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86
〈 286화 〉 당신의 이야기(1)
* * *
빛나던 별 하나가 저물었다.
다음 용사를 위해 제 목숨을 바쳤으며, 끝끝내 재앙에게 닿은 용사의 이야기가 세간에 퍼졌다. 세간은 용사가 쌓아올린 업적에 감탄하며, 또한 용사의 죽음에 슬퍼한다.
용사, 갈라할의 죽음이 공표됐다.
갈라할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왕가의 주도하에 치러진 장례는 열흘에 걸쳐 진행됐으며, 열흘간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용사다운 용사.
그렇게 불리던 갈라할이다.
그가 쌓아올린 업적과 그의 선한 인망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없다. 한 번이라도 전장에 발을 담갔던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각지에서, 전장에서, 마경에서 수많은 이들이 왕도로 찾아왔다. 그들은 갈라할의 무덤에 꽃을 바쳤다. 의례적인 행위라곤 하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꽃을 바친 이들은 거의 없으리라.
지옥이라 불리는 곳에서 삶을 견뎌온 이들이다.
그들은 갈라할이 걸어온 길을, 그 길의 끝에서 갈라할이 이루어낸 것에 진정으로 경의를 표한다.
“결국 이렇게 됐군.”
불사의 카리옷은 착잡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제 고향에서 가져온 꽃을 바치고 떠났다.
“······.”
광인, 켈르할름은 모두가 그와 거리를 벌려 고요해진 가운데 홀로서 갈라할을 추모했다. 그는 갈라할이 마지막으로 남긴 업적이 새겨진 묘비를 보았다.
배교자 격퇴.
차세대 용사의 구출.
가히 위업이라 불릴만한 업적이다.
그만한 업적을, 제 삶의 반의반만큼도 살지 않은 인간이 이뤄냈음에 켈르할름은 경의를 표한다. 그는 말없이 한 송이의 꽃을 바치고 떠났다.
뚜벅.
모두가 광인을 두려워하여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와중, 한 명의 소녀가 광인에게 다가갔다. 켈르할름이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흔들리는 잿빛 머리칼,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
라니엘 반트리아스다.
겉보기엔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으나, 자세히 바라보노라면 그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빛을 잃었다. 가까이 다가온 라니엘이 말없이 켈르할름에게 인사를 건넸다.
무어라 말하려다 말고, 켈르할름은 입을 다물었다.
그 자리에 없었으며, 갈라할이란 인물을 잘 알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무어라 조언할 자격은 없었으므로. 켈르할름 또한 고개를 까딱여 인사를 받고선 자리를 떴다.
켈르할름을 대신하듯 그 자리에 라니엘이 섰다.
그제야 조문객들이 하나둘 꽃을 바치러 오는 가운데, 라니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꽃을 바치지도, 눈물을 삼키지도 않는다. 그저 무표정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른다.
수많은 이들이 그녀를 스쳐 지나간다.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뜬다.
그것이 몇 차례 반복됐으나 라니엘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인형 같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넋이 나가버린 것 같다고 속삭인다.
며칠이 더 흘렀다.
속삭임마저 들려오지 않는다.
장례가 완전히 끝나는 날까지, 그리하여 조문객이 찾아오지 않게 된 날까지.
그녀는 그렇게 서 있었다.
2.
“너랑 나만 남았네, 이제.”
“그렇게 됐군.”
데스텔이 한숨 섞인 목소리를 뱉었다.
카일은 무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라할 그놈, 배교자 심장에 성창을 꽂아넣었다더라. 다음 세대 용사가 두 눈으로 직접 봤대.”
“거짓일 가능성은?”
“없지. 그런 거 칠 애가 아니니까.”
잘 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군.
그리 말하려다 카일은 짧게 숨을 뱉으며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불가능한 일일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데스텔도, 카일도 갈라할의 실력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그는 결코 재앙에게 닿을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최후의 순간 위업을 이루어냈다. 대체 어떻게?
“별과 거래한 모양이야.”
데스텔이 답을 말했다.
그는 지난 수년간 갈라할이 제 수명을 저울에 올렸음을 알고 있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 갈라할이 제게 남은 시간을 모조리 갈아버렸음을 추측하는 것은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본래 용사는 별과 거래가 불가능할 텐데, 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된 모양이지.”
“불가능하지는 않다.”
카일이 툭 내뱉었다.
데스텔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너도 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래, 뭐.”
데스텔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뭐 하나씩은 숨기고 사는 거겠지.”
제 맞은편에 앉은 카일의 속내를 데스텔은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몇 년 전을 기점으로, 제 감정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조차 않게 된 녀석이니.
‘애초에 알고 싶지도 않고.’
별로 관심을 가지고 싶지도 않다.
데스텔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가 떠올리는 것은 갈라할이 걸어온 삶이며, 그가 맞이한 최후다. 그 삶은 용사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영웅의 삶이다.
용사로서 살다가, 용사로서 죽었다.
한점의 흠결조차 없는 삶은 완벽하기까지 하다. 그 완벽한 삶을 데스텔은 동경한다. 또한, 자신은 그럴 수 없으리란 것을 확신한다. 데스텔의 내면에 자리 잡은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
찬란한 죽음은 아름답다.
허나, 죽음 그 자체가 데스텔은 두렵다.
두렵기에 데스텔은 갈라할처럼 제 삶을 바쳐 위업을 이루지는 못하리라. 비굴이란 이명이 어울리는 자신은, 겁쟁이처럼 또 도망쳐버리고 말 테니.
“나는 절대 그렇게 못할 거 같다.”
데스텔이 그리 중얼거렸다.
그 입가에는 쓴웃음이 맺힌다.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용사로서의 정복이 데스텔은 너무나도 무겁게만 느껴졌다.
“너는 어떻냐?”
“뭐를 말하는 것이지.”
“갈라할. 그놈처럼 될 수 있겠냐고.”
카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데스텔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자리서 일어섰다.
“라니아 반 트리아스.”
그때였다.
카일이 한 소녀의 이름을 입에 담은 것은.
“만나봤나?”
“만나봤지.”
잠깐의 뜸을 들인 후, 카일이 말을 이었다.
“어땠지?”
“뭘 묻고 싶은 거냐?”
“갈라할의 죽음 앞에, 어떤 태도를 보였냐고 묻는 거다.”
“네가 가서 보면 그만이지, 왜 나한테 물어?”
카일은 침묵했다.
데스텔은 의문 어린 시선으로 카일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정상은 아니어 보이던데.”
그리 말하며 데스텔은 조금 전, 갈라할의 묘비 앞에서 만난 라니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너 괜찮냐?」
「······.」
「너 비 맞으면서 이게 뭐하는···.」
말을 걸어도 답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순간에서야 그녀는 입을 열어, 메마른 목소리로 짧게 답할 뿐이었다.
「나도 몰라.」
모르겠다고.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녀는 그렇게 답했다.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언제나와 같은 확신도 없다. 그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데스텔은 전장에서 많이 보았다.
놓아버린 기사들에게서.
그리고 거울의 앞에서.
“좀 놓아버린 것 같기도 하고, 고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정상은 아니어 보이던데.”
“그런가.”
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라니엘은 아니겠군.”
“···뭐?”
저게 지금 무슨 소리지?
말의 맥락을 읽을 수 없어 데스텔이 눈을 깜빡였다.
“그게 뭔 소리냐?”
“데스텔 너는 라니엘, 그 녀석과 그 소녀가 닮았다고 느끼지 않았나?”
“···느끼긴 했지.”
“나도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이젠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겠군.”
“대체 뭐 때문에?”
카일이 짧게 답했다.
“녀석이 망가질 리는 없으니까.”
그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건조하지 않다.
약간의 열기가 그 목소리에 실려있다.
“녀석은 망가지지 않는다. 결코 고뇌하지 않아. 갈라할의 죽음 앞에 그 녀석이라면···.”
“야.”
데스텔이 카일의 말을 끊었다.
데스텔은 표정을 콱 구긴 채 카일을 노려봤다.
“내가 할 말은 아닌데 말이다.”
데스텔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너 존나 어이없는 새낀거 알지, 지금?”
저것은 집착에 가깝다.
데스텔 자신 또한 라니엘을 인간 같지 않다고 여기나, 라니엘이란 인간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눈앞의 카일이 취하는 태도는 비슷하지만 자신과는 다르다.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니 그런 걸 이뤄낼 수 있었다.
그녀석은, 인간이 아니어야만 한다.
‘라니엘은, 언제나 완벽해야만 한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것과 같다.
자기 합리화를 하다못해, 타인의 존재를 멋대로 해석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 모습에 데스텔은 역겨움을 느낀다.
“너, 대체 라니엘을 뭐라 생각하는 거냐?”
카일이 질문에 답했다.
카일의 대답을 들은 순간 데스텔은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이윽고, 데스텔은 웃음을 흘리며 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와.”
외마디 감탄과 함께 데스텔이 툭, 내뱉었다.
“내가 하나 경고하는데, 카일.”
“뭐지?”
“라니엘이나, 라니아 그 애 앞에서 그 말 하지 마라. 절대로 하지 마.”
“···왜지?”
“내가 라니엘이었잖아?”
데스텔이 제 관자놀이를 툭툭 두들겼다.
“바로 뚫어버렸어, 개새끼야.”
3.
라니엘은 갈라할의 묘를 본다.
그녀는 알고 있다.
이곳에는 갈라할의 시신이 안치되지 않았음을.
하물며, 그 시체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라니엘은 잘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손을 움직여 별을 인도한 갈라할은 잘게 바스라져 허공에 흩날렸다. 그것은 허락된 시간을 모조리 써버린 인간의 최후다. 또한, 예정된 자신의 최후기도 하다.
수명을 바치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으로 거래하는 것.
그것은 어겨선 안 된 금기(??)이며, 섭리를 거스르는 행위다. 섭리에서 벗어난 이에게 평범한 죽음이 허락될 리가 없다. 영혼이 바스러지며 맞이한 것은 완전한 죽음이다. 존재의 소멸이다.
갈라할이 죽었다.
자신과 닮은 이가, 자신과 같은 것을 생각하고 판단했던 이가 죽었다. 스승이었던 쿤텔의 죽음 앞에서도 이를 악물고 일어섰던 라니엘이지만, 지금만큼은 도저히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저는 이미 꿈을 이뤘던 것이군요.」
자신의 동상 앞에서 웃음 흘리던 갈라할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소설을 써보겠다고 이야기하던 목소리가, 하고 싶은 걸 해보겠단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가에 메아리친다.
라니엘은 갈라할이 남은 삼 년을 편하게 보내길 바랐다. 진심으로 그리되길 바랐다. 단순히 갈라할이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갈라할이 자신과 닮았으니까.
라니엘은 갈라할에게서 자신을 보았다.
앞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이의 삶은 숭고하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아본 라니엘로서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다.
그 고통이 부디 보상받길 바랐다.
그가 편안한 삶을 즐기기를 바랐다.
아카데미에서 교수 노릇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고, 이야기를 쓰며 세계를 여행하는 것도 좋으리라.
허나 갈라할은 그 모두를 거부했다.
「저는 마지막까지 용사로 있고 싶습니다.」
최후의 순간, 그는 용사로 남기를 선택했다.
그리 말하던 갈라할의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기어코 갈라할이 이루어낸 업적이, 마지막 순간 갈라할이 선보인 기적이··· 그 모든 게 라니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왜 갈라할을 막지 못했는지.
갈라할의 실패를 확신하면서도, 어째서 그가 사지로 걸어 들어가게 내버려뒀는지. 그 선택을 후회하는 와중, 한편으론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자신은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알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시간은 하염없이 흐른다.
얼마나 오랜 시간 서 있었는지 그 시간 감각조차 애매해진 어느 날 누군가 라니엘을 찾아왔다. 라니엘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아직 계셨습니까.”
격동의 록스.
갈라할의 보좌관으로 일하던 기사다. 그 또한 라니엘과 비슷한 눈을 하고 있다. 퀭해서 공허해 보이는 눈동자. 그가 입꼬리를 올려 쓰게 웃었다.
“갈라할 님이 머무르던 곳을 정리하고 왔습니다.”
그가 품에서 무언갈꺼냈다.
“개인 물품은 아마 교단과 왕가 쪽에서 가져가게 될 것 같은데, 이건 라니아님께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따로 남겨뒀습니다.”
록스가 건넨 것은 서류봉투다.
봉투 안에는 소설 원고지를 닮은 것이 수북히 담겨져 있었다.
“소설 같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보여줄 인물 목록에 라니아 님이 적혀있더군요.”
록스가 쓰게 웃었다.
“다음으론 클로에 님이었습니다.”
확인 후 클로에님께도 전달 부탁드립니다.
그리 말하며 록스는 돌아섰다.
라니엘은 한참 동안 자리에 서 있다가, 그제서야 걸음을 뗐다.
* * *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온 라니엘은 씻은 뒤 자리에 앉아 봉투를 열었다. 로셀이 무어라 말을 하긴 했으나, 라니엘에게 닿진 않았다. 라니엘은 밀려오는 잠을 떨쳐내며 원고지를 눈에 담았다.
영웅의 이야기를 묶어서 소설로 잇겠다.
갈라할이 말했던 것처럼, 이것은 영웅의 이야기를 엮은 소설이었다. 당연하게도 고작 열흘 남짓한 시간에 소설이 완성되었을 리는 없다.
목차와 개요가 있다.
목차에는 여러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그 중 이름 하나가 라니엘의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이름이었다.
그 외에도 데스텔, 카일 등등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름 위주로 적혀있다. 페이지를 조금 더 넘겼다. 그렇게 장을 넘기다 보면, 금세 후기라 적힌 페이지에 도착하고 만다.
···소설을 집필하는 이들 중, 꼭 후기를 먼저 쓰는 이들이 있는 법이다. 갈라할 또한 그 중 하나였는지, 마지막 장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저자 갈라할.』
몇 번이고 쓰고 지운 흔적.
멋들어진 글자로 휘갈겨 쓴 사인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며 라니엘은 그만 웃고 만다. 쓰게 웃으며 라니엘은 후기를 읽었다.
후기에 적힌 것은 우습게도, 다른 영웅들을 소개한 항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갈라할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소개한 페이지다. 한 장의 페이지에는 갈라할이 요약한 자신의 삶이 적혀 있다.
라니엘은 그것을 보았다.
이윽고 라니엘은 페이지의 마지막 줄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멋들어지게 휘갈긴 두 줄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이다음은 여러분이 채워나가길 바랍니다.』
페이지를 넘겼다.
마지막 장인 줄 알았건만, 그 뒤에는 한 장이 더 남아 있었다. 공백인 페이지에는 소제목을 적을 칸이 마련되어 있다.
마치, 제 이름을 적으라는 것처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