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62
십여 년간 지옥을 건너며 그가 단 한 번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무기요, 가장 용사다운 용사가 마지막까지 휘둘렀던 무기였다. 그것을 손에 쥔 채 비굴이 말했다.”
“너는 모방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잘못 이해했으니, 잘못 쓰고 있던 거겠지.””
피에 물들고 낡아 해진 옷자락.”
좀먹은 성의(星衣)가 황야에 불어온 바람에 펄럭였다. 여섯 갈래로 펄럭이는 성의를 데스텔은 보았다.”
“무대에 한 인물만이 올라오라는 법은 없고, 배우가 꼭 하나의 인물만을 연기하란 법도 없다. 너는 언제나 홀로 무대에 서 있었고···.””
혼자서 무대를 완성해왔다.”
너는,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니 모두가 되어라.””
일인극단(一人劇團).”
번쩍.”
불어온 바람에 펄럭이던 성의가 빛났다.”
여섯 갈래로 갈라진 성의에, 한순간에 여섯 개의 별자리가 새겨졌다. 그의 앞에 창이, 검이, 활이, 망치가, 대방패가 한순간에 나타났다.”
여섯 개의 별빛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는 구원이었으며, 절단이었고, 명궁이었으며, 철인이었고 동시에 불멸이었다. 하나의 무대에 여섯 명의 인물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들을 연기하는 것은 오직 한 명의 배우였다.”
“지금부터 보여주마.””
그가 말했다.”
“그 지옥을 견뎌냈던 방법을.””
13년의 지옥을 견뎌냈던 방법을.”
“내가 어떻게 그 녀석을 따라갈 수 있었는지.””
그 녀석의 곁을 걸으며 체득해야만 했던 기술을, 삶의 방식을, 그러니까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을.”
“남김없이 보여줄 테니, 삼켜라.””
삼키고 따라와라. ”
따라와서, 나를 넘어서라. 그래야만 내가 닿지 못한 미래에 닿을 수 있을 테니까.”
콰직, 하고.”
그가 땅을 박차고 질주했다.”
데스텔이 땅을 박차고 질주했다.”
멈춘 것만 같던 시간은 데스텔이 한 걸음을 내디딘 순간 한순간에 가속했다. 콰직, 콰앙, 서걱. 직전까지 데스텔이 서 있던 장소에 창날이 내리꽂혔다. 주문이 폭발했다. 폭발을 가르며 검격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데스텔은.”
한순간의 가속으로 공격의 범위에서 벗어난 데스텔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질주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풍경이 뒤바뀌었다. 땅을 박찰 때마다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졌다.”
이게 그놈들이 보던 시야란 말이지.”
데스텔이 모방해온 것은 카일이 지녔던 별빛의 특성이다. 가속(加速). 문자 그대로 자신의 육체를 가속시킬 뿐인 별빛이지만··· 카일이 지녔던 막대한 양의 별빛과 맞물려 가속은 그를 최강의 용사로 만들어주었다.”
담백한만큼 그 효과가 파격적이었으니까.”
본래 카일이 사용했을 때는 초인조차 아득히 능가하는 가속을 가져왔으며, 그 지속시간 또한 수 분에 달했지만··· 데스텔이 모방해온 열화 된 가속은 그만큼의 지속시간을 지니고 있진 않다.”
길어봐야 십 초 남짓.”
하지만, 십 초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광휘의 별자리를 새긴 성의가 크게 펄럭였다. 육체를 증강하는 별빛이 데스텔의 육체를 감쌌다. 가속과 광휘를 중첩한 채 데스텔이 자세를 낮췄다.”
쾅!”
포탄이 쏘아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데스텔의 신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급히 고개를 돌려 데스텔을 뒤쫓던 베르제르의 시선이 한순간 데스텔을 놓쳤다. 직후, 데스텔이 다시 나타난 것은···.”
콰아아아아앙!”
후열을 지키고 있는 불멸의 트리탄의 코앞이다.”
가속한 그대로,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데스텔은 트리탄의 방패를 걷어찼다. 방벽은 깨지지 않았지만 방패는 기울었고, 비스듬히 기울은 방패를 밟고 데스텔이 대방패 위로 올라섰다.”
여기까지가 3초.”
대방패를 짓밟아 발판으로 삼은 채, 데스텔이 등 뒤로 쭉 뻗은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한순간에 그 손에 나타나는 것은 성창(星槍).”
4초.”
트리탄은 방패를 움직여 데스텔을 떨쳐내려 하고, 그 뒤에 숨은 성녀와 마법사들이 급히 주문을 짜내려 하지만··· 그들보다 데스텔은 한발 앞서있다.”
제 2 격 인(引).”
모방한 것은 가뉘르의 기술.”
크게 휘둘러지는 장창을 중심으로 공기가 빨려 들어갔다. 대방패를 쥔 트리탄의 자세가 흔들리고, 그 뒤에 서 있던 후열들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데스텔을 향해 끌려왔다.”
5초.”
데스텔이 성창을 놓고 다시 허공을 움켜쥐었다. 손에 잡히는 것은 베르제르의 성검. 쾌속의 검격에 특화된 형태의 성검을 움켜쥔 채 데스텔이 가속했다. 방패를 발로 걷어차고, 인(引)으로 트리탄의 자세를 무너트려 만들어낸 빈틈.”
빈틈을 따라 검격이 휘둘러졌다.”
쾌속의 검격이 끌려오는 후열들의 몸을 갈랐다.”
서걱, 하는 절삭음과 함께 핏물이 솟구쳤다. 성녀가, 섬멸의 마법사가, 현자가 일격에 베였다. 흩뿌려지는 핏물이 트리탄의 시야를 가린 순간 데스텔은 방패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뛰어 오르며 몸을 비틀었다. ”
쐐에에에엑! 소리를 내며 데스텔의 바로 옆을 한 발의 화살이 스쳐 지나갔다. 화살이 날아온 위치를 바라보며 데스텔이 활시위를 당기는 자세를 취한 채, 허공을 잡아당겼다.”
번쩍.”
활 시위가 이미 당겨진 명궁(名弓)이 데스텔의 손아귀에 나타났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데스텔이 활시위를 놓았다. 빠른 속도로 쏘아진 백금 화살이 명궁 에프타를 향해 밀려들었다.”
파바바바바바박!”
분열되는 화살이 에프타가 위치한 망루에 꽂히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선, 데스텔은 몸을 비틀었다. 여기까지가 8초. 몸을 비틀어 뒤를 바라보면··· 거리를 좁혀온 베르제르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검이 닿기 직전, 데스텔은 제 양팔을 들어 올렸다. 별빛과 함께 나타나는 것은 트리탄의 대방패다.”
대방패가 나타난 순간 데스텔은 방패를 내려찍었다. 공중에 떴던 몸이 대방패의 무게가 더해진 채, 가속(加速)이 걸린 상태로 땅을 향해 낙하했다. 낙하한 자리에 서 있던 것은 트리탄.”
콰작!”
가속이 더해진 대방패로 트리탄의 머리를 찍어 뭉개 트리며, 데스텔이 방패 뒤로 몸을 감췄다. 직후 휘둘러진 베르제르의 검이 카가가가가각! 소리를 내며 대방패를 스치고 지나갔다.”
여기까지가, 10초.”
베르제르의 검격을 막아내며 금이 간 대방패를 놓아버린 채, 데스텔이 뒤로 도약했다. 미끄러지듯 착지하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후우···.””
카일의 별자리가 새겨졌던 성의가 탁, 하고 빛이 꺼졌다. 다시 모방할 수 있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며 데스텔은 새로운 별자리를 빈자리에 새겼다.”
새기는 것은, 철인(鐵人) 발티아의 별자리.”
온몸에 창칼이 꽂힌 채로, 마수들에게 물어뜯기면서도 마왕군을 맨손으로 찢어 죽였던 광전사의 별빛이 데스텔의 몸을 휘감았다. 철인의 별자리가 가져오는 것은 인내와 육체의 강인함이다.”
카일의 별자리를 빌려 오며 무리가 갔던 육체가, 한순간에 회복됐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데스텔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영웅들을 바라봤다. 여전히 수는 많이 남아있었다. 있었지만···.”
“신경 쓰지 말고 일 봐라.””
데스텔은 그리 말하며 늘어트린 팔로 성창을 움켜쥐었다. 방해되던 후열은 이미 정리한 뒤다. 이제는,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잠시 멈춰있던 레스티는 사역마들을 거두어들인 채 데스텔의 머리 위를 지나쳐갔다.”
“······.””
와이번을 타고 끝자락의 탑으로 향하는 그녀를 흘겨본 데스텔은, 이내 시선을 돌려 앞을 바라봤다. 제게 칼을 들이민 베르제르를, 숱한 영웅들을 흘겨봤다.”
이젠 역할이 반대가 됐다.”
끝자락의 탑으로 향하는 길을 지키는 것은 데스텔이요, 저들이 뚫어야 할 벽 역시 데스텔이었다. 밀려드는 군세를 앞에 둔 채 데스텔은 눈을 가늘게 떴다.”
무대 위에 올라온 인원은 많았지만.”
데스텔이 보기에, 저들은 무대 아래로 내려가야 할 인물들이었다. 이미 자신의 역할을 끝마친 이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어보아야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무대 위에 배우는 자신 하나면 충분했다.”
끝자락의 탑의 내부.”
탑의 안으로 걸음을 내디딘 순간 찰박, 하고 물이 튀어 올랐다. 레스티는 제 발치를 내려다봤다. 검은 물이 강줄기처럼 흐르고 있었다. 물줄기는 탑의 최상층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듯 했다.”
“······.””
레스티가 눈을 가늘게 떴다.”
검은 물은 여태껏 마주했던 구정물들과는 무언가 달랐다. 질척거리지도, 끈적하게 발치를 붙잡고 늘어지지도 않았다. 다만 아래를 향해 흘러내릴 뿐.”
찰박.”
흐르는 물줄기를 거슬러 레스티는 탑의 최상층으로 향했다. 탑을 한 계층 오를 때마다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발 앞서 탑에 진입한 토벌대들이 남긴 흔적이었다.”
광인의 군세를 꺾으며 위로 올라간 것인가.”
레스티는 말없이 그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레스티가 문득 걸음을 멈춰 섰다.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