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47
하지만, 미래의 자신은 몸을 빼앗지 않았다.”
「일어서라.」”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다는 것처럼, 몇번이고 자신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워 재결투를 했다. 데스텔이 끝끝내 미래의 자신을 꺾을 때까지. 그렇게 결국 승리를 따낸 데스텔에게, 그는 말했다.”
「하루.」”
「하루면 된다.」”
딱, 하루만 몸을 빌려달라고.”
그 부탁을 데스텔은 거절하지 않았다. 이젠 미래의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몸을 빌린 미래의 자신이 향했던 곳은···.”
“뭐, 안 괜찮았어도 이젠 괜찮아지겠네요.””
데스텔이 감았던 눈을 떴다.”
제 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인물을 바라봤다. 그녀는 쿡쿡, 웃음을 흘리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쪽으로 같이 못 가는 건 아쉽지만, 내가 필요한 전장은 따로 있다는데··· 뭐 어떻게 하겠어요?””
벚꽃의 색을 닮은 머리칼.”
“오랜만에, 레미아 얼굴이나 보러 가야죠.””
녹빛의 눈동자.”
“···괜찮아질 거라고 확신하네? 걱정하는 거 아니었어?””
“걱정하긴 했는데, 이제 걱정해서 뭐해요?””
사라가 뭐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거기에, 그 사람이 갔잖아요.””
더는 성녀가 아니게 된 여인은 미소 지었다.”
확신을 담아서, 웃음을 흘렸다.”
“마왕을 벤 용사, 카일 토벤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칼트가 숨을 몰아쉬며, 다시 한번 걸음을 내디디려 한순간이다. 칼트는 제 머리 위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았다.”
“······.””
칼트가 말없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곳에는 공중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는 와이번이 있다. 와이번의 몸을 감싼 갑주에는 왕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저 와이번을, 칼트는 알고 있다.”
가속 주문이 몇 겹으로 걸린 갑주를 두른 저 와이번은, 전장의 주요 인원을 빠르게 이동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평범한 인간의 육체로는 가속한 와이번의 속도를 견딜 수 없어 저 와이번이 사용된 사례는 매우 적었다.”
‘저 속도를 견딜 수 있는 것은, 용사나 극소수의 초인뿐···.’”
그렇다면, 저 와이번에 타 있는 것은 누구인가.”
모든 초인이 다른 작전에 투입된 지금··· 도대체 누가 저 와이번에? 칼트가 그리 의문을 품은 순간이다. 와이번의 위에서 누군가 뛰어내렸다.”
지상을 향해서, 망설임 없이.”
꽤 높은 높이에서 떨어졌음에도 그 착지는 부드럽기 짝이 없다. 그렇게 땅에 발을 디딘 지원군의 얼굴을 본 순간, 칼트는 무심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와이번을 처음 봤을 때는 어지간한 지원군이 오더라도, 아무리 강한 초인이 오더라도··· 승기를 붙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던 칼트였다. 그러나, 와이번에서 내린 이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칼트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거··· 참.””
칼트가 쓰게 웃었다.”
“검성(劍聖)이란 이명도 반납해야겠군요, 이제.””
왔다.”
인류 최강의 검사가.”
* * *”
“···너?””
라니엘이 뒤를 돌아봤다.”
와이번에서 뛰어내린 인물. 절대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인물의 등장에, 라니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글쎄, 말하자면 긴데.””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길어진 제 머리칼을 가벼이 손을 휘둘러 쳐낸 그가 라니엘에게 다가왔다. 다가와선, 천칭을 움켜쥐고 있던 라니엘의 손목을 붙잡아 아래로 내렸다.”
“약속은 어겼으니 술은 네가 사야겠군.””
“뭐? 아니, 잠···.””
라니엘이 뭐라 덧붙이기 전에, 그는 웃음을 흘리며 라니엘을 스쳐 지나갔다. 스쳐지나 앞으로 향했다.”
탁.”
간신히 서 있던 칼트의 곁을 지나치며, 그가 칼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그제야 칼트는 숨을 토해내며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탁.”
칼트는, 라니엘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더는 용사의 정복을 입지 않았지만, 그가 상징하던 것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펄럭이는 옷자락. 허리춤에 차여진 한 자루의 검(劍).”
승리의 상징.”
발을 디딘 전장마다 승리를 끌고 오던 검사.”
탁, 하고.”
모두를 지나쳐 그가 가장 앞에 바로 섰다.”
그가 향하는 곳에는 죽음이 있다.”
죽음의 칼, 가니칼트는 검을 늘어트린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를 바라봤다. 그를 바라보며 가니칼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너는 검사인가, 라는 질문은 필요 없었다.”
자격을 보여라, 라는 선언 역시 필요 없었다.”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은, 그 모두를 증명해낸 검사였으니. 긍지도, 각오도, 그 무엇이든 뛰어넘어 기어코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오른 인간이었으니.”
검사가 제 허리춤에 묶어둔 칼을 풀었다.”
본래 성검(星劍)이었던 칼은 더는 백금색으로 빛나지 않았다. 별을 상징하는 장식이 부러진 검은 단출하다. 담백하기 짝이 없다.”
더이상 별빛을 끌지 않지만.”
더이상 찬란함을 지니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그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검(劍)을 검사는 들어 올렸다. 마치 가니칼트에게 선보이듯이.”
가니칼트 역시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
두 명의 검사는 자신이 지닌 검(劍)을 상대에게 보였다. 그것은 일종의 검례(劍禮)였다. 자신이 인정한 호적수를 향해 보이는 최대한의 경의.”
“나는, 카일 토벤.””
인류 최강의 검사.”
역천(逆天)의 경지에 도달한 검사가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용사라는 수식어도, 최강의 검사라는 수식어도, 수많고 수많은 이명도 이 자리에선 필요 없었다. 카일은 그저 자신의 이름만을 입에 담았다.”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며, 카일이 말했다.”
“재결전을.””
긴 대화는 필요 없었다.”
카일은 자신의 이름을 밝혔고, 자신이 검을 겨눌 상대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죽음의 칼이 아닌,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그 호명(呼名)에 가니칼트의 시선이 한순간이나마 흔들렸다.”
흔들린 시선이 가라앉았을 무렵.”
처음으로.”
처음으로, 검을 쥔 채 가니칼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더없이 즐겁다는 듯이. 지금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검사를 바라보며 가니칼트는 웃음을 흘렸다.”
약자였다. 보잘 것없는 애송이였을 터다.”
처음에는 겁에 질린 채 검을 놓아버렸던 인간이다. 제 스승의, 동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살아남았던 보잘 것 없는 약자였다.”
두 번째에는 검(劍)을 놓지 않고 자신에게 덤벼든 용사였다. 의무를 외면하지 않고, 기어코 자신의 검을 몇 번이고 받아내 시간을 끈 용사였다.”
그리고, 세 번째에선.”
「나는 카일 토벤.」”
「검을 들어라, 가니칼트.」”
용사가 아닌, 검사로서 자신에게 검을 겨눈 채 달려든 긍지 높은 강자(强者)였다. 그 결투에서 저 인간은 기어코 자신의 몸에 상처를 새겼다. 과거, 자신이 도달했던 경지에 당당히 올라섰다.”
그렇다면, 지금은.”
네 번째에 이른 지금은 어떠한가.”
저자는, 카일 토벤은 자신과 같은 위업을 이루어낸 검사였다. 자신의 후배요,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은 인물이며, 또한 자신의 호적수이기도 했다. 보잘것없던 겁쟁이가 기어코 자신과 같은 위치에 선 것이다.”
성장하고 성장해서.”
나아가고 나아간 끝에.”
기어코, 자신과 같은 위치에 서서 자신에게 검을 겨누는 후배를 바라보며··· 가니칼트는 들어 올린 제 검을 콱, 하고 움켜쥐었다. 저 검사야말로 죽음이 그토록 바라던 호적수였다.”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