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80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클로에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벨노아는 흑룡의 머리 위에서 내려와, 클로에를 향해 가벼운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왜 부르냐니까.””
탁, 하고.”
클로에의 앞에 선 벨노아가 손을 내밀었다. 떨리는 손을 뻗어 클로에가 벨노아의 손을 움켜쥐었다. 감각이 느껴졌다. 헛것이 아니었다.”
“아, 진짜···.””
결국 클로에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울면서 웃었다. 표정이 관리가 되질 않아서, 감정이 주체가 되질 않아서 클로에는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토했다. 그녀가 고개를 든 것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벨노아?””
“어떻게···?””
뒤늦게 따라온 토벌대들이 벨노아를 보고 눈을 크게 뜬 채, 뭐라 말을 붙이려는 순간이다.”
콱 하고.”
고개를 든 클로에가 대뜸 벨노아의 멱살을 움켜쥐고선 잡아당겼다. 토벌대에게 상황을 설명하려던 벨노아의 입이 틀어막혔다. 누군가는 눈을 크게 떴고, 누군가는 가만히 고개를 돌렸으며, 또 누군가는 떫은 시선으로 둘을 바라봤고······.”
“와오.””
라크는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냐?””
광인 토벌전의 종료, 그 뒤처리로 토벌대가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데스텔이 벨노아의 곁에 걸터앉았다.”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데스텔이 길게 숨을 뱉었다.”
“흑룡으로 변한 널 보고 올게 왔구나 하고 반쯤 체념했었다. 거기까지 가면 돌아올 수 없다고 네가 못 박기도 했고.””
거기까지 가지 않게끔 만드는 게 내 역할이었을 텐데, 미안하게 됐다. 그리 중얼거리며 데스텔이 고개를 숙였다. 벨노아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잖습니까.””
그리고, 하고 벨노아가 말했다.”
“이것 또한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구요.””
그가 시선을 뒤로 돌렸다.”
벨노아의 뒤에는 무너지는 흑룡의 유해가 있었다. 그 유해를 바라보며 벨노아가 쓰게 웃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셨습니까.””
데스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벨노아는 흑룡의 유해를 바라보며 짧게 답했다.”
“도움을 받았습니다.””
도움을 받았노라고.”
“머나먼 선배께 말입니다.””
“선배라면···.””
“검은 폭풍이라 불렸던 분이십니다. 그림자 용의 군주님의 전대 계약자이기도 하고요.””
데스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검은 폭풍, 그 이명이 가리키는 존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뿐이었다. 검은 폭풍, 흑룡 벨리알. 카일이 현역이었던 시절 토벌당했던 재앙을 떠올리며 데스텔이 제 턱을 매만졌다.”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가 쫙, 하고 네 손가락을 펼쳤다.”
“배교자, 글레투스는 최초의 성녀였고.””
하나.”
“죽음의 칼,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은 최초의 용사였지.””
둘.”
“스케발··· 아니 걘 모르겠다. 걘 뭐였냐? 뭐 아는 거 있어?””
“저도 잘 모릅니다. 그래도 신위에 근접한 걸 보면 과거에도 대단한 무언가였겠지요.””
아무튼, 셋.”
그리 세 손가락을 접은 데스텔이 남은 손가락 하나를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
“네 개의 재앙 중 스케발을 제외한 모두가 각자 사연 하나씩은 품고 있으니, 흑룡 벨리알 역시 과거에는 대단한 무언가였겠지. 그분은 어떤 분이시냐?””
벨리알이 어떤 인물인가.”
그 질문에 벨노아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영웅이셨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말입니다.”
벨노아는 벨리알과 나눴던 대화를 곱씹었다.”
예상 이상으로 스케발의 저항이 거셌다.”
승리와 패배는 한끝 차이였고, 그렇기에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결판을 내기 위해 흑룡이 토해낸 불길은 오직 스케발만을 녹이진 않았다. 불길은 흑룡의 육체 또한 불태웠다.”
떨어져나간 비늘, 뜯어진 날개.”
열기에서 더는 제 몸을 보호하지 못하기에, 흑룡은 자신의 불길에 타들어 갔다. 타들어 갔음에도 흑룡은 불을 토해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화륵.”
스케발이 완전히 녹아내렸을 무렵, 그제야 흑룡은 불길을 거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너무나도 늦어 있었다. 제 육신의 태반이 녹아내린 흑룡 또한 죽음으로 떨어지고 있었으니.”
극복(Overcome)의 반동.”
과부하 된 용체(龍體).”
한순간에 밀려드는 대가에 흑룡의 육체는 바스러졌다. 벨노아는 자신이 존재하는 그림자 공간이 서서히 불타 들어감을 느꼈다. 이곳이 완전히 불길에 집어삼켜 지는 순간, 그걸로 모든 게 끝이리라.”
“······.””
이미 예상했던 결말이었다.”
그렇기에 벨노아는 웃었다. 체념한 이의 웃음은 아니었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승리를 쟁취해낸 전사의 웃음이었다.”
“이겼군요.””
패색이 짙은 전장이었지만 승리를 거머쥐었다. 스케발은 죽음을 맞이했고, 저 멀리서 느껴지던 광인의 기척도 사라져 있었다.”
“헛되지 않았나 봅니다.””
자신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그 사실에 벨노아는 만족했다. 클로에는 살아남았으며, 이날 인류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정도면 저승으로 가는 길에 곱씹을만한 위업이었다. 저승이란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벨노아가 제 곁에 선 벨리알에게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무얼, 네 손으로 쟁취해낸 승리다.””
벨리알은 언제나처럼 호쾌한 웃음을 흘리며 벨노아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어깨가 두들겨질 때마다 시선이 흔들렸다.”
“카르디 그 녀석이 후계 하나는 참 잘 골랐어. 보는 눈이 있는 놈이라니까.””
“그리 말씀해주시니 영광이군요.””
벨노아가 길게 숨을 뱉었다.”
“그럼···.””
벨노아가 시선을 옮겼다.”
이곳으로 밀려드는 불길이 있었다. 그 불길을 가리키며 벨노아가 쓰게 웃어 보였다.”
“저는 가보겠습니다.””
밀려드는 불길에 공포에 떨며 죽음을 맞이하느니, 제 발로 직접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렇게 벨노아가 불길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다.”
콱, 하고.”
벨리알이 벨노아의 뒷목을 움켜쥐었다.”
“방향이 틀렸다, 이 애송아.””
“···예?””
“네가 갈 길은 거기가 아니지 않냐.””
벨리알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시야를 넓게 가지고, 주변을 좀 둘러보란 이야기다. 하여간 매정하기는.””
벨노아가 가려던 방향의 반대편.”
그곳을 벨리알이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클로에의 모습이 보였다. 헐떡이며, 비틀거리며 그녀는 흑룡이 있는 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
벨노아가 침묵했다.”
결국 그녀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됐다. 자신에게 주어진 결말은 죽음뿐이니. 그리 착잡한 시선으로 벨노아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클로에를 바라보고 있자니, 벨리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넌 내게 감사한다고 말했지만, 감사해야 할 건 네가 아니라 나일지도 모르지.””
“···예?””
벨리알이 말했다.”
“고맙다. 네게. 고맙다, 저곳에 있는 네 동료들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대륙의 맞은편으로 향했을 계약의 후인(後人)과, 나를 끝내준 용사에게.””
그가 엷은 웃음을 흘렸다.”
언제나와 같은 호쾌한 웃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