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384
언제나 자신을 도와주었던 그 모습 그대로.
지금 이 자리에 라니아가 왔다는 사실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무심코 안도하고 마는 자신에게 클로에는 조금의 혐오감을 느꼈다.
“···선배님.”
느꼈지만.
“벨노아가, 저를 구하려다가 주문에 휘말려 들었어요. 혼자서 주문에 삼켜졌어요.”
그럼에도 클로에는 입을 열어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사인 자신이 무력감을 느끼는 지금,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눈앞에 앉아있는 저 사람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클로에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부탁드릴게요.”
부디, 라고 말하며 클로에는 라니아에게 손을 뻗었다. 라니아의 팔목을 붙잡은 채 클로에가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벨노아를, 벨노아를 구해주실 수···.”
“클로에.”
라니아가 클로에의 말을 끊어냈다.
서늘한 목소리. 클로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라니아를 바라봤다. 유난히도 서늘하게 느껴지는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정하고 들어.”
“네···?”
“벨노아가 실종된 것과 같은 시각, 아르티아에 대규모 결계가 발생했어. 너희가 4년 전 왕도에서 마주쳤던 그 그림자의 짓거리고.”
라니아는 담담히 말했다.
“결계의 안에선 마나가 폭주상태, 밀집되는 마나로 그림자가 ‘무언갈’ 꾸미고 있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빨리 처리해야 하는 건 확실하지.”
“그게, 무슨···.”
“그리고.”
그녀가 덧붙였다.
“그 결계의 안에는 켈르할름이 갇혀 있고.”
뭔갈 말하려던 클로에가 입을 다물었다.
라니아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클로에가 상황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한 설명이었다. 클로에 또한 안다. 그 그림자가 얼마나 거대한 존재인지.
그 결계를 해체하기 위해선.
그곳에서 혹시 모를 교전을 벌이기 위해선.
그리고, 켈르할름을 구출하기 위해선.
용사, 라니아 반 트리아스의 개입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클로에는 깨닫고 만다. 또한,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한.
“그, 건···.”
전장에서 몇 번의 작전을 수행한 클로에다.
그녀는 더이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세상이 동화 속 영웅담처럼 영웅이 등장하면 모든 일이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
클로에는 입을 다물고 만다.
그녀 또한 깨닫고 말았으므로.
한쪽을 구하기 위해선,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만 함을. 지금 눈앞의 용사에게 ‘벨노아를 구해주세요’ 라고 말한다는 것은···.
켈르할름을 죽게 내버려둬라.
그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클로에는 깨닫고 만다. 클로에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살짝 벌린 입술이 조금씩 움직이지만, 입 밖으로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벨노아를 구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클로에는 알고 있다. 가장 용사다운 용사, 갈라할이라면 그런 이기적인 말을 할 리가 없다는 것을. 그의 뜻을 이은 자신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됨을 클로에는 안다.
“그, 래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자꾸만 입 바깥으로 뱉어선 안 될 말이 나오려고 한다. 결국 그녀는 제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말았다.
억눌린 숨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왔다.
자신을 구해준 용사에게 매몰되고 만 소녀는, 결국 그 어떠한 말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3.
[눈을 떠라.]흐릿한 의식.
욱신거리는 몸.
[눈을 뜨거라, 어서.]귓가에 메아리치는 목소리.
벨노아는 계속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몸은 그보다 조금 더 무거웠다. 벨노아가 눈을 깜빡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일어났구나, 계약자야.]자신이 기대고 앉아있던 돌바위.
그 돌바위에 걸터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며 쓰게 웃고 있는 여신이 벨노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윽.”
무언갈 말하려던 벨노아가 신음을 흘렸다.
눈에 불똥이 튀는듯한 고통. 고통이 느껴지는 곳에 벨노아가 천천히 손을 짚어 보았다. 옆구리에 깊은 자상이 새겨져 있었다.
마지막 순간, 아스테리오가 새긴 상처다.
피가 새어나오는 상처를 손바닥으로 꾸욱 누른 채, 벨노아가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응급처치를 했다. 로브 속에서 포션병을 꺼내 절반쯤 입에 털어 넣고, 남은 절반을 상처에 뿌리곤 옷을 찢어 동여맸다.
“끄윽···.”
정신을 얼마나 잃고 있었던 걸까.
상처를 동여맨 옷자락 사이로 새어나오는 진물을 보며 벨노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피가 제법 많이 빠져나간 지 의식이 몽롱했다. 포션을 털어 넣긴 했지만, 로브를 뒤져보니 포션의 태반이 박살 나 있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며 벨노아가 몸에서 힘을 뺐다. 돌바위에 기댄 채 벨노아가 눈을 감았다.
[많이 안 좋으냐?]“좀 아프네요.”
[안색이 무척 창백하구나.]여신의 목소리에 벨노아가 쓰게 웃었다.
“그래서.”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기괴하게 일그러진 숲.
“여긴··· 어딥니까?”
답이 무엇인지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곤 있으나, 확신을 가지기 위해··· 벨노아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을 여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별빛이 닿지 않는 곳. 버려진 이들의 땅.]여신이 질문에 답했다.
[너희가 마경(魔境)이라 부르는 곳일 테지.]역시 그렇습니까.
그리 중얼거린 벨노아가 고개를 들었다.
기괴하게 꼬인 나뭇가지의 틈새로 보이는 하늘. 그러고 보면 마경에 들어섰을 때 하늘을 바라보면 얼마나 깊이 왔는지 알 수 있다 했던가?
그 구분법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하나만큼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검은색의 하늘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다면, 출렁이는 파도의 너머에서 붉은 달이 보인다면 그곳은 마경의 심부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벨노아가 헛웃음을 흘렸다.
“···달이 시뻘겋네요.”
붉은 달이 떠올라 있었다.
전선에서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곳, 마경의 깊디깊은 곳. 최중심부, 혹은 심처(深處)라 불리는 곳.
그곳이 벨노아가 떨어진 위치였다.
다음화 보기
최초의 광인은 선택을 강요한다.
하나를 고르면 다른 하나는 버려지는 갈림길. 설령 선택하는 이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 한들··· 버릴 이를 스스로의 손으로 선별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전략적 가치. 생명의 무게.
대상과 얽힌 관계와 감정.
선택에는 수많은 요소가 끼어드는 법이다.
그 요소를 하나씩 되짚어보며 계산을 시작하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좀스러운 인간인지 깨닫게 되는 법이다.
‘···선택.’
생명의 무게는 동등하다고 외쳐온 주제에, 모든 삶은 소중하다고 외쳐온 주제에··· 가장 중요한 순간 저울질을 하게 되는 자신에게 클로에는 혐오감을 느낀다.
“저는, 저는···.”
갈라할이라면.
그 사람이라면 이렇지 않았을 텐데.
“······.”
끝내 입을 다물고만 클로에가 고개를 숙였다. 결국 선택을 내리는 것은 클로에의 역할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은 무력했고, 작전을 수행하는 이는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라니아 반 트리아스.
선택하게 되는 것은 그녀다.
인류가 지닌 최강의 전력이자, 이 상황에 타개책을 마련할 유일한 인물. 그녀가 들려줄 대답을 클로에는 말없이 기다렸다.
“클로에.”
라니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서늘했다. 클로에가 고개를 들어 라니아를 바라봤다. 푸르스름한 눈동자를 바라본 순간 클로에는 무심코 깨닫고 만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영웅이 아니다. 친절하게 자신만을 봐주었던 라니아 교수님이 아닌···.
“나는.”
서부 전선의 총책임자이자.
가장 큰 권력을 지닌 지휘권자이며.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사적이 아닌 공적으로. 전장의 그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존재이다.
악인은 선택지를 제시한다.
선인은 선택지의 위에서 고뇌한다.
이상을 부르짖는 이는, 결국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혹은 스스로를 희생하는 선택지를 고른다.
그리고, 지휘자는.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은.
“아르티아로 갈 거야.”
버려야할 이를 선택하는 법이다.
2.
붉은달과 파도처럼 출렁이는 검은 하늘.
마경의 심처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기괴했다. 벨노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짙은 마기(魔氣)에 숨통이 막혔으나 그 또한 잠깐뿐이다. 견고한 마나 배열은 마기에 흐트러지지 않았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벨노아가 돌바위에 머리를 기댔다. 바위의 위에 걸터앉아있던 여신께선, 어느새 벨노아의 곁에 앉아 있었다.
[마경의 깊은 곳인 것 같구나.]“그래 보이네요.”
[지독한 주문에 휘말린 모양이야.]벨노아가 쓰게 웃었다.
지독한 주문, 과연 그 말대로였다. 벨노아는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승리를 확신한 순간 전황은 뒤집혔다. 사령술사의 시체를 빌려 현현한 광인은 미리 준비해놨던 회로를 전개했고···.
전개된 회로는 공간 계통의 주문이었다.
고대의 언어로 이루어진 탓에 정확히 어떤 주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공간 계통 주문 특유의 일그러짐이 회로에서 발생했다. 그 회로를 본 순간 벨노아는 저항하기를 포기하고 클로에를 탈출시켰다.
지식이 없으니 대항할 수 없다.
파훼 또한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 순간에 벨노아가 할 수 있었던 거라곤, 회로가 자신을 집어삼키는 순간 주문이 가리키는 좌표를 꺾어버리는 것뿐. 주변을 둘러보니 그 시도는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한 모양이지만···.
“어찌 됐든 살아남았네요.”
반은 성공했으니 그걸로 됐다, 라고 벨노아는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친 짓이었으니까. 삐끗했다간 몸이 갈가리 찢겨나갔을 거다.
공간 계통 주문이 사장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그 안정성 때문이다. 왕도에야 단거리 전이 장치가 존재한다곤 하나, 그건 수백에 가까운 안전장치의 보조를 받고서도 ‘왕도 내부’라는 한정된 범위로의 전이를 가능케 할 뿐이다.
좌표와 좌표를 잇는다.
공간을 찢고 마나의 흐름에 몸을 실어 이동한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나, 고려해야 할 요소도, 배제해야 할 위험도 너무나 많기에 실전에선 사용이 불가능한 주문이다. 아주 사소한 조건 하나에도 시전자를 찢어발기는 주문으로 돌변하고 마니까.
‘공간 계통 주문이 실전성이 있었으면, 일류 검사고 나발이고 배틀 메이지가 다 털고 다녔겠지.’
···그거 없이도 다 털고 다니시는 것 같기만 하지만, 아무튼 간. 그런 위험한 주문에 간섭을 시도하고도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허어.]여신께서 어이없다는 듯 벨노아를 흘겨봤다.
[미친 짓을 했다는 건 알고는 있더냐?]“상대가 찍어둔 지점에 떨어지면 어차피 죽을 거 아닙니까. 도박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그나마 시전자의 솜씨가 좋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요. 어떻게 한지는 몰라도 안정성 하나는 끝내주게 만든 것 같던데.”
[그 덕에 살았다고 말하는 것이냐?]“비슷합니다.”
진담 섞인 농담을 던지며 벨노아가 몸을 일으켰다.
“······.”
벨노아가 말없이 제 로브에 손을 집어넣었다. 전이 과정에서 지니고 있던 마도구의 태반이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박살 나 있었다.
남은 포션은 두 병뿐.
식량은 말라 비틀어진 전투식량 조금.
마경의 한복판에서 살아남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자원. 벨노아는 한숨을 쉬며 말라 비틀어진 고기조각을 씹으며 몸을 가볍게 풀었다.
[이제 어찌할 생각이더냐?]“어떻게 하긴요.”
벨노아가 여신을 돌아보며 쓰게 웃었다.
“살아남아 봐야죠.”
최후의 순간.
밀려드는 회로의 앞에서 벨노아는 클로에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기다리고 있으라고. 돌아가겠다고.
“여신님께서도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살아남으라고.
진정으로 그 아이를 위한다면, 곁에 남아 있어야 할 것이라고 여신께선 경고했다. 그 말을 곱씹으며 벨노아가 길게, 아주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니 살아남아서, 돌아가야죠.”
「있잖아, 벨노아.」
「넌 나 두고 가지 마.」
“그렇게 약속했으니까요.”
동이 트던 새벽녘.
클로에가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과, 가느다란 목소리를 벨노아는 잊지 않았다. 여신의 경고를, 라니엘과 데스텔의 조언을 망각하지 않았다.
[좋은 각오로구나.]여신 또한 자리에서 일어섰다.
벨노아의 어깨에 걸터앉은 채, 여신이 팔을 쭉 뻗었다. 그 팔이 가리키는 것은 숲의 너머.
[쉽지 않을 거다.]“그래 보이네요.”
숲의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또한,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벨노아의 귓가에 흘려들었다. 거리가 멀어 대략적인 맥락만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거면 족했다.
-···라! 찾아라!
-선지자께서···.
-이 인근에···.
그들은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자신이리라. 벨노아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척을 한계까지 지웠다. 잡생각을 모조리 치운 채 벨노아는 하나의 주제에만 몰입했다.
우선, 살아남는다.
최선을 다해서.
3.
“나는, 아르티아로 갈 거야.”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클로에는 안다.
아르티아로 간다는 것은 켈르할름을 선택하겠다는 것, 켈르할름을 선택한다는 건 곧 벨노아를 버리겠다는 뜻과 마찬가지다.
···머리로는 이해한다.
완전히 실종된 벨노아보다는 ‘확실히’ 구할 가능성이 높은 켈르할름에게 가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옳은 선택이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 럼···.”
언제나 이성적일 수는 없는 법이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클로에가 라니아를 흘겨봤다. 서늘한 눈동자를 마주한 채 클로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럼, 벨노아는···.”
기어코 저 입에서 ‘구하지 않을 거야’ 라는 대답을 듣고 싶은 걸까. 대답을 바라서 묻는 말은 아니었다. 차라리 중얼거림에 가까운 말.
“······.”
흔들리는 클로에를 바라보며 라니아는 씁쓸함을 느낀다. 미래에서 온 자신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 이 상황에 떠오르는 것은 뜬금없는 일이 아니리라.
재의 여신은 말했다.
미래에서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 중 하나가 재앙이 됐고, 그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다고. 기어코 그 아이의 이름을 물어본 라니아에게 재의 여신은 이렇게 답했다.
「클로에야.」
「벨노아가 죽고, 클로에는 재앙이 됐어.」
벨노아의 죽음.
그로인한 클로에의 타락.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진 않았지만, 재의 여신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벨노아를 미끼로 쓰고 버렸다고. 살릴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고.
「그래야 했던 상황이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무엇인지 까진 알 수 없다. 알 수 없지만, 미래의 자신은 그것이 최악을 피할 선택이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재의 여신의 방식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방식은 아니지.
라니아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클로에.”
“벨, 노아는···.”
“클로에, 날 봐.”
손을 뻗어 클로에의 어깨를 강하게 붙들었다.
라니아가 클로에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본 채, 라니아가 입을 열었다.
“클로에, 너는 용사야.”
푸른 눈동자가 클로에의 녹색 눈동자를 비추었다.
“너 또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있고, 스스로 판단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어. 용사란 그런 존재여야만 하니까.”
지휘권자. 책임자. 핏물을 받아마시는 이.
“누군가에게 선택을 맡기지 마. 선택을 수긍하려 하지도 마. 네가 선택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봐.”
시선을 마주한 채 라니아가 질문을 던졌다.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저는.”
클로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벨노아를, 구하고 싶어요.”
“그래.”
“하지만···.”
“뒷말은 할 필요 없어.”
라니아가 클로에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그리곤 로브 속에서 아티펙트를 꺼내 클로에의 손바닥에 올려주었다. 손에 올려준 아티펙트는 두 개. 그 중 하나를 가리키며 라니아가 말했다.
“벨노아에겐 태초의 신이 붙어있어. 이질적인 신성력을 지닌단 뜻이고, 이건 그 신성을 추적하는 아티펙트야.”
클로에가 손에 들린 것을 보았다.
방향만이 표시된 아티펙트.
흐릿한 점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벨노아는 아직 살아 있어. 마경의 한복판에 떨어진 모양인데, 정확한 위치까진 몰라. 방향만을 알 수 있는데다가··· 마기(魔氣) 탓에 감지도 어렵지.”
그래도 대략적인 방향은 알 수 있지.
그리 중얼거리며 라니아가 클로에를 바라봤다.
“실력 있는 기사와 특무대 출신의 마도 기사 몇을 붙여줄게. 수색대를 꾸려. 마경의 안으로 들어가서, 발신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여.”
쉽지는 않겠지만.
무척이나 위험할 테지만.
“구하고 싶으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최선을 다한다 하여 언제나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더욱 많다.
“최선을 다했다면, 벨노아의 인근에 도착했다면.”
최선을 다해도 부족한 부분.
어찌할 수 없는 부분.
“그곳이 어디든 좋아. 마경의 한복판이든, 재앙의 영역이든, 마수의 무리가 득실거리든 상관없어.”
그 부분을 채워주는 것은 기적이다.
행운에 기댄 기적. 기적을 일으켜 주는 것을 본디 신의 역할이라고 말하나, 신께서는 모든 것에서 눈을 돌린 채 방관만을 고수하고 계신다.
“두 번째 아티펙트, 이걸 활성화해.”
그러니 누군가는 그 역할을 대리해야만 하리라.
기적을 일으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리라.
그것이 신의 대리인 용사의 역할이니까.
“그럼 내가 해결할 테니까.”
클로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두 번째 아티펙트에 담긴 기능. 안전성이라곤 모조리 배제한 아티펙트와 라니아를 클로에가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곤, 클로에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거···.”
“그건 네가 걱정할 부분도, 감당할 부분도 아니야.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