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25
〈 325화 〉 판을 엎어라(3)
* * *
별은 인간에게 축복을 내리곤 한다.
누군가는 별에게 사랑받으며, 누군가는 별에게 선택받은 사도가 되고, 또 누군가는 별을 모시는 신실한 사제가 되기도 한다.
「그 중 하나를 가질 수 있다면, 잿빛 마법사 님께선 어떤 재능을 가지고 싶으십니까?」
전장에 머물렀을 시절 받았던 질문이다.
수많은 축복 중 하나만을 고를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고 싶냐고. 그 질문에 라니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와쳐(Watcher), 맥락을 읽는 이.
그것은 라니엘이 바라고 또 바랐던 재능이다.
‘매일같이 별에게 징징댔는데, 끝까지 안 줬지. 나한테 뜯어간 마나가 얼만데. 양심 없는 새끼···.’
속으로 툴툴대며 라니엘은 와쳐에 대해 떠올린다.
맥락을 읽는 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와쳐는 만물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 마나의 흐름을 읽어내며 초견(??)한 회로라 한들 단숨에 그것의 흐름을 파악해낸다.
여기까지만 해도 엄청난 재능이다.
모든 마법사가 탐낼만한 재능이긴 하나, 라니엘은 와쳐의 재능이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완전히 개화(?花)한 와쳐를 라니엘은 알고 있으니까.
고룡의 마법사.
요르문 반 드라고닉.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마법사이자, 유일하게 와쳐의 재능을 완전히 개화한 마법사이기도 하다. 그는 단 한 번 라니엘의 앞에서 ‘맥락을 읽는 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준 적이 있다.
「잘 봐둬라.」
「이게 나의 마법이니.」
흑룡을 토벌했던 라니엘에 대한 찬사였을까.
자신의 머나먼 후배를 보는 선배로서의 가르침이었을까. 그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날 보았던 광경은 라니엘의 뇌리에 깊게 틀어박혔다.
마법사의 신.
그 광오한 이명에 걸맞은 광경이었으므로.
“···원래는 조금 더 나중에 가르쳐주려 했어.”
라니엘은 눈앞의 소녀를 본다.
“네게는 이르다고 생각했으니까. 까놓고 말해서 나한테도 힘들어. 이건 평범한 인간이 견딜만한 그게 아니니까. 그래서 좀 더 간을 보려고 했는데···.”
와쳐의 재능을 타고난 아이.
자신의 다음을 이어, 잿빛의 차기 마탑주 자리에 앉은 후배와도 같은 아이. 그 아이를 바라보며 라니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깝게도 시간이 없네.”
그러니까, 미리 물어볼게.
라니엘이 레스티를 똑바로 바라보곤 질문했다.
“몸에 무리가 가. 좀 많이 어지러울 거다. 한동안은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을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다면···.”
“괜찮아요.”
레스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한다.
“시간 안에 배울 수만 있다면, 뭘 해도 좋아요.”
이미 결정을 내린 이의 눈동자다.
강한 집념이 느껴지는 눈동자에 라니엘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떠난 뒤 마탑에는 잿빛의 정신을 잃은 머저리들만 가득했는데···.
‘역시 내 후배야.’
레스티만큼은 예외다.
‘잿빛 마탑의 마법사는 이래야지.’
라니엘이 레스티에게 손짓했다.
“두 눈 감아봐.”
레스티가 두 눈을 감았다.
라니엘이 손을 뻗어 레스티의 두 눈을 덮었다.
와쳐의 재능은 눈동자에 집중되어 있었으므로, 라니엘은 제 손바닥 아래로 흘러가는 별빛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네 재능의 진가는 본다, 그리고 이해한다에 있다는 것 알고 있지?”
“알고 있어요. 저번에 말씀해주셨으니까요.”
한번 말한 적이 있었다.
레스티의 재능은 ‘본다’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마주한 것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에 있다고.
“그런데, 이상하다고 느낀 적 없어?”
“네?”
“별을 보고 마나의 흐름을 읽는데, 그 본질이 너무나도 쉽게 이해가 되잖아. 수백, 수천 년 동안 마법사들이 탐구해온 것이··· 한순간에 이해가 되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아?”
가져본 적이 없는 의문.
레스티가 뭐라 대답하려는 순간이다.
“네가 본 것은 겉핥기야.”
라니엘이 마나의 흐름을 건드렸다.
“그러니, 지금부터 심연을 들여다보자고.”
레스티의 눈동자 위로 흐르는 흐름이 뒤바뀌기 시작한다. 눈두덩이 위로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감각에 레스티가 몸서리쳤다.
“지금 이거 기억해. 한번은 내가 해주지만, 다음부턴 네가 직접 해야 하는 거니까.”
레스티가 천천히 네, 라고 답했다.
이윽고 라니엘이 천천히 레스티의 눈을 덮었던 제 손을 뗐다. 그리곤 레스티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한걸음 비켜섰다.
“눈 뜨기 전에, 하나 경고할게.”
라니엘이 말했다.
“방금 내가 한 건 네 눈에 걸린 보호 기제를 해제한 거야.”
“···보호 기제요?”
“그래. 본래 네 눈은 더 많은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있지만, 제한이 걸려있거든.”
제한이 왜 걸려있는 건가.
레스티가 그런 의문을 품은 것 같아, 라니엘은 쓰게 웃으며 제 눈동자를 툭툭 건드렸다.
“너무 많이 보이거든.”
단순하다.
너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것이, 한순간에 이해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보인 나머지, 뇌에 과부하가 걸려. 네 머리가 못 버티는 거야. 그래서 제한이 걸려있는 거고. 지금 그걸 일시적으로 풀어놨어.”
“그럼···.”
“너무 많은 게 보일 거야. 너무 많은 게, 한순간에 이해될 거야. 그러니까, 괜히 이 악물고 버티지 말고 안 되겠다 싶으면 눈 감아.”
안 그랬다간.
“미치고 말 거다.”
레스티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곤 그녀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뜬다. 그렇게 눈을 뜬 순간 레스티는 한순간 숨을 헛삼켰다.
보인다.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보인다.
레스티는 눈을 뜬 순간, 어째서 라니엘이 이 방안에 있던 것들을 모조리 치워버렸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방안에는 마나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마법사가 그 자리에 있을 때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마나다.
레스티의 마나, 그리고 라니엘의 마나.
그 두 개의 마나만이 레스티의 눈에 보인다.
마나는 별과 관련된 것이므로, 레스티의 눈은 그것을 보는 순간 파악한다. 이해한다. 그 과정이 일어나는 것은 예전과 같으나, 그 깊이가 다르다.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보이지 않아야 할 게 보인다.
마나의 형태가, 성질이, 그것에 기록된 정보들이, 이 마나로 이루어졌던 모든 거래가, 셀 수 없이 많은 정보가 레스티의 머리에 강제로 주입된다.
“···흐윽!”
비틀거리던 레스티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순간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보호 기제가 모조리 제자리를 찾는다. 그리하여 평소대로 돌아온 시야로 레스티는 바닥을 내려봤다.
투둑, 투두둑.
피가 떨어지고 있다.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코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었으며, 눈에서도 핏방울이 투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레스티가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게 도대체···.”
“그게 네 재능의 본질이야.”
라니엘이 말했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수면만을 보고 이해하겠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능이지만, 네가 원한다면···.”
그녀가 손가락을 아래로 까딱였다.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그 정수를 쏙 빼먹고 나올 수 있단 이야기지. 진짜 말도 안 되는 재능이야 그거. 그래서 내가 탐냈던 거고.”
라니엘이 쓰게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한 명의 마법사가 제 삶을 바쳐서, 한평생 동안 걸어온 마도(??)의 정수를··· 너는 보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있지. 네 것으로 만들 수 있단 뜻이야.”
가령 천재들을 가리켜 이렇게 표현한다.
남들이 수십 년의 세월에 걸쳐 걸어온 길을, 찰나로 일축하고 한순간에 건너뛰는 이들이라고. 그렇다면 눈앞의 이 소녀는 어떠한가.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것만으로 갈아치우지.’
세상 참 드럽게 불공평하다.
그리 툴툴거리며 라니엘이 짝, 하고 박수를 쳤다.
“그러니까 빼먹어봐.”
“···네?”
레스티가 눈을 깜빡였다.
라니엘이 씨익, 웃음을 흘렸다.
“내가 쌓아온 것, 내 전부.”
그녀가 셔츠의 단추를 툭,투둑 하고 풀었다.
“훔쳐가 보라고. 죄다 보여줄 테니까.”
그녀가 제 가슴팍을 꾹 눌렀다.
새하얀 살결 위로 벌레가 기어가듯 회로가 돌아가고 있다. 그 회로야말로 라니엘의 전부다. 그녀가 걸어온 마도의 정수다.
자신의 모든 것.
그것을 가리키며 라니엘이 말했다.
“앞으로 한 달간, 넌 이걸 네 것으로 만들면 돼. 이게 장로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니까.”
레스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레스티가 제 눈을 꾹 감았다. 끼릭, 소리가 나며 잠겨있던 보호 기제가 풀린다. 천천히 숨을 내뱉은 레스티가 눈을 떴고···.
“어흑.”
곧바로 코피를 쏟으며 바닥에 엎어졌다.
1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2.
오래걸리겠네.
쓰러진 레스티를 보며 라니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다.
이 회로는 자신조차 어떻게 만들었는지 제대로 기억이 안 나는 회로였다. 무의식 속에 완성했던 회로.
‘그때 어떻게 했더라.’
제 수명의 절반을 바쳤던 그 순간, 라니엘의 뇌는 한계를 넘어선 곳까지 과부하 됐다. 한계까지 확장된 시야, 한계까지 느려진 체감시간.
멈춰버린것만 같이 느껴지는 세상 속에서 라니엘은 답을 찾아 헤맸다.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뭉개트렸고, 다시 쌓기를 반복했다.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계속해서 뭉개고, 계속해서 쌓았다.
마법사들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뭉개 트릴 때, 마법사로서의 수명은 끝난다고 말하곤 한다. 그 표현을 빌리자면 그곳에서 라니엘은 최소 수백의 죽음을 경험한 것이리라.
마법사로서 경험한 수백의 죽음.
그 죽음 끝에 찾아낸 답이 바로 이 회로다.
이 회로를 레스티가 이해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라니엘로선 알 수 없었다.
‘한 달론 부족하겠지.’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감만 잡으면 좋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날 레스티는 1초를 버텼다. 이틀 뒤에는 2초를 버텼으며, 또 이틀이 흘렀을 때는 3초를, 다시 4초를···.
“후우, 후우우···.”
밤낮이 스무 번 바뀐 날.
이틀에 한 번 꼴로 1초를 늘려나가던 레스티는 기어코 라니엘의 앞에서 10초를 버티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실핏줄이 터져 붉어진 눈동자를 꾹 누르며 숨을 몰아쉬었다.
‘···진짜 독종이네.’
그런 레스티를 보며 라니엘은 혀를 내둘렀다.
수많은 정보가 머릿속에 범람할 것이며,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 고통을 레스티는 고스란히 견뎌내며 10초를 버텨냈다.
사지를 비틀면 금세 비명을 지르는 칼트에게 보고 배우라고 말하고 싶은 정신력이었다.
“조금이지만, 감을 잡아가는 것 같아요.”
라니엘이 레스티에게 놀라듯, 레스티 또한 라니엘의 회로를 보고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정보를 퍼올리려고 하는데, 도저히 닿지가 않는다.
너무나도 깊다.
저 하나의 회로에 담긴 정보가, 저 마법사가 걸어온 길이 너무나도 거칠고 험하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교수님은.”
레스티가 질문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만드신 거에요?”
“글쎄.”
라니엘이 쓰게 웃었다.
“하다 보니까 됐다.”
언제나와 같은 말이다.
슬슬 그리워질 법한 그 말에 레스티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라니엘 또한 농담으로 던진 것이었기에, 그녀는 제대로 다시 답을 들려주었다.
“뭉갰어. 뭉개고 또 뭉갰어.”
상식을, 쌓아온 길을, 자신의 모든 것을.
“뭉개다가도 쓸만한 거 하나씩은 나오잖아. 그런 거 하나씩 뽑아다가 계속 맞췄지. 퍼즐 맞추듯이.”
수백 개의 탑을 쌓았고, 수백 개의 탑을 무너트렸다. 바닥에 쌓인 수많은 돌무더기들 중 쓸만한 조각만을 꺼내어 하나의 탑을 세웠다.
‘···그런 것을.’
지금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다.
마법사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보물을.
레스티는 새삼스레 감사함을 느끼며 라니엘에게 고개를 숙였다. 라니엘은 됐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레스티에게 말했다.
“가봐. 저녁은 장로님하고 보내야지.”
레스티는 고개를 끄덕이고 연구실을 나섰다.
낮으로는 라니엘에게 가르침을, 밤에는 장로와 이야기를 나누며 레스티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삶에 있어 가장 긴 한달.
단 1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으며, 레스티는 하루를 쪼개어 살았다. 그 시간도 이제는 슬슬 막바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3.
“장로님 저 왔어요.”
“그래, 왔느냐. 레스티.”
노을이 저문다.
마탑의 최상층에 주홍빛 그림자가 물결쳤다.
“가까이 와서 이야기하거라. 이제는 귀도 잘 들리지 않는구나.”
장로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장로에게 주어진 시간도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장로의 상태도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 레스티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고 한들 고통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레스티가 힘겹게 숨을 내뱉었다.
“잠시만요. 화초 좀 갈고 올게요.”
“그러려무나.”
오늘 따라 유난히도 방 안의 공기가 탁하다.
정화용으로 놔둔 마력 화초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한 모양이지. 그리 생각하며 레스티는 창가에 놓인 화초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마력 화초에 손을 뻗는 순간이다.
멈칫.
레스티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
화초가 검게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레스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창문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창문은 침대에 기대어 앉아있는 장로를 비추고 있다.
장로는, 웃고 있었다.
그 기이한 웃음에 레스티는 마른침을 삼켰다.
“···오늘도, 교수님께 마법을 배웠어요.”
레스티는 장로에게 등을 돌린 채 말했다.
화초를 갈아 끼우는 척하며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끼릭, 하고 무언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레스티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눈을 감은 채 몸을 돌렸다.
그렇게 레스티가 눈을 뜨려는 순간이다.
“눈치챈 모양이구나.”
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침대가 박살 난다. 땅이 뒤흔들린다. 갑작스레 뻗쳐온 손아귀가 레스티의 목을 낚아챘다.
“그 눈.”
레스티가 힘겹게 눈을 떴다.
그 눈에 보이는 것은 장로가 아니다.
“그 빌어먹을 고룡을 닮았군.”
장로의 몸을 집어삼킨, 장로와 하나 된 기이한 존재를 레스티의 눈은 포착한다. 그러나 본래라면 그다음에 따라와야 할 과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보았다.
그러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곳에 있다. 레스티의 눈에서 피가 흘렀다. 철컥, 하고 멋대로 보호 기제가 레스티의 시야를 차단했다.
“당, 신···.”
목이 붙잡혀 가늘어진 목소리로 레스티가 말했다.
“당신, 누구야.”
그 질문에 장로의 입가가 쭉 찢어졌다.
“누구긴. 네가 존경하는 스승이자 아비이지. 아버지라고 불러보지 않겠느냐, 레스티?”
장로를 집어삼킨 무언가가, 장로의 기억을 빌려 부드러운 목소리로 레스티를 부른다. 그 부름에 레스티는 역겨움을 느낀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느냐.”
장로의 눈동자가 레스티를 본다.
그 눈동자는 끝없는 심연과도 같다. 그 속에서 꿈틀대는 그림자가 레스티에게 속삭였다.
【최초의 광인.】
그가 웃는다.
【이름 잃은 자.】
광소가 메아리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