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46
“나는,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 쓰러지지 못했다.”
내게 죽음을 가져와라. 이제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내게, 이 오랜 삶을 끝낼 죽음을 가져와다오. 너의 역할은 끝났으니 이 자리에서 비키라고 선언해다오.”
‘부디, 나에게 죽음을.’”
죽음은 자신의 죽음을 바란다.”
자신을 뛰어넘을 이가 나타나기를, 성장하고 성장한 인류의 칼날이 자신을 꿰뚫기를 바랐다. 과거 자신과 동료들의 희생이 부디 의미가 있기를 바랐다.”
“부족하다.””
신음하며 가니칼트는 검을 휘둘렀다.”
“이걸론, 부족하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자신을 몰아붙인 후인(後人)에게, 자신이 남긴 검술을 이어받은 계승자에게 가니칼트는 바란다. 저들이 부디 자신을 뛰어넘어 주기를.”
그날, 카일 토벤과 검을 맞댄 그날처럼.”
자신을 뛰어넘은 일격을 선보이길,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를 보이기를, 그리하여··· 인류가 가장 두려운 재앙을 넘어섰음을 증명해 주기를.”
죽음은.”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은 바라고 또 바랐다.”
* * *”
모든 것이 멀게만 느껴졌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달리 말하자면 고작 그뿐이었다. 라니엘은 제 몸이 더는 움직이지 않음을 느꼈다. 가속의 중첩으로 인한 대가, 역뢰의 부하, 허용치를 넘어선 마나의 사용.”
수많은 족쇄가 라니엘의 몸을 옭아맸다.”
마나를 끌어 올리려 하는 순간 왈칵, 하고 입에서 검붉은 핏덩이가 토해져 나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라니엘은 앞을 바라봤다. 모든 게 멀게만 느껴졌기에 자신의 두 눈으로 상황을 똑바로 마주했다.”
“————!””
그곳에는 괴성을 내지르며 죽음에게 달려드는 칼트가 있었다. 칼트의 몸 상태 역시 만신창이었다. 그가 아끼던 검은 부러졌으며, 호흡은 거칠었다. ”
···그에 비해 적은 어떤가?”
가니칼트는, 쓰러지지 않았다.”
여전히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선 채, 조금 전보다 더욱 날카로워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죽음의 칼과 칼트의 부러진 검이 맞부딪친 순간, 칼트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커, 헉···.””
칼트가 피를 게워내며 바닥을 굴렀다.”
칼트는 당장 일어서려 하지만, 바닥을 짚었던 손이 쭉 미끄러져 꼴사납게 엎어졌다. 도저히 일어설 수 있을만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까득.”
라니엘이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자랑하던 37채의 마탑은 모조리 무너졌다. 마탑들이 만들어냈던 공간 역시, 가니칼트가 휘두른 역천의 검에 박살 났다. 남은 마나는 한 줌에 불과했으며, 육체는 이미 엉망이 됐다.”
역뢰를 쓸 수도 없다.”
마나를 끌어 올릴 수도 없다.”
그에 비해 상대는 어떠한가? 더욱 강해졌다. 제 팔을 뜯어냄으로써 완벽해진 죽음이 휘두르는 검을, 라니엘은 어찌 막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손가락을 모두 꺾어 공양했는데, 마나를 바닥까지 끌어다 썼는데···.’”
상쇄는커녕, 그 여파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팔을 뜯어낸 가니칼트가 휘두른 역천의 검은 처음부터 라니엘이 아닌··· 탑들이 만들어낸 가짜 하늘을 노렸다. 만약 역천의 검격이 라니엘 본인을 노렸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막을 수 없다. 대항할 수 없다.”
이길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컥, 커흑···.””
피를 게워내며 라니엘은 간신히 제 팔을 들어 올렸다. 손아귀에 피어오르는 것은 자그마한 별빛이다. 자신에게 남은 한 줌의 별빛. 그 별빛이 천칭의 현상을 갖추었다.”
···그녀 자신만의 별의 무구.”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칼날을 라니엘은 흐릿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남은 별빛을 대가 삼아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별의 무구.”
‘하지만···.’”
이것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눈앞의 죽음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이건 마왕에게만 통하는 칼날이니까. 그렇다면 남은 수단은 하나뿐이었다.”
···쓰지 않겠다고 그 녀석과 약속했는데.”
라니엘은 쓰게 웃었다.”
결국, 모든 수단이 가로막힌 지금 라니엘이 선택하는 것은··· 과거와 같은 것이었다. 피를 쏟아내며 다시 일어서려는 칼트를 흘겨본 라니엘은 선택을 내렸다.”
최선이 아닌, 차악의 선택을.”
그날 그 녀석과 맺었던 약속을 깨트리며 라니엘은 용사가 아닌, 잿빛 마법사로 돌아갔다. 라니엘이 별빛을 콱 움켜쥐었다. 백금색의 천칭의 형태가 서서히 변질했다. 그것은 더는 별의 무구가 아니다.”
수명을, 가치를, 삶을 올리기 위한 천칭.”
잿빛 마법사가 사용했던 천칭이다.”
오랜만에 보는 천칭의 모습에 라니엘은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데스텔의 안목은 정확했다. 작전이 시작됐을 때부터··· 라니엘은 상황이 꼬인다면 제 수명을 저울에 올릴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약속 못 지키겠네.’”
그 녀석한테 술 얻어먹어야 하는데.”
천칭을 움켜쥔 채 라니엘은 고민했다. 망설였다. 이것을 사용한 순간 자신은 돌아올 수 없다. 용사가 된 이상, 자신이 걸 수 있는 수명은··· 년 단위가 아닌 ‘전부’ 일 테니까. 별이 그리 경고했으니까.”
천칭을 쓰게 되면 자신은 목적을 이룰 수 없다. ”
수명을 바쳐 가속한다면··· 죽음의 칼을 쓰러트리고 마왕에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왕을 쓰러트린 뒤 이루어야 할 비원은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까득.”
하늘을 노려보며 라니엘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새끼.””
년단위로 쓰지 못하게, 수명을 전부 걸어야만 쓸 수 있게 천칭을 변질한 것도··· 아마 자신의 목적을 눈치채서였겠지. ”
별은 라니엘에게 말하고 있다.”
이곳에서 죽으라고. ”
너의 종착지는 자신의 앞이 되어선 안 된다고.”
별이 바라는 것은 공멸이다. 세상의 균형에 변수가 되는 것들. 마왕, 광인, 라니엘, 죽음의 칼, 그 모든 것들이 한 번에 공멸하기를 별은 바라고 있다. 이것이 과거 글레리아가 눈치챘던 별의 진실이다.”
「처음부터, 별은 공멸을 바란 거야.」”
「너무나도 강해져 버린 우리와, 마왕이 함께 공멸하기를 바란 것이지. 하늘을 넘보지 않도록.」”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라니엘은 이곳으로 향했다. 자신이라면 결말을 바꿀 수 있으리라 여기고선. 하지만, 결국에 이렇게 되는 것인가. 제 앞에 놓인 천칭을 바라보며 라니엘은 고뇌하고 또 고뇌했다.”
자신의 비원과 용사의 의무를 저울질했다.”
자신의 실패는 곧 세상의 멸망을 의미한다. 이곳에서 자신이 쓰러진다면, 범람하는 그늘에게 모든 것은 휩쓸리고 말리라. 외통수였다. 결국 라니엘 내면에 놓인 저울은 기울기 시작했다.”
「그것이 너의 약점이란다, 후배야.」”
광인의 말이 옳다.”
라니엘은 결코 무고한 이들의 죽음을 외면할 수 없다. 라니엘이 자신의 비원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채 용사로서 천칭에 손을 뻗었다.”
“바친···.””
그렇게 그녀가 말하려는 순간이다.”
난데없이 피어오른 잿가루가 라니엘의 시야를 가렸다. 읏, 하고 라니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 시야를 가린 잿가루. 라니엘이 흩날리는 잿가루를 따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시야를 가렸던 잿가루가 하늘로 치솟았다.”
치솟는 잿가루를 따라 라니엘이 하늘을 바라본 순간이다. 라니엘의 눈동자가 커졌다.”
“라니엘, 그 사람 괜찮을까요?””
“안 괜찮겠지.””
덜컹거리는 마차 속에서 데스텔이 턱을 괸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그 녀석, 처음부터 자기 수명을 쓸 생각인 것 같았으니까. 준비해둔 수단이 있다곤 말하는데, 썩 확신하는 눈치가 아니었거든.””
언제나 확신에 가득 차 있던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본인부터가 확신하지 못하는 수단만을 믿고 이런 작전을 계획했을 리 없었다. ”
“수틀리면 수명을 태울 거야, 분명히.””
본래부터가 그런 녀석이니까.”
궁지에 몰리면 결국 녀석은 자기 자신을 희생할 것이다. 수명을 태워 위업을 이루고자 할 것이다.”
“그걸 알았으니까···.””
데스텔이 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미래의 내가 수를 쓴 거겠고.””
“당신도 미래에서 왔어요? 아니, 뭐 다 회귀해요? 나만 빼고 다 회귀자인가 무슨···.””
“난 회귀자가 아니라 빙의, 그것도 피빙의자야. 피해자라고.””
“그거나 그거나.””
제 맞은편에 앉아 툴툴거리는 이를 바라보며, 데스텔이 쓰게 웃었다. 요 며칠간의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말이 빙의지··· 사실 그럴 생각도 없던 것 같긴 하지만 말야.””
데스텔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숨을 내뱉으며, 데스텔은 눈을 감은 채 며칠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내게 증명해라.」”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 몸을 가지는 건 나다.」”
몸을 빼앗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미래의 자신에게, 데스텔은 결국 패배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걸어온 전장이 달랐다. 전장을 구른 세월이 달랐다. 모든 면에서 데스텔은 미래의 자신에게 뒤처졌고, 처참히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