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63
그곳에 모두가 멈춰 서 있었으니까.”
벨노아가 길게 숨을 내뱉으며 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대공동에는 기사들의 시체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광인이 소환해냈을 죽음의 기사들이었다.”
콰직.”
발버둥치는 기사의 머리를 짓밟아 박살 내며 벨노아가 레스티를 돌아봤다. 그는 길게 묻지 않았다.”
“바깥은?””
“데스텔 님이 합류했어.””
고개를 끄덕인 벨노아가 팔을 뻗어 대공동의 끝자락을 가리켰다. 그곳에 탑의 깊은 곳으로 향하는 문이 있었다. 흐르는 물줄기의 시작점이요, 꿈틀거리는 검은 촉수가 지키고 있는 탑의 최심부.”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토벌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곳에 최초의 광인이 있다. 자신들이 상대해야 하는 거악(巨惡)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저마다가 저마다의 각오를 다지며 숨을 가다듬고 있을 무렵이다. 찰박, 하고 물방울이 튀어 올랐다. 멈춰서 있던 토벌대 사이로 누군가 걸음을 옮긴 것이다.”
“······.””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벨노아는 말없이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벨노아를 스쳐 지나간 그녀가 가장 앞선 곳에 섰다. 모두가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스텔라, 아일라 클렌 카르테디아.”
혹은, 카르테디아의 여왕.”
한갈래로 묶어내린 백금색 머리칼이, 카르테디아 왕국의 상징이 새겨진 옷자락이 펄럭였다. 그녀가 허리춤에 손을 뻗어 한 자루의 검을 움켜쥐었다. 카앙, 그녀가 검을 뽑아들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검사가 아니었고, 검사가 아니었기에 그녀가 손에 움켜쥔 것은 무언가를 베기 위한 검이 아니었다. 그녀가 뽑아든 것은 상징이었다. ”
아르카디아의 마지막 여왕으로부터, 카르테디아의 건국 시조를 거쳐 현재로 이어진 한 자루의 검. 어렸을 적 아일라는 이 검에 담긴 뜻을 몰랐지만, 모든 진실을 깨달은 지금은 이 한 자루의 검에 담긴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곪고 곪은 독이 있다.””
아일라가 검을 쥔 채 걸음을 옮겼다.”
“수백, 수천, 혹은 그보다 더 이전에 세상을 배회하던 독이 있다. 선택을 강요하고, 긍지를 짓밟고, 신념을 짓뭉개 트려 인간을 다만 자신의 예술품으로 여기는 독이 있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적, 더이상 찰박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은 튀어 오르지 않았다. 그녀가 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발치에서 꽃처럼 별빛이 피어올랐다.”
“가장 깊은 곳에 숨어든 독.””
피어오르는 별빛이 검은 물을 밀어냈다.”
검은 물을 밀어내며 아일라가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뒤를 따라 토벌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독을 몰아내기 위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 자리에 섰다. 수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도달했다.””
「아르카디아가 제국이라 불릴 그날까지.」”
광인을 막아서고자 몇 번이고 삶을 반복한, 그 끝에 스스로의 영혼마저 바친 여왕이 있다.”
「다만, 나의 희생이 무의미하지 않기를.」”
여왕의 뜻을 잇고자, 그리고 그 뜻이 후세까지 이어지도록 제 한평생을 바친 어느 서기관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아일라가 검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劍)은 악단을 지휘하는 지휘봉이요, 과거로부터 이어진 의지다. 들어 올린 검 끝을 따라 별빛이 만개했다.”
“오랜 숙원을 이루리라.””
만개한 별빛을 그녀가 휘둘렀다.”
휘몰아친 별빛이 문을 감싼 촉수를 후려쳤다. 굳게 닫힌 문이 쿠구궁,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열리는 문의 너머로 보이는 것은 거대한 공간. 그리고 그 끝에 놓여있는 것은 옥좌다.”
옥좌에 걸터앉아 있는 이를 향해 아일라가 칼끝을 들어 올렸다.”
“최초의 광인, 아크리타 클렌 아르카디아.””
자신에게 겨누어진 칼을 바라보며 아크리타가 웃음을 흘렸다. 오만하게 턱을 괸 채,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끝자락의 탑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흔들리는 땅에 아랑곳하지 않고 토벌대는 대공동을 향해 진입했다. 가장 앞에 선 아일라를 중심으로 토벌대가 진열을 갖췄다.”
용의 주술사, 벨노아 반 드라고닉.”
용사, 격류(激流) 클로에.”
성녀, 나티다.”
잿빛 마탑주, 마녀(魔女) 레스티 엘레노아.”
한 명의 마법사가 발굴해내고 길러 낸 인재들이요, 광인을 상대하기 위해 벼려진 칼날이다. 대륙의 끝자락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무기를 뽑아들었다.”
“토벌.””
아일라가 들어 올린 검을 내려쳤다.”
“개시(開始).””
예상보다 진입이 빠르다.”
대공동에 들어선 토벌대를 흘겨보며 광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진입이 빠르다. 딱히 큰 부상을 입은 것 같지도 않으며, 바깥은 빠른 속도로 조용해지고 있었다.”
···그 정도로 꺾일 군세가 아니었을 텐데?”
무언가 변수가 발생했는가. 하지만, 아직까지 그리 크게 신경 쓰이는 변수는 아니었다. 이 정도는 계산 범위 내였으니까. 광인은 툭, 하고 옥좌를 두들겼다.”
“······.””
옥좌에 걸터앉아, 턱을 괸채 광인은 대공동에 발을 들인 이들을 바라봤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선이 끌리는 것은··· 선두에서 자신에게 칼끝을 겨눈 소녀의 모습이었다.”
아일라 클렌 카르테디아.”
왕성에 ‘이자크’란 이름으로 숨어들었을 무렵 아크리타는 저 소녀의 유년기를 지켜보았다. 스텔라의 재능은 타고났지만, 별빛에 의존할뿐더러 그 성정이 유약하여 크게 될 인물은 아니라고 판단했던 소녀다.”
차라리 위험하다고 여겼던 것은 제 1 왕녀였던 르뤼엘이었다.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아르카디아의 마지막 여왕과 성격이 닮았다고 생각했으니.”
하지만, 하고 광인은 웃음을 흘렸다.”
‘달라졌군.’”
자신이 알고 있던 아일라 클렌 카르테디아가 아니다. 두려움에 질려서 별에 의존했던 유약한 소녀가 아니다. 저곳에 서 있는 것은 하나의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자요, 과거의 뜻을 이어받은 전인이다.”
저 소녀뿐만이 아니다.”
용의 주술사의 유지를 이은 소년, 규율의 글레투스를 빼닮은 용사, 별을 믿지 않는 성녀, 와쳐의 재능을 개화한 마탑주. 이런 어둠 속에서도 별빛을 잃지 않는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지닌 이들.”
그것은 저들이 그늘을 비롯한 바깥의 존재를 상대할 자격을 갖췄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고작 그뿐이다.”
아크리타가 웃음을 흘렸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라니엘 반 트리아스가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벼려낸 칼날들이리라. 그러나 아크리타가 보기에, 이곳에 모인 칼날들은 무디기 짝이 없었다.”
칼의 형상을 갖추었을 뿐.”
충분히 벼려내지 못한 무딘 칼날에 불과하다.”
과거 자신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던 누이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는 이들뿐이지 않은가. 과거 이 대륙을 질주했던 최초의 용사들에 비하면 참으로 미약한 빛이지 않은가.”
‘고작 이런 것들을.’”
이런 비루한 것들로.”
‘나를 상대하겠노라고 판에 올린 거냐, 후배야.’”
아크리타가 비웃음을 흘렸다.”
“될 리가 있겠나.””
광인이 손짓했다.”
그 순간 흔들리던 탑의 천장이, 벽이, 바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너진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솟아오르는 검은 촉수다. 검붉은 촉수가 대공동을 집어삼키며 요동쳤다.”
끽, 끼기기기기긱.”
삐걱이고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깨지고 벌어지고, 비틀린 공간에서 쏟아져나오는 것은 검은 물이다. 범람하는 검은 파도와 함께 대공동에 검은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쿠웅.”
거대한 무언가 대공동의 바닥을 내려쳤고, 금이 가 있던 대공동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너지는 대공동, 무너지는 탑. 광인과 함께 추락한 토벌대가 도달한 곳은··· 끝자락의 탑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지하공간이다.”
“······.””
피비린내, 곪아버린 것들의 썩은내.”
악취가 진동하는 지하 공간에 추락한 토벌대들은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들은 추락하기 직전 분명히 보았다. 안개를 걷어내며 땅을 내려찍은 거대한 무언가를. 탑의 지하에서부터 솟구쳤던··· 거대한 팔을.”
안개가 걷혔다. ”
검은 물이 찰랑거렸다. ”
촉수가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흑룡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생명체다. 아니, 생명체가 아니다. 이미 죽어버린 것들··· 수십, 수백, 수천의 유골을 기워 붙여 완성된 저것을 생명체라 부를 수는 없었다.”
쿠웅.”
뼈들과 촉수로 이루어진, 성의 망루와 같은 크기의 거대한 팔이 땅을 내려찍었다. 흉골 사이에 위치한 검은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검은 물이 범람했다. 쩌억, 벌어진 해골의 입에선 검은 안개가 새어나왔다.”
하반신이 어둠에 잠긴 거대한 유골.”
이미 죽어버린 것들로 이루어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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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을 앞둔 신(神)이 포효했다.”
동시에 불완전한 신의 척추에 박혀있던 탑(塔)들이 차례로 공명하기 시작했다.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유골의 안광이 검붉게 번들거렸다.”
···진리에 닿기 위해 제 모든 것을 내던진 마법사는 끝내 진리에 도달했다. ”
마도(魔道)의 끝에 진리를 삼킨 이.”
고대의 리치, 스케발이 토벌대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