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76
“네가, 내 적이었구나.””
너만큼은.”
너만큼은 내 손으로 죽여야겠다.”
용이여, 여신의 분노를 노래하소서.”
하늘의 주인이 여신의 분노를 노래하는 그날 지상에는 불의 강이 흐를 것이요, 거친 폭풍이 하늘을 뒤섞으리라. 오오, 그러니 머리를 조아려라. 여신의 위대함을 칭송하라. 여신께서 노하지 않으시게끔.”
태고(太古)의 시대. ”
신의 사도들이 저마다가 모시던 신의 위대함을 노래하던 혼돈의 시대에도 여신의 대전사인 흑룡은 건재했다. 숱한 장군들이 용의 사냥에 나섰지만 그중 누구도 살아서 제 신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거신룡, 검은 폭풍.”
용은 협곡에 똬리를 뜬 채 제 여신의 잠자리를 지켰다. 깊은 잠이 든 여신이 눈을 뜨는 그날이 올 때까지, 세상이 여신을 잊지 않게끔 분노를 노래했다. 그렇기에 거신룡은 하늘의 지배자라 불렀으며, 여신의 분노라 불렸던 것이다.”
‘···저것이.’”
그리고, 스케발은.”
‘저것이, 신의 분노인가.’”
고서(古書)로만 접해왔던 신의 분노를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가히 역사적인 광경이었다. 하늘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검은 폭풍은 닿는 모든 것을 빨아올려 갈아버렸다. 저 기적에 가까운 현상에는 그 어떠한 마법적 개입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법이라기엔 지나치리만치 자연스러운 현상.”
그저, 날갯짓을 하고 입을 여는 것만으로 저 거대한 존재는 기적을 일으킨다. 그렇기에 완벽한 생명체라 불리는 것이겠지. 주문을 손에 잡히는 대로 난사하며 스케발이 제 안광을 좁혔다.”
‘어찌하여.’”
도대체 어찌하여.”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음에도 닿지 않는가.’”
그토록 갈망하던 진리에 닿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며 쟁취해낸 진리였다. 스케발은 자신의 삶을 회고했다. 자신의 삶은 버림으로써 시작됐으며, 버림으로써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동료를 버렸다. 인간성을 버렸다. 인간의 육체를 버렸다. 마탑(魔塔)을 버렸으며, 감정과 기억조차 필요하다면 망설임 없이 버려왔다.”
「스케발, 님, 부디.」”
그렇게 버려왔기에.”
「살려, 주십, 시오.」”
광인이 만들어낸 참상 앞에서, 스케발은 마왕군의 총사령관인 지위마저 내던질 수 있던 것이리라. 그곳에서 스케발은 자신을 믿고 따르던 부하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그들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제나 버려왔으니까.”
이제 와서 집착하기엔 우스웠으니까.”
제 동포들을 버리고, 짓밟아왔던 자신이 아니던가. 이제와서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기엔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 그 먼 길동안 스케발이 바라본 것은 오직 단 하나였다. 진리(眞理), 마법사들의 비원.”
‘진리에 닿으면 모든 것을 깨우칠 줄 알았다.’”
모든 것을 깨우쳐서, 전지하고 전능해져서 다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현실은 태고의 짐승에게조차 휘둘리고 있지 않은가. 스케발의 안광이 수축했다.”
그리하여 닿는 것은 깊은 곳에 숨긴 진심이다.”
···스케발은, 잿빛을 동경했다.”
대마법사 카르디 반 아르미엘을 스케발은 동경했다. 인간일 때도, 이런 모습이 되어서도 줄곧 그를 동경한 것이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것을 잃고 잊어버린 스케발이지만 결코 잊지 못한 한 마디가 있었다.”
「너는 영원히 나를 넘지 못한다.」”
너의 길은 틀렸다.”
너의 길로는 내게 닿지 못한다.”
카르디 반 아르미엘이 남긴 말은 화인(火印)이 되어 스케발의 영혼에 새겨졌다. 천 년의 세월조차 흉터를 지우지는 못했다. 신이 된 지금마저, 스케발의 영혼 한구석에는 잿빛에 대한 열등감이 존재했다.”
카르디 반 아르미엘을.”
라니엘 반 트리아스를.”
그 빌어 처먹을 잿빛들을.”
스케발은 증오했으며, 또한 동경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다. 신의 경지에 닿은 지금마저도 스케발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잿빛 마법사들의 마법이다. 그들이 자신을 짓밟았던 술식이다.”
···아아.”
스케발이 신음했다.”
버리고 버려온 자신이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 것, 잿빛에 대한 열등감.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스케발은 헛웃음을 흘렸다. 진리를 깨우치고 신의 경지에 도달하면 무엇하겠는가?”
‘인간으로서 편린조차 버리지 못했거늘.’”
멀고 먼 길을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조금도 나아가지 않았다. 자신은 여전히 열등감에 찌든 인간일 뿐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도망칠 생각을 하는 겁쟁이일 뿐이었다.”
콰직, 하고.”
스케발이 무언갈 움켜쥐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남아있던 라이프 베슬이다. 본래라면 그것의 가치는 보잘것없다. 도망치기 위한 것, 여분의 목숨, 인공의 산물··· 그런 것들은 찰나를 살아가는 인간의 한순간마저 못한 것이니.”
‘바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르다.”
스케발은 자신이 가진 모든 라이프 베슬을 박살 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죽음을 각오하지 않았던 그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도주로를 박살 낸 것이다.”
죽음에게서 멀리 서 있던 고대의 리치가 죽음에 한 걸음 다가갔다. 그 행동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다.”
쏴아아아아아.”
검은 물이 범람했다. 범람하는 물이 홍수가 되어 흑룡의 불을 꺼트렸다. 검은 바다의 위에서 스케발이 고개를 들었다. 고개들 들어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그곳에는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용(龍)이 있다. 용을 바라보며 스케발이 팔을 들어 올렸다.”
‘닿을 수 없다면.’”
이 열등감을 버릴 수 없다면.”
‘끌어내리리라.’”
하늘을 끌어내리리라.”
스케발이 손을 움켜쥐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혹은 필연일까. 스케발과 스케발의 육체를 이루는 마왕군의 원혼은 같은 것을 바랐다.”
검은 물에서 손아귀들이 솟구쳤다.”
마치, 마왕(魔王)이 그러했던 것처럼.”
솟구치는 손아귀들이 흑룡을 뒤쫓았다. 흑룡이 날갯짓하며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손아귀는 끊임없이 따라붙어 흑룡의 날갯죽지를 움켜쥐었다. 흑룡의 다리를 붙잡았다.”
우득, 우드드드드득.”
뼈가 부러지고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
용의 날개가 찢어졌다. 용의 다리가 부러졌다. 그러나, 흑룡 또한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 손아귀에 붙잡혀 땅 아래로 추락한 용이 손아귀들을 찢어발기며 스케발에게 달려들었다.”
우득, 콰직, 콰즈즈즉.”
검은 손아귀에 붙잡힌 흑룡의 날개가 찢어져 피가 길게 튀었다. 스케발의 척추에 박힌 탑들이 흑룡의 손톱에 휩쓸려 박살 났다. 부러지고, 찢어지고, 바스러지는 소리가 하염없이 울려 퍼졌다.”
검은 파도의 위에서 난전이 벌어졌다.”
한치의 밀림도 없이 둘은 맞부딪쳤다.”
아크리타가 창을 휘둘렀다. 휘두르며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오직 데스텔을 향해 아크리타는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저놈, 저놈이었다.”
‘너로구나.’”
나의 판을 엎어버린 변수가.”
내가 죽여야만 할 변수가 너였구나. 잿빛도, 스텔라도, 와쳐도 아니었다. 나의 판을 엎어버린 건 다름 아닌 너의 존재였다.”
“···하!””
감정을 잃어버렸을 아크리타는 지금 이 순간 분노를 느꼈다. 분노와 즐거움은 한끝 차이였으나, 광인(狂人)은 그 한끝의 간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분노하며 환희했다.”
그가 광소하며 데스텔에게 창을 내질렀다.”
카아아앙, 하고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길게울려 퍼졌다. 창날이 맞부딪치는 순간 데스텔이 쥐고 있던 구원의 창이 한순간 흐릿해졌다. 별빛으로 이루어진 창은 우인의 창의 맞부딪친 순간 무력화되고 만다.”
“···쯧.””
데스텔이 혀를 차며 흩어지는 창을 놓았다. 검을 손에 쥐고 휘둘렀다. 한합을 맞부딪칠 때마다 데스텔은 무기를 바꿔 쥐어야 했다. 저 우인의 창은 지나치리만치 까다로운 무기였다.”
‘끈질기네.’”
데스텔이 눈살을 찌푸렸다.”
광인은 오직 자신만을 노리고 있었다. 밀려드는 별의 파도를 최소한으로 뚫어내고, 추격하는 카리옷을 떨쳐내며, 마법을 흩뿌려 라크의 발목을 묶고선 자신을 향해 파고들고 있다.”
마치, 자신을 먼저 죽여버리겠다는 양.”
그 기세가 가히 맹렬했다.”
라크가 분전하고 있긴 하나··· 바르타와의 전투 직후에 합류한 라크다. 물론 저 상태로도 아크리타와 정면에서 맞부딪치면 라크의 승리일 테지 만, 부상입은 육체로 라크는 아크리타를 추격하진 못했다.”
서걱.”
아크리타가 난사하는 최고위 주문을 가벼이 휘두르는 것으로 베어버리고 있다곤 하나, 이곳으로의 합류는 어려워 보였다.”
카아아아아아아앙!”
마찰음과 함께 데스텔이 멀리 밀려났다.”
흩날리는 꽃잎을 즈려밟으며 데스텔이 측면으로 도약했다. 그렇게 라크 쪽으로 합류하려는 순간 쐐엑, 하고 꽃잎을 찢어발기며 밀려드는 창날이 데스텔의 경로를 막아섰다.”
찌르기에서 이어지는 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