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09
그 진심 어린 말들을 곱씹으며 라니아는 엷은 웃음을 흘렸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 건 에텐다의 국왕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귀빈이, 그녀로 하여금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이들이 그녀에게 찾아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감사를 표하고 갔다.”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와인을 홀짝이며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열심히 산 보람이 있네.””
“그렇습니까.””
그래서, 하고 라니아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그녀가 바라본 곳은 연회장 2층의 테라스였다.”
“여왕님께선 언제 나오실 생각이래?””
“···눈치채고 계셨습니까?””
“저곳만 마나의 흐름이 이상한데 눈치 못 채는 게 이상한 거 아냐?””
움찔, 테라스에 쳐져 있던 막이 흔들렸다.”
저것 봐. 라니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오실 모양이네. 드디어.””
라니아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렇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막이 올라가고 이 연회의 주최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카르테디아의 국왕.”
“연회는 잘 즐기고 계신가요?””
아일라 클렌 카르테디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회에 참석한 이들의 이목이 테라스로 쏠렸다. ”
백금색의 드레스를 차려입은, 카르테디아의 젊은 국왕 아일라. 오랜 기간 국정을 대리하던 제 1 왕녀 르뤼엘의 지지 아래 국왕 자리에 오른 인물.”
“이 자리에 모여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그녀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연설을 시작했다. 연설은 깔끔했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연설을 마친 그녀는 기품있는 걸음으로 1층으로 내려왔다. ”
또각.”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들에게 가볍게 눈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긴 그녀가 멈춰선 곳은, 라니아 반 트리아스의 앞이었다.”
‘오···.’”
라니아는 제 앞에 바로 선 아일라를 바라보며 내심 감탄했다. 지난 몇 년간 보지 못했다곤 하나, 아일라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인상은 부드러우나, 부드러움 위에는 관록이 더해져 있었다.”
···용사는 누구의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고는 하지만.”
‘국왕이 된 제자 앞에선 숙여줄 만도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라니아가 천천히 예(禮)를 표하려는 찰나다. 라니아보다 먼저 아일라가 입을 열었다.”
“인류의 영웅.””
아일라가 먼저 기품 있는 동작으로 라니아에게 인사를 올렸다. 최대한의 예를 다해서.”
“또한, 한때 저의 스승이셨던 ‘위대하신’ 라니아 반 트리아스 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꿈틀, 하고 라니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인사말이다. 하지만 라니아를, 그리고 그녀와 얽힌 어느 ‘사건’을 아는 이들은 아일라가 입에 담은 단어에 반응했다.”
“···큽.””
칼트가 제 입가를 가린 채 고개를 돌렸다.”
라니아의 귀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아일라는, 오직 라니아만이 볼 수 있는 각도에서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연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용사님.””
“···정, 말, 영광입니다, 여왕님.””
인류 제일의 국가인 카르테디아의 국왕과, 인류의 영웅인 용사가 서로에게 예우를 갖추어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 역사적인 광경에 연회에 참석한 이들이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역사적인 광경도 한 꺼풀 벗겨보면, 어느 추한 마법사와 짓궂은 제자의 만남에 불과했다.”
* * *”
“하여간, 꼭 그러셔야 했습니까?””
“왜요? 위대하신 건 사실이잖아요. 이제는 정말 누구도 뭐라 못할 정도로 위대해지시기도 했구요.””
“그게 아니라··· 에휴, 됐습니다.””
연회장의 2층, 테라스. 그곳에 따로 마련된 자리에서 아일라는 라니아와 독대했다.”
“다른 분들과 충분히 이야기는 나누셨나요?””
“입이 아프도록 나누긴 했죠.””
“일부러 충분히 대화 나누시도록 늦게 등장했어요. 이건 용사님을 위한 연회 자리이기도 하니까요.””
연회가 끝나갈 무렵이 돼서야 아일라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제야 라니아에게 독대를 요청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라니아에겐, 그리고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자 멀리서 찾아온 귀빈들에겐 연회를 즐길 권리가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뵙네요, 정말.””
“그러게 말입니다. 그간 많이 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못 알아 볼 뻔했어요.””
라니아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진담 반 농담 반이었다. 실제로 몇년 전과는 인상이 제법 많이 달라져 있었으니까.”
“그러는 용사님··· 아니, 교수님은 달라지신 게 전혀 없는 걸요?””
“그렇습니까?””
“네, 여전히 젊어 보이세요. 분명 나이가···.””
움찔, 하고 아일라가 몸을 가볍게 떨었다.”
오랜만에 별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상세한 나이를 입에 담을 필요는 없노라고. 그 조언이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고 아일라는 본능적으로 판단했다.”
“···나이가 저와 차이가 제법 있으신데, 저랑 비교해봐도 제가 더 언니 같은걸요?””
“과찬이시네요. 부담스럽습니다.””
전혀 부담스러워하는 눈치가 아닌데요?”
내뱉을 뻔한 말을 삼키며 아일라는 쓰게 웃었다. 아부 떨듯이 말하긴 했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눈앞의 교수님께선 몇년 전과 비교해도 늙기는커녕, 더욱 젊어 보일 지경이었으니까.”
‘하긴, 용사에 대마법사이시니···.’”
노화가 늦다 못해 아예 시간이 멈출 만도 하다.”
그렇게 아일라가 라니아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자니, 가볍게 헛기침을 한 라니아가 입을 열었다.”
“전장에서 소식을 듣긴 했지만, 국왕이 되신 걸 이렇게 마주하니 기분이 묘하긴 하군요. 즉위식에 직접 찾아뵙지 못한 건··· 죄송합니다.””
“편지로 따로 축하 인사를 보내셨잖아요. 워낙에 바쁘신 분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아일라가 쓰게 웃었다.”
“저도 지난 몇년 간 바쁘게 살았구요. 르뤼엘 언니께서 얼마나 저를 굴리시던지··· 아, 맞아. 언니께서 안부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르뤼엘 왕녀님께서 말입니까?””
“한번 읽어 보세요.””
아일라가 내민 편지를 라니아가 펼쳤다.”
「교수, 나다.」”
「아니, 이제 용사님이라 불러야겠군.」”
퍽 담백한 문장의 나열이다.”
글자에서부터 스스로를 미친개라 부르던 왕녀의 얼굴이 떠올라 라니아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
아일라가 국왕에 오르며 더는 국정의 대리를 맡을 필요가 없게 됐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그대의 활약상을 들으며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느끼고 있다는 등···.”
편지에는 그런 잡다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즐겁게 살고 계신 것 같군요.””
“제가 보기에도 그래 보여요.””
아일라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럼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 볼까요?””
그녀가 잔을 탁, 하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교수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이유도 있긴 했지만, 제가 독대를 요청한 건··· 들려 드려야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에요.””
라니아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녀가 똑바로 아일라를 바라봤다. 천천히 숨을 가다듬은 아일라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에 앞서, 카르테디아 왕국이 제국이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알고 계세요?””
“자세히는 모릅니다.””
“이건, 저희 왕국의 시조님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아일라가 말했다.”
“저희 왕국의 시조께선 이름마저 지워진 고대의 왕국의 왕가 출신이세요. 그 피는 아주 옅지만 말이에요.””
피가 옅었기에, 고대 왕국의 외부에 터전을 두었기에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왕족.”
“시조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왕국에는 독(毒)이 머문다.”
고대의 왕국 또한 그랬다. 그 독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던 고대의 왕국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그 독으로 하여금, 왕국은 제국이라 불리지 못했다. 이는 그 뜻을 잇는 카르테디아 또한 마찬가지여야만 한다.”
“곪고 곪은 독, 가장 지독한 독을 제거해야만 그날 비로소 카르테디아는 제국이 될 수 있으리라.””
제국으로 불릴만한 위상과 힘을 지녔음에도 그렇다.”
그것이 시조의 유언이었다.”
“그 독에 관해선 이야기가 많았지만, 고대 왕국의 멸망 원인과 연관된 것이니··· 독이 가리키는 존재는 마왕일 것이란 추측이 가장 신빙성이 높았어요.””
하지만, 하고 아일라가 쓰게 웃었다.”
“독(毒)이 머무는 곳은 왕국. 그렇다면, 그 독은 아마도 그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제 1 왕자, 혹은 국왕, 혹은 왕녀, 혹은 그 전부.”
“몸을 옮겨가며 왕국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깊은 곳을 장악했던 존재. 최초의 광인(狂人).””
아일라가 말했다.”
“그리고, 고대 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