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04
〈 304화 〉 죽음에 맞서는 방법(3)
* * *
죽음의 칼, 가니칼트.
가장 두려운 재앙이라 불리는 이 괴물은 언제나 한 자루의 칼을 쥔 채 인류를 맞이했다. 죽음은 화려한 마법도, 수천수만의 군세도, 단단한 외피와 모든 것을 불태우는 불길도 가지고 있지 않다.
죽음이 지닌 것은 한 자루의 검(?)뿐이다.
그럼에도 죽음은 무엇보다도 두려운 존재다.
죽음의 칼 가니칼트는 수백 년 동안 재앙으로서 군림했으며, 지난 수백 년간 인류는 단 한 번도 죽음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최초의 초인이자, 가장 오래된 초인.
재앙이 지닌 악명이 쇠퇴하고, 인간이 그들에게 도전할 길이 열리는 가운데··· 죽음 만큼은 결코 그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최초의 용사이자, 가장 오래된 용사.
죽음 앞에 잔기술 따위 무의미하다.
죽음 앞에 수의 우세 따위 무가치하다.
죽음 앞에 인간은 한없이 고독할 뿐이다.
“증명하라.”
그러니, 증명해야 하리라.
“긍지를.”
자신이 쌓아 올린 삶을.
삶을 갈고 닦아 만들어낸 기술을.
“네가 검사임을.”
죽음 앞에 모든 인간은 공평하다.
공평하기에,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죽음에 맞서야 하리라. 자신의 육체, 자신이 손에 쥔 한 자루의 검으로 죽음의 물음에 답해야 하리라.
챠르르륵.
사슬을 밟고 질주하며 카일이 숨을 내뱉는다.
내뱉은 숨결이 뜨겁다. 중첩된 사라의 축복이, 한계까지 가속한 육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을 디딘 사슬이 녹아내린다.
가속(??).
카일이 지닌 별의 특성이자, 카일이 가진 모든 것. 카일의 몸에 별빛이 스며든다. 성검이 찬란히 빛나며 백금색의 빛 무리를 끈다.
카가가가가각!
닿지도 않은 땅이 갈라진다.
흩날리는 눈발을 가르며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카일은 내달린다. 그렇게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향해 카일이 검을 휘두른다.
모자란 기술은 용사의 육신으로.
부족한 직감은 뛰어난 동체시력으로.
그리하여 카일이 펼치는 것은, 검의 초인 쿤텔이 직접 전수해주었던 협곡의 검술이다.
제 1 검, 초견살.
한 번의 휘두름으로 죽인다.
상대가 인지하기도 전에 그 목을 쾌검으로 베어내는 검술. 쿤텔의 특기와도 같은 그것을, 카일은 육체를 가속시켜 흉내 낸다.
틱, 티디디딕.
칼 끝에 닿은 것들이 갈라진다.
흩날리던 눈발이 갈라지고, 공기의 흐름마저 갈라진다. 그것은 완벽에 가까운 모방이다. 허나, 완벽하지는 않다.
스릉.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칼날을 바라보며, 죽음은 여유롭게 칼을 휘두른다. 그 움직임은 마치 시간을 멈춰놓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가속된 시간 선상에서 카일은 보았다.
틱, 티디딕.
죽음의 칼이 취하는 자세를.
그 칼끝이 그리는 궤적을.
그것은, 카일이 펼친 검술과 놀라우리만치 닮아있다. 오히려 더욱 세련됐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휘둘러진 검은 일대의 공간을 베어 가른다.
초견살(???).
쿤텔의 것 이상으로 완벽한 기술.
카일은 알 턱이 없으나, 그 기술의 창시자는 가니칼트다. 검을 갈고닦은 끝에 눈에 닿는 모든 것을 베어낼 수 있게 된 검사가 펼치는 기술은, 피할 수 없는 죽음과도 같다.
스겅.
인지한 순간 다가오는 것은 죽음이다.
카일이 이를 악물고 검을 더 강하게 휘두른다. 검과 검이 부딪친다. 기술과 기술이 부딪친다.
카앙!
당연하게도 밀리는 것은 카일이다.
검이 맞닿는 순간 카일의 손가락이 부러진다. 칼이 뒤로 밀려나고, 잘려나간 공간이 메꿔지며 카일을 앞으로 끌어들인다.
쿠웅!
발을 찍어 끌려들어 가는 몸을 고정시키며, 카일은 칼날을 비스듬히 들이밀었다. 협곡에 전해지는 기술이 아닌, 쿤텔이 홀로서 개발한 검술.
카가가가가강!
성검을 타고 죽음이 흘러내린다.
후웅, 하고 제 머리 위로 죽음이 스쳐 지나감을 카일은 느낀다. 뒤이어 쿠웅, 소리를 내며 협곡의 한 부분이 비스듬히 잘려나간다.
쐐에에에에엑!
한 박자 늦게 달빛 화살이 도착한다.
쏘아진 화살을 향해 가니칼트는 제 오른손을 내뻗을 뿐이다. 괴수의 손. 그것이 날아들던 달빛 화살을 맨손으로 움켜쥐어 으스러트린다.
빈틈이 만들어지리라 기대했으나, 그런 게 존재할 리가 없다. 오른손으로 화살을 움켜쥐며 왼손으로 가니칼트는 곧장 검을 휘두른다.
후웅!
허공을 가른 검끝이 하늘과 일자를 그리더니, 마치 단두대와도 같이 카일을 향해 떨어진다. 카일은 응축한 별빛을 터뜨리며 옆으로 도약한다. 결코, 뒤로 물러서진 않는다.
‘물러서 봐야 소용없다.’
그 사실을 카일은 알고 있다.
그가 옆으로 도약한 순간, 죽음이 휘두른 검이 땅에 맞닿는다. 요란한 소리는 나지 않는다. 아무런 저항 없이 땅에 칼끝이 파고든다.
그리곤, 서걱.
일자로 뻗어 나간 검기가 경로 상의 모든 것을 갈라버린다. 라니엘이 걸어둔 사슬도, 지면에 남은 잔열도, 흩날리던 눈발도 전부 갈라진다.
투확!
땅에 처박혔던 검이 곧장 사선으로 튀어 오르며 옆으로 도약한 카일을 노린다. 큰 기술을 썼음에도 빈틈 따위는 없다. 곧장 자신을 추격해오는 칼날에 카일은 마른침을 삼킨다.
속도도, 기술의 완성도도, 근력도.
그 모든 것에서 밀린다.
당연하게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카일은 이를 악물며 성검을 강하게 쥔다. 별빛을 끌어올리며 가니칼트의 검이 그리는 궤적에, 성검을 들이민다.
카아아앙!
금세 회복됐던 손가락이, 팔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꺾인다. 밀려드는 충격에 카일의 몸이 공중에 붕 뜨고, 화살처럼 쏘아져 협곡의 벽에 처박힌다.
쿠구궁.
“쿨럭, 크흡···.”
팔 뼈가 바스러졌다.
검과 검이 맞부딪친 순간 발생한 충격파가 내장을 뒤흔들었다. 한 움큼 피를 토하며 카일은 일어선다. 보충된 축복이 부상을 곧장 치유한다.
“퉷.”
피를 뱉으며 카일이 눈을 부릅뜬다.
여유를 부릴 시간 따위야 없다. 죽음이 왼손으로 칼을 쥐었다면, 자비 따위 기대할 수는 없다. 눈을 부릅뜬 순간 카일은 숨을 헛삼킨다.
쿠웅.
단 한 걸음 만에 수십 걸음의 거리를 좁힌 죽음이 카일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카일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춘 채 바닥을 구른다.
카가가가가가각각!
카일이 등을 기댔던 벽이 요란스레 잘려나간다. 협곡이 무너져 내린다. 쏟아지는 흙무더기 속에서 카일은 떠올린다.
「네가 버티기 힘들다는 걸 알아.」
「옛날처럼 검을 휘두르지 못한다는 것도 알아.」
「그러니까, 세운 작전이야.」
그 소녀가 말한 것.
「■■, 그러니까 검은 구정물.」
「그걸 쓰도록 만들어. 별빛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려서, 그걸 쓰게 만들어. 그러면 기회가 올 거야.」
그 조언을 따른다.
카일이 성검을 쥔다. 성검이 찬란한 빛을 뿜어낸다. 한순간이지만 죽음의 칼의 안광이 가늘어진다.
투확!
흙먼지를 뚫고 나온 카일이 죽음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더욱더 가속된 육신으로 카일은 연검을 펼친다. 찬란히 피어오른 별빛이 일대를 가득 메우고, 빛의 입자를 흩뿌리며 카일의 검이 움직인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사선으로.
휘두름과 휘두름이 이어진다.
몰아치는 눈보라가 카일의 주변을 빗겨간다. 일대에 검의 영역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일대를 할퀴는 검의 그물이나, 가니칼트는 검을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그물을 찢어버린다.
그러나, 카일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한 걸음 더 파고든다.
카일의 눈동자에 백금색 빛고리가 잠깐이지만 떠오른다. 지난 몇 년간 떠오르지 않았던 것, 그것이 떠오른 순간 카일의 검이 기이한 궤적을 그린다.
카앙!
검의 그물을 베어낸 가니칼트의 검을, 카일이 처음으로 쳐낸다. 카일이 별빛에 의지해 제 검을 받아친 순간, 가니칼트의 안광이 조금 더 가늘어진다.
가니칼트가 처음으로 자세를 고쳐 잡는다.
검을 쥔 가니칼트의 손가락이 우득, 소리를 내며 더 강하게 칼자루를 움켜쥔다. 그 순간 대검에 뚫린 구멍에서 검은 구정물이 흘러내린다.
죽음이 그리는 것은 검은 궤적.
카일이 그리는 것은 백금색의 궤적.
검과 검이 맞부딪친 순간 카일의 몸을 감싸던 별빛이, 축복이 모조리 날아간다. 카일의 눈동자에서 피가 흐른다. 그럼에도 카일은 검을 놓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다리.
점점 밀려나는 검.
카일의 무릎이 점점 굽혀진다. 가니칼트의 검이 카일의 어깻죽지에 닿는다. 투확, 하고 카일의 어깨에서 피가 터져 나오나 카일은 이를 악물고 버틴다.
버틴채로, 소리친다.
“지금이다!”
그 외침이 있기 전부터 움직이던 인간이 있다.
협곡을 박차고 누군가 뛰어오른다. 검을 받아치느라 하늘을 보고 있던 카일의 시야에, 하늘을 부유하는 잿빛 머리칼이 보인다.
저주의 마나(Cursedmana).
구웅, 하고 허공에서 꺼림칙한 마나의 기운이 퍼진다. 그것은 한 명의 마법사가 패배로부터 배운 답이요, 신의 편린을 상대하기 위한 기술이다.
“재는 재로(Ashes to Ashes).”
잿가루가 사방에 흩날린다.
카일은 이를 악문 채 제 칼자루를 조금씩 움직인다. 틱, 티딕 소리를 내며 가니칼트의 검이 성검을 긁으며 아래로 향한다.
“저주 또한 재로(Curse to Ashes).”
주문이 완성된다.
공중에서 떨어지며, 라니엘이 잿빛 화염을 땅을 향해 내던진다. 카일은 쏟아지는 잿빛 화염을 보며 피할 생각을 하진 않는다. 저것은 오직 검은 구정물만을 삼키는 주문이라고 들었으므로.
잿빛 화염이 가니칼트와 카일을 집어삼킨다.
분명히 모든 주문을 무효화시키는 검은 구정물이나, 잿빛 화염마저 없던 걸로 만들지는 못한다. 가니칼트의 검에서 흘러내린 구정물을, 잿빛 화염이 모조리 불태운다.
쿠웅!
가니칼트의 검을 간신히 흘려보낸 카일이 바닥을 구르며 뒤로 몸을 던졌다. 그제야 라니엘은 또 다른 주문을 준비한다.
챠르르륵!
협곡과 협곡 사이에 연결된 사슬에 바로 선 라니엘이 제 손바닥을 맞부딪친다. 지면에 남아있던 회로들이 라니엘의 마나와 반응한다. 불에 타들어 가는 가니칼트는 곧장 반응하지 않는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다.
그 시선에, 라니엘은 한순간 섬뜩함을 느낀다.
해방하려던 주문을 모조리 중지한 채 라니엘이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사슬에서 뛰어내렸다. 본능적으로 행한 움직임이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정답이다.
스겅.
화염 속에서 칼끝이 빠져나온다.
저주를 흉내 내 만든 주문이라면··· 그 근간을 알지 못하는 주문이라면 베지 못하리라. 라니엘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그것은 착각이다. 가니칼트는 완전한 신의 육체조차 베어냈던 검사다.
그 근간을 모른다 한들.
그 본질을 모른다 한들.
그것이 존재한다면, 가니칼트는 모조리 베어낼 수 있다. 휘두른 칼끝이 라니엘이 만들어낸 잿빛 화염을 가른다. 공간을 가른다. 허공에 쩍, 쩌적 소리를 내며 거대한 균열이 생겨난다.
갈라진 균열은 곧장 메꿔진다.
눈을 한번 깜빡였을 때, 라니엘은 가니칼트의 코앞으로 끌어당겨져 있다. 둘 사이에 존재하던 거리를 가니칼트는 베어냈다. 그 사실에 당황할 틈조차 없다.
“···아.”
가니칼트가 손을 뻗는다.
검사가 아닌 이에게 검을 휘두를 필요도 없다는 듯이, 괴수의 손을 뻗는다. 거대한 손아귀가 라니엘의 시야를 가린다.
“커윽!”
손아귀가 라니엘을 움켜쥔다.
마수의 왕의 사체를 엮어 만든 손아귀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악력에 라니엘의 몸이 짓이겨진다. 라니엘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져 나온다.
주문을 끌어올리려 해보나, 주문이 나오지가 않는다. 그늘 앞에 주문은 무의미하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호흡이 가빠진다.
그 순간이다.
탁, 하고 카일이 땅을 박찼다.
2.
이어지는 대피의 행렬 속.
문득 든 불안감에 클로에가 뒤를 돌아본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 충격만큼은 전해진다. 땅이 뒤흔들리고,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진다.
저곳에서 벌어질 싸움을 클로에는 알 수 없다.
그저 무사하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렇게 클로에가 라니아가 무사하기를 기도하던 순간이다. 찌릿, 하고 클로에의 등줄기가 곤두섰다.
“······.”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
무언가 다가옴을 클로에는 느낀다.
“방금.”
그것은 클로에만이 느낀 게 아니다.
그 옆에 서 있던 벨노아도 마찬가지다. 벨노아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뒤를 돌아본다. 그 시선이 천천히 하늘을 향한다.
검은 물체가 하늘에 떠있다.
그것이 가까워진다. 작은 점으로 보였던 그것의 크기가 점점 커져서, 무시할 수 없는 크기가 된다.
쐐에에에에엑!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거대한 물체가 공기를 찢으며 다가온다. 이윽고 땅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피난민들도, 그들을 호위하던 기사들도, 성기사들도 그 누구랄 것 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툭, 투둑.
무언가 떨어진다.
후두두두둑.
떨어지는 것은 검은 구정물이다.
하늘을 올려다본 누군가 허망하게 중얼거린다.
“···용?”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하늘에 떠있는 것.
그것은 용이다. 하지만, 그 형상은 평범한 용과는 다르다. 인간의 뼈로 만들어진 날개, 검은 점액질이 들러붙은 피막. 그 피막에서 검은 구정물이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다.
고륵, 그르륵.
바닥에 떨어진 점액질이 괴이한 소리를 낸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어, 어어···.”
당황한 기사들이 물러선다.
그들을 지휘하던 지휘관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본 채 중얼거린다.
“분명, 그때 처리됐다고···.”
하늘에 떠있는 용의 형상.
그것은, 일찍이 로디멜 요새에서 처리됐다고 들었던 배교자의 사역마다. 저 사역마를 완전히 묻어버리기 위해, 수많은 기사가 희생됐다.
흑룡의 헤츨링.
그것을 재료 삼아 만들어진 저주룡.
【■■——— ■■■■■■■■■■■—— ■■■■■■■!!!】
그것이 괴성을 내질렀다.
점액질이 비 내리듯 쏟아진다.
바닥에 닿은 점액질이 구울이 되어 살아난다.
또다른 재앙이, 북부에 나타났다.
3.
【계약을 이행하라.】
일순간, 카일의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성검에 축적된 별빛의 ‘일부’가 카일의 신체에 깃든다. 그늘조차 지우지 못하는 별빛이 카일의 육체를 한계의 너머까지 가속시킨다.
콰앙!
카일이 땅을 박차고 뛰어든다.
한순간 가속한 그 움직임을 가니칼트 마저 잠시나마 놓치고 만다. 괴수의 손아귀 위에 발을 디디고 선 카일이 온 힘을 다해 성검을 내려친다.
쩌어어어어어억!
괴수의 팔을 감싼 척추가 요동친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 손아귀가 풀리고 만다. 움켜쥐어졌던 라니엘이 바닥에 떨어지고, 제 목덜미를 붙잡은 채 라니엘이 숨을 몰아쉰다.
콰직!
그리고, 카일은 괴수의 팔에 올라탄 채 다시 한 번 검을 휘두른다. 그 움직임은 세련되지 않다. 기술 따위 담겨 있지 않다. 오직 힘만으로 휘두르는 검이나··· 그 어느 때보다 위력적이다.
카아아아아앙!
검과 검이 맞부딪친 순간, 카일은 좀 전처럼 크게 밀려나진 않는다. 공중에 붕 뜬 채, 카일은 몸을 비틀어 바닥에 칼을 내리꽂으며 착지한다.
“······.”
그런 카일을 보는 가니칼트의 안광이 가늘어진다.
그 안광에서 라니엘은 처음으로 감정을 엿보았다.
“내가 보이라 한 것은.”
그것은 분노다.
“검사로서의 긍지다, 별의 노예야.”
죽음의 칼의 육신에서 그늘이 들끓는다.
증발하는 구정물 너머로 가니칼트가 카일의 눈동자를 가리킨다. 그 눈동자에는 백금색 빛고리 따위 없다. 의지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
“모욕이다.”
카일의 공허한 눈동자를 가리키며 가니칼트가 끓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지 없는 검에 긍지 따위 없다. 꼭두각시를 상대하기 위해 나는 이곳에 온 게 아니다.”
가니칼트가 검을 내던진다.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검을 붙잡는다. 그 순간 사그라들던 그늘이 미친 듯이 솟구친다. 솟구친 그늘이 검에 뚫린 구멍을 완전히 메꾸고, 완벽한 검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더이상 가니칼트는 카일을 보지 않는다.
그 섬뜩한 안광이 향하는 것은 하늘 위에 뜬 별이다. 푸르른 하늘을 거울삼아 비춘 별을 향해 가니칼트가 검을 휘둘렀다.
“꺼져라.”
가니칼트가 검을 휘둘렀다.
쩌적.
푸른 하늘이 쪼개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