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59
〈 359화 〉 재앙, 그리고 용사(2)
* * *
“거봐, 미친 새끼야.”
팔이 부러진 채 바닥에 주저앉은 라니엘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입안에 굴러다니고 있는 부러진 치아를 퉷, 하고 라니엘이 뱉었다.
“이렇게 강한 새끼가.”
코뼈는 부러졌다.
부러진 팔에는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온몸이 얼얼한 가운데 라니엘은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 눈앞의 카일을 바라봤다.
“포기한다는 게 말이 되냐? 어?”
“······.”
“좀, 좀 임마.”
“···나는.”
“해보자고. 조금만 더. 꿈이라며 새끼야. 영웅이 되겠다며. 포기하는 영웅이 어딨냐?”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 라니엘이 카일을 가리켰다. 만신창이가 된 라니엘과 달리 카일은 멀쩡했다. 두 발로 바로 서 있는 카일을 향해 라니엘은 짓씹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넌 용사야. 승리의 상징이라고. 지금도 그렇지. 이 악물고 달려들어 봐야 난 널 못 이겨. 마법을 썼어도 똑같겠지.”
“···나보다는 네가.”
“그러니까.”
“네가, 더 용사로서···.”
“포기하지 말라고.”
용사는 승리의 상징.
그게 네가 꿈꾸던 용사잖냐, 카일.
2.
문득 카일과 주먹다짐을 했을 때를 떠올리며 라니엘은 눈앞을 보았다. 그곳에는 재앙으로 변한 카일이 있다. 그늘의 손아귀에 뒤덮여 비대해진 오른팔에는 성검이 쥐어져 있었다.
더는 빛나지 않는 성검.
검게 물든 성검이 닿는 모든 것을 끊어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틱, 티딕 소리가 들렸다.
‘···환장하겠네.’
가속된 육체. 길게 늘어진 체감시간.
느려진 세상 속에서 라니엘은 판단한다. 저것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막는 게 아니라 피해야 한다. 막으려고 하는 순간 베여버리고 만다.
촤아아아악!
라니엘이 고개를 숙이고 미끄러지듯 카일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머리 위를 카일의 검이 스쳐 지나갔다. 칼이 베어낸 것은 허공이나 머리 위에서 ‘서걱’ 하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등뒤에서 바람이 밀어닥쳤다.
일대가 난도질당하고 파편이 이리저리 튀어 올랐으나, 뒤돌아보지 않은 채 라니엘은 움켜쥔 주먹을 뻗었다. 칼을 휘두르며 빈틈이 만들어진 카일의 복부에 일격을 꽂아넣을 작정이었다.
분쇄(Smash).
움켜쥔 주먹이, 주먹에 담긴 주문이 카일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이다. 한순간 카일의 몸이 가속했다. 라니엘을 웃도는 속도로 움직인 카일이 검을 쥐지 않은 왼손을 뻗었다.
콱.
그대로 라니엘의 주먹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손아귀에 힘을 주자, 터져 나오지 못한 충격파는 도리어 라니엘에게로 돌아갔다. 말아쥔 라니엘의 손가락이 뿌득, 뿌드득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러지기 시작했다.
“···!”
라니엘이 눈살을 찌푸리는 가운데, 카일은 여전히 라니엘의 손아귀를 움켜쥔 채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겼다.
휙, 하고 라니엘의 몸이 끌려갔다.
고개를 들어보면 허공을 갈랐던 카일의 검이 방향을 꺾어 마치 단두대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선 라니엘은 발을 내려찍어 끌려들어 가는 제 몸을 고정했다.
오른발로 몸을 고정하고, 왼발을 뻗어 카일의 복부를 밀듯이 걷어찼다. 걷어차며 붙잡힌 손아귀를 억지로 빼냈다. 손가락이 꺾이고 부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지만 신경 쓰진 않는다.
칼에 베여 죽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그대로 구르듯이 라니엘은 검격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단두대처럼 떨어진 칼날이 방금까지 라니엘이 서 있던 곳을 베어 갈랐다.
서걱.
교회의 바닥을 부드럽게 가른 칼끝에서 검기가 터져 나오려는 순간이다. 카일은 제자리에 발을 내려찍고 선회했다. 스겅, 바닥을 베어 가르며 칼끝이 향하는 방향이 꺾였다. 궤도를 꺾은 칼끝은 라니엘의 목덜미를 향해 치솟았다.
회피가 불가능한 공격.
이를 악물고 라니엘이 주먹을 내질렀다. 밀려드는 검기를 향해 내지른 주먹에서 특대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분쇄(Smash).
충격파와 검기가 충돌한다.
충돌은 한순간이었고, 결과는 금세 나왔다. 검기가 충격파를 모조리 베어 가른다. 주먹을 내지르며 라니엘은 뒤를 향해 도약했지만, 솟구친 검기에 어깻죽지를 길게 베였다.
투확, 피가 터져 나왔다.
미친 듯이 날카로운 검기다.
전력을 다해 휘두르지 않았음에도, 분쇄로 만들어낸 충격파에 검기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피가 터져 나오는 어깻죽지를 움켜쥐며 라니엘은 뒷걸음질쳤다.
“······.”
카일은 곧장 추격하지 않았다.
천천히 칼을 들어 올리며 이쪽을 바라볼 뿐이다. 무엇으로 덤벼들든 정면에서 박살내주겠다는 듯한 그 모습에 라니엘은 이를 악물었다.
···알고는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상상 이상이다.
짧게 숨을 내뱉으며 라니엘은 꾹 눌렀던 어깻죽지에서 손을 뗐다. 별빛이 차오르고 어느새 상처는 아물어 있었다.
별의 축복, 초재생.
인간을 넘어선 괴물과 같은 회복력.
그 회복력은 지닌 별빛의 양과 비례하고, 카일의 별빛을 그대로 물려받은 라니엘이 지닌 회복력은 어지간한 용사들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다.
아무리 상처 입어도 곧장 회복된다.
그 사실을 라니엘은 이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얼마든지 제 몸을 망가트려도 된다고. 평소에는 몸에 무리가 갈까 봐 쓰지 않았던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자제했던 것들을 얼마든지 써도 된다고.
“그래, 뭐.”
해보자, 새끼야.
라니엘이 짧게 숨을 내뱉었다.
몸에서 힘을 빼고 자세를 잡았다. 그에 맞춰 카일도 자세를 잡는다. 검을 휘두르기 위한 자세. 그런 카일을 똑바로 바라본 채 라니엘은 스톡(Stock)해둔 주문을 불태웠다.
···마나, 그리고 별빛.
모든 용사는 ‘처음부터’ 용사로 각성할 것을 염두에 두고 육체가 구성된다. 그러니 그들의 몸에는 마나가 흐르지 않는다. 비어버린 통로에는 별빛이 차오를 뿐이다. 이례적인 경우인 클로에조차 별빛과 마나가 동화됐다.
하지만 라니엘은 다르다.
그녀가 지닌 마나는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다. 다른 것과 섞이지도 않는다. 별빛과 마나가 라니엘의 육체에는 동시에 존재했다.
‘···그러니, 이런 무식한 짓거리가 가능하지.’
라니엘이 웃음을 흘렸다.
쿠웅, 하고 라니엘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가속(Accel).”
스톡된 수십 개의 주문이 오직 하나의 주문으로 치환됐다. 막대한 양의 강화 주문이 라니엘의 몸을 짓누르고, 열기를 방출했다. 용사가 되며 강화된 육체로도 버티지 못할 만큼의 부하.
피부가 녹아내렸다.
타오르는 열기에 망막이 들끓었다.
하지만 차오르는 별빛이 한순간에 라니엘의 몸을 회복했다. 회복과 파괴가 동시에 벌어지나, 아직은 회복이 우세하다. 허나 고작 이 정도로는 녀석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니까, 조금 더.
가속(??).
육체를 회복하던 별빛이 육체를 한계의 너머로 이끌었다. 한순간 밀려드는 격통에 라니엘은 휘청거렸으나, 곧장 자세를 다 잡았다.
“후우···.”
라니엘이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좁아진 시야로 보는 것은 오직 한 명, 카일 뿐이다. 녀석 또한 이쪽을 바라보고 검을 휘두를 준비를 마친듯싶었다.
온다, 그렇게 라니엘이 생각한 순간이다.
검을 쥔 카일의 팔이 한순간 가속했다. 쥐고 있는 칼이 한순간 허공으로 사라졌다. 느려진 체감시간 속에서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검격. 하지만, 라니엘은 저 검격을 알고 있다.
갈라트릭류, 제 1식 초견살(???).
상대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목을 베는’ 기술에 불과했던 초견살은 카일이 사용하는 순간 전혀 다른 기술이 되고 만다.
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라졌던 검이 다시 나타난 순간 일대가 잘게 쪼개졌다. 돌 바닥도, 기둥도, 석상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갈라졌다. 모든 것들이 뒤집혀 흐름을 거스르듯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라니엘은.
수많은 검기가 교차하는 중심에 서 있던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녀가 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공간이 일그러졌다. 내디딘 걸음이 바닥에 닿은 순간 콰아아앙! 굉음을 울리며 교회 전체에 금이 내달렸다.
교차하는 검기는 잿가루만을 베었을 뿐이다.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카일의 고개가 휙, 옆으로 돌아갔다. 휘둘렀던 칼을 도로 당기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무언가 카일의 턱에 꽂혔다. 주먹이었다. 카일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분쇄(Smash).
충격파에 카일의 고개가 완전히 뒤로 젖혀졌다. 타격과 동시에 터져 나온 충격파에 휩쓸려 카일이 벽에 처박혔다. 곧장 몸을 일으켜 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그보다 라니엘이 더 빨랐다.
콰직!
검을 움켜진 카일의 손과, 그늘의 손아귀를 군화로 짓밟아 벽에 고정시킨 채 라니엘이 숨을 토했다. 카일의 눈에는 마치 라니엘이 사라졌다가 눈앞으로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끽, 끼기기긱.
그늘의 손아귀가 라니엘의 군화를 치우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녀의 몸에 깃든 별빛과, 변질된 마나가 그늘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카일은 눈을 부릅뜬 채 라니엘을 보았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
녹아내리는 살점.
별빛과 잿가루를 두른 육체.
그녀가 등 뒤로 뻗었던 손을 콱, 하고 움켜쥐었다. 그 순간 사방에 눈처럼 흩날리던 잿가루가 모조리 라니엘의 주먹으로 모여들었다.
재는 재로(Ashes to Ashes).
카일이 검을 쥐지 않은 손을 뻗었다.
라니엘이 주먹을 휘둘렀다.
카일이 그녀의 주먹을 움켜쥔 순간, 교회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터져 나오는 열기에 돌 바닥이 녹아내리고, 한 박자 늦게 굉음이 일대를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주먹을 움켜쥐었던 카일의 손가락이 모조리 부러졌다.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폭발에 휘말린 팔이 검게 타들어 갔다. 교회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금이 가다 못해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라니엘은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손아귀를 감싸고 있던 마나가 변질했다. 변질하는 마나를 본 순간 카일의 오른팔을 휘감은 그늘이 출렁였다.
저주 또한 재로(Curse to Ashes).
잿빛 화염이 카일을 집어삼켰다.
3.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열기와 함께 화염이 솟구쳤다.
밀려드는 열기에 라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근거리에서 특대의 주문을 연달아 꽂아 넣었다. 아무리 카일이라도 이 정도는··· .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다.
일대를 휘감았던 화염이 사그라들고 있었다. 라니엘은 출력을 올리고 있거늘, 화염은 무언가에 잡아먹히듯 사그라들고 있다. 라니엘의 눈이 크게 뜨였다. 도대체 무슨.
끽, 끼기긱.
불길 속에서 카일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출력을 올려보아도 소용이 없다. 화염을 정면으로 뚫어내며 카일이 고개를 들었다.
검게 물든 눈동자.
그제서야 라니엘은 카일의 심장을 보았다. 심장에서 미친듯이 솟구쳐 나오고 있는 손아귀를, 그릇된 신의 본질을 마주했다.
마왕(?王).
지금 카일이 몸에 품고 있는 것은 어쭙잖은 그늘 따위가 아니라, 그릇된 신 그 자체다. 신격도, 불사성도 잃었지만··· 그것은 수십, 수백만의 저주가 한데 모여 만들어진 집합체다.
불태운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 일부조차 다른 것으로 메꿔질 뿐이다.
탄화되었던 카일의 왼손도 지금은 멀쩡하다.
완전히 몸을 일으킨 카일이 벽에 파묻혀 있던 팔을 빼냈다. 라니엘은 화염을 만들어내는 것을 멈추고 자리를 이탈했다.
쾅!
쓸 수 있는 모든 걸 써서 강화된 육체가 선보이는 움직임은 놀라울 지경이다. 한순간에 거리가 멀어졌고, 여전히 카일은 그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다. 카일의 눈동자는 라니엘이 도약한 위치를 정확하게 읽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카일이 하늘을 향해 검을 하늘과 수평이 되도록 들어 올렸다. 쿠웅, 하고 일순 카일의 몸이 크게 떨렸다. 그 순간 라니엘은 직감했다.
무언가 온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그 직감은 옳았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진동했다. 땅이 울렸다. 공기가 울렸다. 울림 속에서 카일이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라니엘은 보았다.
“···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엎어졌다.
방향을 알 수 없게 됐다. 방향을 알 수 없으니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뒤틀리는 와중에도 카일의 형태만큼은 멀쩡했다.
멀쩡했기에 라니엘은 볼 수 있었다.
카일의 검이 공간을 찢어발기는 모습을. 거대한 검기(??)가,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다가오는 모습을 라니엘은 보았다.
피할 수 없다.
막을 수 없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