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81
“우리의 시대에 끝냈어야 했는데, 끝내지 못해 후손들에게 떠넘긴 과업을··· 기어코 끝내줘서 고맙단 이야기다. 너희에겐 참 많은 신세를 졌어.””
고대의 시대를 살아왔던 영웅이 말했다.”
“하물며 너희는 단순히 끝내는데 그치지 않았지.””
벨노아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보아왔던 벨리알은 쓰게 웃었다. 라니엘 반 트리아스, 계약의 후인. 그녀가 행한 일을 벨리알은 잘 알고 있었다.”
“짓밟아도 모자랄 재앙인 우리에게, 너희는 최선의 결말을 마련해줬지. 글레리아, 그 녀석을 위해 너희가 마련한 무대를 보았다. 너희의 계획을 보았어.””
그가 미소 지었다.”
“마지막의 순간에 글레리아는 분명 만족하며 갔겠지. 카르디 녀석과 재회할 수 있었을 테니까.””
글레리아도, 카르디도 구원받았으리라.”
그리고 확신하진 못하겠지만, 가니칼트 녀석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말을 맞이하리라고 벨리알은 추측했다.”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그 모든 일이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라는 걸 벨리알은 알았다. 실현되지 못할 꿈이기에, 그들 또한 포기하고 체념했으리란 사실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포기했던 꿈을 다시 꾸게 해준 모든 이들에게 벨리알은 다만 감사했다.”
“내 동료들을 배려해줘서 고맙다. 내 의지를 이어줘서 고맙다. 벨노아.””
고대의 영웅이 현재의 영웅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찌할 줄 모르는 벨노아의 반응에 벨리알은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선배에게 인사를 받으니 부담스럽냐?””
“예, 조금···.””
“고개 숙여야 할 일에 숙였을 뿐이다. 그리고, 난 인사로 이 은혜를 퉁 칠 생각은 없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벨노아가 묻는 것보다 먼저, 벨리알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여신님, 내 말 듣고 있소?””
【듣고 있다.】”
“그럼 내가 뭘 하려는지도 알겠구만.””
【애석하게도, 그렇구나.】”
벨노아가 눈을 깜빡였다.”
벨리알은 팍, 하고 벨노아의 등을 후려치며 자신의 반대 방향으로 떠밀었다. 불길이 다가오는 쪽이 아닌··· 클로에가 달려오고 있는 방향으로.”
“···벨리알 님?””
벨노아가 벨리아를 바라봤다.”
벨리알은 제 어깨를 으쓱였다.”
“네겐 돌아가야 할 곳이 있지 않냐. 그곳으로 가라. 어딜 선배보다 앞서서 가려고.””
“그게 무슨···.””
“그동안 즐거웠다, 벨노아.””
벨리알이 씨익, 웃어 보였다.”
“네가 쌓아온 주술의 계보, 아깝겠지만 그건 여기에 놓고 가라. 이곳에서 나가게 되면 네 힘으로 다시 처음부터 쌓아보도록. 여신께서도 많이 도와주실 거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천칭이 들려 있었다.”
그가 대가로 바치는 것은 성배에 담긴 제 영혼의 파편과··· 벨노아에게 이어져, 벨노아가 길러온 주술의 계보다.”
그림자 용의 주술의 계보.”
그곳에는 벨리알의 의지가 담겨있다. 제 뒤를 이을 후인을 위해 그가 안배해둔 장치가 가득했다. 그것들이 성배에 담긴 벨리알의 영혼과 맞물린 순간, 그가 마련해뒀던 안배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런 걸 남겨두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다. 하여간 머리는 좋은 녀석이구나.】”
벨리알의 의도를 깨달은 여신은 쓰게 웃었다.”
【너를 두 번 잃으라고 하는 것이냐, 내게.】”
“엄연히 말하면 두 번은 아니오, 여신님.””
벨리알이 너스레를 떨듯이 말했다.”
“그날 여신님의 곁으로 다 보내지 못한, 남은 조각을 지금 보내는 것이지.””
【말은 잘하는구나.】”
여신께선 착잡한 눈길로 벨리알을 바라봤다.”
그녀도 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은 벨리알이 아닌, 벨리알의 파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지만 또한 여신은 알고 있다.”
주술의 계보에 담겨, 벨노아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여정을 함께 해온 저 영혼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또 다른 영혼체라는 것을.”
어찌보면 그것은 벨리알의 두 번째 삶이다. 주술의 계보에 담긴 것은 영혼의 편린이었을지 모르나, 주술이 성장함에 따라 편린은 씨앗에서 발아(發芽)해 한 그루의 나무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섭리는 이것을 ‘한 명분’의 영혼으로 인정했다. ”
【너는···.】”
그리고, 벨리알은 자신의 두 번째 삶마저 타인을 위해 버리겠노라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여신의 착잡한 눈길을 눈치챘는지, 벨리알은 말을 덧붙였다.”
“처음부터 이를 위해 마련해둔 파편이오. 그러니 너무 뭐라 하지 말아주셨으면 해.””
【벨리알.】”
“듣고 있소.””
【내 너를 잊지 않으마. 언제까지고.】”
벨리알이 피식 웃었다.”
마지막으로 여신에게 예(禮)를 다해 인사를 올린 벨리알이 앞을 향해 걸었다. 그가 바친 것은 주술의 계보와 자신의 영혼. 다가오는 불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벨리알이 뒤를 향해 손짓했다.”
불어온 바람이 벨노아를 스쳐 지나갔다.”
벨노아가 바람이 향하는 곳을 돌아봤다. 바람과 함께 그림자가 걷히며 길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나가는 길이었다. 클로에가 달려오고 있는 길이요, 벨노아가 가려던 길과 반대되는 길.”
“가봐라, 벨노아.””
벨노아가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본래 자신이 가려 했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벨리알이 있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웃어 보였다.”
“계약의 후인, 라니엘이란 친구에게 감사를 전해주면 좋겠군. 아, 카르디에게도 안부를 전해주면 좋겠어. 그거면 될 것 같다.””
벨노아가 침묵했다.”
무언갈 말하려다가, 이내 그 말들이 쓸모가 없음을 깨달은 벨노아는 다른 것을 질문했다.”
“혹, 부탁할 만한 일은 더 없으십니까?””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만··· 아, 어쩌면 하나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루지 못한 소원이 있으니까.””
그게 무엇입니까.”
그리 묻는 벨노아에게 벨리알이 답했다.”
“고아원을 하나 차려주면 좋겠어. 아주 큰 걸로.””
“고아원 말입니까.””
“그래. 부모 잃은 아이들을 보듬어 줄 곳이 필요할 테니까 말이야. 고아원의 이름은··· 카트란, 그리고 카를리안이 좋겠다.””
“이름에 달리 의미가 있습니까?””
“있지.””
벨리알이 추억에 젖은 눈길로 먼 곳을 보았다.”
“내 아들과 마누라의 이름이거든.””
지키지 못했던 이들의 이름.”
그들의 앞에서 맹세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벨리알은 웃었다. 천 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그들의 곁에 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어서 가봐라. 저리 애타게 널 찾고 있는데.””
클로에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벨리알이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
벨노아에게서 등을 돌린 채 그는 불길을 향해 걸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벨노아는 최대한의 경의를 담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벨노아는 걸음을 돌려 벨리알과 반대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대단한 분이시네.””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들은 데스텔은 허어, 하고 길게 숨을 토했다. 왕도로 돌아가면 따로 위령비라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데스텔은 쓰게 웃었다.”
“아무쪼록 다행이다. 살아 돌아와서 말이다.””
클로에를 볼 낯짝이 없었거든.”
그렇게 중얼거리며 데스텔이 슬쩍 클로에가 서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토벌의 뒷정리를 하며 자꾸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벨노아.””
데스텔이 툭툭, 벨노아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제야 사귀기로 결심한 거냐?””
“······.””
“언제 사귀나했다.””
“아직···.””
“뭘 또 아직이야? 너 여기서 더 빼면 보는 사람들이 다 속 터져 죽을걸? 기사들 사이에서 너희 사귄다고 소문난 지가 벌써 몇 년 짼 데.””
벨노아가 슬쩍 시선을 옮겼다.”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던 클로에와 시선이 마주한 순간, 휙 하고 클로에가 고개를 돌렸다. 귀가 잔뜩 새빨개진 클로에를 보고있자니 벨노아의 귓가에 여신께서 속삭이셨다.”
[저 아이도 제법이더구나. 내 저리 화끈하게 갈겨버릴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제법이야.]”
‘여신님, 제발 그만···.’”
여신께서 휘파람을 부셨다.”
[좋더냐? 기분은 어떠더냐? 어디 자세히 말해 보아라. 풋풋한 청년의 사랑이야기만큼 이 여신을 들뜨게 만드는 것이 또 없으니, 계약자는 어서 내게 달콤한 이야기를 바치도록 하여라.]”
벨노아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토벌전은 끝났거늘, 이젠 다른 전쟁을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 *”
“드디어 찾았네요.””
아일라가 끝자락의 탑 깊은 곳에 멈춰 섰다.”
토벌대와 함께 그녀가 멈춰선 곳에는 옥좌의 앞이었다. 옥좌에는 상반신만이 남은 시체 한 구가 놓여 있었다.”