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28
〈 328화 〉 집결(1)
* * *
그림자에 삼켜졌던 잿빛 마탑을, 불길이 다시 한 번 집어삼켰다. 거센 화염은 그림자를 불사 지르고 마탑의 내부로 향하는 길을 만들어낸다. 불길의 역할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틱, 티딕.
잿빛 화염이 타오른다.
튀어 오른 불똥이 잿가루와 만나 점멸하기 시작한다. 직후, 일대를 새하얗게 물들이는 섬광과 함께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앙!
섬광 직후 터져 나오는 굉음에 땅이 뒤흔들린다.
잿빛 마탑이 세워진 광장이 뒤흔들리고, 광장을 타고 이어진 길과 길을 따라 왕도 전체가 뒤흔들린다.
움찔.
마수를 틀어막던 기사들도, 기사들이 내세운 방패를 할퀴던 마수들도, 그들을 지휘하는 변절자들도 일제히 멈춰 선다. 멈춰선 채 그들은 고개를 들어 같은 곳을 바라본다.
잿빛 마탑.
오랜 세월 왕국의 역사와 함께한 그 탑이, 지금은 불에 타들어 가고 있다. 잿빛 마탑을 휘감은 화염은 땅 아래서 시작했으며, 저 드높은 하늘 위까지 연결되어 있다.
땅에서 하늘로 이어진 일직선의 불길.
그 불길은 일종의 신호이자 봉화와 같다.
···예로부터 불길은 마(?)를 불태우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실제로 불길에 신성함이 깃드는 것은 아니나, 어둠을 밝히는 불길을 보고 사람들은 불을 신성하다고 여겼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다.
마탑에 드리운 그림자를 집어삼키는 불길.
하늘 위까지 솟아오른 그 찬란한 불길에서 기사들은 신성함을 느낀다. 화염을 바라보는 기사들의 눈동자에도 불길이 피어오른다.
영웅이 우리와 함께한다.
반격의 봉화가 피어올랐다.
기사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마수를 몰아붙인다. 전황이 뒤집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불길은 가까이에 있는 기사들에게만 닿은 것이 아니다.
먼 곳에서 가야 할 길을 찾고 있는 이들.
다음 세대를 이끌어나갈 영웅들에게 봉화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이곳으로 와라. 이곳에, 너희가 상대해야 할 적이 있다. 봉화의 인도에 따라 그들은 움직인다.
2.
마수들이 득실대는 지하 수로의 깊은 곳.
지상으로 마수들을 올려보내고, 마수들을 만들어내는 변절자들이 모여있는 그곳에 사냥개들이 뛰어든다. 하운드(Hound)들의 칼날이 어둠 속에서 요사스레 빛난다.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
사냥개들은 어둠 속에서 왕가에 반기를 들어 올린 변절자들을 처리해나간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사내가 하나 있다.
가더(Guarder), 칼트.
초인의 자리에 오른 검사가 검(?)을 뽑아든다.
스릉, 하고 칼날이 진동하는 소리가 지하수로에 조용히 울려 퍼진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냥개들이 일제히 멈춰 선다. 그들은 말없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선다.
초인이 날뛸 자리에 자신들은 필요 없다.
그들이 한걸음 물러서자 칼트는 기다렸다는 듯 한걸음 앞으로 내디딘다. 탁, 하고 가벼운 걸음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칼트의 신형이 한순간 사라졌다.
촤악.
미끄러지듯 칼트가 지하수로의 끝자락에 도착한다. 한순간에 자신들의 뒤편에서 나타난 칼트의 존재에 변절자들은 식겁하나, 차마 고개를 돌리지는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후웅.
칼트가 가볍게 검을 휘두른다.
칼끝에 묻은 피가 허공에 흩날렸다. 직후 칼트가 지나간 길을 따라 은백색의 검로(??)가 나타난다. 그것은 칼트의 검이 스치고 간 궤적이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악!
마수도, 변절자도, 흐르던 물길마저도 모조리 잘려나간다. 핏물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칼트는 칼끝으로 시체들을 가리켰다.
“처리해.”
하운드들이 재생하려는 변절자들의 심장에 말뚝을 꽂아넣는 가운데, 칼트는 지하수로의 창살을 베고 땅 위로 올라섰다.
득실거리는 마수들.
풍겨오는 마수들의 누린내.
전장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가 거리에 만연해 있다. 익숙함이 느껴져선 안 될 곳에서 익숙함이 느껴진다. 그 사실에 칼트는 미간을 좁힌다.
스릉.
그가 다시 자세를 잡는다.
검의 초인 쿤텔에게 배운 쾌검(??)을 펼치고자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 칼트가 디디고 선 땅이 뒤흔들렸다. 직후 굉음이 터져 나온다.
칼트는 고개를 든다.
왕도의 한복판에 불기둥이 나타났다.
그것을 본 순간 칼트의 입가에 웃음이 맺힌다.
저런 정신 나간 짓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칼트가 아는 한, 한 명밖에 없다. 칼트가 웃음을 머금은 채 검을 고쳐쥔다.
칼을 휘두르며 칼트가 달리기 시작한다.
마수들을 쓸어넘기며 칼트는 제 선배가 부르는 곳을 향해 질주한다. 은백색의 검로가 마수로 뒤덮인 왕도를 가로질렀다.
* * *
왕도에 동시다발적으로 마수가 나타났다.
아플리아 아카데미 역시 마수의 출몰을 피하지 못했다. 땅 아래서, 지하 수로에서 마수들이 튀어나오는 가운데, 학사진들은 기겁하며 학생들을 지키고자 움직였으나···.
그들의 보호를 받을 만큼 아플리아의 학생은 연약하지 않다. 기숙사로 달려간 학사진이 본 것은 난도질당한 채 널브러져 있는 마수들이다.
그 중심에 한 소년이 서 있다.
도끼를 늘어트린 채, 핏물을 닦아내는 소년.
북부의 전사 라크 반 그레이스.
그의 뒤로는 전투 마학과 학생들이 늘어서 있다. 마수의 급습 아래 그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간 학습의 결과를 시험하듯 학생들은 마수를 맨손으로 찢어발기고 있다.
그들이 기숙사의 바깥으로 나간다.
당황한 학사진들을 스쳐 지나간 그들은, 아플리아에 돌아다니는 마수들을 사냥하기 시작한다. 변절자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나··· 라크가 휘두른 도끼에 명을 달리할 뿐이다.
‘너무나도 잘 싸운다.’
그들을 지켜보던 학사진과, 아플리아에 상주중이던 기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라크의 활약이 돋보이긴 하나, 그 소년의 뒤를 따르는 전투 마학과 학생들도 마수를 상대함에 있어 부족함은 없다.
체술을 기반으로 한 전투 마도의 활용.
달려드는 마수의아가리를 찢어버리고, 그 등허리를 주문으로 박살 낸다. 그리하여 바닥에 축 늘어진 마수를 짓밟은 채 하나하나 확실하게 마무리 해 나간다.
‘저게 무슨···.’
기사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의 움직임이다.
마치 이 모든 것을 경험하기라도 한 듯 학생들의 움직임은 능숙하기 짝이 없다. 마치 전장의 기사와 같은 움직임이다.
그 활약상을 보다 못한 기사 하나가 학사진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저 아이들은 평소에 뭘 배우는 거요···?”
참으로 당연한 질문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라크는 마수를 지휘하는 변절자에게 달려들었다. 일격(一?)에 머리를 쪼개고, 이격(二?)은 재생의 매개가 되는 변절자의 심장을 찢어발긴다.
핏물을 뒤집어쓴 채 라크는 질주한다.
가열(Heating).
붉은 안광이 꼬리를 그린다.
라크가 마수 무리 사이로 몸을 던졌다.
그리곤, 마구잡이로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한다.
콱, 콰직. 으적!
짐승보다도 더 짐승다운 움직임을 선보이는 라크가 마수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그 움직임은 이미 학생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 전장의 기사들의 수준 또한, 진작에 넘어선 움직임이다.
갈라트릭 개(?).
그레이스류 제 1식, 초견살.
일대의 공기가 출렁이더니, 마수들의 시체가 하늘로 비산한다. 살점이 후두둑 비 내리듯 떨어졌다. 쏟아지는 핏물을 맞으며 라크는 다른 마수 무리를 향해 다시금 뛰어든다.
초인에 가까운 몸놀림.
초감각과 한정적인 미래시, 그리고 초인에 근접한 육체 능력을 십분 활용해 라크는 마수들을 도륙 낸다. 그리 학살을 펼치는 와중, 땅을 울리는 충격에 라크는 고개를 들어 머나먼 곳을 바라봤다.
솟아오른 불기둥.
그 불기둥을 바라보며 라크가 후웅, 하고 도끼에 묻은 살점과 핏물을 떨쳐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저것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느낌을 라크는 강하게 받았다.
불길을 향해 라크는 걸음을 옮긴다.
신호를 받은 것은 라크 뿐만이 아니다.
“···저건.”
흑색 마탑의 앞에서 변절자를 상대하던 그림자 주술사 벨노아도 라크와 같은 것을 보았다. 불길이 자신을 부른다. 저곳으로 향해야 함을 벨노아는 본능적으로 느낀다.
[가자꾸나, 계약자여.]태초의 신의 힘을 빌려 벨노아의 손가락이 비늘에 뒤덮인다. 메마른 바람과 함께 벨노아가 걷는다. 그 곁에는 찬란한 빛을 이끄는 클로에가 함께한다.
“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제 4왕녀 아일라는 호위기사를 뒤로 한 채 홀로서 움직인다.
“왕, 왕녀님! 그쪽은 위험···!”
당황한 호위기사가 그녀를 뜯어말리려고 하나, 아일라는 손가락을 한번 까딱이는 것만으로 변절자들을 제압해내는 모습을 선보인다.
별에게 사랑받는 아이, 스텔라.
스텔라(Stella)는 일대의 흐름을 지배한다.
그녀의 영역 아래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마법사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재능을 개화(?花)한 아일라는 영역 내부의 모든 것을 지휘한다.
마수들이 고꾸라진다.
변절자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영역에 들어온 이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그야말로 지배자에게 어울리는 능력이다. 아일라는 시야에 들어오는 이들을 모조리 굴복시키며 불기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모여든다.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한 이들이, 하나의 신호를 받고 왕도의 중심을 향해 모여든다.
영웅이 집결한다.
* * *
모여드는 광채가 있다.
찬란한 광채가 이곳을 향해 모여든다.
잿빛 마탑의 최상층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광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이날의 역천(??)을 위해 광인은 수많고 수많은 것을 계산했다. 왕도의 가장 높은 곳에서 왕도의 전력을 파악했고, 용사들의 배치 시기와 그들의 활동범위를 예측했다.
변수를 지우고 또 지웠다.
최적의 시기를 위해 잠복해왔다.
존재하는 변수는 잿빛 마법사 하나뿐이었으며, 그 변수를 스케발이 붙들어 둔 지금 다른 변수는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비원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광인은 강하게 확신했다.
계획은 완벽했다.
계산 또한, 완벽했다.
변절자의 세력을 기사들만으로는 막을 수 없을 것이며, 마탑의 마법사들이 합류한다 한들 다소의 시간이 소비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시간을 끌기만 하면 충분하다.
시간을 끄는 동안 마수들은 피해를 확대할 것이며, 마수에 물어뜯긴 이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주문의 완성을 가속할 것이다. 주문의 완성이 앞당겨질 것이고, 머잖아 왕도는 어둠에 휩싸이리라.
그것이 광인의 계획이었다.
이 계획을 위해 광인이 쌓아올린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그가 계산을 마치고 이자크의 몸을 버렸던 1년 전을 기준으로 했을 때, 광인의 계산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허나, 1년이 지난 지금은 아니다.
고작 1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지만··· 왕도에는 광인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광인은 이곳으로 모여드는 광채를 노려본다.
초인의 자리에 오른 검사.
최초의 성검을 이어받은 북부의 전사.
태초의 신과 계약한 주술사.
두 개의 별빛을 품은 용사.
별에게서 독립한 별의 아이.
그리고, 광인은 제 뒤를 돌아본다.
그림자에 묶여있어야 할 소녀가, 그림자를 뜯어내고 있다. 신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를 보며 광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가 없군.”
고작 1년이다.
그리 오랫동안 계산했거늘··· 고작 1년 사이에 발생한 변수가 광인의 계획을 흐트러트렸다. 광인이 짜 올리던 체스판이 엎어졌다. 판이 엎어져 버린 가운데, 광인은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을 터뜨린다.
자신이 생각지 못했던 반전에, 수백 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할 시간 동안 발생한 변수에 계획이 무너졌더나는 웃지 못할 농담에, 이 우스운 상황에 광인은 광소를 터뜨린다.
“생각지 못했다. 생각할 수가 없지. 1년 남짓한 세월에, 이렇게나 많은 변수가 나타날 거라고··· 그 누가 예상하나?”
광인에겐 찰나의 불과한 순간.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쪼개어 쓴 누군가에겐 영원과도 같은 시간. 그 상대적인 시간이 확실했던 미래를 미궁으로 빠트렸다.
이젠 광인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불확실한 미래를 가늠하며 광인은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곳에는 한 명의 마법사가 서 있다. 불에 타들어 간 해골바가지를 손에 움켜쥔 채, 마법사는 고개를 든다. 광인을 바라본다.
잿빛이 뒤섞인 푸른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그녀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 손가락 끝으로 광인을 가리켰다. 그녀가 입가를 비틀며 웃음을 흘렸다.
“기다려.”
지금 간다.
오싹.
광인은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끼침을 느낀다.
수백 년도 더 지난 과거에, 대현자 또한 저런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봤었다. 수백 년의 세월을 건너뛰기라도 한양, 이 자리에 나타난 잿빛의 의지에 광인은 박수를 친다.
그래, 라니엘 반 트리아스.
빌어먹을 잿빛의 의지를 잇는 마법사야.
역시 너로구나.
너만이, 모든 것의 변수를 만들어내는구나.
나와 같은 눈을 가진 너만이.
광인의 입가가 쭉 찢어졌다.
“어디 한번 와 보아라.”
네가 만든 변수를 이끌고, 나에게 와 보아라.
나의 계획을 어디 한 번 막아 보아라.
나는 이곳에서 너를 기다리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