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289
〈 289화 〉 예언은 죽음을 가리킨다(1)
* * *
봄부터 아플리아는 소란스럽다.
클로에가 차기 용사 후보였단 사실이 공표됐다. 더불어 그 보호자가 흑색 마탑주이며, 그녀가 현재 아플리아에 재적 중이란 사실까지도.
한동안 소란이 일었다.
「보호자라기보단 후원자에 가깝겠군요.」
「흑색 마탑은 성류의 용사, 클로에 님의 의사를 존중합니다.」
흑색 마탑주는 예로부터 이와 같은 일을 대비해뒀기에 유연하게 넘길 수 있었으나, 아플리아의 학장인 아론은 그러지 못했다. 아론 또한 대비를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그것이 그닥 쓸모 있지는 않았다.
과도한 이목이 쏠린 까닭에.
안 그래도 갈라할이 서거하기 직전 들렸던 곳이 아플리아다. 그가 교단에 선 것은 아플리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으므로, 그 의미가 깊다. 갈라할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을 세간은 주목한다.
그런 와중 갈라할의 유지를 잇는 용사가 아플리아에 재적 중이란 사실마저 밝혀졌다. 그녀가 성인이 될 때까진 계속 아플리아에 머무르겠단 사실까지도.
그것은 과연 놀라운 사실이다.
세간은 물론이고, 그리고 아플리아에 재적 중인 학생들에게까지도. 차세대 용사가 다름 아닌 자신들과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듣고, 웃고 떠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학생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용사란 그런 존재였으므로.
아무리 잘난 명문가의 자제라 한들, 별에게 선택받은 용사 앞에선 한낱 범인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온 학교가 떠들썩해진 와중 아론은 신음을 흘렸다.
“벨노아.”
그리고.
“벨노아?”
“어, 왜. 라크.”
“표정이 왜 그러지. 몹시 피곤해 보인다만.”
벨노아는 이 상황이 달갑지 않다. 무척이나.
“생각할 게 많아서.”
벨노아가 펼친 제 손을 바라봤다.
그때 시련에서 보았던 깨달음을 여전히 붙잡지 못하고 있는 제 손을 바라보며, 벨노아는 눈살을 찌푸렸다.
2.
“수련 시간을 늘리고 싶다고?”
칼트는 어깨를 빙빙 돌리며 짧게 숨을 뱉었다.
그 시선은 제 앞에 선 소년에게 향했다. 슬럼가의 악몽이란 별명으로 하운드 사이에서도 유명한 소년.
주술사, 벨노아.
이 소년이 칼트에게 대뜸 찾아와 가르침을 청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달 전의 이야기다. 그때 이후로 칼트는 종종 벨노아의 훈련에 어울려 주고 있었다.
“굳이?”
“더 필요할 듯합니다.”
“급하게 한다고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칼트가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벨노아가 왜 저런 말을 꺼냈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칼트 또한 어느 정도 내부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클로에, 그 아이 때문이냐?”
“······.”
벨노아는 침묵으로 긍정했다.
칼트가 짧게 숨을 뱉었다.
“더 늘리기는 힘들 것 같다. 나도 바빠서.”
그리 중얼거리며 칼트는 벨노아를 흘겨봤다.
인간관찰이 특기인 칼트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벨노아라 한들, 칼트의 시선을 피해 가기란 어렵다. 칼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
급해 보이는 모습의 뒤편에 비치는 것은 불안감.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칼트가 턱을 괸 채 입을 열었다.
“그 나이에 그 정도면 충분한 성과다.”
칼트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당장 하운드에 들어와도 내 바로 밑까진 올라올 수 있을 거고, 전장에 나가더라도 금새 이름을 날리게 될 거다. 그만한 나이에 그 경지에 오른 건, 정말로 손에 꼽는 거 알지?”
지난 몇 달간 벨노아의 수련에 어울려주며 칼트가 내린 결론이다. 눈앞의 소년은 재능을 타고났다. 일류가 될 재능을 가지고 있다. 과연, 선배님이 괜히 눈독 들인 학생이 아니란 소리다.
‘단순히 체술, 기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판단 자체가 빠르다.
사고의 전환이 빠르며, 무엇을 놓고 무엇을 채갈지 선택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매끄럽다. 타고난 재능도 재능이지만, 실전에서 완성된 소년이다.
“난 개인적으로 널 높게 평가한다. 나뿐만이 아니지. 선배님도, 내 동료도 그래.”
칼트의 주관적인 의견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벨노아의 나잇대에 저만한 경지를 이룬 인물은 정말로 손에 꼽았다. 그런 칭찬을 듣고서도 벨노아는 썩 시원해 보이는 표정이 아니다.
그 이유는 칼트 또한 알고 있다.
“그런데도, 넌 그 위를 바라보고 있지.”
초인의 경지.
벽을 넘어야 도달할 수 있는 곳.
이 소년은 진심으로 그 경지를 노리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찾아온 것일 테니까.
‘벽은 이미 느낀 거 같고, 앞으로 좀처럼 나아가질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벨노아와 비슷한 시기를 겪어본 칼트다.
칼트는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할 말을 고르다가, 한숨을 내쉬며 툭 내뱉었다.
“솔직하게 말할까.”
“예? 무엇을···.”
“지금 상태에서 수련은 딱히 의미가 없다. 감을 안 잃을 정도로만 하면 돼.”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벨노아에게, 칼트는 바닥에 꽂힌 제 칼자루를 툭툭 두들겼다.
“초인이란 거, 다들 실전에서 완성되는 거라고 말들 하지 않냐? 죽음의 순간 무언가 보인다고.”
대부분의 초인들은 그런 식으로 말한다.
죽음의 순간,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맞이했을 때 뭔가가 보였다고. 그것을 붙잡은 순간 벽을 넘었다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거지.”
재앙과 마주할 때마다 칼트는 깨달음을 얻었다.
무언가를 보았고,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을 쌓고 쌓아서 칼트는 벽을 올랐다. 그 마지막은 성배를 썼다곤 하나, 칼트 또한 숱한 죽음의 경계에서 배워왔다.
“지금 수련 좀 더한다고 해서, 뭔가 답이 보이고 그러진 않을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초인이란 게 그렇다.
안전한 곳에서 스스로를 단련하고 단련한다 해서 벽을 넘을 수는 없다. 깨달음이란 언제나 극한의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법이니.
“꼰대 같지만, 실전에서 배울 수밖에 없단 소리다. 나도 내가 쓴 방법만 알려줄 수 있는 거고.”
결국에 칼트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몇 안 됐다.
“너한테도 그 순간이 올 거다.”
칼트는 벨노아를 향해 손을 펼쳐보았다.
“한계에 도전해야 하는 순간이,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벽에 도전해야 하는 순간은 온다. 반드시 와. 그러니, 그 순간이 왔을 때···.”
그가 손을 앞으로 뻗는다.
“눈을 감지 말고, 물러설 생각 말고, 두렵더라도 앞으로 손을 뻗어라. 손을 뻗어서.”
콱, 칼트가 허공을 움켜쥐었다.
“붙잡아.”
그게 다야.
칼트는 그렇게 말했다. 벨노아는 조용히 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여전히, 벨노아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3.
“계약이 바뀐 건 확인했다.”
천칭을 건드리던 카르디가 말했다.
“내가 별과 맺었던 계약이 바뀌었더군. 정확하겐, 별빛을 분배해 순환시킨 계약에 이상이 생겼어.”
몇백년만에 처음 겪은 이상 현상이다.
카르디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앞을 바라봤다. 카르디의 앞에는 라니엘이 서 있다.
“라니엘, 너는 뭔갈 알고 있는 눈치군.”
“알고는 있지.”
라니엘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처음부터 차례대로 늘어놓았다. 갈라할의 죽음, 갈라할이 마지막에 선보인 기적까지 전부.
“···용사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역시 그렇게 됐나 보군.”
이야기를 들은 카르디가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순간 별이 클로에, 그 아이를 골랐다고?”
“응.”
“별빛의 양도라. 가니칼트 그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기어코 같은 일을 벌일 줄이야.”
카르디가 착잡한 눈길로 제 앞에 떠오른 천칭을 바라봤다. 천칭에 새겨진 계약의 내용을 눈으로 훑어내리며 카르디가 말을 이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불가능하진 않다.
이미 전례가 있었으며, 그 전례를 활용해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이 계약이었으므로.
“이것저것 말을 덧붙여 해석하고 분석할 수는 있을 테지만, 그러고 싶진 않군. 애초에 그런 게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건··· 동감이야.”
라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갈라할이 마지막 순간 일으킨 기적. 그 기적을 분석하여 탐구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고 느낀 까닭에.
“마법사였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모든 현상을 계산할 수는 없는 법이더군.”
카르디가 천칭을 건드렸다.
“별이 정한 섭리 아래 세상이 계산적이고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으나, 어디선가는 빈틈이 발생하지. 별이 예상치 못한 일은 몇 번이고 일어나. 누군가는 그것을 신의 실수라고 부르고···.”
또 누군가는, 하고 카르디가 중얼거렸다.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어느시대, 어느 순간에나 기적은 일어났다.
수백 년 전 제 동료가 일으켰던 기적을 카르디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문득 떠올라, 카르디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라니엘, 그거 알고 있나.”
“뭐를?”
“과거 나와 동료들이 마왕의 육신을 베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걸 베었던 게 누구였을 것 같나?”
“···가니칼트?”
“그래, 정답이다.”
카르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흘 동안의 전투의 끝에 가니칼트는 기어코 마왕의 육신을 베어냈다. 이 땅에 발을 디딘 신에게서 완전함을 빼앗았지. 그리고···.”
카르디가 제 오른팔을 툭툭 건드렸다.
“그때 가니칼트는 제 몸의 절반을 잃은 상태였다.”
“···뭐?”
“그만한 싸움이었으니까. 제 몸의 절반을 내주며 가니칼트는 죽음을 각오하고 검을 휘둘렀다. 본래 녀석은 오른손으로 검을 쥐었는데, 마지막 순간 검을 휘두른 건 왼손이었지.”
그리고, 그 검은.
“신에게 닿았다.”
마지막에 가니칼트가 휘두른 검에 별빛은 담기지 않았다. 우습게도 신을 베어낸 것은 신에게 선택받은 용사의 검이 아닌, 인간의 검(?)이었다.
“기적이었지. 불가능한 일이었고. 지금 생각해봐도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유를 덧붙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생각하고.”
아무튼, 하고 카르디가 말했다.
“인간의 집념은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건 하더군. 그런 변수가 존재하기에, 예언이란 게 의미가 없다고 글레리아는 말했고.”
모순되는 이야기다.
그 누구보다 별의 섭리를 분석해야 할 마법사가,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엣날 같으면 카르디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가니칼트가 마지막에 보였다는 일격을 분석하려 들었을 라니엘이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런 라니엘에게 카르디는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분위기가 바뀌었군.”
“그러냐?”
“표정이 조금 더 가벼워졌지 않나. 옛날처럼 꽉 막혀 보이지도 않고.”
“내가 꽉 막혀 보였냐?”
“옛날의 나와 닮아 보이더군.”
“아하.”
라니엘이 등을 펴며 짧게 숨을 토했다.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가 말했다.
“그냥, 요즘 생각을 많이 했다.”
“답은 얻었나?”
“얻었을 리가. 계속 생각해봐야지.”
그래서, 라고 라니엘이 운을 뗐다.
“바뀐 계약은 어떻게, 이상은 없어?”
“별의 순환이 셋으로 바뀌었군. 다른 용사가 태어날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
“그러냐.”
수백년간 이어져 오던 계약이 뒤바뀌었다.
아무런 거래도 없이 그렇게 되었다.
그곳에 있었던 건 인간의 의지를 따르는 별빛의 흐름 뿐이었다. 그 흐름을 떠올리며, 라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에에게 제대로 전해졌단 뜻이네.”
“그렇겠지.”
“잘 된 일이네.”
그렇게 라니엘이 일어서려던 순간이다.
“라니엘.”
카르디가 나지막이 라니엘의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아 뒤를 보면, 복잡한 얼굴을 한 카르디가 그곳에 있다. 카르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글레리아가 치명상을 입었다고 했나.”
“클로에가 말하기론 그래. 심장에 창날이 박히는 모습까지 봤다고.”
“···그런가.”
라니엘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카르디는 글레리아의 목적에 대해 어느정도 알아차렸다. 자신과 닮은 클로에의 육신을 빼앗으려 했다는 것을, 그리하여 기어코 자신을 만나러 오고자 했다는 것을.
그 사실에 카르디는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입술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하던 카르디는 결국 침묵했다.
“···미안하다. 괜한 걸 물었군.”
라니엘은 딱히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그 대신, 질문을 던졌다.
“야, 카르디.”
“뭐냐?”
“가니칼트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그 괴물은 대체 어느 순간에 움직이는 거냐?”
그것은 라니엘이 줄곧 품었던 의문이다.
스케발도, 배교자도 저 나름의 행동방식이 있다. 그들은 무언가 목적을 위해 움직여 왔다. 그러나, 가니칼트는 아니다.
“도대체 목적을 모르겠던데.”
어느 순간에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지, 그가 무엇을 바라고 움직이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더욱더 재앙 같다.
“글쎄.”
카르디가 테이블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 위에 놓인 촛불을. 일렁이는 촛불 아래에는 그늘이 깔려있다. 그 그늘을 바라보며 카르디가 중얼거렸다.
“그걸 아는 게 있다면 그늘뿐이겠지. 녀석은 그늘을 위해 제 검을 휘두를 테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