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64
“···까지가, 계획이야.””
붕대를 갈며 말을 끝마친 라니엘이 고개를 기울였다. 타닥, 타다닥. 타들어 가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걸터앉은 카일을 흘겨보며 그녀가 말했다.”
“물어볼 건 있어?””
“아니, 딱히 없다. 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짠 계획이라면··· 뭐, 가능하겠지.””
라니엘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간단히 수긍할 계획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뭐라 묻던 반박할 말만 한가득 준비해놨을 게 분명한데, 물어서 뭐해? 너랑 하루 이틀 작전하는 것도 아니고.””
카일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칼날에 광을 내며 카일이 말했다.”
“최초의 광인이란 존재 말이다.””
“광인이 왜.””
“네 말마따나, 여기서 그늘이 쓰러지는 순간 광인이 새로운 마왕을 만들어낸다 치면··· 이미 광인은 준비를 끝마쳤던 뜻 아닌가?””
카르디의 기억을 엿보았던 카일이다.”
최초의 광인이 아르카디아의 고성을 집어삼켰던 광경을 떠올리며 카일이 말을 이었다.”
“신이 되지 못했을 뿐인, 하늘에 닿을 자격을 얻은 ‘무언가’가 광인의 곁에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그렇겠지.””
“···그런데도 확신할 수 있냐?””
그럼에도 그곳에 보내진 토벌대가 이길 거라고 확신할 수 있냐고 카일은 질문했다. 그 질문에 라니엘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미안한데, 그러니까 확신하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
“거기에 신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섭리를 무너트릴 존재가 있으니까 확신할 수 있는 거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타닥, 타들어 가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광인의 계획이 완성을 앞둔 지점. 균형을 무너트리고 목적을 이루려는 그 순간, 그 장소가 바로 체스판의 끝이거든.””
“체스판의 끝?””
“그래, 체스판의 끝.””
라니엘이 손가락을 휘적였다.”
허공에서 형태를 이룬 마나가 폰(Pawn)의 형태를 이루었다. 마나로 이루어진 체스말을 라니엘이 탁, 하고 허공에 만들어낸 체스판의 끝자락에 놓았다.”
“체스판의 끝에서, 폰은 승격의 기회를 얻지.””
승격의 기회를 얻은 폰은.”
“여왕이 된다. 진정한 의미의 여왕(Queen)이.””
체스판의 끝에 놓인 폰. 폰의 형태가 변하는 것을 가리키며 라니엘이 웃었다.”
“광인을 상대하는 데는 나보다 그 아이들이 더 적합해. 오직 그 아이들만이 광인의 대척점에 설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믿어.””
그 아이들이 이길 거라고.”
체스판의 끝에서 폰은 여왕(Queen)이 된다.”
“체스판의 끝? 폰이 여왕이 돼? 그게 무슨 소리냐?””
카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니엘은 마나로 만들어낸 체스판을 카일의 앞에 띄워둔 채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의 의미야.””
그녀가 폰을 움켜쥔 채 체스판을 툭툭 건드렸다. 한번에 여러 칸을 뛰어넘는 룩, 비숍, 나이트와 달리 폰은 처음을 제외한다면··· 한 번에 한 칸씩만 움직일 수 있는 기물이다.”
“폰은 척 보기에는 보잘것없어. 체스판 위에 가장 많이 놓여있고, 쓰임새가 많다곤 해도 약자라는 느낌이 강하지. 말 그대로 졸병이니까.””
라니엘이 폰을 한칸씩 앞으로 옮겼다.”
“하지만.””
체스판의 끝을 향해서.”
“판국이 끝에 다다를수록, 폰은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기물로 변해. 불리한 전황조차 뒤엎을 가장 큰 변수로 탈바꿈하는 거지.””
탁, 하고 라니엘이 체스판의 끝에 폰을 놓았다.”
“체스판의 끝에 도달한 폰은 승격(Promotion)의 기회를 얻게 되니까.””
라니엘이 짧게 숨을 뱉었다.”
“현실에 빗대면 균형이 무너지고, 섭리가 바스러지며 새로운 신이 태어나려는 순간이겠지. 그 순간이 바로 최종장이자··· 체스판의 끝자락이란 뜻이야.””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 최종장을 만드는 것은 라니엘이 아니다. 저쪽에서 알아서 판을 깔고, 판 위로 말들을 유인했으니까.”
“그 녀석 분명 미리 준비해놨을 거란 말야? 네 말대로야. 광인이라면 이미 다음 ‘마왕’이 될 존재의 선정도, 그릇의 준비도 마쳐놨을 테지.””
그렇기에, 하고 라니엘이 말했다.”
“역설적으로, 폰의 승격에 필요한 모든 조건이 갖춰졌단 소리야.””
섭리가 무너진다. 완성되지 못한 신이, 신격을 갈망하며 비명을 토했다. 울부짖는 신(神)의 모체는 고대의 리치요, 존재를 이루는 것은 잔존한 마왕군의 원한이다.”
——————!”
존재의 울부짖음이 곧 비명이다.”
메아리치는 비명이 지하 공간을 두들기고, 메아리쳐서 돌아올 무렵 스케발은 이미 제 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거대한 뼈마디 하나하나가 톱니처럼 맞물리고, 이윽고 허공에서 주문이 완성됐다.”
알 수 없는 기이한 문자가 허공을 가득 채웠다.”
스케발의 육체에 기워 붙여진 크고 작은 해골들의 아가리가 쩌억, 하고 벌어졌다. 벌어진 아가리마다 기이한 소음을 토하며 주문을 읊었다. 하나, 둘, 셋··· 수십 수백에 이르는 문자열이 허공에 떠올랐다.”
회로를 그릴 필요도 없다.”
진리에 닿은 마법사가 깨우친 것은 언어다.”
하늘에 대고 외칠 언어. ”
최초의 마법사였던 고룡이 하늘에 대고 읊었던 것은 300개의 단어다. 하지만 진리에 닿음으로써 스케발은 고룡이 의도적으로 지워버렸던 언어의 존재를 확인했다.”
【■■, ■■■■■■■■.】”
고대 이전 태초의 시대에 쓰였던 것.”
규율을 파고들 여지가 있어 고룡이 의도적으로 지워버렸던, 현재는 고대 주문이라 알려진 가장 원초적인 언어들. 그것들을 스케발은 입에 담았다.”
잊혀진 칠십하고도 세 개의 언어.”
언어와 언어가 맞물려 탄생하는 수많은 문장.”
허공에 늘어선 언어들이 한순간 점멸했다.”
흐르는 번개가, 얼어붙는 불길이, 불태우는 물길이, 집어삼키는 대지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주문들이 토벌대를 향해 덮쳐들었다.”
“······.””
그리고, 덮쳐드는 주문 앞에.”
“레스티.””
“예.””
아일라는 담담히 검을 들어 올렸다.”
밀려드는 세찬 주문에도 그녀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순간 시간이 멈춰 섰다. 주문이, 촉수가, 떨어지는 돌 부스러기가··· 그 모든 게 제자리에 정지했다.”
아직 신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기에, 스케발로서는 간섭할 수 없는 초월자의 시간선.”
“······.””
그 시간 선에 바로 선 아일라와 레스티는 제 눈앞에 존재하는 불완전한 신을 보았다. 저 위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광인을 보았다. 아르카디아의 서기관이 남긴 수기를 보았기에, 그들은 광인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
광인이 바라는 것은 신을 담을 완벽한 그릇.”
스케발을 모체로 삼아 만들어낸 저 그릇된 신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신격을 얻는다 하더라도 완성되기 위해선 더욱 안정적인 그릇이 필요할 것이다.”
‘그 그릇으로 무엇보다 적합한 게···.’”
바로 스텔라와 와쳐겠지.”
과거 아르카디아의 여왕이 그러했듯, 별빛을 몸에 담은 채 살아가는 축복자들은 신을 품기에 적합한 영혼과 육체를 지니고 있다.”
하물며, 고난과 역경을 거쳐··· 체스판의 끝에 도달한 축복자라면 그야말로 최상의 그릇이리라.”
「그렇기에, 광인은 약점을 드러냈다.」”
아일라가 검을 들어 올렸다.”
「스텔라와 와쳐는 신을 담아낼 그릇인 동시에, 광인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다.」”
아르카디아의 서기관은 확신했다.”
「여왕께선 스스로가 광인의 대척점이라 여기셨고, 당신께 재능이 주어진 이유가 광인을 토벌하기 위해서라 여기며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았다.」”
수백 년의 삶 동안, 오직 광인을 상대하기 위해 제 삶을 던져냈던 여왕의 뜻.”
「그 뜻이 별빛에 남아있다.」”
「내 손녀가 지닌 별빛, 스텔라와 와쳐의 별빛에는 여왕께서 남기신 뜻이 잔류한다. 별빛은 광인과 관련된 것에 반응하고, 광인을 꿰뚫기 위해 변질하고 있다.」”
별빛이, 별빛을 머금었던 이에게 감화됐다.”
그리 주장하는 루그란은 알 길이 없었지만··· 이 기록을 읽었을 때 아일라와 레스티는 확신했다. 이건 이미 증명된 가설이라고.”
가장 용사다운 용사 갈라할이 그 사례였다.”
그에게 감화된 별빛이, 흐름으로 순환하기를 거부하고 클로에에게 흡수됐단 사실을 그들은 알았으니까.”
「느리지만 확실하게 별빛은 변화하고 있다.」”
「당장 내 손녀의 세대에는 무리일지도 모른다. 다음, 그다음 세대에도 무리일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