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79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일라에게서 제 오랜 누이를 겹쳐보았다. 자신의 오랜 적수가 그곳에 있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자신을 쫓아온 적수가, 드디어 자신을 따라잡은 것이다.”
“아크리타 클렌 아르카디아.””
아일라가 입을 열었다.”
“그날, 여왕께선 당신에게 선언했습니다.””
광인에게 제 칼끝을 들이밀었다.”
여왕의 보검이었고, 이어진 의지의 상징인 칼날을 죽어가는 아크리타의 심장에 겨누었다.”
“나의 삶은.””
나의 길은.”
“나의 뜻은.””
나의 길을 따라 걷는 이들은.”
“당신에게 닿는다고. 지금은 너무나도 미약하여 보잘것없어보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걸려서라도 반드시 당신에게 닿는다고. 여왕께선 그리 말씀하셨지요.””
“그리했었지.””
아크리타가 웃었다.”
“나는 그 선언을 비웃었고,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 조롱했었지. 기억한다.””
하지만, 하고.”
아크리타는 제 앞에 선 아일라를 보았다. 보잘것없는 겁쟁이였던 소녀. 자신의 적수조차 되지 못하리라 여겼던 소녀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다.”
“이젠 내가 조롱을 받을 차례로군.””
아크리타는 그리 말했다.”
검을 겨눈 채 아일라는 숨을 삼켰다.”
그녀는 말할 수 있었다.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만큼의 희생이 필요했는지. 얼마나 많은 인간이 당신에게 닿기 위해 제 삶을 내던졌는지. 그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아르카디아는.””
그 대신 아일라는 말했다.”
“그 뜻을 이은 카르테디아는, 인류는.””
그녀의 칼끝에서 꽃이 피어올랐다.”
“오늘 당신에게 닿았습니다. 다음으로, 다시 다음으로 이어진 길은 결국 당신을 앞질렀습니다.””
여왕의 삶은.”
아크리엘 클렌 아르카디아의 뜻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선 내가 그 증인입니다.””
별빛을 끄는 칼을 아일라가 내질렀다.”
신묘한 검술도 필요 없다. 힘을 줄 필요도 없었다. 그저 아크리타의 심장을 향해 칼끝을 밀어 넣었다. 천년 전 그날, 광인에게 닿지 못했던 칼날은 지금 이 순간 광인의 심장 깊은 곳에 틀어박혔다.”
울컥, 하고 광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토해져 나왔다. 칼끝에서 피어오르는 별빛이 광인의 영혼과 육체를 불사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닿지 못할지도 모르지요.」”
아크리타가 앞을 보았다.”
붉게 물드는 시야 사이로 아일라를 마주했다.”
「하지만 언젠가 이 칼날은 당신을 꿰뚫을 겁니다. 그리고, 그날 비로소···.」”
귓가에는 제 누이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메아리치는 목소리에 아일라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오늘 이날 인류는 승리했고.””
「인류는 승리할 것이고.」”
“카르테디아는, 제국이라 불리게 될 겁니다.””
「아르카디아는 제국이라 불리게 될 겁니다.」”
천년의 세월을 건너 여왕의 칼은 아크리타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녀의 유지를 이은 별빛이 아크리타에게 영원한 죽음을 선고했다.”
“···하.””
피를 토하며, 영과 육이 불타는 고통 속에서 아크리타는 웃었다. 웃음을 토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어째서 웃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수많은 삶을 망가트리고.”
수많은 삶을 강탈하면서.”
수많고 수많은 삶의 최후를 수집해 온 아크리타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하게 된 것은 수만 년을 살아온 어느 광인(狂人)의 최후다. 광인은 웃고 있었다. 실성한 것이 아니었다. 분노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어째서 웃고 있는가.”
무엇이 그리도 즐거워서?”
아무리 비루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라 한들 삶의 최후에 그들은 하나의 예술품이 되거늘, 이 광인은 예술품조차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저자의 삶에 가치가 있는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최후가 아름답지 않은 것을 예술품이라 부를 수 없는 법이니.”
아크리타는 광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크리타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 것이리라. 광인은 마지막까지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하, 아하, 하···.””
웃음 소리가 희미해졌다.”
희미해지던 웃음소리는 어느 순간 뚜욱, 하고 끊어졌다. 수만 년을 살아온 광인의 최후는 초라했다.”
결국 너의 승리로구나. 누이야.”
수만 년을 기다려온 죽음이 광인을 집어삼켰다.”
파삭, 하고 아크리타의 잔재가 바스러졌다.”
흩날리는 잔재를 바라보며 아일라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길고도 길었던 추격은 끝이 났다. 광인의 토벌전이 끝이 난 것이다. 하지만, 아일라는 토벌의 끝을 외치지 못했다.”
아직 끝이 나지 않은 싸움이 있었기에.”
아일라가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저 멀리서 뒤엉키고 있는 흑룡과 스케발이 있다. 그곳을 향해 합류하고자 그녀가 토벌대를 지휘하려는 순간이다.”
번쩍.”
흑룡과 스케발이 맞부딪치는 그곳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마치 지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직후 거센 폭풍과 함께 열풍이 밀려들었다.”
“읏···!””
머리칼이 요란스레 흔들렸다. 불어온 바람에 화원의 꽃잎들이 사방으로 나부꼈다. 한참 떨어진 이곳까지 느껴지는 열기. 눈을 뜨기도 힘든 폭풍 앞에 아일라가 간신히 눈을 뜬 순간이다.”
탁, 하고.”
누군가의 걸음 소리가 들렸다.”
아일라의 곁으로 새하얀 백발이 나부꼈다. 누군가 꽃밭을 밟고 아일라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나부끼는 백발 사이로 아일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클로에가 달리고 있었다.”
밀려드는 열풍에 개의치 않고 클로에는 달리고 있었다. 벨노아가 있는 곳을 향해서.”
* * *”
클로에는 달렸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시야가 흔들렸다. ”
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욱신거렸다. 불어온 바람이 뜨거워서, 숨이 찼다. 다리는 떨렸으며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렀다.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칼이 시야를 가려, 고개를 숙이고 클로에는 달렸다.”
걸음 소리. 거세게 뛰는 박동 소리. 숨소리.”
숨을 몰아쉬며 클로에는 달렸다.”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달려본 적이 있었을까. 이렇게까지 절박하게 달려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없었다.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항상 자신의 곁에는 벨노아가 있었으니까.”
자신의 손을 잡고 함께 달려줬으니까.”
그런 벨노아가 있는 곳을 향해 클로에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밀어 들던 열풍도 어느샌가 잠잠해져 가고 있었다. 클로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숨을 몰아쉬며, 땅을 박차고 뛰며 앞을 보았다.”
그곳에는 흑룡이 있었다.”
멀찍이 보였던 흑룡이, 벨노아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시야에 들어온 흑룡은 만신창이었다. 날개는 찢어졌다.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으며 극복(Overcome)의 반동으로 흑룡은 죽어가고 있었다.”
녹아내린 스케발의 유골 위에서.”
흑룡은, 벨노아는 죽어가고 있었다.”
결투에선 이겼지만 결국 벨노아 또한 죽음을 피해가지 못한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클로에가 숨을 헛삼켰다. 발을 헛디뎌, 꼴사납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읏···.””
땅을 손으로 짚고 일어선 클로에가 비틀거리며 벨노아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다가서며 클로에가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벨노아, 하고.”
그리고 그 순간이다.”
“어. 왜 불러.””
클로에의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로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녀가 고개를 휙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녹아내려 죽어가는 흑룡의 위에서 목소리는 들려왔다.”
“누가 보면 사람 하나 죽은 줄 알겠다.””
흑룡의 머리 위에 걸터앉아있던 벨노아가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클로에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뭐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벨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