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57
〈 357화 〉 이제는 앞으로(5)
* * *
별에게 축복받은 이, 용사(Brave).
그들은 별빛을 담기에 최적화된 영혼의 형태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곧장 별빛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떼고 걷기 시작하듯··· 용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별빛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다루는 법을 이해하고, 별빛의 운용을 체득하고 나서야 제대로 별빛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별빛을 다룰 줄 아는 용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난 수백 년간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단 한 명의 예외가 나타났다.
라니엘 반 트리아스.
고작 며칠 전에 용사로서 각성한 주제에 그녀는 별빛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제 것이었던 것 마냥 별의 특성마저 운용하고 있다.
본래대로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경험이 있다. 그녀가 살아온 삶이, 쌓아온 경험이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었다.
「바친다.」
「저것을 막을 힘을.」
별에게 축복을 받지 않았음에도, 별빛을 다루기 위한 영혼을 가지지 못했음에도 그녀는 이미 별을 다뤄본 경험이 있다. 흘러넘칠 만큼 많은 양의 별빛을 영혼에 새겨본 적이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먼저 간다, 라니엘.」
「뒤는 맡기겠다.」
그녀는 보았다. 수년간 봐왔다.
최강이라 불리는 용사가 별빛을 활용하는 모습을, 별빛을 태우며 질주하는 모습을 그녀는 몇 번이고 봐왔다.
경험과 예시.
이제 막 용사가 됐다 한들 그녀가 쌓아온 경험은 어지간한 용사들 못지않다. 별에 대한 이해 또한 그 누구보다도 높다. 그녀가 쌓아온 모든 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별빛을 개화(?花)시켰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익!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땅이 타들어 갔다. 쩍, 쩌적하고 갈라진 땅에서 흙더미가 튀어 올랐다. 튀어 오른 흙은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들끓었다. 자글자글 끓는 진흙이 피처럼 튀었다.
가속(??).
별빛을 두르고 달리던 카일처럼.
밀려드는 군세를 향해 뛰어들던 그 녀석처럼 라니엘은 달렸다. 끝도 없이 몰려오는 마수의 파도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을 선택했다.
일점돌파.
정면을 응시하고선 라니엘은 질주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다가오던 마수들이, 길을 가로막던 마수들이 모조리 재가되어 흩날리는 가운데 라니엘은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느껴지는 시선.
시선에 담긴 질척한 살기. 너무나도 거대한 나머지 숨기는 게 불가능한 기척. 그 시선이 누구의 것인지야 물을 것도 없다. 귓가에 메아리치는 그릇된 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라니엘은 웃었다.
“···그래, 개자식아.”
쓰게 웃으며 라니엘은 중얼거렸다.
“금방 간다.”
기다려.
멱살을 잡아다 패대기쳐줄 테니까.
2.
피잉, 하고 활시위가 떨렸다.
레미아는 쉬지 않고 월광(月光)을 퍼부었다. 꿰뚫린 구름에선 비처럼 달빛이 내렸다. 쏟아지는 달빛에 수많고 수많은 마수가 타들어 갔으나··· 그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정말이지 끝도 없이 튀어나온다.
레미아도, 데스텔도 숨을 돌릴 여유도 없이 화살 비를 퍼붓고 있지만, 마수는 기어코 수를 앞세워 두 사람이 펼친 화살의 그물을 찢어냈다.
키에에에엑!
비명과 함께 하나씩, 다시 하나씩 마수들이 방책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이 달려드는 곳에는 방책의 뒤에서 날카롭게 창칼을 세운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다.
고정, 막아라!
울려퍼지는 고함과 함께 철컥, 하고 갑주가 울리는 소리가 전장에 요란스레 울려 퍼졌다. 창대의 끝을 땅에 비스듬히 고정한 채 기사들은 두 발을 땅에 깊게 파묻었다.
푹, 콰직, 으득!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돌격하던 마수들이 방책과, 기사들의 창칼에 꿰뚫려 축 늘어졌다. 늘어진 마수들을 발로 걷어차 떨쳐내곤 기사들은 곧장 처음과 같은 자세로 돌아왔다.
“······.”
활시위에 화살을 메기며 레미아는 문득 고개를 돌려 기사들을 내려다봤다. 망루 위에서는 늘어선 기사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평소에는 보지 않았던 것.
보려 하지 않았던 그들의 얼굴을 레미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흘겨봤다. 투구의 틈새로 드러난 기사들의 눈동자. 결의에 찬 그 눈동자에 레미아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삼킨 숨이 뱉어질 적.
레미아는 더는 기사들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그들과 같은 곳을 바라본 채 그녀는 손가락이 저리도록 활시위를 당겼다. 피잉, 하고 활시위가 맑은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월광이 전장을 휩쓴다.
유성우가 구름을 뚫고 쏟아졌다.
펼쳐진 화살의 그물을 찢어내고 기어코 방책에 도달한 마수는 기사의 창칼에 꿰뚫렸다. 그들의 뒤에서 영창을 하고 있는 마도기사들의 주문이 밀려드는 마수를 휩쓸었다.
누군가는 최소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도움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또 누군가는 증명하기 위해서.
기어코 방책을 넘어온 마수들에게 할퀴고 물려 피를 흘리면서도 기사들은 견뎌냈다. 자리를 지키고 서서는 결코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다. 마치 그것이 지켜야 할 긍지라는 듯이.
튀어오르는 핏방울.
마수들의 울음소리.
처절하게 외치는 기사들의 고함소리.
···당연하게도 그들이 전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하는 것이라곤 밀려드는 마수를 막는 일뿐이다. 마수의 주의를 끄는 일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멀찍이 떨어진 곳, 마수들을 불태우며 내달리던 라니엘은 어느 순간부터 마수의 흐름이 바뀜을 느꼈다. 더는 마수들이 자신을 가로막지 않았다. 자신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로?
기사들이 막고 있을 전선을 향하여.
서서히 길이 열리고 있었다.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라니엘은 잠시 멈춰 서서 천천히 숨을 골랐다. 뜨거운 숨결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후우.”
잠깐의 여유, 한 번의 호흡.
길게 숨을 내뱉은 라니엘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길이 트이고 있었다.
3.
카■ ■■은 눈을 떴다.
기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존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는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머리는 둔탁하다.
잃어버린 신념. 망가진 가치관이 충돌하고 부딪치며 마모된다. 누군가 인간의 땅을 더럽히라 외치지만 그래선 안 된다고 또 누군가 외쳤다. 외침과 외침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어지럽다. 혼란스럽다. 시끄럽다.
모든 게 흐릿하고 불분명하지만 그중에서도 선명한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을 카■은 곱씹었다.
【잿빛을 죽여라.】
제 심장을 칼집 삼아 꽂아둔 검.
한때는 성검이라 불렸던 검의 칼자루를 매만지며 카■은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섰다.
잿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일하게 선명한 것. 모든 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자신의 목적. 자신이 검을 들어야 하는 이유.
잿빛을 떠올릴 때 자신은 자신일 수 있었다.
자신을 잃어버린 검사는 잿빛을 갈증 한다. 잿빛을 마주하면 무언갈 깨달을 수 있을 거 같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칼자루를 매만지며 카■은 정처 없이 걸었다.
걷다보면 마수들이 보였다.
수많고 수많은 짐승이 자신을 지키고자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자신의 뒤를 따라왔다. 비어버린 눈동자로 그들을 바라보며 카■은 생각했다. 저것들이 방해된다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카■은 가벼이 손을 휘둘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카일의 주변에 득실거리던 마수들의 몸이 잘게 쪼개졌다. 육편(??)으로 변해 후두둑, 쏟아지는 마수들은 마지막까지 제 주인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피보라가 솟구쳤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피보라는 짙어졌다. 피보라 속에서 걸음을 내디딘 그는 이윽고 한 건물의 앞에서 멈춰 섰다. 수백 년간 버려져 허름해진 교회였다.
어째서인지 여기여야만 할 것 같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카■은 교회의 문에 손을 대고 가볍게 밀었다. 구구궁, 소리를 내며 열리는 교회의 안으로 걸음을 내딛기 직전 카■은 뒤를 돌아봤다.
잿가루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자신이 갈망하는 잿가루와는 조금 다른 잿가루. 불씨를 받아도 다시 타오르지 못할 거 같은 잿가루였다. 바람에 흩날린 잿가루가 카■의 심장에 꽂혀있는 칼자루에 내려앉았다.
「···, ······.」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비어버린 카■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눈살을 찌푸린 채 그는 칼자루를 움켜쥐곤 검을 심장에서 뽑아냈다. 칼끝에도 묻어있는 잿가루가 거슬렸다. 귀에 울리는 목소리 또한.
뽑아든 검을 휘둘렀다.
칼끝에 묻은 잿가루가 흩날렸다.
뒤늦게 쏘아진 검기가 잿가루를 흔적도 없이 집어삼켰다. 숲이 뒤흔들리는 가운데 카■은 제 손에 쥐어져 있는 칼을 바라봤다.
칼에 더이상 잿가루는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카일’의 눈에는 잿가루가 보였다. 칼을 휘감은듯한 잿가루의 환상을 그는 보았다. 환상은 한순간이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칼은 칼일 뿐이며 검게 물든 도신도 변함이 없었다.
카■은 검을 제자리로 돌려놨다.
* * *
뒤틀린 마경에선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그늘의 영향으로 한껏 망가진 풍경에선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분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기세 좋게 달리던 라니엘의 걸음도 조금씩 느려졌다. 느려지다 못해 아예 멈춰 섰다.
망가지고 뒤틀린 지형.
득실거리는 마수들이 풍겨대는 누린내.
사방에서 메아리치는 마수의 울음소리.
그런 것들이 한데 뒤섞인 마경은 그야말로 지옥을 방불케 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선 라니엘은 주변을 둘러봤다. 혼란 속에서 그녀는 방향을 더듬었다.
뒤섞인 마기(??)속에서 방향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시선을 느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내디뎠을까.
서걱, 하고 기이한 소음이 고막을 울렸다. 고요한 절삭음이었다. 뒤늦게 마경을 뒤흔드는 울림을 라니엘은 느꼈다.
챠아아아아아아아아악!
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라니엘이 걸음을 멈춰선 채 뒤를 돌아봤다. 무언가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것이 먼 곳에서부터 쏘아진 검기(??)임을 라니엘은 뒤늦게 이해했다.
카일이 쏘아낸 게 분명한 검기.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봐도 두 번째 검기가 쏘아지는 일은 없었다. 라니엘은 검기가 휩쓸고 지나간 곳을 말없이 흘겨봤다.
“······.”
두동강 나버린 풍경.
그리고, 바닥에 길게 그어져 있는 선. 선을 따라 고개를 들어보면 선은 아주 먼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것이 라니엘에겐 하나의 길처럼 느껴졌다.
카일에게 향하는 길.
검기가 남긴 흔적을 따라 라니엘은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그토록 복잡하던 마경을 완전히 빠져나왔음을 라니엘은 깨달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펼쳐진 것은 거대한 황야였다.
황야에는 마수가 없었다.
피안개만이 자욱하게 껴 있을 뿐이었다.
라니엘은 손을 휘둘러 피안개를 걷어냈다. 그러자 그제야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쪼개지고 부서진 성의 파편 따위가 사방에 가득했다. 그 풍경이 라니엘은 낯이 익었다.
‘···셀레프 왕국의 옛터.’
과거 마왕을 마주한 곳.
라니엘은 마른침을 삼키고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걸음조차 오래가진 못했다. 더는 검기가 새긴 길을 보고 걷는 게 불가능했으니까.
라니엘은 바닥을 보았다.
쭉 펼쳐진 황야의 바닥에는 수많은 검흔이 새겨져 있었다. 일대를 가득 메운 검흔과 검기가 새긴 길이 뒤섞여 알 수 없게 됐다. 알 수 없게 됐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검흔이 다시 이정표가 되어주었으니까.
라니엘은 검흔이 시작된 곳에 바로 섰다. 아니, 어쩌면 검흔이 끊어진 곳이었다. 그곳에 바로 서서 고개를 들어보면 허공을 가른 거대한 참격이 눈에 들어왔다. 참격을 보며 라니엘은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라니엘은검(?)에 대해 잘 모른다. 검술의 경지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검사가 마법사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마법사 또한 검사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럼에도 극한은 통하는 법이다.
길게 찢어진 공간은 아물지 않았다.
그곳에 풍경처럼 박제되어 있었다.
이 일격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졌을지, 무엇을 베어냈을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기구나.’
라니엘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서, 너는 마왕을 베었구나.’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이 그랬듯이.
이 말도 안 되는 일격을 기어코 재현해내고 말았구나. 정말로 마왕을 베어냈구나. 그때는 도망쳤으면서 이번에는 기어코···.
기어코.
꾸욱, 하고 라니엘이 주먹을 쥐었다.
그리곤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검흔의 끝에서 시작점을 향해 라니엘은 걸었다. 난잡하게 찍힌 검흔은 곧 카일이 내디딘 발자국이었다. 카일이 지나왔던 길을 거슬러 라니엘은 걸었다. 카일이 마지막으로 도달했던 곳에서, 카일이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곳을 향해서.
끝에서 시작으로.
자신 또한 시작점에 서기 위해서.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