걸 알고 말한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다른 귀족 출신의 아가씨들과는 다른 느낌이긴 합니다. 라니아 교수님께선 권위를 앞세우지도 않으시고, 대화를 나누기도 편하니까요.”
“그래?”
“예, 솔직히 말하면··· 제가 귀족 하면 떠올리는 인상이랑은 상당히 다른 느낌입니다.”
그야 나도 평민 출신이니까.
“떠오르는 인상?”
“그··· 불쾌하실 수도 있지만, 제가 귀족 하면 떠올리는 인상은 그겁니다. 전장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경력을 쌓으러 오시는 귀족가 자제분들.”
아, 뭔지 알 것 같았다.
‘무슨 무슨 작전에 참여했다, 작전에 함께했다 같은 경력만 챙겨가려는 애새끼들.’
전장을 무슨 지들 이름값 올리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버러지들이 종종 있었고, 그런 녀석들은 대개 권위에 찌들어있는 애새끼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싸가지 없는 애새끼들.’
록스도 평민출신이라 했던 만큼, 그런 애새끼들한테 시달린 경험이 종종 있을 테지.
나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지랄 맞은 애새끼들이랑 같겠니, 내가.”
“그야 그렇···예?”
“응?”
록스가 말을 하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그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그 시선의 의도가 알 수 없었다.
“그, 라니아 교수님?”
떨리는 목소리로 록스가 내게 질문했다.
“방금··· 뭐라고?”
내 입에서 전혀 의외의 단어가 튀어나왔다는 듯한 반응이다. 나는 눈을 깜빡이다 말고, 방금 말했던 말을 다시 한번 입에 담았다.
“그런 지랄 맞은 애새···.”
“허어억···.”
록스가 숨을 헛삼켰다.
“욕, 욕도 하실 줄 아십니까?”
“넌 날 대체 뭐로 생각했던 거냐···?”
뭔가 환상이 깨진듯한 모습이었다.
2.
“내가 욕하면 이상하냐?”
“예? 이제 와서?”
가더의 집무실.
집무실의 주인인 칼트는 서류를 작성하다 말고 나를 바라봤다. 참으로 새삼스럽다는 눈빛이었다.
“선배님 입담이 걸걸한 게 뭐 하루 이틀 일입니까. 처음 선배님 만났을 때는 입에 무슨 걸레를 물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뭐 시팔아?”
“거보십쇼.”
칼트가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첫 만남 때 저보고 개코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와서 말하지만, 선배님과의 첫 만남은 최악이었습니다. 정말로.”
“그때 너도 나보고 동정 마법사라고 놀렸잖아.”
“그래서 두들겨 패셨잖습니까.”
“좀 때리긴 했지.”
“좀? 좀이라고 하셨습니까?”
“뭐.”
“쓰읍···.”
칼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내가 말해 뭐하겠냐, 하는 표정이었는데 보고 있자니 제법 열 받는 표정이었다.
“뭐, 무슨 말을 하시는지는 대충 이해가 갑니다. 지금 그 모습으로 욕을 하면 이상해 보이냐, 그렇게 묻는 거 아니십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록스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마치 초대 마탑주가 개 꼰대 엘프란 걸 알고 환상이 깨졌을 당시의 나와 같은 얼굴을 지으며 돌아갔던 게 마음에 걸렸으니까.
“그야 이상하죠, 당연히.”
칼트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이 답했다.
“옛날 선배님이야 뭐, 심기 거스르면 찢어 죽일 것 같은 인상이라 입담이 걸걸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만··· 지금은 좀 다르잖습니까.”
“너 아까부터 나 은근히 맥이는 것 같다?”
“맥인다뇨. 그거 음해입니다.”
내가 미심쩍은 눈길로 칼트를 흘겨봤다.
‘이새끼 이거 암만 봐도···.’
저번에 정수리에 강타를 꽂은 걸 아직도 담아두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무튼, 그땐 몰라도 지금 그런 얼굴로 걸걸하게 욕을 쏟으시면 그야 누구나 놀라겠죠. 그 갈라할 님도 당황하실 겁니다. 궁금하면 해보십쇼. 저도 궁금하네요.”
“···그 정도야?”
“그 정도입니다.”
욕을 줄여야 하나.
아니, 그렇게 많이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나 정도면 정상 아닌가···?’
사라와 레미아에겐 말을 좀 심하게 하긴 하는데, 애초에 그 둘이야 뭐···.
“지금,혹시 ‘나 정도면 정상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까?”
“···뭐?”
흠칫.
순간 소름이 돋았다.
“···너 뭐냐? 독심술도 터득했냐?”
“인간 관찰이 괜히 제 특기겠습니까.”
칼트가 게슴츠레 눈을 뜬 채 날 바라봤다.
“누누이 말하지만, 선배님도 정상은 아닌···.”
“너 나 맥이는거지?”
내가 주먹을 움켜쥔 순간이다.
칼트가 기겁하며 구석지에 놓인 종이 더미를 내게 쓱 떠밀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칼트를 노려봤다.
“부, 부탁하신 서류입니다.”
“······.”
“···잘 정리해놨습니다.”
짧게 한숨을 내쉬며 내가 쌓인 종이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 종이들은 전부 한 명의 용사가 참가한 작전들을 조사한 보고서였다.
“갈라할 님이 참가하신 작전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해놨습니다.”
“발견한 건?”
“아직 없습니다.”
아직은 없지만, 무언가 있겠지.
칼트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갈라할이 아무 이유 없이 은퇴를 선택하진 않았을 테니까.
‘마음이 꺾였다, 변절했다, 그런 건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동료를 전부 잃고도 눈물 한번 흘리고선, 다시 전장으로 향하던 갈라할이다. 그런 갈라할의 갑작스러운 은퇴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조사해 볼 필요가 있긴 해.’
나는 서류를 정리해 로브 속에 밀어 넣었다.
“이건 천천히 확인해볼게. 그리고···.”
시선을 돌려 달력을 바라봤다.
칼트 또한 달력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이군요.”
“응.”
갈라할이 아플리아에 방문하기로 한 날짜.
그날이 하루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3.
성창의 갈라할이 아플리아에 찾아온다.
갈라할의 방문이 세간에 밝혀진 건 그가 방문하기 사흘 전의 일이었다. 당연히도 여기저기서 방문 의사를 적은 편지가 쏟아졌지만··· 아플리아의 문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아플리아는 교육의 터다.
외부인의 방문을 철저히 금하는 원칙은 그 어떤 명문가라 한들 예외는 없었다.
그리해서 아플리아가 조용해졌나.
그렇게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은 채 나는 거리를 오다니는 학생들을 흘겨봤다. 평소라면 언데드처럼 발을 질질 끌며 다닐 학생들이, 지금은 총총걸음으로 뛰듯이 걷고 있다.
활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거리를 오가는 학생들의 말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몇 번이고 갈라할이란 이름이 들려 오곤 한다.
‘카일이 가장 상징적인 용사긴 하지만···.’
갈라할도 만만치 않으니까.
어찌 됐든, 용사의 방문은 학생들을 들뜨게 할만한 일이었다. 용사란 그만큼 특별한 존재니까.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들뜬 애를 하나 꼽아보라면···.’
내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눈이 뚫어져라 공책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공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사를 오려내 짜깁기해둔 흔적이 드문드문 보였다.
『성창, 갈라할. 그는 누구인가?』
『가장 용사다운 용사.』
『그는 빛이다!』
『카일 토벤이 승리의 상징이라면, 갈라할은.』
보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사들이다.
“커피 좀 마시면서 봐. 다 식었다.”
내가 차게 식은 커피잔을 툭툭 건드렸다. 그제서야 소녀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봤다.
“하지만, 라니아 교수님···!”
“어, 클로에.”
“곧 갈라할 님이 오시는걸요···!”
차기 용사 후보, 클로에.
그녀가 눈을 빛내며 내 소매를 붙잡았다.
“무려 용사님께서 아플리아에 오시잖아요. 이런 만남 정말 흔치 않아요···! 무려 용사님이!”
아니, 너도 용사잖아.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씹어 삼키며, 내가 어설픈 웃음을 흘렸다.
“기대돼?”
“예. 무척!”
“그거, 기사들을 다 모아둔 거야?”
내가 클로에가 읽던 공책을 가리켰다.
클로에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갈라할 님, 카일 님, 그리고··· 데스텔 님 기사도 모아놨어요.”
“두께가 엄청난데.”
“용사님들 말고, 다른 분들 기사도 모아놨으니까요. 음, 어디 보자···.”
클로에가 쓱쓱 공책을 넘겼다.
“라니아 교수님에 관한 기사도 있고··· 아, 여기 라니엘 님을 다룬 기사도 있어요!”
“오···.”
클로에가 공책을 쫙 펼쳐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기사를 곁눈질했다.
『현자는 오직 ‘그’ 만을 위한 이름이었다.』
『위대한 잿빛 마법사의 한계는 어디인가?』
『고대 리치조차 두려워하는.』
『그의 천재성은 고대 리치조차 두려워한다!』
“이야···.”
읽다보니 육성으로 감탄이 새어나왔다.
제목을 저렇게 짓는 것도 재능이 아닐까 싶다. 분명 저렴하기 짝이 없는 제목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기분이··· 좋긴··· 하네.’
인정하기 싫지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틀린 말은 아니네.”
해골 바가지가 나만 보면 기겁하는 건 맞으니까, 두려워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죠? 역시 잿빛 마법사 님은···.”
티없이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클로에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어 내가 슬쩍 시선을 옮겨 창밖을 바라봤다.
그렇게 창밖을 보고 있을 무렵이다.
거리를 오가던 학생들의 걸음이 멈췄다.
그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돌아가고, 이윽고 그들의 걸음도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왔나 보네.”
인파가 쏠리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단숨에 소란스러워진 거리를 보며, 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도 가자 클로에.”
“앗, 넵!”
클로에가 황급히 자리서 일어섰다.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공책을 품에 안은 채 뛰어나가려는 클로에의 목덜미를 내가 턱, 하고 붙잡았다.
“거기 아니다.”
“네? 하지만 인파는 저쪽···.”
내가 반대쪽을 가리켰다.
숲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우린 저쪽이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