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60
〈 360화 〉 재앙, 그리고 용사(3)
* * *
죽음이 다가온다.
라니엘의 눈동자가 흔들렸으나 그건 한순간뿐이다. 방향감각을 잃은 와중에도 라니엘은 어딘가를 향해 내달렸다. 모든 것이 뒤집히며 드러난 장소가 있었다. 일찍이 알고 있던 정보.
이 교회는 아르카디아에 있는 ‘본교회’를 본떠 만든 것이라고 카르디는 말했다. 당연하게도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본교회에 있던 ‘지하실’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윽!”
라니엘은 미리 바닥에 뚫어두었던 구멍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회피방법, 아껴두려 했으나 이것저것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머리 위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하실로 추락하며 라니엘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검기에 휘감겨 모든 것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역천(??)이다.
서걱.
그 검격에 놀랄 틈도 없다.
라니엘이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는 듯, 교회의 바닥을 카일이 난도질했다. 두꺼운 벽이 수십 조각으로 썰려나가며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떨어지는 라니엘의 입장에선 그것은 천장이었다.
무너지는 천장과 함께 카일이 내려온다.
자신이 베어낸 벽의 파편에 선 채 카일이 자세를 잡았다. 추락하는 상황. 불안정한 발판. 그러나, 그럼에도 검의 초인은 최선의 일격을 선보인다. 카일이 검을 휘둘렀다. 그 칼끝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악!
그물처럼 펼쳐진 검기가 추락하는 라니엘에게 밀려들었다. 꾸욱, 입술을 깨문 채 라니엘은 스톡(Stock)된 주문을 마구잡이로 흩뿌렸다.
솟구치는 화염.
터져나가는 잿가루.
사출되는 수십, 수백 발의 섬선.
수많고 수많은 주문을 토해냈으나 그것은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 검기는 닿는 모든 것을 베어내며 라니엘의 숨통을 조여왔다. 라니엘은 이를 악물고 허공에서 빙글, 몸을 돌렸다.
거대한 지하실.
그곳에 세워져 있는 서른 일곱 개의 기둥.
있는 대로 뽑아낸 사슬을 기둥에 묶고 라니엘은 사슬을 잡아당겼다. 빠른 속도로 기둥을 향해 날아가며 라니엘은 간신히 검기를 피해냈다.
쿵!
기둥에 처박히다시피 착지한 라니엘의 몸은 만신창이다. 검기를 완전히 피해내지 못해 몸 이곳저곳이 베였다. 회복이 되고 있긴 하지만 이미 몸을 혹사하고 있는 만큼 속도가 빠르진 않다.
탁.
꼴사나운 착지를 한 라니엘과 달리, 카일은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는 기둥에 매달려있는 라니엘을 올려다봤다. 만신창이인 라니엘과 달리 카일은 멀쩡하다.
‘···빌어먹을 새끼.’
라니엘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카일을 이기려면 저 빌어먹을 검을 막아낼 무언가가 필요했다. 카일이 재앙이 되기 전부터 그랬다. 라니엘과 카일의 상성은 최악이다.
카일의 검을 라니엘은 막을 수 없다.
그러니 라니엘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피하거나, 파고들어서 그 검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후자마저 불가능하다. 아무리 속도가 빠르다곤 하나···.
‘만에 하나라도 붙잡히는 순간.’
그대로 끝난다.
붙잡힌 상태로 검을 휘두르는 순간 신체의 일부를 내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방법은 알고 있다.
무엇이든 막아낼 수 있는, 결코 부러지지 않는 무언가를 이젠 라니엘도 가질 수 있다. 별의 무구. 용사가 된 이상 손에 넣을 수 있는 것.
‘하지만.’
어째서인지 라니엘에겐 그것이 나타나지 않는다. 용사로서 자격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걸 제외한 모든 걸 다루고 있으니. 라니엘에겐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고, 결여된 무언가로 하여금 그녀는 별의 무구를 받지 못했다.
무엇이 결여된 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채로 라니엘은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가야 했다. 기둥을 박차고 라니엘은 달려들었다. 주문을 퍼부으며, 육체 능력을 앞세워 카일을 압박했다. 카일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은 결국에 속도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마저도 한계가 온다.
카일이 조금씩 라니엘의 속도를 따라왔다. 저런 모습이 된 주제에, 저렇게까지 강한 주제에 더 성장이라도 하겠다는 듯··· 카일의 움직임은 점점 더 빠르고 정교해지고 있다.
낭비가 없는 움직임.
초인의 특기인 미래시를 통한 예측.
그 모든 것을 활용해 카일은 라니엘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점점 피하지 못하는 공격이 늘어갔다. 라니엘의 몸에서 피가 흘렀다.
서걱.
더욱 빨라진카일의 검이 일대를 휩쓸었다. 수십 다발의 검기가, 거대한 검기가, 어느 초인의 것을 닮은 검술이 마구잡이로 쏟아졌다. 마치 자신이 이룬 경지를 자랑하듯 카일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라니엘에게 선보였다.
피한다. 피하고 또 피한다.
어떻게든 도망치며 라니엘은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수백, 수천 개 단위로 장전해 두었던 스톡도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다.
치이이익.
부하를 걸며 움직였던 육체도 한계가 온다. 상처가 늘어난 나머지 초재생이 부하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라니엘은 느려졌고, 카일은 빨라졌다. 라니엘은 피를 흘렸고, 카일의 검 끝에는 피가 묻었다.
밀린다.
계속해서 밀린다.
뒷걸음질 치고 뒷걸음질치던 라니엘의 등이 툭, 하고 기둥에 닿았다. 라니엘은 앞을 바라봤다. 이미 자신보다 빨라진 카일이 검을 들이민 채 달려들고 있었다.
피할 방법은 없었다.
“···씨발.”
푸욱.
라니엘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2.
카■은, 아니 ‘카일’은.
카일은 잿빛의 앞에서만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 잿빛을 쫓는 지금만큼은 카■은 다만 카일이었다. 그늘은 계속해서 카일에게 잿빛을 죽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카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잿빛이 계속해서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사방으로 잿가루가 흩날렸다. 재는 인간의 형상이 되어 카일의 앞에 섰다. 카일을 향해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카일은 생각했다. 아, 뭐야. 라니엘이잖아.
“뭐냐? 라니엘?”
재는 말이 없다.
말없이 자세를 잡고 있다. 당장에라도 달려나갈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아아, 그렇구나.
그때처럼 싸워보자는 거구나.
카일은 웃음을 흘리며 칼을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날카로운 도신을 지닌 진검이었으나, 눈을 감았다가 뜨면 그것은 목검이었다.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뜨면 주변의 풍경도 뒤바뀌어 있다.
훈련장이다.
쿤텔 아저씨에게 검을 배웠던 훈련장.
그리고 종종 라니엘과 대련을 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런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카일은 몽롱한 정신 속에서 검을 휘두를 준비를 했다.
탁, 하고 라니엘이 달려들었다.
한순간 그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해 카일이 바닥을 굴렀다. 저 녀석, 진심으로 때리는구나. 뺨이 얼얼했다. 해보자는 거지, 하고 웃으며 카일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래 봬도 맷집은 자신 있다, 라니엘.”
때려봐라. 견디고 한 방 먹여줄 테니.
카일은 검을 휘두르며 라니엘에게 달려들었다. 왜인지 몸이 잘 움직였다. 처음엔 따라잡지 못했던 라니엘의 움직임도 조금씩 따라잡을 수 있었다.
“어?”
어느순간부터 라니엘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끔 녀석은 특이한 전술을 쓰곤 했다. 기발한 작전을 생각해 내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걸까? 카일은 라니엘을 쫓아가며 검을 휘둘렀다.
훙, 후웅.
자랑하듯이 검을 휘둘렀다.
왜인지 모르게 머릿속에 수많은 검술이 떠올랐다. 그것을 카일은 따라 했다. 언제나 자신을 앞서 가던 라니엘이다. 그런 라니엘에게 카일은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게 됐는지.
이제는 나도 너와 같은 곳에 설 수 있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 정말이지 너한테는 많은 신세를 졌다. 이렇게 강해진 지금이라면 네게 빚을 갚을 수 있을 텐데.
“정말이지.”
검을 휘둘렀지만 닿지 않았다.
라니엘은 아슬아슬하게 도망쳤다. 이렇게 강해진 지금도 녀석에게 좀처럼 닿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넌 대단한 녀석이다.”
늘 그랬다.
네가 있었기에 나는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언제나 네가 앞서 나가줬기에 그 뒤를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니, 하고 카일은 생각했다.
“한 번쯤은.”
한번이라도 좋으니.
“널 넘어보고 싶었다.”
널 넘어서 앞으로 가고 싶었다.
같은 경치가 아닌, 너보다 먼 곳을 바라보고 싶었다. 추한 경쟁심이라 불러도 좋다. 어쩌면 동화 속 영웅이 되고 싶은 어린아이의 철없는 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진심으로 그렇게 바랐다.
강해진 지금이라면 그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카일은 생각했다. 그래서, 카일은 온 힘을 다해 내달렸다.
쿵!
땅을 내려찍고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카일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선의 일격을 선보였다. 벽에 몰려 도망칠 수 없게 된 라니엘을 향해 목검을 휘둘렀다.
“드디어 닿았다.”
카일이 생각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한 일격이었다. 검을 휘두른 자신마저 놀랄 정도로.
* * *
푸욱.
라니엘은 제 심장을 꿰뚫은 카일의 검을 보았다. 붉게 물든 검. 심장을 관통한 검은 라니엘의 등 뒤로 빠져나와 기둥에 박혔다.
키이이이이이잉!
도신에서 억눌린 검기가 터져 나왔다.
닿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검기가 라니엘의 몸을 난도질했다. 라니엘의 몸이 들썩이며 그녀의 눈에서, 귀에서, 입에서, 코에서 검붉은 피가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커, 윽.”
후두둑 쏟아진 피가 카일의 도신을 따라 흘렀다. 카일은 그대로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심장을 꿰뚫은 카일의 검이 라니엘의 갈비뼈를 박살 내며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쿠궁, 쿠구구궁!
검기에 난도질당한 건 라니엘 뿐만이 아니다. 그녀가 등을 기대고 서 있던 기둥 또한 검기에 휘말려 무너져 내렸다. 무너지는 기둥이 고꾸라지는 라니엘을 집어삼켰다.
쿠웅. 쿵.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잦아들 적, 카일은 제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무덤처럼 쌓인 기둥의 잔해에 가려져 라니엘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잔해의 틈새로 흐르는 핏물이었다.
더는 잿빛이 보이지 않았다.
3.
후두둑.
희미해진 감각 속에서 라니엘은 제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짐을 느꼈다. 돌 부스러기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곧 느껴지지 않게 됐다.
모든 감각이 희미해졌다.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입에서 자꾸 뭔가 쏟아지는데, 뭐가 쏟아지는지 알 수 없었다. 붉게 물들었던 시야가 점차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감각.
이 감각을 라니엘은 알고 있었다.
죽음이었다.
멀어졌다 생각한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희미한 정신 속에서 라니엘은 그나마 멀쩡한 감각에 집중했다. 소리만큼은 들리고 있었다.
턱.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칼을 바닥에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멀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카일이리라.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멀어지는 걸까.
닿지 않는 곳까지 가버리려는 걸까.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금세 또 멀어져 버리고 만다. 좀처럼 잡혀주질 않는 녀석이다.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게 라니엘이 웃었다.
내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던가.
나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었던가.
카일이 외쳤던 말을 떠올리며 라니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에 와서 떠올려보면 우스운 일이었으니까. 카일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춰 보였을지 라니엘은 모른다. 하지만, 카일도 모를 것이다.
라니엘이 카일을 어떻게 봐 왔는지.
라니엘에겐 꿈이 없었다.
되고 싶은 자신이란 게 없었다.
그녀는 의무로만 살아갔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닌, 되고 싶어서 된 것이 아닌, 해야만 했기에, 되어야만 했기에 현자가 됐다.
그런 자신이 라니엘은 싫었다.
의무로 살아간 삶이었기에, 제 삶을 돌이켜봤을 때 라니엘은 ‘지옥 같았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렇기에 라니엘은 카일에게서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 꿈을 잃어버린 자신과는 다르게, 꿈을 향해 나아가는 녀석이 성공하기를 바랐다.
그러면 나도 무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 모든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결국 이 꼴이다.
‘나는.’
나는, 무엇을 바랐던 것인가.
두 번째 삶마저 잃어버리게 생긴 지금이다.
또다시 결여된 채 삶을 끝맺게 된 지금이다.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라니엘은 처음으로 떠올려본다. 되고 싶은 자신은 무엇이었는지. 정말로 자신이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렇게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것은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는 본심이다.
잿빛 마법사가 제 소망을 이야기했다.
그 소망을 별은 들었다.
별은 인간의 소망에 답하는 존재.
별빛이 범람하며 잿빛 마법사의 소망에 답했다. 타고 남은 잿가루에 다시 한 번 불길을 붙였다. 그 순간 용사로서 결여됐던 부분이 맞춰졌다.
그리고, 그것이 라니엘의 앞에 떠올랐다.
결코 부러지지 않는 것.
용사의 상징과도 같은 것.
별의 무구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